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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김승수

빅 브라더의 은밀한 고민 : 자유주의, ‘사회’를 통한 ‘국가’의 통치적 열망

*이 글은 2013년 9월 비평루트 재발간호에 실었던 “신자유주의 시대, 어느 개신교 청년의 회심과 정체성에 대한 단상”의 후속 연재의 세 번째 글입니다. 현재 연재되고 있는 논문의 핵심적인 이론 틀인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의 세 꼭지 중 두 번째 꼭지인 “자유주의, ‘사회’를 통한 ‘국가’의 통치적 열망”을 이 지면에 맞게 요약/정리하였습니다. ‘자연(nature)’만큼이나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것으로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라는 개념이 실은 어떻게 자유주의적 통치의 대상이자 필연적인 결과물로서 고안되었는지를 이 글에서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한편 그 사회 안에 살아가는 개인 구성원들의 ‘자유의 실천’이 어떻게 통치를 위한 핵심적인 윤리이자 통치의 기술/조건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지를, 푸코와 통치성 학파의 자유주의에 대한 분석을 찬찬히 참조하며 살펴보고자 합니다. ‘자유’와 ‘사회’를 고안해낸 자유주의적 통치성 초기의 모습을 이 글에서 지켜보시고, 다음 호에 소개될 ‘신자유주의적 통치성’ 아래에서 ‘사회’와 ‘자유의 실천’이 왜 그리고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비교해보신다면 조금 더 재미있는 글 읽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지금 우리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시민사회와 개인 자유의 쇠퇴’가 단순한 특정 정당 집권의 문제를 넘어 더욱 지난한 역사를 두고 성공적으로 진행되어온 정치경제적 프로젝트 아래서 빚어져온 문제임을 느끼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 시작하겠습니다.   

 

 

고전적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푸코에게 자유주의란 어떠한 시대적 기간이나 개인 자유에 대한 법철학, 정치경제적 체제나 이론, 정부에 의해 채택된 특정 정책이 아니다. 자유주의는 그 스스로가 통치적 실천이나 본질적인 이념으로 이해된다기보다는 16세기를 전후하여 서유럽에서 형성된 절대주의 국가의 국가이성(the reason of state)과 행정관리(police)에 대한 비판을 반복하고, 이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불안한 에토스로 이해된다. 푸코의 관점에서, 자유주의는 “통치의 에토스(ethos)”(Barry, Osborne and Rose), “통치의 특성(character-trait)”, “기술적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통치적 열망(a kind of anxiety-made-technical)” 같은 것이다(Osborne).[각주:1]


초기 자유주의가 의문을 품었던 국가 이성이란, 기존 국가의 권력 행사를 합리화해주던 추상적이고 선험적인 기독교 교리와 전통과 단절하고, 신이 있던 자리를 국가가 차지하고자, 국가 그 자체의 재 강화를 위해 추구되는 과학, 지식, 권력형식을 말한다(Foucault)국가이성은 국가가 자신의 부와 강함을 증대시키기 위해 국가 자신의 이해에 맞게 실재를 형성하거나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한다. 또한 국가가 통치하기 위해 통치되어져야 하는 대상에 대한 적절하고 구제적인 지식, 국가 자신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다고 가정한다. 자유주의는 위와 같은 가정들에 대해 회의적인데, 이러한 국가 이성에 대한 회의와 거부는 ‘누가, 왜,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문제화한다. 국가의 기능과 능력의 범위가 새롭게 질문되고 경제적 삶의 세계로서의 시장, 더 넓게는 시민 사회와 그 사회를 이루는 개인들의 자유의 실천이 문제화된다.


버첼(Burchell)은 앵글로-스코티쉬 학파(Anglo-Scottish school)를 중심으로 이러한 초기 자유주의적 사고의 변화를 설명한다. 앵글로-스코티쉬 학파는 시장을 내재적으로 역동적인, 자연과 유사한 자기 규제의 논리를 가진 영역으로 여겼다. 이 때, 국가는 시장이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기능할 수 있는 필요한 조건들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부여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국가의 지나친 개입은 경제적으로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도리어 국가가 덜 통치함으로써 더 이득을 얻고 부유해진다는 신념과 함께 시장의 자유가 강조되었다. 이러한 초기 자유주의적 사고에서, 통치되는 개인은 이미 ‘합리적’이고, 이익을 얻기 위해 동기 부여된 ‘경제적 자아’임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생물학적 인구’의 일부분이며 ‘사회’의 구성원이다.[각주:2] 그러므로 초기 자유주의에서 올바른 통치는, 사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동기 부여된 자유로운 개인들의 합리성을 보장할 수 있는 ‘통치 행위의 합리성’을 안정시키는 것을 의미하였다. 자유로운 개인행동을 경제적이고 합리적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자유주의가 국가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시장이 최적으로 기능하게 해주는 전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국가, 자유주의를 캐스팅 하다

국가 이성을 거부하고 자율적·합리적인 개인과 시장들을 전제하는 자유주의적 통치는 스스로 자신의 지배 활동에 대한 계속적인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군주의 지배적 통치를 줄임으로써 더욱 통치를 잘 할 수 있으리라는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제기된다. 정치적 군주제는 통치해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유사 자연적 실재인 시장·사회와 어떤 관계를 성립해야 하는가? 어떠한 기술들, 과정들, 규제들과 법들이 이 실재(시장 혹은/그리고 사회)가 그 자연스러운 본성을 잃지 않으면서 복지의 증진과 부의 생산에 있어 최적의 효과를 만들어내도록 하는가? 더 직접적으로, 통치 권력은 어떻게 국가의 개입으로부터 사회의 자율성을 보존하면서 통치할 것인가? 즉 자유주의적 통치가 원하는 사회·시장의 자율화를 위해 중앙집권적·군주제적 통치를 줄이면서도 그로 인해 더욱 자유로워지는 개인들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이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시장과 사회 가운데 자유로운 개인들을 어떻게 통치에 합당한 경제적·합리적·윤리적 개인들이 되도록 할 것인가? 이렇듯 자유주의적 통치의 문제의식 속에서, 개인 주체의 자유의 실천은 윤리의 문제와 맞닿는다. 지배 권력의 입장에서 통치의 대상인 개인들의 자유는 윤리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즉 ‘통치에 적합하게’ 실천되어야 한다. 푸코가 지적하듯이 “자유의 실천, 사려 깊고 신중한 자유의 실천”이야말로 윤리의 문제가 된다(Foucault).[각주:3] 이러한 의미에서 자유주의적 통치는 ‘자유’를 개인들의 주체화에서 핵심적인 윤리이자 통치 기술이자 조건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



푸코의 관심은 이러한 자유의 성질에 대한 분석과 통치에 대한 분석을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자유주의적 통치의 관심은 자유로운 사회(자유가 형성되는 범위) 안에서, 자유를 가로막지 않으면서 통치할 수 있는 조건들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궁극적으로 자유를 창출할 수 있는 통치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적 의미에서, 자유는 무정부주의적인 방종과 동등하게 여겨져서는 안 되고 일종의 잘 규제된 ‘책임 있는’ 자유로 여겨져야 한다. 푸코에 의하면 자유는 이런 식으로 아예 허위로 여겨지는 이데올로기도 아니, 본질적으로 여겨지는 존재의 존재론적 특징도 아니다. 자유는 “통치의 공식”(Barry, Osborne and Rose) 혹은 “합리적 통치의 기술적 조건”(Burchell)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유주의를 통치의 부재나 행동방식의 통솔에 대한 정치적 관심이 줄어드는 것으로 보는 것은 그 통치성의 특징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자들이 주의 깊고 섬세하게, 겸손하게 그러한 의미에서 경제적으로 통치해야 함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Osborne).




‘사회’의 발명

자유주의가 더욱 세심하고 경제적인 통치의 재편성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국가와 시민사회의 가정된 분리는 통치의 특정한 ‘문제화의 결과’이지, 통치의 철수가 아니다(Barry, Osborne and Rose ; Rose; 서동진). 사실상, ‘사회’는 통치적 합리성의 변화로 요구된 산물이며, ‘사회’라는 개념이 고안되고 실재가 되어가는 것이야말로 자유주의적 통치성의 결과이다. ‘자유주의’와 ‘사회’의 역사적 부상과의 관계는 자유주의를 그 이전의 정치적 합리성인 ‘폴리스(police)’와 대조할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폴리스(police)’는 16세기 전후 서유럽에서 형성된 국가 이성의 실현 장치로서, 국가와 그 부를 최대화하려는 중앙집권화 된 정치·행정 권력이 개입할 수 있도록 인간의 삶 전체, 즉 인구를 행정·관리하고 “전체화(totalization)”함과 동시에 “개인화(individualization)”하고자 하였다(Foucault). 인구를 전체화함과 동시에 개인화한다는 것은 통치하기 위해 추구되는 합리성의 형식이 통치 대상의 자질구레하고 세부적인 것들에까지 내려오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주의는 이러한 통치가 변화되는 곳에서 부상한다. 통치를 위해 존재의 세부적인 것까지 관리하고 돌보는 것이 도리어 통치를 어렵게 하는, 즉 너무 지나치게 통치함으로써 그들이 원하는 것과 전혀 반대의 결과를 일으키는 것이 명확해지는 그 순간 고안되는 것이, 바로 ‘사회’의 개념이다. 통치는 영토와 주체들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자율적인 법칙과 역동성을 가진 복잡한 현실을 다루어야 한다. 이 새로운 현실이 바로 ‘사회’이다. 이렇게 자유주의적 통치의 핵심적 가정이자 문제화의 결과인 사회(시민사회) 대 국가의 이분법이 형성된다. 이제 국가는 통치하는 모든 인구들과 그 안의 모든 현실들을 파악하고 규제하려하지 않고, 이들 스스로 생산하고 소비하며 이를 통해 생존하는 인구들의 삶, 즉 사회를 상대하게 된다.


신(neo)-자유주의(liberalism)로의 선회: 복지주의의 등장과 쇠퇴

19세기 초반, 이렇게 사회를 상정하고, 사회와 개인들의 자유를 창조하며 지배 권력의 직접적인 개입과 간섭을 자제하던 자유주의적 통치는 여러 사회문제를 맞닥뜨려야만 했다. 당시 지배 권력은 중앙집권적 통치를 감소시키며 시장과 시민 사회의 자율성과 그로 인한 경제적 효과들을 기대했지만, 도리어 고용의 불확실성과 노동 여건의 열악함이 심화되는 가운데 사회적 불만과 자살률, 범죄율이 높아져 갔다. 19세기 중반부터 자유주의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응해 통치를 변형시키는데, 로즈와 밀러(Rose and Miller)는 이렇게 변화된 정치적 합리성을 “복지주의(welfarism)”라고 명명한다. 이것이 고전적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 로즈의 표현대로라면 발전된 자유주의(advanced liberalism)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지배의 한 형식일 것이다. 정치적 합리성으로서 복지주의는 ‘사회적 위험(social risk)’과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 간의 상호의존성을 증진시키면서 국가의 성장과 안녕(well being)을 강화함으로써 사회적 지배를 이루려 하였다. 이 가운데 ‘복지’는 지배의 실질적인 합리성이 된다. 복지국가는 높은 수준의 고용, 사회 안보, 건강과 주거의 문제 등을 경제에 대한 국가적 계획과 개입을 통해, 그리고 관료적 기구들을 통해 구축하려 했다. 이 가운데 전문가의 역할은 필수적이었다. 전문가는 다양한 사회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부상했으며, 통치성의 핵심적 구성요소인 통치와 지식 사이에는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다.


이전의 통치가 영토, 자원, 인구, 도시 등을 측정하는 ‘통계학(국가를 기술하는 것)’으로서의 지식을 통치기예와 결합시켰다면, 이제 전문가들의 구체적 분석으로부터 얻어낸, 자연적 대상으로서의 “사회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통치기예와 결합하게 된다(Foucault). 변화된 자유주의적 전략은 통치를 사회·인문과학에서 발전된 '인간 행동에 대한 실증적 지식'에 결합시킨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지식을 생산하고 담지하고 유통하는 중요한 위치로 부상한다. 지배 권력은 그 스스로 개인적 행동의 규범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들에게 권력을 부여한다. 그들에게 사회적 지배의 전략을 세우는 전문가로서 행동할 권위를 주면서 말이다. 이 가운데 자율적인 전문가들의 권력은 지배 권력과 자연스럽게 조화된다. 전문가들의 실천이 전문직화와 관료화를 통해, 국가에 의한 다양한 종류의 허가제(license)를 통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복지주의·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여러 비판들이 부상하였다. 복지 서비스의 실질적인 수혜자들은 빈곤층이 아닌 중산층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관료기구들의 부패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적 이득에 대한 지나친 조세와 규제 그리고 공적 서비스의 지출의 지나친 증가로 국가의 생산성이 낮아진다는 비판이 대두되었고, 실제로 국가의 재정적 위기가 도래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즘과 같은 역사적 현실은 복지 국가의 지나친 통제와 개입이 전제 국가로 변질될 가능성을 농후하게 보여주면서 반자유주의적 전략들과 정책들의 수정이 불가피해지고 말았다(Rose).


*다음 호에서는, 복지주의의 패해와 실패를 지적하며 새롭게 부상했던 독일의 질서자유주의와 미국 시카고학파의 신자유주의에서 발견되는 자유주의적 통치성의 변형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적 통치성(neo-liberal governmentality)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글의 처음에서 밝혔듯이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 변형시켜온 ‘사회’와 개인 ‘자유의 실천’에 주목하신다면 현재 우리의 ‘시민사회와 개인 자유의 쇠퇴’에 대한 또 다른 통찰을 엿볼 수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1. 특히 로즈(Nicolas Rose)는 자유주의가 특정한 정치적 형식이나 본질이 아닌 일련의 집단적 유사성, 즉 권력의 한계와 본성을 둘러싼 느슨하게 묶여진 문제화 방식이며 다른 이들의 행동 방식의 통솔을 추구하고 사고하려는 기술들의 집합이므로 ‘liberalism’으로부터 ‘-ism’을 빼는 것이 적절하다고 지적한다(Osborne). [본문으로]
  2. 이들이 생각했던 “인구란 서로 다른 개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나의 전체처럼 다룰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모두가 하나의 행위의 동인(mainspring), 즉 ‘욕망(desire)’을 통해 움직인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구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규제나 명력이 아닌 바로 이런 욕망의 법칙, 즉 정치 경제학이 상대하는 경제적 인간, 이를 표현하는 다른 이름일 욕망을 쫓으며 살아가는 개별적이면서도 또한 전체인 인구=시민, 바로 그들이 가진 자유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서동진) [본문으로]
  3. 이러한 이유로, 자유주의에서는 자유의 실천으로서의 한 형식인 자기-규제, 자기-책임이라는 윤리적 담론이 형성된다(Osborne)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