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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김승수

신자유주의 시대, 어느 개신교 청년의 회심과 정체성에 대한 단상

회의주의자는 이중의 존재다. 사유하는 한 그는 어항 바깥에 있으면서 그 안을 맴도는 금붕어들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 역시 멀쩡히 살아가야 하기에, 자신 또한 한 마리 금붕어로 어항 속에서 다음번 선거에 어떤 후보를 지지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회의주의자는 그가 의심하는 어항 바깥에 있는 한 명의 관찰자인 동시에 금붕어들 가운데 한 마리다. 분열이 있지만, 이는 하나 비극적일 것 없는 분열이다(Veyne, 2008/2009, 10-11쪽).


내 낡은 서랍 속의 기억

초등학교 4학년, 담임 선생님을 따라 처음 교회를 갔던 기억이 있다. 온화하고 학생들에게 친절한 선생님이셨는데 어린 나이에 그 분이 교회 와보란 말이 그리 싫게 들리지 않았다. 성경도 모르고 설교도 이해는 잘 안됐지만, 함께 교회 온 반 친구들과 함께 찬양을 부르고 게임을 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적지 않은 즐거움이었다. 그러다 6학년 즈음이었을까,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어느 순간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교회를 나가는 것에 걸림돌이 되기 시작했다. 한동안 교회를 다니지 않다 친한 친구와의 인연으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다시 교회를 나갔다. 역시 찬양도 부르고 성경도 함께 읽고 심지어 통성기도를 하기도 했다. 직책도 맡아 수련회를 준비하기도 했고, 기도회를 인도한 경험도 생각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갈라지는 것은 믿기 어려웠고, 더욱이 예수가 죽었다 살아나는 것은 더욱 그러했다.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그나마 믿을 수 있었지만, 예수의 부활은 믿을 수 없었다. 대학에 와서 2년을 교회에 들락날락했다. 왠지 마음에 공허함이 생기고 죄책감이 들면,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여했다. 때로는 졸기도 하고 어느 때는 정화되고 숭고한 느낌을 받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그렇게 방황도 하고 정신도 차리던 2002년의 여름, 나는 다시 한 번 나를 어떤 수련회로 데리고 가려는 절친한 친구와 “간사님”이라는 분의 간곡한 요청을 뿌리쳤다. 대학에 와서 처음 만났던 그 친구를 통해 M이라는 선교단체를 알게 됐었는데, 몇 번 아침 묵상 모임에도 참여해왔던 터였다. 간사님의 간곡한 권유를 뿌리치다 언성도 높였고 다시는 보지 않으리란 생각에 “그곳에만 하나님이 있느냐”며 논쟁도 마음껏 했다. 그러나 그 여름이 끝나갈 무렵, 기숙사에 살던 나는 2학기 연장신청을 하지 않아 하루 사이에 방을 비워줘야 했고, 핸드폰 전화부를 뒤적이다 발 벗고 도와줄 친구를 찾은 게 결국 M단체의 그 친구였다. 염치를 무릅쓰고 M단체 사람들이 모여 살던 ‘생활 공동체’에 한 달만 살며 방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한 달만 살기로 들어간 생활 공동체에 4년을 더 있었다. 그 사이 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찬양도 하고 통성기도도 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는데, ‘예수의 부활’이 믿어졌다. 생활 공동체에서 생활하며 지켜보는 개신교 선교단체 청년들의 모습은 당시 내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여전히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면서도, 이들의 표정, 생활 방식, 언행, 중요한 선택에서의 결정들을 지켜보며 지금까지 봐왔던 사람들과는 무엇인가 다름을 느꼈다. 정확히는 이들을 보며 나도 예수를 ‘믿고 싶어졌다.’ 호기심과 매력에 끌려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며 같이 살던 2002년 가을과 겨울을 지났을 때, 나는 예수를 정말로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믿고 있었다. 천성은 버릴 수 없어 그 사이 수십 권의 기독교 변증서와 비판서를 읽은 것도 사실이다. 흔한 말로 나는 ‘회심자’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안에 ‘믿지 않던 나’와 ‘믿게 된 나’는 공존하고 논쟁하며,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개신교에 대해, 그 개신교가 맞닿는 시대의 문화에 대해 여러 문제의식들을 만들어 오고 있다. 이후의 글들은 그러한 문제의식들 중 구체화된 잠정적 결과이자 끝나지 않은 과정이라 할 수 있다.[각주:1]



경계의 지평선

나는 M단체를 통해 개신교 신앙을 가지고 스스로를 이해하게 되면서 내 삶의 적지 않은 순간들에서, 타자화된 양 집단의 경계에서 중개자 역할을 감당해왔음을 알게 되었다. ‘회심’의 경험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믿는 사람들’의 생각을 함께 이해할 수 있게 했고,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믿는 이들의 생각과 경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믿지 않는 이들의 생각과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게 했다. M단체에서 캠퍼스를 담당하던 "간사님" 없이 선교단체 "리더"를 감당했던 2년의 경험은 ‘전임사역자’와 ‘평신도’ 사이의 생각과 경험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졸업 이후에는 M단체의 학사회를 대표하며 ‘대학생들’과 ‘졸업생들’을 잇는 중개 역할을 해야 했다. 대학원에서는 전공을 ‘언론학’에서 ‘영상학’으로 소속을 옮기면서 두 영역의 다른 학문적 풍토와 사람들 사이를 왔다갔다 해야 했다. 믿는자/믿지 않는자, 전임사역자/평신도, 언론학/문화연구와 같은 내 정체성 내의 이분법적 경계 구분과 그 상호 간의 끝없는 경합과 조화는 주체의 정체성이 완전하고 균형 잡힌 하나의 그것으로 소집되지 않음을 경험적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내 정체성은 끝없이 교전하고 분절되었으며 때로는 어긋나고 때로는 조화되었으며 이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학을 졸업하고 겪는 정체성의 고민들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신자유주의적 체제에서 취업과 대학원 진학의 길로 들어선 M단체의 여러 선배들과 동료들은 신앙적 언어로 담론화된 M단체의 비전과 자신의 비전을 신자유주의적 언어로 담론화된 현실의 진로와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지에 대해 적지 않은 고민들을 하며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진로와 비전의 고민과 방황 속에서 이들이 M단체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어떤 이는 신자유주의적 사회에서의 삶과 온실과 같은 캠퍼스에서의 삶은 전혀 다르기에 M단체에서 말하는 “모임사람”으로 살 수 없다고 이야기 했고, 어떤 이는 신자유주의적인 사회에서도 믿음으로 캠퍼스에서와 같은 삶을 동일하게 살아야함을 주장하며 직장과 대학원에서 모임사람으로 살지 못하는 자신과 동료들을 반성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분법적 선택지 사이에서 내가 추구하는 바는 신자유주의적 사회가 요구하는 주체의 양상과 M이라는 개신교 선교단체가 요구하는 주체의 양상을 겹쳐보는 것이다. 완전한 ‘신자유주의적 주체’로 서는 것도, M단체의 ‘모임사람’으로 서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신앙적 당위성을 가지고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하는지에 대한 담론의 투쟁을 잠시 멈춰보고자 한다. 그리고 찬찬히 M단체의 청년들의 정체성의 어떤 담론과 양상들이 신자유주의적 주체의 그것과 접합하는지 혹은 경합하는지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 정체성의 한 부분인 문화연구자로서는 M이라는 개신교 선교단체 청년들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통치의 주체화의 열망이 개신교적 주체들에게 어느 정도, 어떤 지점에 침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동시에 나에겐 이 연구가 가지는 정치적 목적 또한 있다. 정체성의 다른 한 부분인 M단체의 한 청년으로서 신자유주의 시대, M단체 청년의 정체성이 어떤 담론들로 신자유주의의 그것에 공모하거나 저항하는지 알아봄으로써, M단체의 선교적 운동과 그를 위한 주체와의 노력이 어떤 지점에서 성공 혹은 실패하는지 그 교전 지점을 밝힘으로써 M이라는 개신교 선교단체가 가진 비전과 목표에 작은 힘이 되고자 하는 그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나는 M단체를 향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스스로와 M단체에 대한 회의주의자가 되어야만 한다. M단체의 구성원이지만 동시에 그렇기에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던 M단체 내의 ‘실천’과 ‘진리’들을 낯설게 바라보는 ‘어항 밖의 금붕어’가 되어 이 글을 시작한다.



어항 밖의 세상

1997년 IMF 직후 한국 사회에는 신자유주의적 질서 형성을 위한 기반이 마련됐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까지 각기 다른 정치적 이념을 가진 정당이 집권했음에도 신자유주의적 질서 형성의 노력은 쉽게 끊이지 않았고, 이후 10여년의 세월동안 한국 사회는 몇 가지 뚜렷한 사회적 변화와 갈등을 경험했다. 기업과 시장 친화적인 정책결정으로 시장과 기업에 대한 여러 법적 규제가 완화되고 민간 주도의 금융 시장이 육성되었으며 여러 공기업들은 민영화되었다. 반면 사회적 복지 서비스의 질과 양은 축소되고 두터워지는 빈곤층을 벗어날 가능성은 갈수록 낮아져 가는 가운데, 경제적 양극화와 여론의 양극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각주:2] 한국의 언론들과 학계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질서 형성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들을 수행해 오고 있는데, 이들은 신자유주의적 질서와 그 영향력에 대해서 대체로 ‘부정적'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장세진(2000)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한국 학계의 이러한 반감과 비판적 성향이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에 대한 민족주의적 반감, 한국 지성인의 지성적 개입주의, 시카고 학파 신자유주의의 학문적 발전과 국가의 정책적 적용 사이의 시차와 왜곡 때문인 것으로 추측한다.[각주:3] 신자유주의에 대한 학계의 비판적 성향은 국내뿐 아니라 서구 학계 또한 마찬가지이다. 렘케(Lemke, 2002)는 서구 학계가 다양한 정치적·이론적 입장 차이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들의 대부분이 신자유주의를 단순히 대체되어야하거나 “교화(civilize)”되어져야 할 것들로 여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현실을 윤리적 측면에서 부정적·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기술적인 면에서의 긍정적인 것들, 즉 신자유주의적 현실을 가능하게 하는 통치의 기술들과 전략들에 대한 분석까지 놓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 연구에서 논의하려는 푸코의 통치성(governmentality)은 렘케가 염려하는 바로 그 지점, 신자유주의적 현실을 가능하게 하는 실제적인 통치의 기술들과 전략들, 그 주체화의 과정들을 조망하고 분석할 수 있는 이론 틀을 제공한다. 푸코는 권력은 악하고 자아들은 권력관계로부터 반드시 해방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들처럼 권력의 기술들과 전략들을 단순히 폐기하거나 전복시킴으로써 해방될 수 있다는 논리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에게 문제는 권력관계를 전복시키거나 완전히 투명한 의사소통의 유토피아로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아에 “규칙, 운영의 기술, 그리고 윤리, 에토스, 실천을 부여”함으로써 권력이 지배를 최소화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치와 자기의 기술들, 자아에의 윤리와 규칙들에 대한 분석들이 중요해진다(Foucault,1991/1994)

무엇보다 통치성 개념은 권력과 주체의 관계를 탐구함으로써 ‘정체성'이라는 문화연구의 주요 관심과 맞닿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통치성의 관점에서 신자유주의를 자신이 원하는 사회적 실재를 창조하려는 노력과 열망으로 이해할 때, 우리는 그러한 신자유주의적 현실을 믿고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그러함으로써 동시에 순응적으로)살아가는 신자유주의적 주체 형성의 과정과 기술들에 주목하게 되며 이렇게 생산된 주체의 정체성이라는 문제에 천착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통치하에 주체화된 개인의 정체성 구성과 그 정체성을 형성하고 구성하는 담론들의 경합과 협상의 양상은, 계속해서 개인을 통치하려하는 신자유주의의 열망과 노력들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를 드러내줄 것이다. 무엇보다 푸코 또한 개별화하는 권력, 개인을 배려함과 동시에 영구히 지배하고자 하는 사목(pastorship) 권력의 모체로서 초기 그리스도교에 주목했음을 기억할 때, 현 시대 한국적 개신교 선교단체의 개인을 향한 배려와 지배의 욕망, 즉 주체화의 열망과 노력이 신자유주의의 그것과 분명히 어떤 저항과 협상을 만들어 낼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물론 초기 그리스도교와 로마·그리스를 지배했던 기독교, 중세의 기독교와 수십 세기가 지난 현 개신교에 이르기까지 그 사목 권력적 속성의 정도와 양상은 분명히 달라졌을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푸코가 말했듯이, 교회의 인간에 대한 사목통치의 잔존과 변형과 활력은 역사 속에 계속해서 있어왔다(Foucault, 1991/1994, 68-69쪽). 그리고 이러한 주체화의 부딪힘과 조화 혹은 주체가 갖는 정체성의 어긋남과 조화가 이 연구의 근본적인 관심사이다. 

특히 신자유주의와 개신교의 관계를 탐구한 선행 연구들이 그것들의 제도나 체제, 담론 분석을 통해 신자유주의와 개신교를 그려나감에 주목해 볼 때, 개인들의 ‘정체성’에 관심을 갖는 것은 더욱 의미가 있다. 선행연구들은 신자유주의·개신교의 제도나 체제, 공적언술·텍스트를 연구대상으로 삼고 이에 담긴 정신적인 관념들과 그 특성들을 분석해내는데 집중하는데, 이는 그러한 연구대상들이 그러한 신자유주의적 실재, 신자유주의적 주체를 형성할 것으로 가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대중들은 수동적이며, “생산된 담론을 그대로 따르는 맹목적 행위자”로 여겨진다(전상진, 2008, 106쪽). 하지만 우리는 대중을 기만당하는 바보로, 대중문화를 단순히 정치·경제에 종속되는 것으로 여기는 시각들에 대해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문화연구적 관심과 문제제기를 따라 대중을 여러 이데올로기·담론들의 투쟁과 협상이 일어나는 장소로 본다면, 신자유주의적인 제도·체제·텍스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이 얼마만큼이나 획일적·일반적인 신자유주의 주체로 형성될 것인가 하는 것은 그리 단순하게 답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신자유주의적 주체의 정체성 구성에 주목하는 것은 개인 주체를 포함한 신자유주의적 실재를 지나치게 단순화 혹은 일반화하지 않고 더욱 복잡하고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묘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연다. 우리는 권력과 주체의 관계에 있어 권력만큼이나 주체의 문제에 대해서도 방점을 찍을 필요가 있다.

통치성의 시각에서 신자유주의적 실재와 주체를 생산하고자 하는 열망과 정치적 프로젝트는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개신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주류 개신교인들의 정치·경제·사회적 위상은 높아가는 한편, 개신교인의 상징적 위계서열은 2008년의 이명박 정부 수립과 “샘물교회 아프간 피랍사건” 이후 “개독교”라는 호칭과 함께 계속해서 바닥을 향해 내려가고 있다.[각주:4] 이들은 매스미디어·온라인 공론장에서 재현되는 “소망교회”, “샘물교회 피랍사건”, “이명박 장로 대통령”, “뉴라이트”등과 같은 개신교인으로 묶이지만, 실상 “개신교인”이라는 기표 안에는 신학적 진보와 보수가 혼재하며, 정치적 진보와 보수가 혼재한다. 또한 수많은 문화·정치·사회적·지역적 위치의 차이를 가진 너무 다른 개신교인들이 혼재해 있다. 

이 연구는 이렇게 현 시대에 재현되는 ‘개신교인’의 사회적 위치와 입장과 완전히 겹쳐지지 않는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정체성에 주목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통치의 주체화의 양상과 겹쳐보며, M이라는 ‘개신교 캠퍼스 선교단체’의 ‘청년’들의 정체성 구성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캠퍼스 선교단체’는 주로 대학생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삼고 전도, 양육, 훈련, 파송을 목적으로 삼는 초교파적 선교 단체를 일컬으며, ‘청년’들이라 함은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의 연령대를 지칭한다. 특히 M에 속한 개신교 청년들 중에서도, 대학을 졸업하려는 4학년들과 졸업하여 직장이나 대학원을 준비하는 졸업생들, 이제 갓 취업 혹은 진학하여 직장이나 대학원에 자리를 잡은 졸업생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이들은 지역교회(local church)와 같이 특정 교단에 속하지 않아 일정한 헌금과 재정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구성원 대부분이 청년들이기에 가진 경제력은 미비하다. 또한 아직 주목할 만한 사회경제적 위치를 갖고 있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주류 언론과 학계에서도 재현되어 본 적 없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비주류적 개신교인들의 정체성을 그려보며 ‘개신교인’이라는 시대적 재현에 입체감을 더해보는 것도 이 연구의 하나의 지향점이다. 무엇보다 연구자의 경험에 근거해볼 때, 이들은 직장이나 대학원과 같은 새로운 사회로의 편입 속에서 정체성의 혼돈과 갈등을 겪는 시기에 있다. 이렇게 신자유주의적 질서 안으로 새롭게 편입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개신교 선교단체 청년의 정체성의 구성은 어떠한지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가운데 일어나는 담론의 재배열과 경합·공모의 양상은 어떠하며, 개신교인으로서 잃어버리고 공모하는 정체성의 부분은 무엇인지 밝힘으로써 그 저항과 투쟁의 지점과 성과를 가늠하고자 한다. 이는 반대로 신자유주의적 통치의 노력과 그 주체화의 결과가 얼마나 성공적인지 드러내줄 것이다.

이 연구의 또 다른 주요 관심사인 신자유주의는, 푸코의 통치성(governmentality) 개념을 통해 그 스스로가 이미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회적 실재를 창조하고자 하는 일종의 정치적 프로젝트(political project)로 이해되었다. 이 연구는 그러한 사회적 실재를 만들기 위한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통치의 전략들과 테크놀로지들, 그에 따른 주체화의 과정들을 이론적 논의로 다루었다. 동시에 개신교 선교단체 M의 통치성에도 주목하며 개신교적·M단체적 주체를 만들기 위한 통치의 테크놀로지들을 분석하였다. 이 가운데 신자유주의와 개신교는 각각 고유의 정신적인 틀/사고양식을 다양한 방식으로 주체에게 침투시켜 주체화하고자 하는 정치적 합리성 혹은 이데올로기로 여겨졌다. 권력의 테크놀로지들뿐 아니라 자기의 테크놀로지에도 주목하였는데, 이는 M단체 청년들이 신자유주의적 통치 속에서 하나님과 자기의 관계를 중심으로 자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통솔하는지를 분석할 수 있도록 하였다.

대학을 졸업했거나 졸업을 준비하는 M단체 청년들의 정체성은 신자유주의와 M단체의 정치적 합리성·이데올로기가 경합하거나 공모하며 공존하는 장소로, 신자유주의적 주체화와 이에 대한 미학화, 혹은 자기 합리화가 일어나는 장소로 묘사되었다.[각주:5] 이러한 모습을 더욱 입체적으로 구성하고자 다중적이며 비본질적, 탈중심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포스트 모던적 정체성 개념을 받아들이고 신자유주의 시대, M단체의 청년들이 어떠한 담론들을 받아들이며 자신들의 균열된 정체성들을 봉합하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이 가운데 개신교적·M단체적 담론과 신자유주의적 담론이 경합하거나 절합되는 담론의 지형과 새로운 정체성의 구성을 그려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개신교 선교단체 M의 구성원 11명을 개별적으로 심층인터뷰하고 그 자료를 분석했다. 아래 이 인터뷰들을 분석한 본 석사 논문의 연구 결과를 짧게 요약하였다.  



신자유주의 시대, 개신교 주체의 정체성 균열과 그 봉합  

M단체 청년들은 자신이 ‘개신교인’이 된 것을 개신교 종교조직에 참여·활동하게 된 것으로 담론화하기보다 하나님과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관계로 만나게 된 것으로 담론화했는데, 이러한 하나님과 자기의 사적·인격적 관계는 신자유주의적 담론들을 접합시키거나 배제시키며 자기 삶을 운용하는 핵심적인 기제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과 자기의 사적 관계도 일정부분 M단체에 의해 매개되는 것은 M 또한 연구 참여자들을 향한 강한 통치와 주체화의 열망을 갖기 때문으로 보인다. M단체는 소그룹, 공동체 생활, 리더 훈련 과정과 같은 통치 테크놀로지들을 통해 이들을 개신교적 주체, M단체적 주체로 만들고자 했다. M단체 청년들은 이렇게 양성되는 M단체적 주체를 “모임 사람”이라 부르는데, “모임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하나님을 위한 삶’, ‘훈련되고 헌신된 제자’, ‘가족 공동체’와 같은 담론들이 구성하고 있었다. 먼저 M단체 사람들은 자신과 타자를 이해하는데 있어 자신들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으로 표상하고 타인들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으로 표상하며 ‘하나님을 위해’ 사는 자기를 더 높은 신앙적 위계에 두는 모습을 보였다. ‘하나님을 위한 삶’ 담론은 이후의 분석에서 신자유주의적 현실 가운데 연구 참여자들 스스로를 판단하고 운용하는 자기 윤리의 기준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M단체 사람들은 자신들을 ‘훈련되고 헌신된 제자’로 이해하는 반면 다른 선교단체들과 교회들은 ‘나약한 그리스도인’들로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고, 또한 자신들을 ‘가족 공동체’로 담론화하는 반면 타인들을 ‘이기적인 개인’으로 담론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은 신자유주의적 현실로의 진입을 준비하는 가운데 ‘가족 공동체’의 의미를 재고하고, M단체에 대한 ‘헌신’과 ‘순종’을 새롭게 담론화하고 있었다. 캠퍼스에서 M단체를 통해 자신의 삶 전반에 부여되던 담론의 망이 더 이상 자신이 나아갈 진로와 취업, 진학의 자리까지 포섭하지 못하는 것을 경험하는 가운데 M의 청년들은 대학 때와는 다르게 자기 정체성을 재정립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 가운데 생겨나는 M 청년들의 정체성의 균열과 담론의 어긋남은 신자유주의적 담론들의 개입과 새로운 접합의 가능성을 열어젖히는 것으로 보인다.

M단체와 캠퍼스라는 안정된 울타리를 벗어나 신자유주의적 통치의 열망 아래 사회로의 진입을 준비하거나 성취한 M단체 청년들은 무엇보다 자기 계발의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이들은 캠퍼스에서 M단체의 훈련과 활동에 진력하느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스펙과 전문성에 대한 자기 계발의 욕구를 드러냈다. 이 가운데 이들의 자기 계발은 인적 자본으로서의 자신의 투자 가치를 높이기 위함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부르심의 성취를 위한 훈련과 준비의 과정으로 합리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때 M단체 청년들의 정체성 구성에 중요한 담론으로 제시됐던 ‘하나님을 위한 삶’ 담론은 신자유주의적 ‘자기 계발’ 담론과 접합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형성되는 ‘하나님을 위한 자기 계발’의 담론은 M단체 청년들로 하여금 신자유주의적 현실 가운데 자기 정체성의 균열을 최소화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체제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들의 접합에도 불구하고 M단체 청년들은 신자유주의가 상정하는 경제적·합리적 자기를 탈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나님을 위해’, ‘가족 공동체’를 위해 자기 재정의 막대한 양을 헌금하는 이들의 모습은 신자유주의적 윤리에 비추어보아 비경제적·비합리적이었다. 또한 자신의 능력·스펙·투자 가치와 나아가고자 하는 진로·위치 사이의 간격을 합리적·경제적으로 계산·평가하면서도, 그렇게 계산된 막대한 비용과 현실적 제약을 감수하려는 비합리적·비경제적 자기의 모습을 보였다.   M단체 청년들이 신자유주의적 통치 속에서 스스로를 비경제적·비합리적 자기(self)로 미학화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다른 이들과 구분 짓고 신앙적 우월감을 부여해주는 ‘하나님을 위한 삶’이라는 담론의 덕분이기도 하지만, 종국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진로를 결정하고 재정을 사용한다면 그것이 비경제적·비합리적일지라도 하나님이 자기의 삶을 경영하고 책임질 것이라는 신뢰와 의존관계 때문이다. 즉 ‘하나님을 위한 삶’ 담론은 ‘하나님의 경영과 책임’ 담론과 접합하여 자신이 처한 신자유주의적 현실의 불확실성·위험에 대한 합리적 계산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불확실성과 위험을 감수하고 자기 진로와 삶 전반에 관련한 미래를 낙관하게 했다. 이 때 자기 삶을 온전히 스스로 책임지고 경영해야하던 신자유주의적 자기는 ‘최고 경영자’인 하나님의 경영을 받고 제한된 결정과 책임을 감당하는 ‘실무진’으로, 하나님에 대한 의존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신자유주의적 현실 속에서 자기 경영과 책임의 부담감과 외로움을 더는 자기로 미학화되었다. 즉, 자기의 실현과 경제적 이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지만 그 손해 가능성에 불안해하는 신자유주의적 자기로부터, ‘하나님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하나님이 경영하고 책임질 것’이기에 미래를 낙관하는 자기로 미학화되었다.



참고문헌

김현준(2008). 피에르 부르디외의 이론을 통한 종교의 이해: 한국 개신교장을 중심으로. 「서강 논집」, 제21집, 147-180쪽.

박상언(2008). 신자유주의와 종교의 불안한 동거-IMF 이후 개신교 자본주의화 현상을 중심으로-.「종교문화비평」,                             제13권60-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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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글은 본인의 2010년 석사논문, "신자유주의적 통치성과 개신교적 주체의 정체성 구성"을 이 공간에 맞게 요약, 재구성한 것이다. 부족하나마 연구의 배경이 되는 개인적인 역사와 사회적 배경을 함께 엮고자 하였으며, 앞으로 올릴 연재물의 간략한 소개로서, 연구의 기본적인 이론 틀과 연구대상, 연구 결과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기회로 삼았다. [본문으로]
  2. 2008년 조세 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빈곤율은 전반적으로 상승 추세를 보이고 근로자 가구의 10%는 아무리 일을 해도 빈곤층을 벗어날 길이 없다. 그리고 가처분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절대 빈곤 가구의 비율은 2001년 3.12%에서 2006년 7.41%로 높아졌다(이득재, 2009) [본문으로]
  3. 장세진(2000)은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주요한 이론가인 밀튼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주요 사상들을 검토하며 밀튼 프리드먼의 시장론, 화폐론, 국가론과 그것이 적용된 국가적, 정책적 신자유주의와 구분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또한 밀튼 프리드먼과 신자유주의가 그렇게 만만한 비판과 단순한 경멸의 대상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설파한다. [본문으로]
  4. 예를 들면, 박진규(2008)는 개신교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과 불신의 분위기가 고조된 사회적 맥락과 흐름이 일반화된 사례로서 TV다큐멘터리 「신의 길 인간의 길」 프로그램에 주목한다. 미디어의 종교비판이 이제 더 이상 저항적이거나 일탈적인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불만과 불신의 분위기가 고조된 사회적 맥락과 흐름 속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다른 국면”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기존 미디어의 종교 비판이 주로 종교 조직 내 모순이나 종교 지도자들의 윤리문제에 집중했던 것에 반해, TV다큐멘터리 「신의 길 인간의 길」 프로그램이 보다 근본적인 교리 및 신학적 쟁점 차원에서 비판적인 논리를 끌어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제작진이 생산한 종교담론의 내용이 저항적, 대안적이라기보다 사회 내 대중들의 정서를 확인, 반영한 것이라는 점은 그만큼 대중들의 개신교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것이며 “원론적인 것”임을 드러낸다. [본문으로]
  5. 푸코에게 미학화라는 말은 “자기 자신에 의한 자기의 변환”이라는 자기 주도성(initiative)을 뜻한다. 주체는 매 시대의 장치와 담론에 의해 권력의 ‘주체화’ 과정에 포섭됨과 동시에, 개인 자유에 따른 반응에 의해, 그리고 우발적인 ‘미학화’에 의해 형성된다. 벤느에 따르면 푸코가 분석했던 자기의 테크놀로지, 스토아주의, 수도사 생활, 청교도주의, 전투적 행동주의와 같은 생활 스타일과 인간유형들은 이러한 미학화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미학화의 개념은 주체화의 대척점에 있는 주체의 자주적 행동과 자발성을 강조하도록 도와주며, 개인 주체가 통치적 권력에 종속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창조적으로 통솔하고 주체화하는 모습에 대한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Venye, 2008/2009. 164-169쪽).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