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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그러니까 정치적 긴장감이 계속 고조되던 그 때에 개신교인들은 뜬금없이 이 전쟁터에서 튀어나온 유탄에 맞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김동호'와 '이근안'이라는 이름의 유탄이었습니다. 이 유탄은 각각 '나꼼수 열풍'과 '김근태의 죽음'라는 우리시대 정치적 전선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개신교 신앙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과, 안타깝게도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위기'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 정치적 전선에 참여하는 사람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던 이 공격 속에서 기독교 신앙의 앙상한 나신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값싼 은혜'와 '값싼 정의'입니다. .

'값싼 은혜'라는 말은 20세기 내내 하나의 유행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의 핵심인 '이신칭의(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교리의 실천적 귀결점을 간명한 단어로 표현한 본회퍼의 이 말은 의심할 여지없이 오늘날 기독교회의 새로운 성찰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것을 사회참여에 대한 요구로 받아들이건, 치뤄야 할 제자도의 대가를 상기시키는 것으로 이해하건, "나는 예수님을 믿어요. 예수님 정말 좋아요 뿌잉뿌잉~"하는 걸로 죽어서 갈 천국티켓을 얻었으니 이 세계에서 안심하고 살아가는 것이 기독교 복음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상기시켰습니다. 

이근안은 용서받았을까요? 복음주의적인 개신교 신학은 '그렇다'고 대답해야 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돌아가셨고, 그는 예수를 그의 주로 고백했습니다. 이근안의 죄과를 누가 묻는다면, "우리가 모두 죄인인데, 너는 하느님 앞에서 얼마나 옳다고 이미 용서받은 이의 죄를 판단하느냐"고 대답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심판이 불가능한 이 아이러니. 사람이 사람의 책임을 묻지 않을 때, 사람은 사람에게 무책임해지고 맙니다. 주님이 모든 것을 용서해준 세계에서 모두는 행복하지만, 그 무책임성은 대가를 묻습니다. 주님앞에 무릎 꿇되 사람앞에 무릎 꿇지 않는 이명박이, 김근태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의 영혼을 고문하고 있는 '목사 이근안'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이 어찌 그 깊은 뜻을 아냐'고 아무리 쉴드를 쳐도 그냥 인간에게는 새디스트인 하느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값싼 은혜는 이렇게 하느님 자신을 모독하고 맙니다. 

물론, 개신교 신앙에도 도덕과 윤리에 대한 담론이 없지 않습니다. 값싼 은혜를 비판할 때, 보수적 신앙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도덕을 강조하는 지를, 비판받는 사례는 일부의 사례일 뿐임을 강조합니다. 그렇습니다. 정직, 성실, 배려, 자선, 이런 가치들은 개신교 신앙인들에게 얼마나 강조되는 것들인지요.(여기서 개신교의 성적 보수주의, 가족의 가치, 낙태와 동성애 반대에 대한 견해는 일단 젖혀 두도록 합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사하는 십자가의 복음이 그저 부르주아 사회를 재생산할 뿐인 값싼 도덕, 혹은 값싼 정의에 머무는 것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큰 일 하겠다는 사람들이 품위 없이 욕이나 하는 것이 '나는 꼼수다'의 가장 큰 문제(세상에 이 문제 많은 프로그램에 대해 비판하는 게 고작 '예의없음'이란 말입니까!)이고, '상대적 빈곤감'(이것을 다른 사람들은 '계급의식'이라고 부릅니다)은 인간의 치명적 어리석음이자 죄의 결과라고 말하는 김동호 목사와 그 글에 줄줄이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들에게 바람직한 세상은 부자는 자선을 통해 절대적 빈곤층을 구제하고, 부자 아닌 사람들은 부자를 질투할게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만족할 줄 알고 살아가는 세상이랍니다. 아무리 요리보고 조리보아도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의 지상 낙원인 곳. 그 곳이야말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가 오기 전까지 '은혜 아래'에서 살아가는 최선의 사회인 것입니다. "부자이건 가난뱅이건 우리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살아요 뿌잉뿌잉>_<"

모든 사람! 모든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요. 개신교 구원론에서 이건희와 김진숙은 똑같이 하느님 앞에서 죄인이고, 용서 아래에 놓인 사람입니. 구원을 받은 게 사회적 관계로부터 추상된 개인이므로, 윤리와 도덕의 담론 역시 이 추상된 개인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구원은 계급을 묻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뒤따라 나오는 도덕 역시 계급을 묻지 않습니다. 계급을 '철폐'하는 게 아니라 계급을 '묻지 않는' 것이죠! 참으로 매력적인,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 앞에서 현실의 권력관계에 대한 성찰은 기각되고, 성서의 그 수많은 전복적 윤리와 정의의 요구 역시 뒤따라 기각됩니다. 

김동호 목사는 저항하는 사람들을 향해 '선으로 악을 이기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선은 사실상 부르주아적인 예의범절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정말 가지고 있는 칼날을 순치시켜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저 자본가와 정치인들의 지배를 승인해주면서도, 자신들은 선하다는 만족감을 유지하는 것 뿐이겠지요. 올 한해. 선으로 악을 이긴 사람은 김진숙이었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을, 그 문장에 철철 흐르고 있는 피를 보지 못한 채 값싸게 말할 수 있는 개신교 신앙은 오늘날 값싼 은혜와 값싼 도덕으로 이렇게 병들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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