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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콘텐츠/2회 카이로스포럼:선교라는 스캔들

미국과 동일시하는 선교운동의 판타지[박설희]

[제2회 카이로스 포럼: 선교라는 스캔들?!]

선교동원운동의 이데올로기와 정체성 정치(3)

미국과 동일시하는 선교운동의 판타지의 생산


*제 2회 카이로스 포럼(2011년 2월)에서 발표한 논문을 (웹진형식에 맞게)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각주 및 세부논의는 포럼 자료집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주 뉴스앤조이(http://www.newsnjoy.us)에도 4회에 걸쳐 연재되었습니다. 비평루트에서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경기도 성남시 야탑동 할렐루야교회(김승욱 목사)에서 30일 개막된 '2010 세계선교전략회의(NCOWE V: National Consultation of World Evangelization V)'는 한국적 선교 모델을 정립하고 제2,3세계 교회들이 벤치마킹할 수 있는 선교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9/11사태 이후 해외 선교의 주도권이 비서구권 선교사에게로 넘어오면서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한국의 선교사들이 세계 선교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들에게 "한국형 선교 모델"을 찾고 그것을 2,3세계에 돌려주는 역할이 부여된 것은, 과제이기도 하지만 한국 개신교회에게는 하나의 성과인 것으로 자축되는 듯하다.

이 모임은 세계 선교 역사 속에서 '새로운 한국인'이 상상되고 발명되는 자리이며 '한국인 선교사'로서 새로운 정체성이 역사적으로 구성되고 강화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다음은 한국 개신교회의 역사 속에서 검증된 것으로 보이는 한국적 선교의 특징을 기사화된 내용을 중심으로 모아놓은 것이다.

"복음은 125년 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100% '미전도 지역'이었던 한국 땅을 밟은 이후 발전해왔다. 1980년대를 지나면서 복음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로 맹렬히 퍼졌다. 첨병은 2만 1,000여 명의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은 한국인 특유의 열정과 영성으로 무장하고 서구 선교사들의 뒤를 잇고 있다. 세계 교회는 한국 선교 역량을 목도하고 이에 따른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 "네비우스 정책, 지역 분할 전략, 새벽 기도, 자발적 교회 개척 등 짧은 역사 속에서 압축 성장한 사례를 찾게 된다." 이날 전략 회의(…) 보고는 한국적 선교 모델이 필요한 이유가 주로 강조됐다. (…) 한국적 모델로 대두돼 온 사례도 발표 돼 관심을 끌었다. 명성교회의 '새벽 기도', 사랑의교회의 '제자 훈련과 CAL 세미나',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령 운동과 성장', 온누리교회의 '두란노 아버지 학교', 전주안디옥교회의 '선교 성장' 등이. 또 사회 변혁 모델로 가나안농군학교, 성시화운동, 이랜드 사례 등도 꼽혔다." (<국민일보>, 2010년 6월 30일자, "'선교 월드컵' 2010 세계선교전략회의 개막"중에서)

"지난 125년간 한국 교회에 적용됐던 다양한 선교 전략 모델 7가지를 소개하고 이에 따른 방법론을 제시했다. 7대 선교 전략은 한국 민족이라는 자민족 운동, 의료·교육·교회개척이라는 트라이앵글 전략, 네비우스 정책, 복음주의적 연합, 선교지 분담, 현지화, 한인 디아스포라 전략 등이다. 정 선교사는 "한국 기독교의 독특성은 기독교가 제국주의적 모습으로 다가온 것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의 고난을 겪으면서 소망과 대안적 종교로 유입됐다는 것"이라며 "한국적 선교 방법론은 일체의 식민주의적 성향을 탈피해 한국적인 것을 찾을 때 세계 선교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일보>, 2010년 4월 20일자. "세계를 향한 가장 바람직한 선교 방법은… 가족 공동체 특징 등 한국적 모습 활용을"중에서)

"'한국형 선교의 개발'이란 주제로 발제자로 나선 조동진 박사는 "초기 한국 교회의 선교 패턴은 초대 교회 사도적 선교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성령의 인도하심이었으며 민족 자생적이었다"고 정리했다. 조동진 박사는 한국 교회 선교가 ▲억압받고 버림받은 나라 잃은 민족들의 선교 ▲나라 밖으로 흩어진 무리들이 두루 다니며 전파하는 선교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자원하여 나서서 전파하는 자비량 선교 ▲자신을 헌신하고 자기 소유를 아낌없이 바치는 선교 ▲핍박과 옥에 갇힘을 두려워하지 않는 순교적 선교였다며, "당시 선교사의 이야기처럼 오직 한국에서만 찾을 수 있는 패턴이었다"고 말했다." (<기독신문>, 2010년 7월 6일자, "한국적 선교 원형 재개발해야" , "헌신의 순교 경험 세계와 나누자"중에서)

위에 기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시피 선교 전문가들은 '한국형 선교 모델'들을 역사적으로 추출하여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위의 열거된 특징들이 과연 정말 '한국적'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가령 사랑의교회나 온누리교회의 경우는, 미국의 대형교회의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해 온 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사례로 제시된 '성령 운동과 성장'이나 조동진 박사가 말하는 '초기 한국 교회의 선교 패턴' 또한 2,3 세계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오순절 운동'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엄밀히 말하자면 '오직 한국에서만 찾을 수 있는 패턴'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다. 또한 '네비우스 전략이나 지역 분할 전략' 등도 차이가 없지 않겠지만, 유럽의 선교사들이 다른 국가에서 채택했던 식민지 통치 정책의 종교분과 정책들과 어떻게 다른지 또한, 미국과 캐나다 선교사들에 의해서 한국에 실시된 것인데 이를 '한국적'이라고 과연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두란노의 아버지 학교'와 '가족 중심 모델'은 한국적 수용 모델이 존재하겠지만, 미국의 신학 담론에서 유행하는 개인 심리학의 영향과 함께 미국 특유의 가족 중심주의에서 그것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과연 한국에서 성공한 사례가 다른 문화권에서도 곧바로 적용 가능한 것인지, 바로 납득이 가지 않는 대안들이 많다. 대표적인 전문인 사역의 예로 꼽힌 듯 한 이랜드 사례도 해결되지 않은 여러 갈래의 사회적인 갈등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논의 내용 중에서, 한국 개신교의 독특성을 "제국주의적 모습"이 아닌 "일제 강점기의 고난을 겪으면서 소망과 대안적 종교로 유입됐다는 것"과, "한국적 선교 방법론은 일체의 식민주의적 성향을 탈피해 한국적인 것을 찾을 때 세계 선교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손 치더라도, 구체적인 사례와 대안으로써 제시된 것들의 대부분이 차이가 존중되는 연대나 개방적인 그리스도교적 정체성의 모색 등의 방식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 선교 역사는 아직도 그 기원을 패권적 승리주의에 두고 있다.
 
위에 간접적으로 열거된 대안들에 대해 하나하나 언급하며, 그것이 과연 '한국적'인 것인지를 따지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여기서 좀 더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적인 것'의 이러한 내용에 있기보다는, '한국적'인 것들을 대안으로 보는 의식이 주조되는 방식과 아래 글과 같이 '한국적인 것'을 위치 짓는 방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래는 최바울 선교사의 칼럼의 일부로 이러한 의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백인 형제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계를 경영하던 시대는 급속히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비 서구 교회, 특히 한국 교회의 세계 선교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우리가 잘 준비되어서가 아니라, 세계 환경이 우리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피 묻은 손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서구와 비서구가 이삭과 이스마엘의 갈등의 구도에서 오랫동안 고통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때에 친서구적이며 아시아에 속해 있는 우리 한국과 한국 교회의 화해자(peace maker)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또한 깊은 분노와 좌절감 및 허탈감 속에서 그 상처를 붙들고 울고 있는 이슬람권의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며 섬겨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즉 용서와 희생의 십자가만이 이스마엘과 후예들 가운데 내려온 그 어떤 저주도 끝낼 수 있다. 이제 바야흐로 Global Christian Leadership 즉 세계 교회에서 리더십은 공히 한국 교회로 이전되고 있다. 우리 한국과 한인 교회들은 하나님의 세계 경영, 즉 세계 선교에 더욱 더 헌신해야 할 것이다." (최바울 선교사, 2007년 9월 4일자, 칼럼 <이라크 전쟁의 배경과 선교적 전망>중에서)

'서구와 비서구', '이삭과 이스마엘의 갈등 구도'로 세계를 단순하게 파악하고 그 속에서 '피 묻은 백인 형제들의 손'이 아닌 것으로서의 한국 교회의 위치를 고안해 내는 것, '친서구적이며 아시아에 속해 있는' 한국 교회가 그런 명료한 갈등 구조 속의 유일한 '화해자의 역할'을 부여받게 되며, 그리하여 세계 교회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위치에 한국 교회가 있다고 상상하는 방식을 살펴 볼 수 있다.

윌겜스마이어는 "세속적 민족주의의 도덕적 정당성이 보다 확실해 질 때까지, 도덕적 질서에 대한 종교적 비전은 매력적인 해결책으로서 계속 출현할 것이며, 종교적 행동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정치적 구원의 우주적 드라마에서 전사(戰士)라고 여기면서 이 같은 해결책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계속 주입하려고 시도할 것"이라고 평했다.

이쯤에서 근본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 인식에 대해서 김성건이 윌겜스마이어의 연구를 정리하며 인용한 것을 참고하는 것도 좋겠다. 김성건은 그의 연구에서 인터콥과 같은 기독교시온주의자들의 성향을 '이데올로기적 종교 민족주의'라고 명명한 바 있다. 그는 기독교 시온주의자들(인터콥)이 다음과 같은 일련의 과정을 따라 의식을 전개해 간다고 보았다: "세속적 민족주의에 대한 불만족→종교적 관점에서 정치를 인식하기→치명적인 적을 사탄의 세력으로 동일시하기→세계를 전 우주적 대립 속에 갇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기→종교적 국가들이 건설한 평화로운 세계 질서의 도래"(김성건, 2007)로 말이다.

앞에서도 확인한 것처럼, 이들은 미국과의 상징적 관계 설정에서 도덕적 정당성으로 그 우위를 꾀하려고 하였다. 한국의 선교사들은 결국,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구원을 완성하는 유일한 민족으로서 위치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가 담지하고 있는 근본적인 가치(=도덕적 가치)들을 수호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위기를 끝내는 해결책이며, '막강한 이슬람 세력' 및 '급진 좌파세력'을 무너뜨리는 유일한 길로 생각한다.

이렇게 발명된 '새로운 한국인'의 위치는 가장 미국적인 것을 겨냥한 바로 그곳에 위치한다. '미국'과 동등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한국(적)인 선교사'로 태어나는 것이다. 선교 동원 운동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 정치의 이데올로기는 담론적 공간 속에서 '새로운 한국인'인 한국인 선교사를 발명하고, '한국적인 것'이 끊임없이 지연되는 방식으로 새로운 판타지를 생산하고 있다.

미국과 같아질 수 있다는 판타지 생산해내는 선교 운동

한국 개신교의 해외 선교 운동이 가지고 있는 담론적 차원들을 근본주의 성향을 가진 단체들에 제한하여 살펴보았다. 선교 운동은 언론을 통해서 종교 갈등이라는 국제적 정세 등과 같은 거시적 차원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갑작스러운 큰 변화, 미지의 것과 낯설음에서 오는 위기감 등 미시적인 차원까지, 개인이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 상당함을 예측하게 하는 분야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 운동은 그동안 '해외 선교 열풍'이라고 할 만큼의 많은 수의 개인들과 교회들을 동원하고 결집시키는 데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구체적인 통계적 수치로도 그러한 성과들을 확인한 바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선교 동원 운동이 정체성 운동이라는 담론으로 '새로운 한국인'으로서 '한국(적)인 선교사'라는 정체성을 절합해내고 그 시의성과 공동의 미래를 향한 사명감을 부여하는 방식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정체성은 현실적 세계 질서에서 특권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과 관계 속에 놓여 있다. 또한 개신교의 권위적인 경전 속에서 특별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 민족인 '유대 민족'과의 상징적인 계보 안에 놓여 있는 것임을 확인하였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분쟁 상황과 현재 진행 중인 미국발 전 지구적 경제 위기, 비서구권의 개신교 인구 증가와 다른 한편의 유럽 개신교 인구의 감소 등과 같은 현실을 어떻게 축자영감설에 기반을 둔 성서 무오설에 근거하여 영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구성해내는지도 살펴보았다.

더불어 '적'으로써 이슬람 세력과 북한의 일부를 배치하고 위기를 조성하면서 동시에 근본적인 가치나 혹은 그것을 수호해야만 하는 당위성과 긴급성을 확보해내는 방식은 여전히 한국 개신교의 근본주의 진영이 배타성과 공격성을 유지하게 하는 지점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음을 상기시키기도 하였다.

민족으로 평등한 모든 국민들이라는 의식은, 교회 안에서 모두가 동등한 형제들이라는 의식과 그 친연성을 가진다. 미국과의 현실적 권력 관계를 극복하여 세계 선교의 지형 안에서 한국과 미국을 동등한 경쟁자로 혹은 그 형제이자 협력자로 그려내고 있는 것은, 우리가 타인을 모방할 수 없는 지점에서 일어나는 상징적 동일시가 실패하는 바로 그곳에 작동하게 된다.

'한국(적)인 선교사'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선교의 대안으로 모색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개신교 해외 선교 동원 운동은 그 간극을 은폐하면서 '미국'과 같아지려는 욕망 혹은 '미국'과 같아질 수 있다는 판타지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계급을 재현하는 표상이 사라진 자리에 번성하는 신파극인 민족화로의 재현과 이데올로기는 장엄하게 자기를 포장하거나 적과 위기를 과장한다. 외부에 대한 심리적 기제라는 측면에서 기본적으로 민족주의는 저항적인 속성을 갖지만, 문제는 이런 저항성이 외재적 대상을 설정해서 내면의 분열 봉합해 버리는 순간(이택광: 50)일 것이다. 민족화를 통한 결집은 그러하기 때문에 끊임없는 외부, 적, 타자들을 동시에 생산한다. 분열과 위기감을 봉합하고 해결해야 할 영광스러운 과업으로 전진한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한국 개신교회에 새로운 활력을 주고 있다.

한국 개신교의 해외 선교 담론의 그 형식적 논리 속에 한국의 다양한 정치적 현실의 흔적이 등록되어 있었다. 배제를 통해 통합을 이룬 특정한 그룹의 정체성이 함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정체성 정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선교 운동은 민족주의와 관련된 정체성 운동이 일상 속에 잠들어 있던 유토피아적 충동을 흔들어 깨우는 실천적 처방일 수는 있다. 하지만 전지구화의 시대에 그 인식적 기능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상기하게 한다.
 
문화 연구의 대중화에 기여한 학자로 손꼽히는 스튜어트 홀은, 정체성이 하나의 응축되고 동질적이며 통일된 구성체가 아니라 파편화되고 이질적이며 모순된 주체가 문화적 레퍼토리에 의해, 내러티브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문화적 정체성을 다양한 사회적 세력들의 이데올로기 전략과 경합에 의해(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자리매김 된(혹은 절합된) 주체라고 했다. 누가 지배하고 지배받을 것인가, 누가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가, 누가 우리 편이고 또 적인가 등의 문제는 그 문제가 어떤 의미, 상징, 가치에 의해 재현되는가, 즉 절합의 양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크게 좌우될 것이다.

모든 형태의 지배적인 질서는 정당화되어야 한다고 전제된다면, 정당성의 자원은 언제나 문화적 의미 체계로부터 동원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어떤 지배적인 문화를 문제화하려는 홀의 문화 연구를 정치적 실천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겠다. 홀은 정체성이 문화 정치 영역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가 호소하듯이 '정체성 정치'에서 '정체성 정치학'으로의 전환은 균질적이며 통일된 정체성에 근거한 정치를 자신이 서 있는 발화 입장과 그것의 문화적 특수성을 재고하였을 때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안에 '많은 것'을 인식하는 차이의 정치학, 발화 입장의 특수성을 부각시키는 자기 반영성의 정치학, 우리가 취하는 정치적 입장이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상이한 환경에 따라 재위치 된다는 맥락 의존성에 대한 인식 등은 우리가 관계 맺는 한국 사회와 타자와의 대화와 공존을 합의해 나가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현실적이고도 담론적인 위치가 될 것이다.

분명 이 글의 연구 대상은 근본주의 성향의 단체들에 한한다. 단체별로도 차이점들이 확인되었지만, 민족과 종교의 관계를 살펴보는 데는 유의미한 지점들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추후에 좀더 전체적인 해외선교운동 담론을 정리한다면 이들과 공유하면서도 또한 달라지는 지점들이 무엇인지가 더 명확하게 잡힐 것으로 보인다.


박설희/카이로스 연구원
현재 중앙대 문화연구(학)과에서 석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관심분야는 문화연구와 페미니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선교운동 및 정책, 종교와 젠더 등이다.
(to_dasom@naver.com / Twitter @ n52ll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