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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상징투쟁과 권력의 시각으로 읽는 한국 개신교 ④


4. 신자들의 위계구조와 자본, 각각의 권력과 전략들

  종교재의 생산과 분배를 독과점하는 종교 전문가인 성직자계층은 단일한 집단이 아니다. 성직자층은 보다 많은 자본(권력)을 보유한 성직자들과 그렇지 못한 집단들 간의 이해관계에 의해 분화된다. 여타 장들과 마찬가지로 개신교장은 특수한 자본의 분배를 둘러싼 투쟁 속에 개입된 행위자나 제도들 간의 세력관계로 볼 수 있다. 부르디외는 종교장의 주요 행위자를 사제(priest), 예언자(prophet), 주술가(magician, sorcerer)로 보고, 이들 간의 상징투쟁을 핵심적 메커니즘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투쟁의 목표(stakes)가 되는 종교재(religious goods)의 생산자들이기 때문이다.

  한편 종교재의 소비자는 평신도 일반대중이다. 이들은 종교장에서 생산한 상징적 생산물들을 소비한다. (종교장은 상징재 시장이다) 평신도와 성직자를 포함하여 신자들은 개신교 장의 종교문화와 신앙심을 체화한 정도에 따라 위계화 할 수 있을 것이다. 위계화 서열이 높을수록 개신교장의 규칙에 지배받는 정도 혹은 검열의 강도(굴절률)는 클 수밖에 없다. 이는 신앙연차와 직분이라는 지표를 통해서도 확인되는데, 예컨대 신앙연차와 직분이 높을수록 헌금에 대한 의미부여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이유(시설유지나 의무)에서 신앙적인 이유(신에게 순종)로 응답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이다.[각주:1] 중요한 것은 신앙심의 깊이나 종교 아비투스의 체화에 따른 이러한 위계화로 볼 때, 성직층과 평신도층을 단절된 계층으로 단순하게 구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가령 중간계층인 장로는 당회라는 기구를 통해 제도적 의사결정의 보장과 더불어 직분과 신앙연차에 따른 종교재에 대한 상징적 의미부여를 통해서 상징재 생산에 중요한 행위자로 참여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피지배층 평신도들도 상징재에 대한 나름의 해석과 교회봉사(예를 들어 주일학교 교사로서 종교재의 재생산을 담당하거나 평신도의 준[準]목회자적 주체성을 발현시키는 ‘제자훈련’이나 ‘평신도 신학’ 교육을 받음으로)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생산자 계층에 영향을 줌으로써 생산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가령 생산된 상징재를 평신도가 거부할 경우, 목회나 교회운영의 어려움에 부닥칠 수 있다는 가정, 즉 위험성(risk)를 종교재 생산에 고려함으로써 재생산 메커니즘을 구성하게 된다. 아울러 이러한 상황이 생산자에게는 구조적 제한이자 가능성의 영역이 된다.


<그림 1> 종교계층을 중심으로 구성한 개신교 장

: 제도교회라는 하부 장을 중심으로


최종철의 '그림 2:한국 개신교의 장'(1996a:67)을 참고하여 수정 및 보완함 것임을 밝힌다.



<그림 1>에서 성직자들은 개신교장 내에서 기본적으로 상징자본과 경제자본을 합한 제자본의 총량이 가장 많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평신도(장로와 장로 아닌 평신도)들의 상징자본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경제적인 측면만 놓고 보았을 때는 평신도 고위직인 장로들이 가장 많은 자본을 갖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경제자본이 많은 평신도가 장로가 될 수 있다. 개신교장 내, 특히 제도교회라는 하부 장의 권력구도에서 상징자본이 상대적으로 많은 고위 성직자(담임목사)와 경제자본이 상대적으로 많은 고위 평신도(장로) 간에는 교권을 놓고 갈등이 나타나기도 하고 동맹관계를 형성하기도 하는 반면, 하위 성직자와 평신도, 그리고 일반적으로 제도교회 밖이나 소규모의 교회에 있으면서 개신교장의 외곽에서 종교자본 및 경제자본의 결여에 의해 저항적 아비투스를 체화한 선지자 간에는 부분적으로 반교권 동맹(교회개혁집단)을 형성하기도 한다.


1) 최고위 성직계층: 담임목사

  개신교 장 내에서 상징자본과 경제자본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종교계층은 목사(목회자), 그 중에서도 한 교회를 담당하고 대표하는 ‘담임목사’이다. 교회라는 종교적 기업체의 실질적인 소유자(owner)이자 경영자인 이들은 ‘지배층의 지배층’이라고 할 수 있다.[각주:2] 왜냐하면 교회의 평신도들의 대표인 장로들로 구성된 의회(당회)의 의장(당회장)이면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등 각종 교단 연합단체나 협의기구라는 이익집단을 구성함으로써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재의 고객인 평신도(의 지지와 그로 인한 상징자본․경제자본의 획득)를 두고 경쟁하는 상징 재화의 생산자”(Rey 2004:333)인 이들은, “의도적이고 제도화된 교육적 행위를 통해 획득된 성직 지배력의 행사”(Dianteill, 2003:536)를 통해 기존 종교질서의 영속화를 보장하는 보존전략을 취한다. 이들은 구원재화를 생산 및 분배하는 권한을 독점한 전문 기능인들로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강원돈, 1991:83). 이것은 단지 지도력에 대한 자발적인 복종이 아니라, 성직자들의 권력을 신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승인한다는 점에서 (헤게모니를 넘어서는) 오인된 상징권력이다. 고위 성직자에게 가장 큰 권력은 자원동원능력에서 온다. 즉 평신도의 대중적 지지로 말미암는 교회의 대형화는 상징자본과 경제자본의 동시적 축적을 통해 평신도 대중에 대한 상징적 지배와 교단이나 교파의 정치적 지배를 모두 가능하게 한다. 이는 생산자 계층 내부뿐만 아니라 개신교 장 전체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요소이다.


2) 고위 성직계층: 신학자

  신학자들 역시 고위 성직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개신교의 지식인들로서 대부분 신학(대학)교에서 교수의 직함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대부분 지역교회의 담임목회는 하지 않는 목사이기도 한데, 이들의 상징권력은 이들이 속한 신학교와 교단 간의 관계 속에서 규정된다. 이들은 신학자로서 한국교회에 영향을 합법적으로 줄 수 있는 신학을 생산할 권위와 능력을 가지지만, 언제나 교단의 정치적 상황과 일선 현장의 목회자들의 목회철학이나 이를 공식화한 실천신학적 입장과의 역학관계 속에서 그 효과는 반감되거나 증대될 수 있다. 가령 신학자의 ‘학자적’ 혹은 ‘학문적 양심’ 같은 것은 상당한 침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신학자가 속한 신학교는 거의 대부분 교단의 사립재단이며, 신학은 교단과 목회현장의 필요에 의해서 생산되고 검열되기 때문이다. 교단의 목회자들에 의해 신학교수가 이단시비에 휘말리거나 해고되는 일들이 이를 증명한다. 대체로 한국 개신교 장의 하부 장이라고 할 수 있는 신학장(또는 신학교의 장)은 영향력 있는 대형교회와 교단유지비용을 많이 지불하는 교회들의 담임목사들이 지배하는 교단에 종속된다.

신학자는 고위 성직자이긴 하지만 제자본의 구성비에서 경제자본과 교회 내에서 인정되는 상징자본보다는 교육자본 및 체화된 지식이라는 문화자본, 그리고 신학에 대한 권위라는 상징자본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성직자들보다 문화자본의 비중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신학자는 제도교회를 담임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제자본의 총량을 일정 정도 이상 확대할 수 없고, 제도교회라는 하부 장과 교단(교단의 장)을 통해 지배되는 신학 내지 신학교라는 하부 장의 상동성에 의해 교권과는 비교적 거리가 멀다(<그림 1>에서 교단의 장은 생략되었다).


3) 하위 성직계층: 부교역자 및 신학생

  신학자에서부터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기득권에 저항하는 신자들은 대개 두 가지 전략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계승전략과 전복전략이 그것이다.

교회 내에서 담임목사를 도와 부(副)교역자(부목사, 전도사, 교육전도사)로 일하는 대부분의 하위 성직자들은 교회 활동과 신학교육을 통해 순종적 성향을 체화했을 뿐만 아니라 목회 시장에 효과적으로 진입하기 위해 계승전략을 취한다. 하지만 하위 성직자들의 전복전략은 이들은 고위 성직자가 되려는 욕망-사회적으로 구성된 리비도를 배신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부분적으로만 취할 수 있다. 이 계층은 종교적 생산수단의 소유권을 보유한 고위 성직자들이 권한을 부여하는 만큼만 이 수단들을 사용하여 그에 상응하는 생산을 관리할 수 있다(Maduro, 1988:170). 이들은 대부분 이미 목사 자격을 획득했거나 예비 목사인 신학생들로서 교회에서 각 부서를 담당하는 등 교회 업무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담임목사나 장로의 지배하에 있는 당회의 목회방침에 종속되고 고용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운신의 폭(가능성의 공간)이 좁으며 담임목사와 심지어 장로보다도 상대적으로 작은 상징권력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실제적으로는 개신교 장 내에서 이들의 독자적인 입지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하겠지만 최소한의 한계 내에서 종교자본 및 권력을 조금 더 확보하기 위해 투쟁할 수 있다.


4) 선지자: 구원의 독립중개상

  종교재를 생산하는 종교 전문가 집단으로서 노골적인 전복전략을 택하는 집단은 기득권을 가진 주류 성직자 집단과 가장 첨예한 갈등관계에 있는 선지자(예언자) 혹은 분파주의자(sect)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들의 권위는 일차적으로 그들의 메시지에서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교회로부터의 소외에서 온다(Bourdieu, 1991:34-36). 이들은 종교장의 주변적 위치에서 이단적 성향을 체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층과 함께 종교장의 일루지오를 공유하며 문화․학력자본을 소유한 이들은 교리(dogma)와 같은 종교적 규칙에 대한 보수적 해석을 통해 교의(doxa)를 보존하는 방식의 개혁을 추구한다. 예컨대 “초대교회로 돌아가자”와 같은 표어는 이들의 개혁이나 도전이 극단적 전복이 아님을 보여줌으로써 장 내에서 투쟁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신자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한 전략이다. 다시 말해 이들의 전복전략은 종교를 종교답게, 종교의 순수성을 회복하려는 방식을 취한다.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 개혁적 입장표명이나 담론들은 이들의 위치에 종속되는 동시에 기득권 신자들과의 관계와 종교적 전통이 만들어내는 가능성의 영역 내에서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다.

부르디외의 표현을 빌자면 이 ‘구원의 독립 중개상’들은 기득권 성직자 집단의 종교자본의 교회 통제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집단이다. 베버에 동의하여 부르디외가 주장했듯이,

모든 교회는 예언자 즉 종교권력의 정복전략에 참여하고 있으며 교회에 의해 행사되는 종교권력의 독점권에 대항하여 교회 공중의 주요 부문들을 동원할 능력을 지닌 종교적 행위자인 예언자의 출현이라는 항구적인 위험에 처해있다(Maduro, 1988:185).

예언자들은 성직자와 평신도의 중간매개자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실천전략은 선지자의 대부분이 학력자본은 갖춘 목사이면서도 대중적인 평신도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확보하는 과정에 있는 소규모의 교회의 목회자이자 교단정치와 교권에서 소외되는 조건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들은 성직과 제도화된 정통에 대한 도전과 같은 평신도의 종교적 욕구를 수용해서 성직위계에 압력을 행사한다(Rey, 2004:340). 이른바 “선지자들은 평신도의 잠재적 경향들을 구체화하기 위해 행동”(Engler, 2003:448)하기에 일부 평신도와 함께 반교권 세력이 됨으로써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게 된다. 즉 선지자는 고객의 욕구를 반영하는 존재인 것이다(Rey, 2007). 그러나 만일 한 선지자가 장 내의 소외된 위치에서 오는 개혁 이미지를 통해 획득한 평신도의 지지—이 지지는 다시 개혁가의 이미지를 강화․재생산한다—와, 또 이로 말미암아 획득한 권위, 즉 상징자본을 교회의 대형화를 가능하게 하는 경제자본과 제도적 위계의 정점이라는 제도화된 종교자본으로 전환시킨다면 이 선지자는 고위 성직자가 된다. (이는 컬트나 종파 유형이 제도교회 유형으로 변천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예컨대 근래에 한국 개신교의 개혁을 추구하는 집단들은 목사의 도덕적 타락과 비민주적 교회운영을 한국교회의 주요한 문제점으로 보고 목사의 권한을 대폭 제한하고 교회운영에 대한 평신도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운동을 전개한다. 이러한 투쟁은 단지 제도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신학이념적인 차원에서도 전개되는데, 가령 종교개혁의 비전인 ‘만인사제설’의 강조를 통해 목사직의 신성성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서 투쟁의 정당성과 운동의 지지자들을 확보한다.


5) 핵심 평신도 계층: 장로

  평신도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먼저는 장로를 위시하여 집사, 권사 등 당회와 제직회를 구성하여 교회의 의사 결정과 정책 추진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평신도 계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중에서 특히 장로는 일종의 ‘피지배층의 지배층’(최종철, 1996a:67)으로서 교회재정의 안정화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교회와 담임목회자의 목회와 선교를 뒷받침하기도 하고, 담임목사를 비롯한 성직자들의 권력을 견제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당회라는 정치제도나 담임목사의 임면(任免), 경제자본을 통해 담임목사보다 많은 권력을 가지기도 한다.


6) 주변부 평신도 계층

  나머지 평신도 일반은 핵심 평신도 집단을 제외한 청장년이하 신자들이다. 이들은 교회의 의사결정과정에서 실질적으로 배제되어 있으며 교회나 담임목회자의 신학사상과 목회방침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집단이다. 이들 평신도 대중은 세례와 교리문답이라는 최소한의 진입비용으로 개신교장으로의 입장이 허용된다.


7) 개신교장 경계의 종교인

  종교장에서 다소 예외적인 존재로 종교 유형에서 컬트(cult)에 해당하는 주술사(Magicians)를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탈권위화된(그래서 세속화된) 태도에서 성스러움을 형성함으로써 교회(Church, 제도종교)에 도전을 나타낸다(Bourdieu, 1991:12)는 점에서 선지자와 비슷하지만 문화자본․학력자본을 결여한다는 차이가 있다. 가령 정통 개신교의 한계 내에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이를 벗어나 개신교가 아닌 다른 종교가 될 것인지의 선택에 놓인 종교적 ‘이단’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제도종교의 밖에 존재하며 전체적인 종교장과 ‘영성시장’[각주:3]의 층위에서 활동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_먹보에술꾼(CAIROS 연구원) 

  1. 정재영, 조성돈 외. 2008. “한국 개신교인의 헌금 실태조사 및 연구논문 자료집”을 보라. [본문으로]
  2. 최형묵(2002)은 이러한 목회자의 헤게모니를 ‘성직자주의’라고 하고,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의 기업 세습과 닮은 ‘교회 세습’을 그 폐해 사례로 들고 있다. [본문으로]
  3. 자기계발이나 스포츠, 기(氣)수련 등과 같은 유사 종교 혹은 종교적 대행물들과 종교 간의 경쟁관계를 포함하는, 인간의 삶의 태도(영성)를 조건 짓는 장.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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