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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을 공부하냐고 물으면 딱히 뭐라고 똑 부러지게 대답을 하기가 힘들다.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정치학이면 정치학, 법학이면 법학이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딱 떨어지는 어떤 학문을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혼란은 그 동안 내가 쓴 책을 보면서 더 가중된다. 맨 처음 쓴 책은 <포르노, All boys do it.>이라고 해서 남자 청소년들이 포르노를 어떻게 경험하는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두 번째로 쓴 책은 <닥쳐라, 세계화>라고 하여 세계화에 의해서 지구 곳곳이 어떻게 폐허가 되어가고 있으며 아래로부터 사람들이 어떻게 저항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인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는 신자유주의라는 체제에서 사람들이 삶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게다가 지금 박사논문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법치주의>의 문제이다. 포르노에서 세계화로 신자유주의에서 법치주의까지 도통 연결이 잘 되지 않으니 유행 따라 이 주제 저 주제를 찝쩍거리는 ‘잡학’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학문을 흔히 ‘문화이론’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또 지역 ‘문화’, 대중 ‘문화’, 종교나 예술과 같은 ‘문화’ 등 각자가 상상하는 ‘문화’에 대한 이미지에 따라 각양각종의 오해를 풀어놓는다. 그러면서 왜 문화를 공부한다는 사람이 법치주의나 신자유주의 따위와 같은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돌고 돌아 요즘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마음으로 보는 세상은 어떠한가를 다루는 학문이 문화이론이라고 설명한다. 어려운 말로는 인간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더 어려운 말로는 주체형성의 과정에 개입하는 권력과 장치들을 분석하는 학문이라고도 한다.  


내가 인간이 세상을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그 마음으로 본 세상은 어떠한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순전히 교육적인 이유에서이다. 교육이란 사람의 성장을 도모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기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판단하고 사회에서 제 몫을 하는 것을 우리는 성장한 삶이라고 한다. 이것을 우리는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삶이라고 칭찬한다. 그래서 모두가 그런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럼 의미에서 교육은 먹고 살기 위해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전달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자기 생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가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부정적인 이유에서부터 출발한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나는 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집은 대단히 못살았다. 단칸셋방에 부모님과 누나 둘, 그리고 내가 오글오글 모여 살았다. 아버지는 원자력 발전소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셨기 때문에 3일에 한 번씩만 집으로 돌아오셨다. 어머니는 학교 앞에서 풀빵을 구워 판적도 있었다. 한 번은 연탄가스가 새서 온 식구가 몰살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거의 매년 이사를 다녔다.
가난한 아이가 공부를 잘 하는 것이 괴로운 일이라고 하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2학년 때였다. 담임을 맡은 선생님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공부를 잘 하지만 가난한 내가 반장을 하는 것을 못마땅해 했었다. 촌지나 선물과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선생은 공연한 일을 트집 잡아서 나를 괴롭히기 일쑤였다. 청소가 제대로 안 되는 것도 반장이 내가 통솔력이 없어서 벌어지는 일이었고 다른 학생의 성적이 나쁜 것도 내가 부족해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한번은 청소시간에 바닥을 닦다가 힘들어서 교단에 앉았는데 선생을 우습게 안다며 매질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압권인 사건이 수업시간에 벌어졌다. 선생이 삼일절과 관련된 문제를 냈는데 아무도 손을 못 들었다. 내가 손을 들고 정답을 이야기하였는데 선생은 아예 못 들은 척하고 누구 아는 사람 없냐고 되물었다. 다른 아이들이 눈치를 보다가 좀 잘 사는 집 아이가 손을 들고 그 정답을 다시 말하였다. 선생은 그 아이를 칭찬하였다. 꼬마였던 내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선생에게 아까 내가 정답을 말하지 않았냐고 따졌다. 선생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학생들에게 ‘기호가 손을 든 적이 없지요?’라고 물었다. 아이들은 머뭇거리다가 다들 ‘네!’라고 대답했다. 그 중에는 나랑 가장 친한 친구도 있었다. 그러자 선생은 나를 교단으로 나오라고 해서는 아이들 앞에 세우고 ‘여러분은 기호처럼 거짓말하지 않는 착한 어린이가 되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안겨서 펑펑 울었다. 어머니는 나를 아껴줬던 1학년 담임에게 전화를 해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어보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전학을 갈 생각도 하셨던 모양이다. 1학년 담임은 전학이 좋은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선생들끼리 서로 다 알고 지내기 때문에 왜 전학을 왔는지가 알려지면 오히려 그 학교에서 다른 선생들에게도 미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어머니에게 굴욕스럽더라도 나의 미래를 생각해서 선물을 사가지고 학교에 선생을 찾아가 고개를 숙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결국 어머니는 화장품을 사가지고 학교에 찾아오셨다. 난 어린 나이였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선생을 만나기를 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다녀가시고 난 다음 선생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리 친절하게 나를 돌보지도 않았지만 이전처럼 이상한 트집을 잡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어머니에 들은 말로는 선생은 어머니가 당신은 한 번도 발라본 적이 없는 화장품을 선물로 내 놓자 그 자리에서 뜯어보고는 ‘국산품을 선물이라고...’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 선생은 미제 화장품만 쓰는 괴물이었다.

  
이 때의 경험은 나에게 교육과 선생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엄청나게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었다. 나는 선생들에 대해 냉소했다. 다른 어떤 학생들보다 공부를 훨씬 더 잘하고 말도 잘 듣는 착한 학생이라는 평가가 학교와 동네 모두에 자자하였지만 나는 선생들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경멸하였다. 학기 초가 되면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오시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덕분에 학교에서 나는 부잣집 아들로 소문났다. 어머니가 사다 바치는 선물은 동네 유지들의 선물에도 꿀리지 않는 ‘물 건너온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돈 싫어하는 선생 없다. 이것이 내가 중학교 때까지 선생이란 작자들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다. 그들은 속물 중의 속물들이었다. 입으로는 온갖 도덕적인 공자님 소리를 늘어놓지만 알고 보면 다들 돈이나 밝히는 존재들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하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교육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일대 사건이 중학교 때 벌어졌다. 이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던 사람,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람은 큰 누나였다. 큰 누나는 나의 우상이었다. 내가 중학교에 갈 때쯤 누나는 대학에 들어갔다. 아마 우리 동네가 생기도 처음으로 이화여대에 합격한 사람이 우리 누나일 것이다. 집안에서도 동네에서도 말이 많았다. 부산대학교 사범대학를 보내지 왜 딸을 서울로까지 보내냐며 어머니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누나를 큰물에서 키우고 싶어 했고 과감하게 서울로 보냈다.
 

하지만 당시의 대학생들이 다 그러하듯이 누나는 학생운동을 시작하였다. 우리는 그것을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누나가 들고 오는 책이나 이런 것을 알아먹을 수 있을 턱이 없지 않은가? 아무튼 누나는 중학교 2학년인가 3학년이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 생일에 <내가 두고 떠나온 아이들에게>라는 책을 선물로 주었다. 지금 전교조의 전신인 전교협의 해직교사들이 당신들의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글의 모음이었다.

  
이 책은 그 당시 나에게 천지가 개벽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충격을 안겨주었다. 세상에. 이런 선생들이 있었구나. 그들의 글에는 한국의 교육이 얼마나 망가지고 엉망인지에 대한 비판과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히 묻어있었다. 교육은 교육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폭력이었다. 날 것으로서의 폭력. 아이들의 싸대기를 감정적으로 쳐대는 미친개에서부터 돈이라면 환장을 하는 불여우에 이르기까지 학교가 왜 교육이 아니라 폭력의 공간인지, 그리고 그것은 왜 거부되어야하는지에 대해 이 책에 등장하는 교사들은 온 몸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그래. 이것이 바로 교육이다. 교육이란 이런 것이어야 해! 오히려 이 책으로 해서 나는 그동안 내 눈에도 보이지 않던 우리 반의 다른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것으로 어떻게 해서든 교실에서 살아남았지만 선생이 때리면 때리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멍청하게 입을 헤벌리고 있던 다른 친구들 말이다. 이 친구들에게 학교는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비평준화지역이라 시험을 쳐서 가는 학교였다. 울산지역에서 가장 공부를 잘 하는 학교에 입학하였다. 울산에서 난다 긴다는 아이들을 다 모아놓았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냉랭하였다. 네가 아니더라도 서울대 갈 학생들은 많다는 태도였다. 다른 학교 같으면 공부를 잘 하는 몇몇 아이들을 챙긴다고 정신이 없었겠지만 이 학교는 아무도 챙기지 않았다. 학생들도 알아서 서로 경쟁하고 공부하는 분위기였다. 덕분에 나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을 수 있었다. 공부보다는 다른 책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몰래 몰래 누나의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들도 봤다.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책도 이 때 읽었다. 노자의 도덕경을 읽고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몰랐지만 가슴을 뻥 뚫어주는 그 원대함에 몇일을 말을 못하고 지내기도 하였다. 처음 입학하였을 때는 점수가 꽤 높았지만 점차 나의 성적은 떨어졌다.
 
그러나 이 학교에서 나는 학교 폭력의 정수를 경험하였다. 2학년 때였다. 친하게 지내던 한 친구가 어느 날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나타났다. 그 친구는 말까지 어눌해지고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하고 혼자서 중얼중얼 하기도 하고 히죽 히죽 웃고 다녔다. 그러나 아무도 그 친구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일부러 입을 다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친구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존재했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학교 안에 있는 깡패한테 대들다가 무차별적인 폭력을 당했다고 한다. 머리에 쓰레기통인지 뭔지를 뒤집어씌우고 피가 철철 날 때까지 두들겨 팼다고 한다. 들은 이야기로는 그 때 뇌를 다쳐서 정신 이상이 왔다고 하였다. 나는 무서웠다. 학교가 무서웠다. 학교는 교육의 공간이 아니라 폭력으로 충만한 곳이었다. 교사가 학생에게, 학생이 학생에게.
 

대학에 들어갈 때는 어느 과를 갈 것인가를 놓고 한참을 고민했다. 원래는 유학과나 철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바랐던 것은 경제학이나 법학이었다. 집안의 기둥이던 누나가 중재에 나섰다. 사회학이나 신문방송학이 어떠냐고 제안하였다. 이미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던 터라 기자가 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둘 중에 어디를 가는 것이 좋은지를 놓고 고민했는데 누나가 아마 나하고는 사회학이 더 맞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좀 더 비판적이고 이론적인 것을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천하였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사실 공부와는 담을 쌓았다. 주말에 혼자 미사를 보러가는 것이 심심할 것 같아서 가톨릭학생회에 들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B급 운동권 동아리였다. 날이면 날마다 데모가 있었다. 밤새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격렬한 토론을 벌렸다. 오후까지 뻗어서 자다가 저녁이면 다시 집회에 참석하고 밤이면 술집으로 향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운동보다 투쟁보다 더 좋은 것은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친구의 집을 찾아가고 오고하는 일이 별로 없었던 나에게 동아리는 처음으로 사람을 사귀고 사람과 부대끼는 경험이었다. 거기에 사람이 있었다.
 

당연히 사회학과의 공부와는 겉돌게 되었다. 중간고사 때 사회학 개론 시험문제가 결정타였다. 10문제가 나왔는데 그 중에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를 비교하라는 문제가 나왔다. 아. 이걸 공부하려고 여기에 들어왔던가. 동아리에서 공부하던 민중 신학, 해방신학이 훨씬 더 재밌었고 깊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이를 끌어 올리셨도다’는 대목이 있는 마리아의 노래가 공산주의자의 노래라는 해석은 충격이었다. 가톨릭에 대한 확신범에 가까운 신앙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이 당시의 공부는 다르게 생각하고 뒤바꾸어 생각하게 하는 확실한 훈련이 되었다. 사회학과에서 배우는 그런 개념적인 것보다 훨씬 더 사유에 대한 훈련을 시켜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1학년 2학기가 되어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다. 전공 선택으로 있던 조혜정 선생의 문화인류학을 수강하였다. 강의실 세팅부터가 남달랐다. 칠판을 바라보고 일렬로 앉는 것이 아니라 의자를 돌려서는 둥그렇게 앉았다. 교수는 말을 하지 않았고 학생들만 계속 떠들어야했다. 책 욕심이 많았던 터라 로저 키징이라는 사람이 쓴 엄청나게 두꺼운 책을 교재로 샀지만 그 교재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사랑방 좌담회의 수다모임 비슷하게 보이기도 하였다. 뭔가 이론을 배우는 것도 아니고 정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계속 어쩌구저쩌구하면서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묘한 매력이 있었다. 학생들은 자기가 어찌 살아왔는지를 수다로 풀고 난 다음에 그것이 왜 그렇게 했는지를 자기 자신이 해석하고 설명하였다. 그 해석이 엉성한 이론에 기대어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것도 있었지만 ‘진술’과 ‘해석’을 동시에 한다는 것이 참으로 특이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현장 학습을 떠났다. 다들 인류학이라고 하면 마을이라던가 소수부족과 같은 곳을 현장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문화인류학이 현장이라고 부른 곳은 자기 삶의 현장이었다. 나는 그 당시 핫이슈가 되던 강남 압구정동의 청소년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당시 강남은 오렌지족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엄청나게 도덕적 비난을 받고 있었다. 돈을 물 쓰듯 하는 소비지향적이고 이기적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비난이었다. 하지만 청소년들과 만나면서 나는 오히려 그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부모에게 자기들이 기대해야하는 것이 무엇이고 무엇부터는 자기가 해야 하는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친구를 사귀는데도 내가 시골에서 경험하였던 것처럼 끈적끈적하고 딱딱 계산으로 맞아떨어지지는 않는 그런 것하고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도덕에 초점을 맞춰서 발표 했을 때 나는 ‘길들여진 합리성’이라는 말로 내 생각을 표현하였다.
 
사람이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는지를 대화를 나누면서 꼼꼼히 관찰하고 그것을 언어로 풀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가를 처음으로 경험한 사건이었다.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주어들은 개념이었던 베버의 ‘합리성’이라는 개념이 그저 공허한 말이 아니라 나와 내 주변의 삶을 설명하는 살아있는 언어라는 것을 실감하였다. 현장과 언어. 이론은 단지 이론이 아니라 그것이 삶을 풍부하게 설명할 때 살아있는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학문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문화인류학이라는 것을 배운 첫 번째 계기였다.
이때의 충격과 문제의식이 이어져서 삶을 만들고 읽는 언어의 힘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것은 조혜정 교수가 쓴 <탈식민지 시대 삶읽기와 글읽기>를 읽고 난 다음이었다. 무엇보다 <겉도는 삶, 헛도는 언어>라는 이 책의 문제의식은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나는 어떤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 언어는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성찰하게 하였다. 언어는 삶을 매개한다. 언어를 통해 인간은 세계를 만들고 세계에 참여한다. 언어를 통해 인간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 언어가 만들어지는 공간, 그것이 바로 교육이 아닌가? 교육에 대해 첫 번째 충격을 준 것이 <내가 두고 떠나온 아이들에게>였다면 두 번째로 어떤 언어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 책이 이 책이었다. 나에게 문화를 연구한다는 것은 언어를 연구한다는 것이었고, 언어를 연구한다는 것은 곧 교육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었다. 이 세 가지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이다.
 

이것을 문화이론에서는 방법론적으로는 담론분석이라고 부르고 연구 대상으로는 주체형성과정에 대한 연구라고 한다. 담론분석이라는 말이 어렵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말에 대한 연구라는 뜻이다. 몇 차례 이야기를 한 것처럼 인간들이 자기의 삶과 경험을 어떤 말로 설명하는가를 들여다보는 것이 담론 분석이다. 사람은 그런 말로 자기가 누구인가를 드러낸다. 말을 통하여 자기를 남자로 드러내기도 하고 아들로 드러내기도 하고 그냥 인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이 어떤 언어로 자신을 남자라고, 아들이라고 이야기하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 바로 주체형성과정에 대한 연구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자기를 아들이라고 드러낼 때 많은 사람들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에 대한 저릿한 감정과 경험들을 통해서 자신이 좋은 아들 혹은 나쁜 아들이라고 느낀다. 아들이라는 정체성이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형성되기보다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전통적으로 아버지와의 관계는 부재에 가깝거나 혹은 어색한 관계일 경우가 많다. 한국의 아버지들은 돈을 번다고 바빠서 집에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집에 있다고 하더라도 무뚝뚝하거나 데면데면한 사람이지 어머니처럼 아들과 이야기와 정을 나누는 그런 밀착한 관계가 아닌 적이 많았다. 이렇게 내가 누구인지를 누구와의 어떤 경험으로 설명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주체형성과정이다.
 
본격적으로 문화이론을 공부하면서 담론분석을 통하여 주체형성을 연구한 것은 대학원에 들어가서였다. 석사논문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쯤 <빨간 마후라> 사건이 터졌다. 청소년 세 명이 섹스를 하면서 그것을 비디오로 녹화한 것이다. 청소년들이 포르노를 찍었다고 하여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었다. 경찰에서는 여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을 소환하여 조사를 한다고 부산을 떨었고 방송에서는 포르노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폐해에 대해서 연일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아이들이 포르노를 어떻게 경험하고 그것을 어떤 언어로 설명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때까지 준비하고 있던 대학문화에 대한 논문을 미련 없이 정리하고 청소년들의 포르노 경험에 대해 쓰기로 정하였다. 친하게 지내던 학원 선생을 통하여 학원의 아이들을 인터뷰하였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대단히 솔직하게 자신들의 포르노 경험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포르노를 곧이곧대로 믿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모두가 그것이 연출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실제로 성관계를 하면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문화이론에서는 이것을 교섭적 해독이라고 부른다. 사람이 어떤 메시지를 받아들일 때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다른 정보와 생각을 가지고 받아들일만한 것을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버리게 된다. 이런 점 때문에 교섭이라고 부른다. 마치 협상을 하는 것처럼 나의 생각과 지금 내 눈앞에서 주어지고 있는 이미지나 정보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포르노를 그냥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비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이 포르노의 어떤 부분은 무리 없이 받아들이고 어떤 부분은 저것은 가짜라고 생각하는가이다. 여기서 내가 발견한 것은 또래집단의 문화와 우리 사회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성, 그리고 그것을 승인하는 공간으로서의 교실이었다. 예를 들어 여자가 ‘노’라고 말해도 알고 보면 ‘예스’를 의미한다는 것 같은 것은 미심쩍어 하면서도 대부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실에서 교사도 아이들 잠을 깨운다고 ‘밑에서 바늘이 흔드는데 실이 어떻게 들어가나.’와 같은 농담이나 연애와 섹스의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 ‘처음에는 싫다더니 하다보면 지들이 좋아서 더 해달라고 한다.’는 말들이 아이들로 하여금 이런 것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문화이론에서는 농담이나 카더라 통신과 같은 이런 것을 담론적 ‘장치’라고 부른다. 우리 삶에는 수많은 장치들이 있고, 이 장치들에 의해서 우리는 어떤 것을 사실이라고도 생각하고 거짓이라고도 여긴다. 내가 슬퍼하고 기뻐하고 가슴 아파하는 것도 그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은 없다. 예를 들어 왜 우리는 아이가 죽었을 경우에는 어른들이 죽었을 경우보다 더 슬퍼하는가? 중세시대 때만 하더라도 아이들이 죽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아이들이 죽는 것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들의 죽음을 훨씬 더 애통하게 한다. 여기에는 핵가족의 등장과 함께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아주 가깝게 밀착된 것이나 아이가 자신의 분신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혈통주의, 그리고 아이에 대한 양육이 인생의 절반을 차지하게 되는 사이클의 등장 등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문화를 분석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어떤 장치들이 우리 삶의 주변에 배치되어 있고, 그것들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분석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에서도 등장한 것처럼 문화이론에도 담론이나 장치와 배치, 정체성과 주체형성과정과 같은 어려운 개념들을 공부한다. 그러나 이 개념들이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공부는 개념으로 시작해서 개념으로 끝나버리곤 한다. 한번도 삶과 경험의 영역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개념들끼리 네가 맞느니 내가 맞느니 하면서 치고 박고 싸우다가 유행이 지나면 제 풀에 꺾여버리곤 한다. 돌이켜보면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가장 유행한 것이 하버마스와 푸코라는 철학자였고 대학원에 들어가서는 스튜어트 홀이라는 걸출한 문화인론가가 있었다. 2000년을 전후해서는 들뢰즈와 네그리라는 사람이 유행하였고 최근에는 지젝과 아감벤, 그리고 바디우와 랑시에르라는 철학자가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대단한 사람들의 이론이 땅으로 내려온 적이 없다. 문화이론에서는 이런 현상, 즉 말과 개념이 땅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삶에서 겉도는 것을 식민주의적 현상이라고 부른다. 남의 언어로 나를 설명하려고 하니 그것이 삶에서 겉돌고 헛도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모든 이론에 대해서 냉소적인 태도도 나온다. 이론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고 오로지 경험만이 중요하다는 반이론적이고 반지성주의적인 태도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개념은 그렇게 무기력하고 의미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념은 대단히 매혹적인 것이다. 나는 지금 그것을 대학의 강의실에서 경험하고 있다. 위에서 말한 푸코라는 사람이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 중에 생명 권력이라는 것이 있다. 정치권력이 작동하는 가장 중요한 타겟치 인간의 몸과 생명이라는 것이다. 멀리 생각할 필요도 없다. 왜 전국의 학교에서 아이들을 아침마다 모아놓고는 국민체조를 시키는가? 지금은 없어졌지만 왜 과거에 학교에서는 매년 채변검사를 하였던가? 푸코라는 사람은 그것을 사람을 건강하게 살게 하는 것이 권력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람이 건강해야 노동을 할 수 있고 노동을 해야 국가의 부가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생명 권력이라는 말은 상당히 추상적이고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을 설명하는 핵심적이고 간결한 언어가 될 때 학생들은 눈을 반짝이면서 개념에 매혹된다. 그리고 개념을 통해서 사유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생명 권력이라는 개념으로 왜 조류독감이 돌았을 때 온 인류가 그토록 공포를 느꼈는지, 광우병 쇠고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왜 온 국민이 들고 일어나서 데모를 했는지를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에이즈 치료제는 왜 그렇게 비싸고 누가 그 약으로부터 큰 이윤을 얻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가장 일상적으로는 병원에 가면 왜 의사는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있는데 환자들은 딱딱하고 불편한 둥근 의자에 앉는지에 대해서도, 의사들은 왜 3분 이상 한 환자를 돌보려고 하지 않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의 의료보험 체계에서 환자들을 3분에 한 명꼴로 돌려야 수지타산이 맞기 때문이다. 개념이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나의 일상을 설명해주고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드러내줄 때 그 개념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매혹적인 도구가 된다.
 
이것이 요즘 내가 공부하고 있는 핵심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 세계와 관련을 맺고 참여한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 세계에 참여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그 성찰을 통해서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 언어를 통해 인간은 생각하고 그 생각을 통해 자신을 주체로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를 매개하지 않고서 인간은 자기 자신과도 세계와도 연결될 수 없기 때문에 성장을 도모할 수 없다. 따라서 언어에 매혹되지 않고서는 인간은 성장할 수 있는 가장 큰 도구인 개념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 어떻게 개념에 매혹되는가. 그리고 인간이 이렇게 개념에 매혹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교육학적인 방법을 써야하는가? 이 교육학적 방법을 영어로 페다고지라고 부른다. 나는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페다고지를 개발하는 것이 내 평생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이 페다고지를 개발하기 위해서 나는 사람이 어떤 언어로 세상을 설명하고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셈이다. 그들의 언어를 이해해야 어디서 어떻게 그들의 언어에 접속할 수 있는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현장은 강의실이다. 대학의 강의실도 현장이고 가끔 찾아가서 만나는 대안학교의 아이들과의 만남의 공간도 강의실이다. 그 강의실에서 나는 학생들의 언어와 만난다. 그들이 언제 웃고, 언제 졸며, 어떤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고, 어떤 이야기에 하품하는지를 관찰한다. 그러면서 어떤 언어가 그들의 삶에서 탈락하고 있으며, 어떤 주제가 그들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가는지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서 어떤 질문을 던지는 것이 그들과 내가 함께 토론하며 우리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인지를 고민한다.
 
대표적인 예가 하자에서 탈학교 청소년들과 함께 하였던 수업이다. 이 수업을 들은 한 학생은 수업에 전혀 집중을 할 수 없는 아이였다. 내가 가르친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세상을 어떻게 말아먹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친구에게 이것은 달나라보다 더 먼 이야기였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그냥 잠을 자게 내버려두었다. 어느 날 이 친구가 수업 중간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나한테 영원한 사랑이라는 것이 있느냐고 대뜸 물어보았다. 짐작하건데 실연을 당한 모양이었다. 아마 만약 내가 너 실연당했냐고 물어보았다면 우리는 그 아이의 경험을 듣고 대책을 강구하는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영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토론해보기로 하였다. 학생들 각자가 생각하는 영원이 무엇인지를 먼저 이야기하였다. 누군가에게 영원이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의미했고, 누구에게는 시간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의미했다. 그들에게 시간이라는 것은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직선이었다. 나는 불교에서는 시간을 일직선으로 이해하지 않고 반복적인 원형으로 이해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언제부터 우리가 시간을 일직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토론하였다. 그러면서 불교에서 바라보는 영원이란 시간의 처음과 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진심을 다해 충실한 것, 그 찰나가 곧 영원일 수도 있다는 것을 같이 이야기하였다.
 
이 이야기가 학생들에게서 놀라운 변화를 이끌었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생각들이 철학적인 언어로 설명된다는 것에 신기해하였다. 그리고 순간에 충실한 것이 영원일 수 있다는 것에 자기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획득한 것이다. 인문학적 개념이 추상적이고 어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설명하는 생생한 살아있는 언어임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언어를 통해서 우리는 나에게 일어난 사건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그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사건을 당한 당사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읽고 판단하는 해석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에게 일어난 사건에서 거리를 띄우고 언어화하는 딱 그만큼 우리는 그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자유는 언어가 가져다주는 가장 매혹적인 힘이다.
 
이것이 요즘 내가 가장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현장이자 이유이다. 사람들이, 특히 청소년과 대학생들이 어떠한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세상은 어떻게 보이는가를 학생들과 함께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왜 우리는 그런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는지, 그 언어는 어디서 우리가 습득한 것인지를 돌아본다. 또한 다른 언어로 세상을 읽고 있는 다른 학생들의 글과 자신을 견주어보면서 언어가 달라짐에 따라 그 세상은 어떻게 달라져 보일 수 있는지를 토론한다. 이 과정에서 나의 언어라고 생각했던 것을 낯설게 보기도 하며,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개념이나 방식으로 세상을 읽는 것이 얼마나 매혹적이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는가를 경험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언어의 식민성을 극복하고 삶에 대한 성찰을 회복할 수 있다. 나는 성장의 가능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_
엄기호(교육공동체 벗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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