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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카이로스 포럼(2014.8.2) 공공의 적, 공공의 신: 한국개신교는 공적 영역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김현준-카이로스 대표, 김현준-카이로스 연구원 공저) 발표문 광장에 선 호모포비아?: 후기 세속사회 공론장에서의 공공성 투쟁”의 서문이자 이번 포럼의 기획취지이기도 합니다. 카이로스는 앞으로 이 주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자 합니다.

  2014년 5월 퀴어문화축제가 신촌 광장에서 열렸다.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반동성애시위를 하는 개신교인들도 있었다. ‘종교의 공공성’이 화두인 가운데, 우리는 공적 영역에서 기독교의 공적 역할에 대한 바람과 희망을 제시하는 “광장에 선 기독교” 대신에 “광장에 선 호모포비아”를 목격할 수 있었다. 이들은 한국사회 공적 영역에서 의견을 제출하고 논쟁거리를 만듦으로써 공공성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규정하려고 노력한다. 이들은 종교의 이름으로 말할 때도 있었지만, 때로는 세속의 언어, 즉 국민다수의 성도덕과 유사과학적 근거에 의해 대중을 설득하려고 했다. 또 한편으로는 이와 대조적으로 퀴어축복식을 열며 기독교 신의 이름으로 지지하고 연대하는 기독교인들도 있었다. 이들 모두 각기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광장에 나오고, 또 그럼으로써 광장을 만들어 나가는 공적 영역의 주요한 행위자들이다. 그러면서도 여기에서 우리는 단순한 이분법적 정교관계론의 문제가 아니라 양자 간의 특이한 현상적 차이를 발견한다.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공론장에서 종교적 언어로 말하고 종교적 의례를 행하면서도 세속주의에 배척되거나 함몰되지 않고 오히려 신성함을 경험하게 만드는 종교, 그리고 이와는 정반대로 공론장에서 세속을 신성하게 만들고자 세속의 언어를 사용하는 종교 간의 차이를 말이다. 이외에도 2008년 촛불집회, 제주강정마을, 밀양 등지의 소위 세속적 사안들에서, 광장에서, 공론의 장에서 우리는 종교인들—그것이 소위 보수든 진보든, 물론 대개 진보적 종교 분파—이 자신들의 종교적 가치와 정체성을 부분적으로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을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개입하는 사회적 현상을 목격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오늘날의 사회를 하버마스는 ‘후기 세속사회(post secular society)’라고 명명했고, 카사노바는 ‘종교의 공적 재등장’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한국이라는 세속사회는 과연 어떤 세속사회인가?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떤 세속사회를 살고 있으며 우리가 경험하는 세속과 종교의 관계는 무엇인가? 주지하다시피 대부분의 종교사회학자들은 이미 종교가 모든 면에서 힘을 잃을 것이라는 고전적인 세속화론을 폐기했다(대표적으로 피터 버거). 대신에 학자들은 ‘탈세속화’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섣부르게 전면적이고 전지구적인 보편이론으로서의 탈세속화론을 주장할 수도 없게 되었다. 찰스 테일러가 말한 대로 근대사회는 이미 ‘세속주의’라는 게임의 규칙을 전제하고 있고 하버마스에 의하면, 모더니티의 특성인 세속적 언어가 표준화와 공유가능한 일반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이시윤, 미간행: 24). 또한 찰스 테일러에 의하면 
“테일러는 세속화 이후, 오늘날 신이나 종교는 더 이상 사회의 행위초월적인 토대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모든 사회적 행위를 범속한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고, 사람들은 이제 특별한 시공간과 사람에게서 ‘신성성’을 경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종교의 종말이나 의미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근대 이후에도 종교는 사적인 영역이나 공적인 영역에서 중요한 자원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테일러, 2010: 320, 옮긴이 이상길 후기).

쉽게 말해서 오늘날 종교적 언어나 성스러움의 개념조차 세속주의의 언어체계와의 관계 속에서만 이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종교시민들도 세속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신념의 당위성을 주장할 수 있으며 ‘인정투쟁’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Habermas, 2003: 109). 또한 대개의 국가들이 헌법상 세속국가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적인 예이지만, 종교자유정책연구원(2013)의 조사에 따르면, ‘만약, 종교적 가르침과 사회법이 서로 다르다면 어느 입장을 취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사회법의 입장이 54.1%, 종교적 가르침이라는 입장이 18.2%, 잘 모르겠다는 27.7%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사회법의 입장”이, 47.4%인 반면, 개신교는 “종교적 가르침”이라는 입장이 47.9%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종교와 세속의 관계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특히 개신교의 경우, 단순히 정교관계의 제도적 차원이 아니라 세속에 침투하는 종교적인 것의 문제를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의 해석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상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사회적 규범도 국민의 절반이상이 사회법을 기준으로 삼고 있지만 종교적 가르침을 우선시 하거나 사회법과 종교적 가르침을 사이에 두고 판단을 유보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


  따라서 우리들은 우리가 종교가 의미론적 잠재력을 가지고 공적으로 재등장한다는 하버마스나 카사노바 등의 판단을 따르면서[각주:1], 마치 ‘다중적 근대성’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유형의 (후기)세속사회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의 가장 큰 문제의식은 이것이다: 우리는 ‘어떤’ 후기 세속사회에 살고 있는가? 개신교는 어떤 (의미에서) 공적 종교인가? 이는 사실상 세속과 종교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기초적 단계로서 본 연구는 종교가 공적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정부), 정치공동체, 시민사회 중에서 카사노바를 따라 시민사회에 초점을 둔다(최현종, 2013: 107).[각주:2]   

그리고 하버마스의 이론에서 관건인 종교와 세속 간의 (동기부여와 타당성 주장을 통한) ‘상호학습과정’의 경험적 성공가능성과 ‘공적의식의 변화’ 및 ‘정체성의 확장’을 공론장에 (상이한 방식으로) 개입하는 개신교의 동성애 찬/반운동집단을 통한 (상이한) 공공성 주장과 결부하여 설명할 것이다. 그러므로 연구질문은 다음과 같이 보다 구체화된다: 후기 세속사회 한국 개신교(보수와 진보)의 공적 형태는 어떠한 모습인가? 한국 개신교는 공론장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  

‘후기세속사회’(Habermas)의 ‘종교의 공적 재등장’(Casanova)은 이미 우리의 현실이다. 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의 범주들은 (세속화의 기본적 가정과 달리) 상호침투하고 혼합되며, 그럼으로써 또한 새로운 범주를 창출한다. 하버마스나 카사노바에게 있어서 종교는 “회고하고 기억해 내는 이성(anamnestic reason)”과 “이야기하기(story telling)”로서 “의미론적 잠재력”과 “동기부여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Habermas, 2002: 133). 그리고 종교는 (본래 유동적인) 공/사의 경계를 재구획함으로써 공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정치를 활성화한다. 그러므로 종교의 탈사사화는 종교에 담긴 공적/사적인 측면들이 상호적으로 작용하며 국가와 교회, 정치와 종교 사이에서 공적인 것을 재정의하고 공적 영역의 경계를 넓힐 수 있다(Casanova 1994, 66).[각주:3] 또한 우스노우도 기독교가 초월적 지평의 원천으로서 공공적(communal) 차원의 사회 교섭을 증가시키고 도덕적 헌신을 통해 시민사회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데 핵심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다소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다(Wuthnow, 2004; 2014). 그렇다고해서 공론장에서 모든 세속적 범주들이 무화되고 재주술화되는 것은 아니다. 즉 여기에서 우리는 상호배타적 범주로서의 종교와 세속 간의 대립이나 단순히 ‘정교분리’ 담론에 입각한 ‘정치종교’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성’을 놓고 벌어지는 다양한 대립과 상호학습, 또는 “협업”(Habermas, 2003: 109)의 양상들을 살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간과한 ‘공공성’에 대한 동상이몽을 성찰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공공성’ 및 ‘공’과 ‘사’라는 개념이 공론장에서 행위자들 간에 정당성 투쟁을 위한 ‘판돈(stake)’이자(P. Bourdieu) 행위자들이 공유하고 ‘전략적인 도구’로 활용(A. Swidler)하는 ‘문화코드’(J. Alexander)로서 그들의 ‘지속적인 실천(ongoing practice)’이나 ‘퍼포먼스’를 통해 정당하고 의미있는 행위의 동기로서 인정되고 학습된 – 규범적인 효과를 갖는 - ‘문화적 구성물(cultural object)’이라고 본다.  

우리의 학문적 목표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론적 목표로서 하버마스의 ‘후기 세속사회론’에서 핵심적인 종교-세속 간의 ‘학습과정(learning process)’ 이론을 경험사례를 통해 확인(corroborate)하고 ‘비판적인 재구성’을 제안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종교 행위자가 담론적 실천을 통해 공론장을 의미있는 정치적·사회적 실재의 영역으로 구성해내는 대강의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한국의 후기세속사회적 특징과 한국개신교의 공적 성격(공공성 형식)을 포착하는 것이다. 



  1. 하버마스와 테일러는 공론장이 상이한 관점을 가진 공론장의 시민들을 더 큰 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종교를 연대성이나 창조성의 기반으로서 공론장으로부터 배제하고자 한다(Calhoun, 2011: 129). [본문으로]
  2. 카사노바는 하버마스를 따라, 시민사회에서 종교의 영향은 공적 영역에서 종교 언어를 세속 언어로 번역할 때에만 효과적일 수 있다고 보았다. 물론 카사노바의 ‘공적 종교’론의 경험 연구는 논쟁적이며, 카사노바의 입장은 부분적으로만 지지된다(최현종, 2013: 107). 즉 카사노바의 이론도 지역적 상황에 따른 경험연구가 중요하며 따라서 한국 사례에 대한 본고의 경험연구는 더욱 중요하다. [본문으로]
  3. 카사노바는 공적 종교와 사적 종교를 설명하기 위해 종교 행위가 이루어지는 행태에 따른 개인주의적 신비주의/교단주의의 구분, 종교의 공식적, 법적 지위에 따른 국교/탈국교의 구분, 종교 공동체의 공공성에 따른 시민종교와 사적 종교 공동체의 구분, 그리고 근대 공/사 구분에 담긴 젠더(gender)적 경향 따라 사적·여성적 영역으로서의 종교와 법적인 공적·남성적 영역을 구분을 제시하였는데(Casanova, 1994: 41-65), 탈사사화(deprivitization)는 바로 이러한 분리를 가로지르며 나타난다. 그는 아라토 및 코헨 중심으로 전개된 시민사회론(Cohen and Arato, 1992)이라는 정치사회학적 논의를 바탕으로 종교의 공적 의의를 재검토한다. 국가-사회관계에서 시민사회(civil society)라는 새로운 항은 기존 국가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공적인 것’에 대한 정의를 넓힌다. 카사노바는 근대 세계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시민 사회” 또는 “사회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러한 세 영역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가 경험적으로는 구멍이 많으며(porous) 지속적으로 옮겨감으로써 상호침투적(interpenetrative)이기 때문에 세 영역 모두 공적인 면, 사적인 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Casanova, 1994: 4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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