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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s amantes" by Oswaldo Guayasamin


공공연한 논쟁을 회피한 인간은 개인적 미덕이라는 피난처에 도달한다. 그는 도둑질하지 않고,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힘을 다해 선을 행한다. 하지만 공공성을 임의로 포기한 그는 자신을 갈등에서 보호해주는 한계선을 정확하게 지킬 줄 안다. 따라서 그는 자기 주위에서 일어나는 불의 앞에서 눈과 귀를 닫을 수밖에 없다. 세상 안의 책임적 행동 때문에 자신의 개인적인 순수성이 더럽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는 반드시 자기기만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비록 그가 온갖 일을 행하더라도, 자신이 행하지 않은 일 때문에 평안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러한 불안 때문에 파멸하거나, 가장 위선적인 바리새인이 될 것이다.”

- 본회퍼의 윤리학 중 -

 

추운 겨울 다들 평안히 지내고 계신지요? 2013년은 많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국정원과 군인의 선거개입인 관권부정선거, 각종 소비물가의 상승, 철도민영화문제, 그리고 201312월 대학가를 강타한 안녕들 하십니까?’등 삶의 자리는 갈수록 팍팍해지고, 서로 도움을 주기보다 자기 몫 하나 더 챙기기 위해, 남의 몫 빼앗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야 말로 본능에 충실한 동물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고, 불안이 삶의 환경을 둘러쌀 때 인간은 얼마나 나약해지며, 주저앉으며, 자신이 믿었던 자신의 모습을 재빠르게 버리고 현실의 부정의한 요구와 타협하며 그것에 길들여져 살 수 있는지 체감한 한 해였습니다. 또한 정치는 실종되고, 통치가 대신하고, 원칙은 강조하되, 원칙의 내용은 없는 일인 치하의 자의적 시대에 접어든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정의가 실종된 시대였습니다.


비평루트 제 7호는 실종된 정의(Justice, 正義)를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단순히 거대한 정치담론으로서의 정의가 아니라, 사회와 일상생활 곳곳에 스며든 삶의 형태로서 정의를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때로는 부정의를 통해 정의를 찾아보려고 했고, 때로는 정의 자체가 무엇인지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정의가 무엇인지 합의하기는 어렵고, 그 실체를 확정하기에는 여전히 많은 의견이 존재하지만, 정의의 뚜렷한 기능은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알려주는 행위규범의 역할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정의는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짓, 즉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바로 그 무엇을 지칭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평루트는 제 7호는 정의에 대한 탐색을 통해 정의의 실루엣을 조심스럽게 그려보았습니다. 이 실루엣이 혼탁한 이성에, 일상에 스며든 욕망에, 다시 사람다움을 불어 넣어줄 수 있는 청량한 한 호흡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의의 완성은 단순한 부정의의 교정이기 보다, 정의를 통한 사람의 아름다움의 회복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강성호 필진은 유신과 함께 온 그리스도의 계절: 박정희와 김준곤을 통해서 CCC의 창시자인 김준곤 목사가 순수하게 복음에만 헌신했다는 신화를 여러 사료를 통해서 해체합니다. 김준곤 목사가 복음의 전파에 기여한 몫도 있겠지만, 저의 그늘도 있을 터인데, 그 그늘을 시대적 상황, 박정희와의 관계를 통해서 소개함으로써 개인에 대한 신화화에 따른 맹목적 숭배를 경계하고, 저 그늘에 대해서 지금도 열매를 먹고 있는 우리에게 빛과 그늘의 경계에 대해 숙고하도록 하며, 다시 신앙의 순수성으로 포장되어 있는 것에 들어있는 불순물은 무엇인지 되돌아보도록 촉구 합니다. 그리고 그 순수성 뒤에 가려진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보게 합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순수성이란 무엇인지 하는 물음 앞에 우리를 불러 세웁니다. 성경의 말씀처럼 감춰진 것은 드러납니다. 읽으면서 내내 부끄러움이 가득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본문을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김승수 필진은 지난 9월에 발간된 비평루트의 신자유주의 시대 어느 개신교 청년의 회심과 정체성에 대한 단상의 후속 연재글로서 갑질의 기원: 푸코의 통치성이론에 기대서서라는 글에서 푸코의 통치성 개념을 통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석을 제시합니다. 이전까지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의는 허위나 실재의 양 극단 사이에 있었지만, 푸코는 신자유주의를 정치 프로젝트로 이해함으로써, 신자유주의를 형성하고 통치해 내는 범위를 탐색 가능하게 합니다. 이 탐색은 당연히 미시부터 거시까지의 권력을 분석을 가로지르며 이루어집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본문을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마르셀 필진은 동물화하는 반봉건사회를 통해서 87년을 모두가 공유한 하나의 체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회집단의 인식에 대하여 물음을 던집니다. 87년 이후 근대세계는 언어를 공유하고, 언어사용과 그 결과를 준수하는 언어가 만들어낸 상징계입니다. 그러나 윤창중 사건과 같이 확립된 이 언어세계는 부도덕한 언어 사용과 거짓말이라는 탈주를 통해 이 세계의 체재는 침탈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김기춘의 청와대행, 용산사건의 김석기의 공기업 사장 임명을 통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즉 한국사회는 97년 체제라는 민주주의와 도덕을 고수하는 사람들과 이를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글쓴이는 계속하여 5월 광주, 노빠현상, 일베현상등을 통해서 절반의 근대와 절반의 봉건 그리고 동물화하는 반봉건사회 테제를 풀어갑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본문을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먹보에_술꾼 필진은 기독교 세계관 담론에서 세계관의 문제라는 글을 통해서 세계관이 갖는 근본적인 문제인 범주화의 문제를 짚어 냅니다. 그리고 현재 논의되는 기독교 세계관은 진정한 기독교세계관이 아닌 칼뱅주의세계관이란 주장을 펼칩니다. 그리고 이 정당성의 확인 없이 바로 이 토대 위에서 문화전쟁‘, ’영적전쟁등으로 사탄의 도전을 끊임없이 만들어냅니다. 본래 강력한 적이 등장하면 내부의 이성적 논의를 무디어지고, 집단적 광기에 휩싸이기 쉽듯이, 기독교 세계관은 필연적으로 현대의 학문적 소산을 무시하면서 이념적 범주화작업으로서만 속이 텅 빈 슬로건만을 재생산합니다. 따라서 이 주술은 신자의 삶에서 구체적인 문제가 발생 했을 시 아무런 답도 주지 못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도움도 주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가기 위한 기독교 세계관이 오히려 그 열매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모순을 불러일으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본문을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최경환 필진은 우리는 어디에서 타자의 목소리를 듣는가?: 본회퍼와 대항공론장이라는 글에서 본회퍼의 기독교 윤리를 소개합니다. 윤리는 사회적 통념에 기댄 옳고 그름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시이며 이며 그리스도에게서 나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로서 예수의 삶은 타자를 위해 책임을 지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 핵심 개념을 대리적 행동으로 제시합니다. 또한 본회퍼의 윤리학 과제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도록 하는 것이며, 글쓴이는 이 논의를 현대 정치의 차원에서 하버마스의 공론장개념과 연관 짓고 이에 비판적인 프레이저의 서발턴 대항공론장개념을 들어 설명합니다. 결론은 다시 교회를 이야기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본문을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Francis 필진은 정의에 대한 짧은 스케치를 통해서 오트프리트 회폐의 <정의>라는 책을 통해 정의(Justice)에 대한 흐름을 간추려줍니다. 정의는 하나로 고정할 수는 없는 개념이지만, 고정되지 않았다고 부정될 수 있는 개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역사적 사실로서 몇 천년을 이어온 개념이자 이념이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에서 정의(Justice)를 배제한다면 왕국과 강도 집단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라는 그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정의는 정치의 영역에서부터 법의 영역까지 그리고 하나님의 정의라는, ‘체테카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정의는 사회가 있는 곳이라면 사회를 참여하는 모든 자들과 제도, 원칙 그리고 사회 자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념입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제시했듯이 참으로 모호한 개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회폐의 입을 빌려 정의의 역사적 고찰, 적용요건들, 정치에서의 정의, 사회정의등을 살펴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본문을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비평루트 제 7호가 여러분께 보내는 안부의 편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통과 어려움이 한 층 더 우리의 삶과 영혼을 얽어 맨 한 해이고, 2014년도 낙관적인 기대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의 희망을 놓아 버릴 수 없는 건, 하늘에서 오는 그 분의 희망이 바로 여러분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비평루트에게, 비평루트를 함께 읽으며 만들어가는 여러분들이란 이런 의미입니다. 시 한편 선물함으로 2013년을 마무리하고, 2014년을 열어가려고 합니다.

 


참 좋은 당신”, 김용택

 

어느 봄 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속에서 사랑의 불가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

 

매서운 겨울에도 봄은 옵니다 

봄처럼 참 좋은 당신에게

2013년 12월 31일 화요일

편집장 오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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