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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포스팅/사이-Be-評

한국교회의 제자훈련, 정체를 알 수 없는 '묻지마' 주체들의 재생산.

‘구원’의 교회적 구성: 제자훈련을 통한 개신교적 주체(제자)의 생산과정을 중심으로

*2009년 6얼 13일 카이로스 공동주관, 제 1회 심원청년신학포럼 "청년을 위한 신학은 없다!" 발표문

먹보에술꾼 l 심원청년신학포럼 기획위원, 카이로스 회원

구원은 교회의 운명?

우리에게 ‘구원’은 지극히 추상화된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신학을 통해 수없이 학습되어 너무나 당연시되고 그것에 대해 잘 안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추상적인 개념이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배태되었다는 사실에 동의할 수 있다면, 구원을 말하는 종교가 이 땅을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현실의 구원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거나 상상하게 하는 작업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님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본 에세이는 땅의 인간이 하늘의 언어를 이해하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이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것처럼 어려운 일일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종교를 만들고 신학을 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교회가 온갖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 구원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어쩌면 도달할 수 없는 구원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내려주어야 하는 필연적인 운명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교회에서 말하는 구원은 교회가 구원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거나 부정했던 것들을 사실상 얼마나 구원으로 전유하는지를 은폐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구원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구원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얼마나 멀고도 가까운 사이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구원의 양화: 제자훈련, 선교, 종교상품

교회는 믿음으로밖에 포착할 수 없는/인지할 수 없는 구원을 포착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무조건적인 ‘은혜’나 은혜로서의 ‘믿음’마저도 양화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신자와 신자의 신앙을 직접적으로 지배할 수 없는 교회 혹은 목자적 권력(pastrol power)은 그 권력을 “영적 성장 혹은 신앙성숙”과 같은 담론과, 그 담론을 객관화하는 교육훈련제도, 그리고 그것을 자발적으로 실행할 주체에게 위임하는 형태를 취한다. Q.T(Quiet Time; 성경묵상), 봉사활동, 단기선교, 신앙상담, 제자훈련과 같은 소그룹 성경공부 등과 같은 교육훈련제도들은 모두 개신교적 주체성을 효율적으로 생산/관리하는 기술이다. 가령 ‘제자훈련’은 개신교적 주체성을 생산하는 통치기술과 신앙의 양화 메커니즘으로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자훈련’은 “‘평신도’를 개신교가 목표로 하는 온전한 신앙인, 즉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드는 일련의 교육과정”으로서 개신교에서 교회 교육을 지칭하는 가장 보편화된 개념이다. 현재 ‘제자훈련’은 한국교회 내에서 교회성장의 주된 방법론 중의 하나로 소개되어 왔고, 관련서들이 많이 출간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시행되고 있다(심상법, 2007:181). 제자훈련 패러다임 이전의 교회성장 전략이 부흥회나 대형전도집회에 집중되어 있었던 한편에서 성경공부는 교리학습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했던 반면, 제자훈련은 6-70년대 학생선교단체의 영향을 받은 후발대형교회들(온누리교회, 사랑의교회)이 정체된 교회성장을 돌파하기 위한 부흥(교회성장) 전략으로서 평신도에게 재생산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유지/강화하는 메커니즘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다시 말해 제자훈련은 목회적 유용성의 차원에서 도입된 것이다.

모 교회 청년부의 교육체계에서 청년부 회원들은 총 5단계의 GBS(Group Bible Study)를 거치게 되어있다.

① NTC (New life Trainnig Course): 새신자 기본 신앙 점검

② BTC (Basic Training Course): 기본 교리와 전도 지식 학습

③ DTC (Disciple Trainnig Course): 신앙의 기본 점검 및 심화(예비LTC 성격)

④ LTC (Leader Trainnig Course): ‘리더’(소그룹 성경공부 인도자) 준비 과정

⑤ LSC (Leader Small Group Cell): 리더 재교육

위 교육체계는 신앙인 재생산 체계의 정점에 있는 ‘리더’라는 목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리더’가 되길 원하지 않는 신자는 2단계 BTC나 3단계 DTC에서 머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영원히(!) 머물 수는 없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급하는 것이 진급하는 것보다 어렵다. 구원의 연기와 불확실성, 그리고 그로 인한 불안감에서 구원의 끊임없는 추구를 그 특징으로 하는 개신교 신앙 에토스는 제자훈련 내지 소그룹 성경공부라는 객관적 구조를 통해 구현되고 강화된다. 신자는 제자훈련 5단계 내에서만, 그것의 수행을 통해서만 신앙을 주관적․객관적으로 추구․달성할 수 있다. 이 훈련과정은 또한 구체적인 목표들(goals)을 제시한다. 마치 자본축적이 구원의 보증서로 작용하듯이 구원의 불확실성과 믿음의 불가시성은 각 단계를 통해 현현하고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범주화된다(김현준, 2007:13).

이 교회 청년부의 “연간양육계획”과 “5단계 GBS(Term) 기본 커리큘럼”에는 진급의 기준이 “자발적 훈련 참여 동기”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각 단계가 높아질수록 보다 강한 자발성 동기를 요구한다. 즉 각 단계는 신앙실천의 성취정도가 아니라 자발성의 강도에 따라 구별된다. 특히 4, 5단계(LTC, LSC)는 2단계 BTC와 별도의 시간에 모임을 갖는다. 즉 4, 5단계를 수행하는 신자들은 BTC를 수행하면서 따로 훈련을 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연히 LTC, LSC의 멤버들은 BTC의 리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발성과 교회에서의 시간 투여는 정비례하는 관계이다.

청년부 회원은 이 5단계 중 어느 하나에 반드시 속할 수밖에 없다. 만일 이 단계를 거부하는 신자는 청년부 회원이라고 할 수 없다. 애초에 청년부의 멤버십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NTC(새신자반)를 필수적으로 통과해야만 한다.

이 위계구조에서 신자들은 누구나 주관적․객관적으로 자신과 타인의 위치를 알 수 있다. 가령 1단계에 있는 신자보다는 (당연히) 2단계 신자의 자발성과 시간 투여비율이 높으며, 신앙심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정이 높은 것을 (자타가) 알 수 있다. 이러한 도식은 곧 개신교적으로 “신앙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신앙이 좋다”는 것은 단순히 신앙적 열정만으로 평가/승인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신앙적 열정이 제자훈련이라는 객관화된 신앙의 위계구조 내에 위치할 때에야 비로소 승인-신앙이 좋다는 것으로 의미부여-될 수 있는 것이다. 학교가 학생의 성적을 분석, 분류, 등급화 함으로써 더 나은 행동 수정을 위한 범주를 창출하듯이, 교회권력은 제자훈련을 통해 (결과적으로) 신앙을 분류, 등급화 함으로써 역시 같은 효과를 기대하며, 신앙의 범주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제자훈련 5단계라는 구조적 강제는 규율을 내면화하는 동시에 훌륭한 신앙심 혹은 이를 담지한 신자를 생산한다(김현준, 2007:13). 즉 개신교적 주체인 ‘제자’와 주체성인 ‘제자도’가 구성되는 것이다. 결국 ‘제자도’는 제자훈련을 통해서 구현/재현된다.

학교의 경우, 시험이라는 평가 제도를 통해 능력을 범주화하고 위계화하는 권력의 침투와 통제를 강화하지만, 제자훈련의 경우에는 ‘자발성’이라는 (앞서 밝혔듯이) 억압과 자유라는 양가성을 간직한 모호한 개념을 통해, 권력의 불가시성을 더욱 심화한다. 그래서 신자들은 종교적 규범이 형성되는 특권화된 정치적, 경제적인 입장을 (당연히) 인식하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학교 권력이 초월성은 희석되고 내면화는 증가하는 평생교육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오늘날의 종교 교육도 내면화를 증가시키는 자기주도, 자기경영, 자기계발의 통제체제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김현준, 2007:13).

“제자도”나 “선교”는 지배의 테크놀로지와 자기의 테크놀로지가 역설적 관계를 맺는 행동의 지휘(conduct of conduct)로서 이해할 수 있다. 비교적 이르다고 볼 수 있는 초기 단계인 2단계 BTC부터 커리큘럼에 “전도(또는 선교)”가 등장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자훈련, 제자의 목적은 ‘전도’나 ‘선교’에 있다. 훈련 과정을 통해 “전도할 수 있는”, “소그룹을 운영할 수 있는” 신자를 만들어야 한다. 선교는 교회 교육과 교회의 ‘비전’—목회방침(전략)의 목적—을 통해 개신교 행위자에게 내면화되며, 통치로서 작용하게 되지만 동시에 개신교인들은 자신의 모든 행위를 ‘전도’나 좁은 의미의 ‘선교’의 패러다임 안에서 파악하게 된다. 제자훈련과정에 필수적인 Q.T에서도 성경의 메시지들은 전도나 복음화로 쉽게 환원 내지는 전환된다.

내용 관찰: 요셉이 팔려 보디발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디발이 보고, 모든 것을 요셉에게 위임한다. 하나님께서 요셉으로 인하여 보디발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신다.

적용: 하나님께서 만세 이전부터 나를 택하시고 축복하신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나타낼 수 있는 생명과 빛의 삶을 살아야 함을 결단한다. 우선 결혼기념일에 남편에게 마음을 담아 카드와 선물을 준비한다. 또 교회의 특별새벽기도회 기간 동안 빠지지 않고 새벽을 깨우며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대학 캠퍼스에서 크리스천 교수로서 학원복음화를 위해 기도와 삶으로 실천한다.

-“훈련생 노트”, 제자/사역훈련생을 위한 편지(2005년 11월 10일 제131호)

요셉의 삶으로 표상되는 신자의 신앙적 삶은 특별새벽기도회나 학원복음화를 위한 삶으로 해석/적용된다. 다시 말해 신앙적 삶은 종교적인 실천들, 특히 예배, 기도, 전도로 단순히 추구될 수 있는 것이다.

일전에 친구의 1년짜리 단기선교사 파송식에 참석했었다. (친구와의 우정 내지는 의리 때문이었지. 그 이상은 아니었다. 몸 건강히 다녀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무튼 결혼해서 애도 있는 한 후배(내 친구의 아내다)가 단기선교 가는 선배와 갔다 온 후배들에게 자신도 단기선교 가보고 싶다면서 자기가 결혼만 일찍 안했더라면 1-2년 정도 단기선교를 갔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헌신”하지 못한 자기반성(?) 내지 후회와 함께 후배들에게 권면을 하는 것이었다. 청년의 때에 “헌신”해야 한다고... 내 친구와 그의 아내 모두 함께 신앙을 고민하고 공부했던 친구들이고 내가 아는 한에 있어서 그렇게 보수적인(?) 친구들은 아니다.(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일 게다.) 20대 때에 우리들은 소박한 수준에서이지만 해외단기선교가 전부가 아님을, 삶의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것이 선교임을 그렇게도 설파하고 다녔었다. 아주 사소한 발언이었지만 그것이 그 친구들과 한국교회의 정서를 단적으로 드러나는 말인 것이다. 해외선교, 영혼구원의 우선성. 신앙생활을 오래할수록 그러한 신앙관은 신체에 더욱 깊이 각인되는 것이 아닐까?

-종교사회학:일상신앙연구회 아무거나 메모판 51번 게시물(2008년 11월 17일).

이처럼 선교담론은 다원적인 기독교적 삶을 단일한 패러다임 내로 포섭하고, 신이나 가치에 대한 헌신의 절대적 표상으로 군림한다. 즉 ‘선교’담론은 자기의 테크놀로지가 활동하는 가능성의 공간을 규정하는 지배의 테크놀로지일 수 있다. 다시 말해 개신교인은 ‘선교’라는 패러다임/교회공동체적 해석코드 안에서 제한되면서도 다양한 선택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신자의 정체성은 목사안수 받고 직접 나가는 해외 ‘선교사’,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 후원하는 ‘선교사’, 직장 ‘선교사’, 문화 ‘선교사’ 등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소그룹 제자훈련을 통해서 Q.T, 신앙서적을 포함하는 커리큘럼은 반복/강화된다(김현준, 2007:14). 이와 같이 제자훈련은 근본적으로 제자를 ‘재생산’하는 공정(operation)이다. 더 정확히 말해서 제자훈련에서의 ‘제자’는 제자훈련 프로그램이나 소그룹의 리더(순장)로 표상된다. 제자훈련은 교육체계를 통해서 리더로서의 제자를 재생산하는 단기적 과제에 집중하게 된다. 재생산에 대한 강조는 대부분의 교회의 제자훈련의 교육과정에 명시된 중요한 기능이자 목표이다. 다음의 자료들은 제자를 ‘재생산’하는 제자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예수님에게는 베드로와 야곱과 요한 (그리고 9명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에게는 디모데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다음에는 누가 있습니까? 제자훈련은 재생산하는 사역입니다. 이것이 바로 건강한 교회의 본질이며 모든 지체가 동참하여 지역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방법입니다. 교회가 단순히 기관이 아니라 다이나믹한 생명체로 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자훈련을 통해 사역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의 다음세대를 책임질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본을 보이며 모델이 되고 계십니까?

사람을 세우라: 여러분이 사역을 홀로 하는 것 보다 누군가가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세워주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놀라운 것은 둘 다 동시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고 사도바울도 에베소서 4장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소수에게 관심을: 예수님에게는 많은 제자들이 따라다녔지만 핵심적인 12명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에게도 말씀을 전하셨지만 사역의 진수는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자훈련은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역의 놀라운 혁신입니다.

재생산적인 사역: 모든 사역의 모델이 제자훈련화 될 수 있도록 하십시오. 다시 말해 모든 사역이 재생산적인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많은 노력과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에게 제자훈련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제자훈련 시킬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끼실 것입니다.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가져올 뿐 아니라 여러분은 영적 부모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이 자리에 지금 없어도 다음세대에 제자훈련을 이끌어 갈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쏟는 땀과 마음이 단순히 사역을 위한 투자인지 아니면 사람을 참된 제자로 세우기 위한 투자인지 다시 한 번 점검했으면 합니다. 제자훈련사역을 통해 다음 세대를 책임질 신실한 제자들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 다음에는 누가 있습니까?”, 제자/사역훈련생을 위한 편지(2005년 9월 9일 제122호)

순장은 누구입니까?

1. 훈련된 평신도 지도자로서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에 따라 함께 목양하는 작은 목사입니다.

2. 순원들의 영적인 양육을 도우며 순모임의 재생산을 도모합니다.

3. 교회를 네트워크 하는 중간 리더의 역할을 합니다.

순장사역의 목표

1. 새신자가 교회에 잘 적응하도록 돕고, 성도의 3대 의무를 지키도록 이끌어줍니다(주일성수, 헌금생활, 봉사)

2. 영적 지도자로서의 가능성이 있는 순원들을 발굴하여 교회의 각종 훈련(제자훈련, 사역훈련, 전도폭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장려합니다

3. 1-2년에 한번은 배가되어 2개의 순모임으로 나누어지도록 힘씁니다.

순모임 배가의 원칙과 방법

1. 순모임 배가의 의의-순모임을 배가하는 것은 교회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이며, 순모임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입니다. 그리고 순모임 배가는 해당 순모임과 교구의 가장 큰 영광이며 순장의 능력의 상징입니다. 순원들은 순모임 배가를 사역의 열매요, 면류관으로 생각하며, 항상 기도와 양육과 전도에 힘써야 합니다.

-광주 사랑의 교회, “순장 매뉴얼” (굵은 글씨는 필자 강조)

제목: 재생산하는 사람이 되셨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에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누구에게 주어진 명령입니까? 자신이 3년 동안 훈련시킨 제자들에게 이 일을 부탁하셨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의 제자 되고자 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명령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다른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로 세우는, 제자를 세우는 제자입니다. 올 한 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로 세워졌습니까? 올 한 해 여러분이 성취한 많은 일들이 아니라, 여러분에 의해서 세워진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려 보십시오. 만약 너무나 많은 수고를 했지만 남은 사람이 없다면, 여러분의 수고는 결국 헛된 것이 될 것입니다. 올 한 해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언제 어떻게 그들과 함께 했고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고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세워가고자 얼마나 수고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다시 한 번 감사함으로 기도 드리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의교회/국제제자훈련원, 제자/사역훈련생을 위한 편지(2006년 12월 28일 제171호)(굵은 글씨는 필자 강조)

제자(리더)의 소그룹 재생산 기능 외에도 중간 관리자로서의 역할은 제자의 생산(제자훈련)이 철저하게 전체 교회교육체계 내에서 제도교회의 유지나 목회의 패러다임 내에 위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제자훈련이 “배가의 승법번식에 대한 목회방법의 발견”(심상법, 2007:202)이라는 주장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제자훈련은 제자의 생산보다는 재생산에 초점을 둔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불완전한 제자라 하더라도 재생산을 감당할 수 있는 소그룹 리더로 기능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다. 제자훈련의 구조적인 문제 중 하나는 제자를 길러내기에는 ‘재생산’의 명분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 이 명분이 바로 지상명령이다. 즉 제자훈련의 관심은 재생산의 주기를 얼마나 빨리, 그리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가에 연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재생산에 대한 강조는 참된 제자의 생산에 대한 관심을 체계적으로 배제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제자훈련은 지상명령을 모티브로 만들어졌지만 한편으로는 지상명령을 배반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제자의 참된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제자훈련원의 “훈련간사 후보생 평가서”에 있는 목표들은 개신교적 주체, 혹은 참된 제자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경건훈련

-주 5회 이상 새벽 경건

-매일 1시간 이상 개인 기도

-LWM 모든 집회, 기도회에 필참

2)말씀 훈련

-D팩:묵상하여서 제출

-본문 묵상:TSA방법으로 정리하여 제출

-Principle훈련

3)사역훈련

①전도

-주 4회 이상 전도

-약속전도를 한달에 2회이상

-매주 5명 이상 복음을 제시

②양육

-기존 그룹:제자들의 성장 목표와 계획을 세워서 한 단계 성장

-새로운 그룹을 형성하여(초신자 3-4명) 정착

③기도후원자 세우기

-기도편지 쓰기(두 달에 한 번씩:9월초, 11월초)

-지속적인 기도후원자 10명이상을 세운다

④필독서

-비전 및 영성: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사역:훈련으로 되는 제자

-재정:닫힌 창고문을 열라

-리더십:열매맺는 지도자

-말씀:말씀 묵상과 영적 성숙

4)생활 훈련

-미션홈 중심으로 영성, 삶 관리를 훈련

-시간 관리를 철저히 한다.(매 주 Weekly Report제출)

-재정 독립(아르바이트 혹은 후원자 개발, 개인예산을 세운다)

물론 이것이 제자에게 요구되는 충분조건이 아니라, 아주 기본적인 요건이라고 주장되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 이유는 이하에서 밝히겠지만 교회는 그 이상의 영성이나 구원을 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제자훈련의 상위단계로 진급한다고 해도 기본적인 요건들의 ‘강화’만이 요구될 뿐이지, 요건들의 구성요소나 목록 자체는 본질적으로 바뀌거나 추가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흔히 예배, 말씀, 기도, 전도라는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말이나 신앙생활의 핵심이 있다는 주장들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제자훈련은 결코 제자의 질과 내용을 담보할 수 없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진실인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예컨대 제자훈련의 기초단계에서 하루 성경 3장 읽고 기도 30분이 기본이라면 상급단계에서는 성경 10장, 기도 1시간이 되는 식이다. 결국 제자훈련이 제자의 본질을 심화시켜줄 수는 없는 것이다.

교회와 목회자, 청년신자들은 위에 제시된 신앙의 기본 덕목들이 참된 제자의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주 모르지는 않는다. (다만 인정의 정도 차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기는 필요조건이라는 이유에서 무한히 긍정되고 반복적으로 시행된다. 왜냐하면 제자훈련에서, 혹은 교회에서 이것 이외의 대안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자훈련에 참여하는 청년신자들의 동기와 이유는 주어진 조건 하에서 자신들의 선택을 자유라고 믿고 이유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타난다. 한편으로 평신도의 이러한 실천은 구원(종교자본)을 보다 효과적으로 획득하기 위한 합리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신자들이 제자훈련을 맹신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제자훈련의 필요성 내지 중요성을 합리화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기본기와 참된 제자 사이의 절대적인 듯 보이는 질적 차이는 여러 단계를 통한 기본기의 강화를 통해 은폐되고 제자훈련이라는 교육과정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것처럼 이데올로기화된다. 구원,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구원을 이루는 과정-제자훈련은 교회가 범주화하는 ‘구원’이 구원의 모든 차원을 표상하고 전유하고/할 수 있다는 오인 속에서 신자가 추구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구원으로서 인식된다. 다시 말해 청년신자는 구원의 지극히 제한적인 전망 속에서 추구할 수 있는 최대치를 얻어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청년들이 제자훈련에 열심인 이유 중에 하나는 역설적으로 교회에서 말하는 구원이 초월적인 전망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학적으로는 무조건적인 ‘은혜’가 종교시장(교회) 내에서 거래될 수 있고 또 실제로 거래되는 무수한 조건들로 점철된 구원과 은혜가 된 것이다. 즉 구원은 하나의 종교재화(상품)가 된 것이다. 종교재는 종교(시)장에서 생산되고 판매되는 여러 상품들과 서비스라는 물질적․상징적 이익들의 총체라고 볼 수 있다. 강인철에 의하면,

모든 종교들은 (나름대로 정의된) 구원을 달성하거나 구원의 달성을 촉진하는 여러 요소나 매체들, 즉 ‘구원재’의 획득을 지향한다. 이때 구원의 내용은 질병의 치유와 육체적 건강, 정신적 안정, 취업과 승진, 진학, 출산, 사업의 번창, 풍작 혹은 풍어, 재해의 방지 내지 퇴치……등 좀 더 현세 구복적인 것들로부터, 미래에 대한 지식, 초능력의 획득, 신적인 힘 혹은 원리와의 신비적 일치, 사악한 초월적 힘의 제거 혹은 억제, 죽은 자의 구원, 내세의 행복……등 좀 더 우주적․초월적․내세적인 것들까지 포함될 수 있다.(강인철, 2002:228 각주 14번)

다시 말해 종교적 이익들은 모든 개신교인들이 추구하는 종교적이고 초월적인, 영적 보상, 즉 “구원”이나 “영생(영원한 생명)” “복(福)”으로 표상되는 사회자본으로 기능하는 소속감과 같은 심리적인 보상과 경제자본과 같은 물질적 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신자의 영혼이 사후(死後)에 천국에 가는 것과 같은 초월적인 의미(만)으로서 주장되는 구원이나 “영적인 복”은 사랑이나 마음의 안정, 친밀감이나 유대감, 물질적인 부유함과 같은 정신적이거나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이윤으로서 사회적인 층위에서 확인된다. 그러므로 종교자본은 개신교인의 종교생활의 궁극적 목적이자 성스러움의 완성인 “구원” 그 자체일 뿐만 아니라, 구원을 가능하게 해주는 “본질”적이거나 보조적인 수단이나 조건들-서비스를 포함한다. 그리고 구원을 가능하게 해주는 수단이나 조건들은 이것들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에 접근하는 길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는 점에서 “구원 그 자체”와 제자훈련이나 교리와 같은 구원의 “수단”은 분리가 불가능하다(김현준, 2008:161).

구원이나 은혜는 시쳇말로 “공짜”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두가 구원이나 은혜가 공짜인 것으로 공모하고 오인함으로써 구원의 세속적(?) 차원은 은폐되는 동시에 영적인(?) 제자훈련은 가능해지는 것이다. 신자들은 교회로부터 주어진 구원이나 은혜의 가치법칙 내지 거래의 규칙을 최대한 충실히 따르는 한에서 최대의 종교적(상징적) 이윤을 획득하려고 한다. 예컨대 개신교 신학의 구원론에서 구원을 얻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교리)은 종교적 이익을 얻기 위한 교회권력에 대한 신자들의 투쟁의 산물 중 하나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두로(Otto Maduro)에 의하면,

성직층의 종교적 이익은 무엇보다 종교적 재화(즉 구원수단들)의 생산, 재생산, 교환, 분배에 대한 권력, 그리고 종교적 생산수단에 대한 권력을 보존․확대․심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평신도층의 종교적 이익은 성직자에 대립하면서도 그에 종속된 상태에서 종교적 생산수단의 박탈과정을 억제하고 가능하다면 역전시키려는 데 있다. 즉 평신도의 이해관계는 최소한 성직층에 대한 최소한의 양보만으로 종교재화를 획득하는 데 있으며, 최대치로는 종교적 생산수단의 전면적인 재전유이다.(Maduro, 1988:168)

마두로가 언급한 권력자로서의 성직자 계층에 대한 지배/저항의 문제는 통치성의 문제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신자는 예수를 믿기(시작)만 하면 바로 영생을 확보할 수 있다. 즉 최소한의 종교적 헌신으로 최대한의 효과(영생)를 얻는다. 구원의 조건이 많아질수록, 혹은 구원에 이르는 과정이 복잡해질수록, 즉 진입장벽(또는 진입비용)이 높일수록 구원과 구원과정 전반에 대한 교회권력의 독점권과 지배력은 강해지지만 역설적으로 너무 까다롭고 복잡한 구원조건은 교회의 경제자본을 포함하여 전체적인 상징자본(종교자본)의 축적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권력과 신자들 간에는 (불공정한 권력관계와 게임규칙이 은폐된 상황 하에서) 적정한 타협점이 생기는데, 구원(영생)의 문턱을 낮추는 대신, 일종의 구원과 은혜의 질적 등급차인 하늘나라의 “상급”과 교육과정에서의 진급이라는 보상체계(상징자본)에 대한 욕망의 자발적 추구를 독려함으로써 양측 모두 일정부분 (불균등한) 이익을 얻는다. 교회권력은 교회권력의 입장에서 종교자본인 신자수를 손쉽게 확보하면서도 신자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한 것이다. 한편 신자들은 더 많은 헌신과 복종을 하는 만큼 더 많은 은혜(물질적․감정적․사회적 보상)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은 교회가 제자훈련을 통해 생산/제공한 특정한 종교재(구원)에 대한 특정한 욕망과 게임의 법칙에 더욱 깊이 함몰된다. 즉 교회가 제공하는 구원의 게임(제자훈련)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그 구원의 한계에 갇혀버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교회(권력)는 제자훈련을 비롯한 일련의 종교의례나 교육제도를 통해 구원에 대한 제도교회의 욕망과 구원에 대한 이미지를 생산하거나, 초월적 지평에 있는 구원에 대한 욕망을 일련의 사회적/심리적 보상(사회자본 및 상징자본)에 대한 욕망으로 전이시킨다.


제자훈련은 교회의 자기계발이고, 구원은 교회의 통치성이다.

청년들에게 구원은 세속적인 것만도 아니고, 사회적인 문제-가령 자본주의-에 대한 일방적 회피 차원인 종교적인 것만도 아니다. 구원은 각자 그것이 사회적인 것이든 종교적인 것이든 간에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자아성취나 자기발전의 가능성(자아재창조)에 집중(자기배려)함으로써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보상을 성취/획득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맥락에 서 있다.

‘구원’과 구원담론은 분명 종교장(교회) 내에서의 생산과 거래의 산물이자 소비주체의 문제로 이해될 수 있지만, 교회라는 구원재의 유통이 제한적인 공간과 제자훈련이라는 불공정한 게임의 법칙 내에서만 인지되고 획득될 수 있는 상징자본이라는 점에서 청년신자들에 대한 교회권력의 통제에 유리한 상징폭력이자 통치기술이다.

이 구원의 현실적(교회적) 과정이자 통치술인 제자훈련의 목적은 마치 일종의 텅빈 기표인 ‘제자’라는 단어의 재생산에 있는 것 같다. 이것이 개신교에서 자기 테크놀로지의 핵심이다. 즉 선교적 주체, “‘개신교적 인물’을 오로지 ‘재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주체”로서 주체화되는 것이다. 하지만 ‘제자’가 무엇인지, 그 내용 자체는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어떤 제자인지의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것 같다. 제자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도 제자훈련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제자들을 끊임없이 배출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강인철. 2002. “종교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적 동조와 종교의 산업화”. <비평> 한국비평이론학회 7(봄)호. 생각의 나무. 214-253.

김현준. “개신교 교육과 통치양식”. 미간행원고.

김현준. 2008.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이론을 통한 종교의 이해: 한국 개신교 장(Protestant field)을 중심으로”. 『서강논집 21집: 11회 서강논문상』. 146-181쪽.

박병락. 2000. “푸코의 권력과 주체 문제의 교육적 논의”.『교육철학』제 18집. 73~89쪽.

S교회 청년부 양육국. 2006. “그루터기 공동체 연간양육계획”

심상법. 2007. “한국교회 제자훈련의 성경적 평가와 전망”.

정종진. 2005. “효과적인 인적관리와 교회성장을 위한 평신도 제자훈련 방안 연구: 사랑의 교회, 충현교회, 삼일교회 사례비교연구”. 총신대학교 선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Maduro, Otto. 1988. <사회적 갈등과 종교>. 강인철 역. 한국신학연구소.

국제제자훈련원 제자훈련자료실(http://www.disciplen.com/resource/disciple/list_top.asp)

S교회 제자․사역훈련 제자훈련네트워크 자료실(http://jeja.sarang.org)

종교사회학:일상신앙연구회(http://club.cyworld.com/religion-stud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