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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개신교 내 공공성 담론 일반 비판

*제3회 카이로스 포럼(2014.8.2) 공공의 적, 공공의 신: 한국개신교는 공적 영역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발표문 광장에 선 호모포비아?: 후기 세속사회 공론장에서의 공공성 투쟁”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고 재편집하여 싣습니다.  

  ‘공공성’과 종교에 관계에 대한 기존 담론들은 정교분리 원칙을 근거로  - ‘정교분리의 원칙’을 대개 잘못 해석하고 적용한 것이지만 - 종교의 정치·사회참여를 무조건 반대하는 경향을 보이거나공공성에 대한 규범적 탐구를 중심으로 종교의 정치·사회참여를 정당화했다. 특히 기독교의 사회참여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측에서는 신앙의 사회적 측면을 간과하고 신앙을 사적인 영역에 가두는 ‘근본주의’적 신앙을 비판하면서 사회문제에 참여하고 개입하는 그 자체를 긍정하는 경향(‘저항의 로맨스’) 역시 존재한다.

  일면 두 입장은 서로를 배척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모두 종교의 공적 역할을 규범적으로만 사유함으로써 ‘공적인 것’에 대한 도덕주의적 관점, 더 나아가 신앙화하는 입장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는 ‘현상’으로서의 종교의 공공성에 대한 학술적 담론보다 진단과 처방, 또는 목적론적 운동 그 이상의 논의로 전개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특히 후자에 해당하는 집단에서는 “기독교는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공(공)적 기독교”라는 말은 “개독교”의 반대말로서 “공익적”, “시민적” 기독교라고 이해되곤 한다. 기독교 내부에서는 기독교 신앙과 공공성의 접점을 논의하면서 공공성이란 개념이 규범적으로 좋고 옳은 것이라는 막연한 전제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는 많은 이들의 심상에서 공공성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한편에서는 성장의 이데올로기, 그것의 실현을 약속하는 종교로서 해석되었기에 공공적인 종교로 이해되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참신한 기쁨과 활력이 있는 종교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다는 점에서 대중의 감정 속에서 그 공공성이 승인되었다”(김진호, 2014: 31). 이는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한국 근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납득될 수 있다. 또한 ‘1987년 체제’라고 불리는 제도적 민주화에 따른 시민사회의 등장에 따라 다원화된 정치세력이 등장할 수 있게 된 사회적 맥락이 한국 개신교의 정치참여 행태와 동기를 확대 및 재생산하는 계기를 제공해왔다고 볼 수 있다. 한국 개신교가 정치․사회참여를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이것을 신학적 또는 사회과학적 논의를 빌려 정당화하고자하는 현상을 보면 마치 개신교가 한국 현대 공적 영역과 공공성의 정치․시민운동사에 대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 자체가 견고한 것으로 보인다. (나름 구체적인 방법과 전략이 모색되고 신학적인 고민도 있지만) 하지만 실제로 기독교인 자신들의 공공성 정의와 획득에 공공성의 정의나 정당성을 구성하고 있는 공론장의 타자의 입장이 문제가 된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하다. 다시 말해 기독교인들이 공익을 위한다는 주장이나 운동 그 자체만을 가지고 공공성을 정당화하기에는 공론장에 개신교인들과는 다른 다양한 타자들, 더 들어가면 기독교 내부에서도 자신과는 다른 타자들이 생각하는 ‘공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의 다양한 공적 실천이나 태도들은 성적 지향의 공/사문제와 세속사회 이후 종교의 공/사문제가 중첩되어 나타난 것이다. 과연 ‘공적 종교’로서의 개신교는 성소수자와 공론장에서 토론할 의사가 있는가? 개신교는 동성애를 공공성을 해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아닌가? 공공성은 단지 추상적 원리나 신학적 교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예컨대 보수 기독교 입장에서 동성애는 공공성을 논하는데 있어서 매우 까다롭지만 전략적으로 전유하기 용이한 소재가 되기도 하는데, ‘바성연’과 ‘예수재단’ 등 개신교의 반동성애운동단체들은 동성애를 사실상 ‘공공의 적’으로 여긴다.

  다른 한편에서는 “종교가 공적 영역에 진출해도 되는가”, “종교의 공적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와 같이 종교의 사회적 기능만을 문제시하였다. 이 때 대개 종교는 어디까지나 사적 영역인데, 공적 영역에 침범하여 종교의 자유가 남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그러한 연구의 이런 연구들은 ‘세속주의’를 종교 비판의 규범적 전제로 삼고 있다.

  양자 모두 ‘공공(성)’을 ‘공익성(publicness)’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고, 공공성을 규범적 또는 민주적 이상 수준으로만 이해하고, 정태적으로 결정된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이러한 담론들은 ‘공공성’이라는 정의 내지 규범이 종교나 세속의 범주를 사용하는 행위자들(동성애/반동성애)의 (담론적이고 물질적인) 실천을 통해 ‘공론장’을 구성한 효과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공성의 사회적 조건인 공론장과 공론장의 정당성으로서의 공공성의 상호구성과 조응의 관계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공공성’이 (종교나 일반시민)행위자들과 특정하게 맺는 관계에서 나오는 사회적 효과 없이 그 자체로 “공익성”이나 “종교적 올바름”을 표상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기존의 논의구도나 사회적 상상은 공론장이나 시민사회영역이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행위자들은 이러한 주어진 조건 속에서 토의를 통해 상대방을 설득시키거나 합의, 또는 제도를 관철시키는 것이었다. “공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고, 무엇을 ‘사적’이라고 하는가 하는 담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다시 말해 “근대의 ‘공공성’은 많은 테마를 ‘사적인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스스로를 정의해온 것이다.” 즉 “공사를 나누는 경계선은 담론에 의존하는 유동적인 것이지, 담론 이전의 것, 정치 이전의 것은 아니다.”(사이토, 2009: 35) 따라서 “공공적 공간은 공사의 경계를 둘러싼 담론의 정치가 행해지는 장소이지, 공공적인 테마에 관해서만 논의해야 하는 장소가 아니다. 무엇이 공공적인 테마인가는 의사소통에 선행해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사이토, 2009: 36) 즉 공공성은 선험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맥락에서만 그 의미가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이진구, 2014: 39). 그런데 근대의 ‘공공성’ 정의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가진 것은, 종교나 신앙을 ‘사적인 것(privatize)’으로 다룸으로써 공공적인 쟁점에서 제거하는 것이었다(사이토, 2009: 35).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종교나 신앙을 사적인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부분적으로는 공공적인 쟁점에서 제거하지 않으면서도, 또 때론 심지어 공적인 것으로 인정하면서 공공성을 규정해 나가는 담론장의 참여자들의 실천(전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공공성’을 상이한 의미들의 긴장을 내적 동학으로 갖는 담론적 구성물(효과)로, ‘공론장(public space, public sphere, Öffentlichkeit)’을 ‘공공성’이라는 담론적 구성물을 엮어내는(직조하는) “담론적 네트워크”(하버마스)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상호출현의 공간”(테일러, 2010: 162)으로 이해한다. 즉 ‘공공성’이나 ‘공론장’은 고정된 내용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공적이지 않은 것’이나 ‘공론장에서 배제되어 온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출현하는 것이다. 또한 ‘공식성’이나 ‘관공성’(official), ‘공통성(commmon)’, ‘공개성(openness, publicity)’이라는 ‘공공성’의 세 가지 의미가 “서로 항쟁하는 관계”(2009: 19)에 있다는 사이토 준이치의 말은 ‘공공성’이라는 개념이 애매하기 때문에 분석적으로 사용해야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떤 단일한 의미로만 고정될 수 없는 것이기에 서로 적대하고 변화하는 사회적 과정에 민감해야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공공성’에 대한 위 세 가지 분석적 개념은 경험연구를 위한 ‘이념형’으로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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