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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비평루트 제 11호를 발간하며

<조용상_세월호 인재 참사>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마태복음 5:37)

 

올해의 사자성어로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하는 지록위마(指鹿爲馬)’가 꼽혔다. 史記』 「진시황본기에서 조고가 황제에게 사슴을 말이라고 고한 것에서 유래하는 말이다. 환관 조고는 진시황제가 죽자 그의 유서를 조작하여 태자를 죽이고 어린 손자 호해를 황제를 자리에 앉히고 실권을 쥐게 된다. 환관 조고가 사슴을 말이라고 어전에 끌어다가 놓고 말했을 때, 황제가 이것은 사슴이 아닌가하고 물었을 때 맞다고 대답한 신하를 환관 조고는 기억해 두었다가 그 후에 갖은 죄목으로 다 죽였다고 한다.

 

그 옛날에도 사슴을 말이라 한 사람들은 살아남았고, 권력을 휘둘렀다. 아니라고 한 사람은 모두 죽었다. 현대에도 저기 큰 집에, 기업에, 그리고 검찰과 법원에도, 사슴이 말이냐고 물을 때 말이라고 하는 이들만 남아 있는 형국이다.

 

사슴이 말이 되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리고 거짓말은 거짓말에 명시적으로 암묵적으로 공모하는 자들에 의해 사실이 된다. 거짓의 입은 철저히 타락한 입술이다. ‘죽어가는 국민인 세월호 안의 사람들은 무시 받고 바다 속에 잠들었다. 구조보다 면책되기 위한 변명과 거짓말이 가득했다. 죽어가는 국민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죽은 사람도 살아 있는 사람도 어떻게 대우할지가 보이는 법이다.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의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양승진, 고창석, 권재근, 권혁규, 이영숙, 이 9명의 이름은 기다린 듯이 언론에서도, 정부에서도 지워졌다. 기억하지 않음으로 지워지기를 택한 것이다.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국가와 기업 그리고 검찰, 경찰과 법원의 곳곳에 포진해 하면서 세치 혀로 더러운 말을 놀리고 있다. 저들은 궁핍의 언어를 타락의 언어로, 자유의 언어를 이념의 언어로, 권리의 언어를 의무의 언어로 교묘하게 바꾸고 있다.

 

이럴 때 2014년을 마감하고 2015년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것은 단순히 달력을 바꾸는 것 외에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2014년에 벌어진 일들 중 어느 것 하나도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2015년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현실과 무력함에서의 도피 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비평루트는 새로운 걸 쫒아 이야기하기보다, 여전히 이야기해야만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매체로 소임을 다하고자 한다. 새 해는 독재에 이론적으로 맞서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독재는 꼭 정치에만 있지 않다. 독재는 사회의 곳곳과 기독교에도 있다. 진보에도 있고, 보수에도 있다. 오늘날 무력독재는 많이 약해졌지만, 권력독재, 인식독재, 해석독재, 그리고 도덕독재는 아직도 이 땅의 많은 곳에 남아 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모른 체 지나갈 수 없는 시대의 십자가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자신의 진정성이 아니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수준과 양식에 터 잡아 여러분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함께 해준 시간에 감사드리며, 함께 할 시간을 기대하며,

 

 

시대에 찬바람 가득한

201412월 어느 날

비평루트 편집장 오민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