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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에 대한 짧은 스케치


 

작성자: Francis

 

 



1. 들어가며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에서 정의(Justice)를 배제한다면 왕국과 강도 집단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국가와 강도집단은 동일하게 무력을 씁니다. 그러나 국가의 이 무력(공권력) 사용이 정당화 되는 것은 바로 정의를 수호하며, 정의에 따라 그 공권력을 사용할 때 국가는 강도집단과 구별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사법부를 표시할 때 ‘JUSTICE’를 붙여 표기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정의는 법의 이념적 차원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으면서 법보다 더 넓으며 강한 도덕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상술하면, 정의는 객관적으로는 법의 내용이 옳음을 뜻하고, 주관적으로는 한 인격의 공정성을 뜻하기도 합니다. 아래에서는 정의에 대하여 개략적인 스케치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스케치는 몇 권의 책을 경유하며 간추리는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인데, 주로 철학자인 오트프리트 회폐(Otfried Höffe)<정의(Gerechtugkeit)>를 간략하게 살펴봄으로써 혼탁한 시대의 뜨거운 감정으로서의 정의가 아니라, 인류가 지향하는 이상향으로서 정의의 그 내용을 스케치해보려고 합니다. 스케치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그럼 함께 그림여행을 떠나 보시겠습니다.

 

2. 정의에 대한 역사적 고찰

 

정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인간 사회집단에서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이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마아트(Ma’at)라는 진리, 정의, , 질서, 지혜, 합법성, 정직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개인, 사회, 국가뿐만이 아니라 신의 세계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체닥, 체다카라는 단어가 포괄적이며 변경할 수 없는 삶의 질서들로서 이 단어들은 성서에서 정의로 번역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의로 표현된 성서의 표현은 믿는 이의 온전한 실존을 형성하는 모든 것, 즉 평화, 해방, 속죄, 은총, 구원을 포괄하고 있기에 엄격한 정의의 개념을 넘어섭니다. 그리고 그리스 철학이 나타나기 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서 정의는 법과 정의가 통합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제우스 시대 이후에 비로소 질서가 갖추어 지게 됩니다. 이 질서는 제우스의 세 딸에 의해 가능해졌는데, 디케는 도덕, , 재판을 주관하고, 에이레네는 경제적, 문화적 번영과 평화, 에우노미아는 법의 공정한 질서를 담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흐름은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정의는 비로소 구체화되게 됩니다. 플라톤은 정의를 절제, 용기, 지혜와 더불어 네 가지 덕 중 하나로 보았습니다. 정의는 절제, 용기, 지혜가 대응하는 감각적 욕구, 의지, 이성이라는 영혼의 세 가지 기본 능력에 질서를 부여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정의는 개인이나 사회 또는 국가에서 각자에게 각자의 것을 나누어 주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런 사상은 <국가> 편의 정치적 철인통치를 가장 뛰어나고, 가장 의롭고 동시에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장 왕답게 생각하며, 자기 자신을 왕답게 지배하는 자이다.” 라는 문구에서 밝게 빛납니다. 철인통치는 단순히 자기 밖에 있는 사람에 대한 지배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철인으로 통치하는 자입니다.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통제하는 사람이 남을 부당하게 대우할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의관념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야 정교해집니다. 그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정의를 정의 자체와 제도 안에서의 정의로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합니다. 정의 자체는 보편적 정의와 특수한 정의, 특수한 정의는 다시 분배적 정의(명예, , 자기보존)와 질서, 교환으로, 그리고 질서와 교환은 시민법적인 교환적 정의와 형법적인 시정적 정의로 나뉘게 됩니다. 그리고 제도 안의 정의는 비정치적 정의(가정 공동체)와 정치적 정의로 나뉘며, 정치적 정의는 성문화된 정의(실정법)와 자연적 정의(자연법)로 나뉘게 됩니다.

 

3. 정의의 적용요건들

 

앞에서 정의의 역사적 흐름을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정의란 무엇인지 그 개념을 규정해야 합니다. 개념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정의를 요구하는가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찾아가는 작업입니다. 전자의 질문은 서술적 적용조건이며, 후자의 답 부분은 서술적 적용조건에 대해 척도를 제시하는 규준적인 요소들입니다.

정의의 적용조건들로서는 궁핍이나 갈등에서 필요하며, 정의를 행할 수 있는 행위능력을 가진 이들에게 가능합니다. 또한 정의는 실행할 책임이 있는 사회적 도덕이어야 하며, 덕으로서 정의로 성립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정의는 인간다운 집단 생활에 대한 최고의 요구이며, 사회를 정당화하는 최종근거로서 도덕적이며 보편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정의의 규준은 규칙이나 제도는 집단과 개인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상호성이 핵심입니다. 하지만 이런 정의에 대하여 법의 분야에서는 정의라는 진리가 법을 만들지 않고 권위가 법률을 만든다는 홉스, 켈젠. 하트등의 법실증주의의 도전, 도덕은 잃어버린 범형이 되었으며, 법적 사회의 분화된 복합성을 법에 반영하는 적절한 복합성이라는 니클라스 루만에 의한 체계 이론적 회의가 있습니다. 또한 정의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효용성 중심의 공리주의 윤리학등의 거센 도전이 있기도 합니다.

 

4. 정치에서의 정의

 

정의가 정치의 영역에서 근거를 갖는 것은 모든 지배를 부당하게 여기는 아나키즘과 임의적인 지배를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는 협소한 법실증주의 또는 국가 실증주의를 극복하는 지점에서 정치적 정의로서 의미를 갖습니다. 이 모델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의를 합법화하려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이어진 협동모형과 계약이론인 갈등모형으로서 두 가지 논증입니다. 전자는 인간을 협동적 모델로 보면서 법과 국가를 합법화하는 정의를 협동이란 상호성을 법과 불법의 공동체와 결부시킵니다. 후자인 계약 모델은 국가는 시민들의 안정을 위한 제도로 보조적인 위치에만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이 두 모델과 다른 모델이 현대 있어서 나타나는 데 롤즈의 공정으로서의 정의라는 사회재화의 분배과정으로서 정의입니다.


5. 사회정의


사회정의라는 말은 그 역사가 깊지는 않습니다. 사회정의는 이탈리아에서 시작하여 프랑스, 독일이 사용하였고, 피우스 11세 회칙에 의해 가톨릭이 그리고 에밀 브루너가 1943년 출판한 <정의>에서 사용함으로써 기독교 사회 윤리분야에서 비로소 사회정의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논쟁은 프리드리히 폰 하이예크의 1976년 책인 <사회 정의의 환상>에서 과도한 사회복지에 반대하면서 최소국가를 주장함으로써 철학적 작업에 불을 질렀습니다.

사회정의에서 사회는 사회적인 것은 중요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18세기와 19세기 등장한 근대산업국가의 한계에 의한 사회 문제, 즉 실업과 질병, 교육, 빈곤, 의료의 문제와 증대하는 도시 노동자의 문제에 답하기 위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사회정의는 교환, 보상, 세대 간의 문제로 구체화 되지만, 연대성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연대성이란 더 이상 갚을 의무가 없는 정의와 자발적인 인간사랑 사이에서 규범적인 중간 위치를 차지합니다. 본래 로마법에서 연대성(Obligatio in solidum)은 공동체의 책임을 뜻합니다. 영화 삼총사를 보면 “All for One, One for All”이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이 대사가 연대성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한 명을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한 명는 가족공동체처럼 서로가 돕는 걸 의미합니다. 18세기 말 이후에 연대성의 개념은 확장되지만, 상호 책임이나 상호 의무라는 핵심 개념은 유지가 됩니다. 이와 같은 책임과 의무는 위험과 절박한 상황에서 형제자매처럼 자발적이지 않거나 또는 탐험대의 구성원처럼 자유로운 선택이나 자연 재해 같은 우연한 운명에 의해 긴밀히 서로 연결된 집단들 안에서 성립합니다.

하지만 모든 위급한 상황에서 연대성이 문제되는 건 아닙니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위급한 상황에 대한 공동책임이 있는 사람은 정의에 근거해서 도움을 주어야 하며, 위급한 상황에 순전히 자신의 책임으로 위급한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인간 사랑의 계명에 의해서입니다. 따라서 연대성은 이 둘을 제외한 영역에서 문제가 되는데,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 협동적 연대성은 사회보장의 차원에서 질병, 사고, 실업 등 모두에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이 예견된 경우입니다. 둘째 적대적 연대성으로 이는 적을 물리치거나, 경쟁적 집단에 대항하여 집단의 이득을 추구하는 경우입니다. 마지막으로 우연적 연대성은 자연 재해처럼 예견 할 수 없었던 집단적 불행을 극복하기 위한 연대입니다.

 

6. 나오면서

 

토마스 아퀴나스, 폴 틸리히, 에릭 홉스봄은 사랑은 무엇인가?’라고 물을 때 사랑은 분리된 것의 결합이라고 말합니다. 정의가 사회정의까지 발전했을 때, 연대성의 개념을 핵심적 가치로 지니고 있다면, 사회정의는 사랑의 발현형태로 보아도 무방할 겁니다. 그리스도인이 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도 그것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된 자신이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분리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걸 의미합니다. 정의가 분배, 시정, 처벌적 정의로 이루어지며, 사회문제에서 연대성으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는 정의를 통해 갈라진 개인이, 갈라진 사회가 다시 정상적인 상태로 통합을 유지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정의는 사회적 차원에서의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간략하게나마 정의에 대하여 스케치를 해 보았습니다. 이 스케치를 바탕으로 해서 수채화이던, 정물화이던, 또는 디자인이던 자신이 바라는 자신의 모습과 이웃의 모습 즉 사회의 모습을 채워가는 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소망의 몫일 겁니다. 그 소망이 안녕이던, 평안이던, 평화이던, 그리스도인에게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사랑은 단순한 심리적인 측은지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정의와 함께 하는 사랑을 통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사회적 차원에서 증거되며, “사랑과 함께 하는 정의로서 협소한 정치적 차원의 미사여구의 문제가 아닌 삶의 모든 여건과 사람들을 위한 근본으로 정의가 가능해집니다. 이 순간은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는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추는(시편 85:10)” 순간이겠지요. 그리고 이는 단순한 측은지심에 머무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이신칭의라는 그리스도인의 첫 출발점인 미숙한 분량에 머무는 게 아니라, 이신칭의를 넘어, 거룩함에 이르는 성화로, 거룩함에 머무는 성화를 넘어 영광에 이르는 영화로,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되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이르게 되겠지요.

여러분이 이어서 그려갈 그림을 기대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소망은 단순히 미래를 바라보는 꿈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 되어질 자신의 미래에서 현재를 끊임없이 구성해 나가는 믿음의 모험이기 때문입니다. 그 그림을 응원합니다.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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