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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상황> 원고(2013년 10월호 "비혼을 긍정한다는 것은?")를 수정한 것임을 밝힙니다.


문제는 비혼 사회적 조건과 비혼 기독청년을 바라보는 (그들의 섹스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개신교적 이데올로기이다. 



비혼자의 사회적 존재론

  우리 사회의 가족문화나 결혼문화는 구성원들이 주변 사람들을 통해 일상적으로 서로 확인하는 문화이다. 소위 결혼의 '적령기'(그런 것이 있다면)에 있는 청춘들은 각종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정보와 주변인들의 평가 자료를 가지고 스스로 결혼이든 비혼이든 그것의 비용과 효용을 나름대로 계산을 통해 가족/결혼/비혼문화를 실천해 나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 유무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문제상황과 의무를 사회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나 지식에 의해서 예측하고 또 고려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이제 미혼자들은 스스로를 수동적인 “미혼”이라기보다 보다 주체적인 의미에서 “비혼”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한국사회에서 비혼이 증가했음을 보여주는 조사는 매우 많다


“2010 인구주택총조사 잠정 집계를 보면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이른바 정상 가족은 약 20%에 지나지 않았다. 1인 가구 역시 2000년 약 222만 가구에서, 2010년 약 403만 가구로 급증했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3%에 달한다. 가족 유형과 형태의 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미혼 남성의 경우, 결혼 필요성에 대한 긍정적 응답인 반드시 해야 한다 하는 편이 좋다비율이 200969.8%에 비해 201267.5%로 감소하는 모습을 나타내었고, 미혼 여성 역시 긍정적 응답이 줄어들면서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라는 비율이 200931.8%에서 201237.2%로 증가했다(2011).[각주:1]


전희경 한국여성민우회 정책위원은 '비혼 세대'의 등장 시기를 2000년 초반으로 보고, 1970년 이후 출생한 여성들이 이 세대의 핵심을 차지한다고 분석한다. '아들처럼' 키워져 '아들과 경쟁해온' 1970년대 산() 여성들은 1990년대 들어 신세대로 불리며 시대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커리어 우먼' 담론이 유포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이 여성들은 학력 인플레이션과 해외 여행·어학 연수의 세례를 받았고, 1990년대 말 경제위기를 경험하면서 결혼의 안정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어쩌다 비혼''페미니스트 비혼'으로 분화한다. 페미니스트 비혼의 경우 대학 내 여성학 수업이 보편화되고, 페미니즘 담론이 대중성을 갖게 되면서 가부장제와 이성애주의를 비판하는 지점에서 발생했다. 이들은 결혼 제도를 문제화시키며 적극적으로 비혼을 정치화해왔다.”[각주:2]


하지만 비혼자는 여전히 기존의 당연시된 한국적 문화에서 예외적이고 일탈적인 존재로 비춰진다. 그리고 비혼을 선택하(려)는 그/녀는 결혼이라는 사회적 기존 의미의 관계망에서 자신이 배제됨으로써 오는 불이익의 감수를 각오해야 한다. 가령 비혼자는 저출산-고령화-국가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회문제의 주범으로 몰리거나 ‘가족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리는 무책임한 사람으로, 심지어 반공동체적이고 이기적이라는 사회적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여성의 비혼(미혼)은 이기심과 무책임으로, 남성의 비혼(미혼)은 무능력의 발로로 여겨진다. 미혼 여성은 “까졌고”, 미혼 남성은 “찌질”하다. 그/녀들은 모성과 부성을 거스르는 부자연스러운 존재가 된다. 비혼자에게 박탈된 것은 단지 자존심이나 자존감이 아니다. 법적 지위나 사회적 복지혜택도 박탈과 더불어 인간성숙의 절대지표 중에 하나인 모성과 부성을 성취 못하거나 유예된 존재라는 시선은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그/녀들은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시민도 성인도 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미혼’이나 ‘비혼’은 단순히 ‘결혼’의 반대말이 아니다.[각주:3] 사람들은 미혼(자)을 지극히 한국의 결혼중심적인 문화와 사회제도적 의미 내에서 이해하고 판단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미혼(자)를 무의식 중에 바라보는 시선은 결혼이나 성(연애)에 대한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문화와 제도에 지배를 받는다. 게다가 기독교인의 경우, 기독교(교회) 문화 안에서 이해된 결혼에 대한 문화가 교회 내의 미혼(자)에 대한 편견과 대응방식을 결정한다.


이렇게 개별 결혼 행위들과 결혼관은 일정정도 한국사회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결혼에 대한 사회적 관념, 배우자에 대한 집단적 인지·평가구조(결혼시장), 국가(복지)제도 등에 매어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주어진 사회적 틀과 현실적 조건 하에서 전망을 보고 판단하며 선택한다. 결혼을 “선택”하고 결혼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은 사랑이라는 개인적인 동기로 이루어지는 것일 뿐만 아니라 여러 조건들을 고려하고 문화적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기존 질서를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비혼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사회에서 비혼을 “선택”한다는 것, 비혼에 대한 자기만의 이유나 비혼관을 갖는다는 것 역시 개인적 선택의 의미를 넘어서는 사회적 의미가 있다.[각주:4] 그것은 기존의 결혼문화와 경제적 조건 같은 사회적(구조/제도/문화적) 억압에 대한 반응/적응이면서도 그것이 개개인들의 선택을 넘어서는 사회적(집단적) 저항의 현상이라는 사실이다.


  사랑(결혼)과 사랑(결혼)의 조건을 완전히 분리할 수 없고, 주체적 비혼 선언과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비혼도 완전히 분리해 낼 수 없다. 따라서 사랑, 결혼, 비혼의 사회적 의미는 당사자의 주관적 의미와 주체적 선택을 기각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러한 사회적(그리고 교회적) 의미 속에서 주체적 선택의 문제를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비혼의 증가라는 현상이 역사적 추동 앞에 강요된 것인지, 개인이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인지 둘 중 하나만 답이 될 수는 없다. 한 개인의 내면 깊숙한 충동과 광범위한 사회적 흐름의 결합 속에서 형성된 결과라는 점에서 개인의 선택을 넘어서는 사회적 변동이 전제되고 있음은 틀림없다.”[각주:5]


  여성의 경우, 비혼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불안정한 삶”[각주:6]과 현재 체험 중인 “신빈곤의 두려움”[각주:7]의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또 “노동권을 잃을 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 결혼 제도가 주는 압박과 노동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생존전략”일 수 있다.[각주:8]


  최근에는 남성의 비혼 마저 그러한 경향을 보이는 듯하다. 결혼은 곧 가부장으로서의 경제적․도덕적 책임이라는 전통적 역할(가령 부모님께 손주를 안겨드려야 하는 효도와 같은 의무)을 짊어지는 것을 의미하기에, 비혼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러한 전통적 도덕률과 경제적 부담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전략일 수 있다. 다만 여성학자 정희진에 따르면 “문제는 사회적 자원과 경제력이 없을수록 열등감 때문에 시간 많은 남성이 더욱 가사를 안 한다는 것이다. 남성의 이런 상태는 여성이 결혼을 기피하는 가장 결정적 이유이자 성 차별 현실을 요약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사노동을 얼마나 천시하는지(‘솥뚜껑 운전’ ‘집에 가서 애나 봐라’…), 그리고 가사노동 전담 여성을 얼마나 비하하는지, 마지막으로 남성 문화는 가사노동을 ‘루저’(Looser)의 상징으로 삼는다는 사실. 여성들은 이 구조를 간파했다. ‘외모와 능력’을 모두 갖춘 여성들이 많아지자, 남성의 눈은 높아졌고 배우자 구하기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이다.[각주:9] 이런 측면에서 남성 역시 일정부분 가부장문화(라는 상징폭력)의 (공모자인 동시에) 희생자일 수 있다. 이 같은 (성적 불평등) 상황과 (성별) 의식 속에서 남성의 비혼은 경제적·정서적 비용의 지불을 최소화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 모른다.[각주:10]


이렇듯 자신의 비혼 상태를 설명하는 비혼자들의 개별적 이유들은 이것이 단지 ‘선택’의 문제인 것만이 아니라 “사회자본과 고용형태, 그리고 원가족(original family)의 사회적․경제적 위치 등 삶을 형성하는 모든 영역에서 구성”된다.[각주:11] 즉 비혼에 대한 논의는 노동문제와 계층적 지위를 고려한 관점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비혼자의 교회적 존재론: 교회에서의 비혼 존중(?) = 또다른 순결담론?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에서 비혼은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어지고 있을까? 많은 교회에서 다양한 맞선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여 실행하고 있지만 건전한 이성교제를 독려하고 미혼자를 “구제(?)”하는 대책 차원에 머물거나 그냥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는 형편인 것으로 보인다. 조금 더 적극적인 대책이라고 해봐야 (보수신앙에 기반한) "혼전순결 교육" 정도이다. 구제책은 어쩔 수 없이 소외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언제나 결혼에 대한 강박을 재생산한다. 그렇다고 방관하게 되면 사실상 그들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라는 식의 편견만 재생산된다. "노총각/노처녀"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비혼자는 대체 언제까지 결혼은 언제할꺼냐는 질문을 들어야 하며, 또 언제까지 결혼 안 한 자기인생을 타인에게 설명해야하는 것일까? 결국 이러한 문제는 결혼을 전제 한 우리사회와 교회의 문화와 관련되어 있다. 


결혼은 어른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통과의례라는 사회적 통념은 교회 내에서도 다르지 않다. 되려, 신앙적 의미가 부여되기에 그러한 사회적 통념의 억압적 측면은 더욱 강화되기 쉬운 것 같다. 결혼은 신적 제도이고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지상명령이다. 부모가 되어 보지 않으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진정으로 깨달을 수 없다거나 전도 못할 바에는 결혼해서 자녀를 많이 낳아 하나님 나라 확장(지상명령)에 기여하라는 권면은 그저 농담으로 들리지만은 않는다. 게다가 비혼이었던 예수님이나 바울의 사례는 크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신이요, 바울은 사도라는 극히 예외적 존재시니(이분들이 연애감정이나 성욕을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묻지 말도록 하자 ㅡ.ㅡ;). 예컨대 미혼에 대한 교회의 인식(문화)은 비혼 교역자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대우에서 보다 명확히 드러난다. 결혼한 목회자가 비혼 목회자보다 더 선호되어야 할, 공동체에 유익하다고 여길 필연적인 이유는 없어 보이지만 비혼 목사나 전도사는 사역지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사역지를 구했다하더라도 인격을 의심받으며 심지어는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이렇듯 교회는 사회가 당연시하는 성문화, 가정에서의 차별적 성역할 등, 즉 비혼자들이 “비혼”이라는 용어를 발명하면서까지 그렇게도 저항하고자 하는 사회적 모순을 확대 재생산시키는 장소이기 쉽다. 사회에서의 비혼 스트레스가 교회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교회에서 성차별, 고전적 성역할 규범문화(예를 들어 교회 행사에서 남전도회는 주차안내, 여전도회는 식사 준비 및 설거지)와 가부장주의를 내부적으로 비판하고 교정하지 않으면서 비혼을 긍정한다는 것, 비혼자를 이해한다는 것 - 더불어 비혼자의 섹스에 대한 대책(?)을 세운다는 것, 소위 "성교육"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교회 내에서 비혼을 긍정하(자)는 이야기는 그저 프라이버시 존중 차원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는 것인가, 아니면 온정적이고 인격적인 대우 정도를 의미하는 것인가? 이러한 태도들은 비혼의 문제를 비혼자의 삶의 전체 맥락을 생각하지 않고 결혼 여부 그 자체에 대해서만 판단을 유보하는 편리한 방식에 불과하다. 비혼을 긍정한다는 것은 비혼자의 삶 전체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비혼(선택)은 비혼자의 삶 속에 배치된 하나의 요소이기 때문이다. 앞서 비혼의 사회적 맥락이 있음을 보았듯이 비혼이라는 상태는 다양한 층위와 성격을 가질 수 있다.


예컨대 비혼을 비연애, 반연애나 섹스 안함과 동일시 해서는 곤란하다. 비혼을 선택한 사람들은 연애와 성생활을 거부한 것이 아니다.  (최근 기독 청년 1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국교회탐구센터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한 인터넷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혼 기독 청년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미 성 경험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남성 59.4%, 여성 44.4%, 전체 52%). 또한 현재 지속적인 성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비율도 상당히 높았다(주 2~3회 5.4%, 주1회 16.1%, 월 2-3회 22.4%). 이러한 조사결과를 놓고 일부 개신교인들은 "말세"니, "성적 타락"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겠지만.)[각주:12] 비혼을 선택한다는 것은 사회가 당연시하는 관습적 사랑의 관계를 재고하고 새로운 관계를 열어놓는다는 것이지, 모든 사랑의 관계에 대한 전면적 거부는 아닌 것이다. 또 결혼제도를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비혼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선택은 동거인가, 아니면 사실혼인가? 그것은 비혼이 아니라 결혼(사실혼)이라고 우길 것인가? 뿐만 아니다. 결혼의 필연적 결과나 의무라고 생각하는 재생산(출산과 양육) 문제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가령 자녀 없는 결혼은 물론이고, 비혼이지만 (출산이나 입양을 통해) 자녀를 갖는 경우도 있다.


교회에서 비혼자들은 결혼중심적 문화(관점)을 넘어서서 성문제에 대해 과연 얼마나 말할 수 있을까?  만일 교회에서 비혼자의 성문제를 진지하게 다룰 수 없다면 교회에서의 비혼 긍정은 단지 성생활을 유예하는 상태로서의 미혼 담론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이것은 우리가 늘 들어왔던 순결담론이 아닌가! 


따라서 우리가(교회가) 진정으로 비혼을 긍정한다는 것은 인생을 결혼 중심으로 생각하고 결혼 여부로 평가하는 기존 미혼 담론의 한계를 넘어 혼전순결 교리(?)까지도 심각하게 재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청년을 "혼전 섹스 방지" 성교육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목회자와 일반신자들의 성추행 예방 성교육이나 제대로 하시라. 그들의 "섹스"는 아무 잘못이 없다. 문제는 비혼 기독청년들의 섹스를 타락과 멸망의 징조로 보는 보수개신교의 시각일 뿐이다)


이처럼 비혼자들의 실제 삶에서는 비혼-사랑-연애-동거-사실혼-혼인신고의 경계가 자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문제시하고 개선해야할 사회구조와 문화가 그러한 경계들에 간섭한다. 우리가 긍정하고 인정하며 존중해야할 비혼자들의 삶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 그 자체만이 아니다. 결혼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조건들까지 긍정할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사회는 이제 결혼 없이 사는 삶의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비혼자에 대한 이해에는 다른/다양한 존재와 삶의 방식에 대한 열린 태도와 상상력이 필요하다. 오늘날 비혼은 사회적 관계망의 밖에서 혼자 살 수 있다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선택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사회적 관계망과 삶의 유형/무형의 조건(공동체)을 탐색하고 도전하는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있다. “비혼은 성경적이다” 혹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비혼이 결혼보다 더 성경적이다”는 믿음이나 선언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결혼과 인격적 성숙이 동의어가 될 수 없듯이 남성과 부성의 관계, 여성과 모성의 관계는 인간 성숙의 연장선상에 있는 필연적인 관계도 아니다. 성별-연애-결혼·비혼-출산·입양-양육은 필연적이고 성경적인 인과관계의 생애주기가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혼합될 수 있는 요소들일뿐이다.


글 ㅣ 먹보에_술꾼(카이로스 대표)


  1. 현대경제연구원, 2011, “결혼관 혼란을 가중시키는 초식남과 육식녀: 20-30 세대의 결혼관에 대한 인식” [본문으로]
  2. 장일호 기자, 2011/5/6, “미혼·싱글은 지고 ‘비혼 세대’ 뜬다”, 시사인 190호. [본문으로]
  3. 1990년대 후반부터 ‘미혼’이란 용어는 결혼이라는 목적과 정상적이고 완성된 삶의 형태를 기준으로 결핍된 상태를 의미하는 결혼중심문화의 반영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여성주의 공동체들을 중심으로 ‘비혼’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현재 ‘비혼’이라는 용어는 첫째, 결혼을 적극적으로 거부한다는 의미에서 쓰이기도 하고, 둘째, 광범위한 의미에서 현재 결혼 상태에 있지 않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미혼, 이혼, 사별 여성 등이 비혼 여성의 범주 안에 포함된다. 셋째, 결혼을 전제로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미혼이란 의미에 대항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심경미, 2002, “비혼(非婚) 여성에 관한 연구: 30대 중반 이후 40대 여성의 경험을 통해 본 비혼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문화적 요인을 중심으로”, 이화여대 여성학석사논문; 김정덕, 2011,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삶 들여다보기: 결혼과 비혼 사례를 중심으로”, 「다문화 교육연구」, 4(1): 124-125). 최근에는 어떠한 맥락에서 사용하든 ‘미혼’이나 ‘독신’을 대체하는 용어로 ‘비혼’이 일반화되는 추세이다(강은영 외, 2010; 김한나, 2011, “20~30대 여성의 비혼 경험과 생애전망 : 독립욕구와 가족의존 사이에서”, 서울대 여성학석사논문). 이 글에서 필자는 ‘미혼’을 결혼이라는 정상(normal)에 도달하기 위한 임시적이고 예외적인 상태(amnormal)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비혼’은, 혹자는 자발성 여부에 따라 미혼(비자발성)과 비혼(자발성)을 구별하기도 하는데, 여기에서는 그러한 자발성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결혼 전제와 상관없이 단지 결혼하지 않은 ‘현재 상태’를 기술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참고로 Stein(1981)은 독신의 지속기간과 자발성의 두 요인을 고려하여, 자발적/잠정적 독신, 자발적/영구적 독신, 비자발적/잠정적 독신, 비자발적/영구적 독신의 4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본문으로]
  4. 한국사회에서 비혼이 증가했음을 보여주는 조사는 매우 많다. “2010 인구주택총조사 잠정 집계를 보면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이른바 ‘정상 가족’은 약 20%에 지나지 않았다. 1인 가구 역시 2000년 약 222만 가구에서, 2010년 약 403만 가구로 급증했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3%에 달한다. 가족 유형과 형태의 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다.”(장일호 기자, 2011/5/6, “미혼·싱글은 지고 ‘비혼 세대’ 뜬다”, 시사인 190호) 미혼 남성의 경우, 결혼 필요성에 대한 긍정적 응답인 ‘반드시 해야 한다 ’와 ‘하는 편이 좋다’ 비율이 2009년 69.8%에 비해 2012년 67.5%로 감소하는 모습을 나타내었고, 미혼 여성 역시 긍정적 응답이 줄어들면서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라는 비율이 2009년 31.8%에서 2012년 37.2%로 증가했다(2011년)(현대경제연구원, 2011, “결혼관 혼란을 가중시키는 초식남과 육식녀: 20-30 세대의 결혼관에 대한 인식). “최근 우리 사회의 결혼 연기 또는 포기 추세가 앞으로도 변함이 없다면 현재 20대 초반 남녀 5명 중 1명은 평생 미혼으로 남을 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상림 연구원은 2010년 인구센서스의 연령대별 미혼율이 계속 이어지면 당시 20세 남자 중 23.8%는 45세가 될 때까지 미혼 상태로 남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혼인동향 분석과 정책과제' 보고서에서 3일 밝혔다. 또 같은 나이 여성 중에도 18.9%는 45세에 이르도록 결혼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인구학에서 45세가 되기까지 결혼을 하지 못하면 사실상 '평생 미혼' 인구로 분류된다. 45세 이후 결혼할 확률이 매우 낮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여성의 가임기가 45세로 끝나기 때문이라고 이 연구원은 설명했다. 우리나라 남성의 초혼연령은 1998년 28.8세에서 지난해 32.1세로, 같은 기간 여성은 26.0세에서 29.4세로 급격히 높아졌다. 특히 여성은 30대 중반이 넘어가면 결혼을 아예 포기하는 '적극적 혼인포기' 사례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연합뉴스, 2013/9/3, “현재 20대 초반 5명중 1명꼴 평생 결혼 못한다”) “우리나라의 비혼 가구 증가 속도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빠르다. 5년마다 한 번씩 하는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2005년 현재 비혼 가구는 280만2636가구. 1995년 144만3439가구에서 2005년 280만2636가구로 10년 동안 증가율이 59%에 달한다. 기러기 아빠, 주말 부부 등도 일부 포함된 1인 가구 통계를 보면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80년 4.8%, 90년 9.0%, 2000년 15.5%, 2005년 20.2%로 늘었다. 현재 1인 가구 비율이 49%인 덴마크만 해도 1인 가구가 2배 가까이 늘어나는 데는 30년이 걸렸다. 현재 세계 어느 나라보다 ‘독신화 사회’로의 이행 속도가 빠른 한국이다. … 1인 가구가 벌써 280만을 넘어섰고, 전체 가구의 20%를 차지한다.”(박수진·신윤동육, 2008/3/13, “비혼이 행복해야 사회가 행복하다”, 한겨레21, 710호) [본문으로]
  5. 노미, 2010, “비혼의 집단 현상, 적극적으로 읽기: 장 클라우드 카우프만 <혼자 사는 여자, 백마 탄 왕자>”, 언니네트워크 액션+공감팀, 「언니네트워크 비혼자료집」, 144-146. [본문으로]
  6. 임윤희, 2004, “르포: 비혼여성 또다른 비혼여성을 만나다”, 당대비평 통권 제27호, 185-198. [본문으로]
  7. 정현희, 2011, “한국사회의 여성: 비혼 현상으로부터 읽기”, 여/성이론 통권 제25호, 233-240. [본문으로]
  8. 정희진, 2013/2/19, “왜 비혼이냐고? 여성의 생존전략이다”, 한겨레신문. [본문으로]
  9. 정희진(2013/2/19, “왜 비혼이냐고? 여성의 생존전략이다”, 한겨레신문)은 여성의 비혼의 가장 큰 원인을 남녀 간 불평등이 아니라 남녀 간 의식의 불균형이며 남성의 집단적 (후퇴가 아니라) ‘문화 지체 현상’ 때문에 남성이 피해자라는 착시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이러한 주장을 수용하여 남성의 비혼이 남녀 평등에 대한 남성의 의식(문화) 지체에 부분적으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남성은 성장과정에서 가부장적으로 사회화되었고 성평등 감수성을 체화하지 못했기에 결혼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주관적으로 그들 나름대로 깊은 좌절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본문으로]
  10. 여성의 비혼은 가부장문화 등에 저항하는 것이 정체성을 형성함으로써 주체화되지만 남성의 비혼은 저항할 대상을 상대적으로 결여하고 있다. 남성 자신이 가부장적으로 사회화되었기 때문에 결혼의 거부는 적극적 의미를 갖지 못하고 소극적인 의미를 가지기 쉽다. 따라서 비혼을 주체적으로 선택(한다고 생각)하는 여성에 비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남성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11. 권문영, 2012, “불안정 노동 여성의 ‘비혼’ 경험에 관한 연구”, 이화여대 여성학 석사학위논문. [본문으로]
  12. http://m.theosnlogos.com/articleView.html?idxno=172&menu=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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