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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론에서 '세계관'의 범주 문제

복음주의 지적 담론은 모든 문화의 배후에 세계관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세계관을 기독교적인 것과 아닌 것으로 구별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세계관’의 범주로 포섭되는 모든 사상들은 사실상 모두 복음주의자들이 적대해야 할 일종의 ‘종교(적 가치)’에 불과한 것이 된다.


소위 '기독교 학문'과 같이 일반적으로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논문들의 다수도 '모든 학문들은 암묵적으로 종교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주장으로부터 논지를 전개한다. 기독교 세계관을 주제로 다룬 책들은 복음주의권에서 인문학적 지식에 입문하고 복음주의적 지성을 도야하는 거의 유일한 커리큘럼이다. 그런데 그러한 책들에 근거한 담론들은 근현대 철학이론들의 성과를 반영하는척하면서 사실은 '모든 사상은 근본적으로 전제, 선택, 종교, 믿음의 문제'라는 단순한 결론으로 쉽게 유도한다. 가령 '과학도 종교'라고 단정된다. 일반적으로 소위 복음주의권에서 기독교 세계관의 대표적인 입문서로 읽히는 제임스 사이어의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IVP)은 근현대사상들을 나름의 질문들에 입각하여 ‘기독교 유신론’, ‘이신론’, ‘허무주의’, ‘실존주의’, ‘동양 범신론적 일신론’, ‘포스트모더니즘’ 등 몇 가지 범주로 구분하는데, 사실상 특정한 전통의 사상이나 종교를 염두에 두고 그것들을 ‘세계관’이라는 철학적 개념으로 치환한 것일 뿐이다. 예컨대 ‘동양 범신론적 일신론’은 힌두교나 인도철학을 ‘세계관’으로서 정의하고 범주화하기 위한 수사라고 할 수 있다. 즉 상이한 사상들을 모두 ‘세계관’이라는 철학적이거나 종교적인 신념의 문제의 범주에 놓는다. 


그러한 다양한 세계관들은 단 하나의 진정한 세계관인 기독교(칼뱅주의)와 대조했을 때 대척점에 있는 종교적 세계관‘들’에 불과한 것이다. 가령 제임스 사이어가 "해답"을 알기 위해 던지는 "질문들"은 기독교 세계관과 비기독교세계관을 구별하는 특권적 범주들이다. 기독교 세계관 담론은 특정한 전통의 기독교인들(칼뱅주의자)이 던지는 질문을 다른 사상들을 판별해내는 절대적 토대로 삼으면서 질문들의 역사적 구성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이들은 ‘세계관’이라는 모든 사상과 종교의 공통의 척도(언어)를 ‘발명’하고 자신들의 신학적(개혁주의)·철학적·정치적·사회적·문화적 입장을 ‘기독교 세계관’이라고 명명함으로써 이러한 진술이 개별 종교전통의 신학적 설명이라기보다는, 공적이고 중립적인 정당성을 갖춘 보편적인 지식이나 객관적인 방법론인 것처럼 호도한다. 사실상 근본주의 분류도식에 다름 아닌 '기독교 세계관'의 통념(doxa)은 자명한 세계관이 된다.


따라서 모든 것이 '세계관'이기 때문에 '세계관 전쟁'은 정당화된다. 상이한 지식들(혹은 주체들, 문화들) 간의 합리적 대화와 인식론의 문제는 오로지 믿음(faith)의 문제로 치환되고, 상이한 세계관들 간의 대결 문제가 되며, 심지어 세계관/문화들 간에 선악을 구별하는 '영적 전쟁'의 문제가 된다: 진정한 전쟁은 영적 전쟁이고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는 세계관 전쟁이 있다. 이라크 전쟁도 종교 간의 전쟁이라고도 하고 문명 간의 충돌이라고도 하지만 사실은 세계관 전쟁이다. 모든 역사와 문화 배후"에 있는 "세계관 전쟁"은 "누가 선이냐 악이냐를 구분하는 전쟁"이다(성인경, 2003). 기독교 세계관은 세상의 잘못된 유행에 동화되지 않고 영적 분별력을 갖는 것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리고 올바른 이념을 세우는 비판력이라고 주장한다(성인경, 2010: 4-6). 


이런 방식으로 한국에서 근본주의적-칼뱅주의적 경향은 보수 개신교 신앙과 제도의 위기 국면에서 단지 극복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종종 성스러운 기원으로 묘사되거나 예언자(갱신 모델)로서 호출된다. 이를테면 한국 복음주의 지식인들은 쉐퍼의 경고에 미국 복음주의 교회가 제대로 반응하지 않아 더 큰 문제가 드러났는데, 한국 복음주의 역시 이러한 전철을 밟고 있다고 우려한다(이승구, 2006). 그리고 한국 복음주의는 쉐퍼의 경고를 들어야 하고 그 해결책은 쉐퍼의 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문화를 “문화전쟁”, “영적전쟁”으로 인식하는 관점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90년대에 많은 영향력을 끼친 문화선교단체 '<낮은울타리>(대표 신상언)'의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책으로도 발간된 '사탄이 대중문화를 선택했다'는 식의 <낮은 울타리>의 문화관은 많은 비판에 직면하여 어떤 면에서는 “퇴조”(양승훈, 2012: 165)했다고 볼 수 있으나 이후 개신교의 문화관이 모두 이를 극복했다고 섣불리 평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월간지 《WORLDVIEW》(발행인 손봉호)를 통해 이러한 담론을 부분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WORLDVIEW》의 전신인 《온전한 지성》에는 “혼탁”한 환경 속에서, “공중권세 잡은 자[사탄-필자 주]”로부터 “빼앗긴 영역을 되찾는다”는 등의 표현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조정민, 2009: 3-4를 보라). 이러한 ‘영적 전쟁’의 세계관의 확대는 ‘이슬람포비아’ 출현의 가장 중요한 심층적 기반이 된다(김성건, 2011: 137). 즉 ‘이슬람포비아’는 아프간 피랍사건을 한국교회에 대한 ‘사탄의 영적 도전’으로 인식하는 근본주의 진영에서 출현했다(김성건, 2011: 136). 김성건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의 사회적 정당성이 최근 계속 쇠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내부에서 사실상 실질적 주류를 차지하는 성서적 근본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자연스런 방어기제로서 심대한 적(敵)을 사탄의 세력으로 동일시하는 것 곧, ‘사탄화(satanization)’가 우리들 가운데서 바로 없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김성건, 2011: 138).

 

“종교적 근본주의”의 “영적 전쟁의 세계관”이 “심화 및 확대”되고 있다는 김성건의 판단은 소위 복음주의 지성을 자처하는 집단의 인식론적 경향성을 설명하는 데에 상당부분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초기 복음주의 지적 담론의 장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친 <낮은 울타리>의 세계관은 쉐퍼의 문화관과도 상당히 친화적이며 '기독교 세계관'의 이름으로 재생산되는 하나의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이러한 이론들을 관통하는 패러다임에서 '근본주의'라는 복음주의 내부에서 잊혀진 이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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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적 세계관?

기독교의 성스러움은 비기독교적인 것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중립적이고 절대적인 성스러움이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이 세계관'이라는 '기독교 세계관'의 가르침은 상대방을 편협한 이데올로기로 만듦으로써 자신의 세계관을 중립화, 객관화한다. 


예컨대 경제문제(FTA)에 대한 기독교인의 원칙이나 입장을 제시하는 설교에서 사회과학자들의 생각은 인용할 가치가 없는 부차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사회과학은 중립적이지 않고, 이념적 기초를 깔고 있으며 결과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데올로기론이나 지식사회학, 해석학, 인류학, 과학철학 등은 우리에게 사회과학적 지식도 선이해(선입견)나 이해관심(interest)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모든 관찰(경험자료)은 '이론의존적(theory-laden)'인 것임을 가르쳐주었다. 또한 FTA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목회자도 평신도도 그 모든 방대한 지식과 실천을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이러한 담론에 대한 종교 엘리트들의 패턴화된 접근 방식이 경제문제에 대한 사회과학적 성찰에 입각한 입장(지식)과는 배타적이며 간섭받을 수 없는 복음(주의)적 또는 기독교 세계관적 원리라는 예외적이고 중립적인 공간을 상정하고 또 그것을 지속적으로 창출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과학적 지식(경제학)은 알기 힘들고 믿을 수도 없는 것이 되며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복음이나 '기독교 세계관'은 모든 것의 근본적이고 중립적인 원리로서 구축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분명 세속 지식 담론(FTA)에 대한 신앙적·목회적 번역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신앙적 판단에서 고려되어야할 세속 지식의 정치적 차원에 대한 사유를 차단하거나 신앙적·목회적 번역조차 이데올로기적 차원이 있다는 성찰을 희석시키는 측면이 있다. '우리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예수파다', '이념보다 그리스도가 높으시다'와 같은 언술들이 바로 그러한 태도의 대중적 분류도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이러한 논거의 핵심에 모든 종교나 사상을 세계관이라는 이름의 '신앙'으로 치환하는 논리가 작동한다. 그리고 개신교에게 있어 '신앙'은 '종교적 전제'로서 학문을 비롯한 모든 인식범주들을 분류하고 판단할 수 있는 범주이다. 중립적 세계관이라는 특권적인 성스러움의 코드는 이런 방식으로 교회의 목회 현장이나 일상적 종교 활동에서 이항대립을 은폐하는 방식으로 계열화되고 재생산된다.[각주:1]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가 주최하고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와 우리신학연구소가 주관하는 프로젝트[한국보수주의 형성과 그리스도교][각주:2] "복음주의(지성)은 근본주의의 인큐베이터(incubator)?: 보수 개신교 지식 담론의 생산과 문화구조" 원고의 일부를 수정한 것임을 밝힙니다.


먹보에_술꾼


  1. 이전 글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불편한 진실, 무엇이 닭튀김을 거룩하게 만드는가?"의 2장 "복음주의 지적 담론은 무엇을 보존하는가?: 배타적 순수성(성스러움)의 구축"을 보라. [본문으로]
  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4282101375&ampcode=96020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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