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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과 자아 정체성의 관계성은 이중적이다. 영성의 기본적 수준은 정체성의 확립과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확립된 정체성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이번 글에서는 전자에 집중하려고 한다. 후자에 대해서는 순전히 나의 한계로 인해 말을 아끼려고 한다.

 

일단 자아 정체성, 곧 자아상은 헤이즐 마커스(Hazel Rose Markus, 스탠포드대 심리학교수)가 말한 바와 같이 “자기에 관한 조직화된 신념의 집합체다.”그런데 이 신념은 의식과 무의식에 걸쳐 있으며, 그 간극이 크면 클수록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 억압된 무언가가 무의식에 형성된 자아상을 일그러뜨려 의식에 형성된 자아상과의 간극을 벌려놓기 일쑤이다(인간은 통싱적으로 무의식에 형성된 자아상에 따라 움직인다). 물론 이는 의식적으로는 건전한 신념들을 붙들고 있다는 전제 하의 이야기다. 만일 부정적 방향에서 형성된 자아상이 의식까지 점유한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정체성의 형성은 일반적으로 외상(外傷)과 비밀을 따라 이뤄진다. 통상 외상과 비밀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 비밀의 축적 속에서 내면의 독립적 공간은 형성된다. 성적 욕망과 관련된 소소한 비밀조차 내면에 자신 만의 세계를 만들도록 촉발시킨다. 비밀의 형성은 곧 자아 정체성의 형성과 궤를 같이 한다. 비밀을 쉽게 누설하는 이는 자아가 튼실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비밀을 꽁꽁 숨기고 산다면, 관계적 측면을 키우지 못한 것이니 이 또한 자아가 튼실하지 못한 것이다. 이 사이에서 사람들이 종종 택하는 해법은 낯선 사람에게 고백하는 것이다. 헨리 나웬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좋은 방법이 아니다. 자아 정체성과 관련하여 생각한다면, 비밀의 공유는 관계의 형성과 심화를 위한 것이라야 한다.

 

비밀의 고백을 영적 세계에서의 비전(秘傳) 전수와 연결해서 생각해 보자. 입이 가벼운 이들은 마음이 가벼운 것이다. 비전은 입이 무거운 사람, 즉 중심이 굳건하게 서있는 사람을 찾아간다. 만일 입과 마음이 가벼운 이가 비전을 얻으면, 그때부터 그 비전은 더 이상 비전이 될 수 없다. 그게 바로 레이키(靈氣, reiki)에서 발생한 일이다. 사실 타카타 여사의 이대제자인 아서 로벗슨의 입이 가벼운 것인지, 돈이 궁했던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어쨌든 이제 레이키는 더 이상 비전이라고 할 수 없다. 반대로 입을 열어야 할 때, 열지 못한다면? 켄시로가 지나치게 입이 무겁다면 아마 일자전승을 추구하는 북두신권은 더 이상 전속되지 못하고 사라졌을 게다.

 

하지만 일단 우선되는 것은 입을 다물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사실 입을 지키는 것은 마음을 지키는 것이다. 입을 열어 마음에 숨겨놓은 비밀을 쏟아내면, 그 마음에 빈곤이 도적 같이 찾아온다. 그러므로 영적인 체험과 통찰의 일정 부분은 굳건하게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침묵 속에서 자아는 형성되고, 영성도 형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침묵은 영성 훈련의 일단계이다. _이원석(CAIROS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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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10.06.02 11:19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연재가 계속되었으며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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