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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세월호 유가족, "계몽적 희생자들"의 등장


[특별기고] 

1. 세월호 사태의 특이성 : 유가족의 형상

이번 세월호 사태는 이전에 없었던 독특한 한 현상을 만들어 냈는데, 그것은 희생자 유가족들이 보여주고 있는 고통의 표현방식이다.


삼풍백화점 붕괴(502명 사망), 창경호 침몰(330명 사망), 남영호 침몰(323명 사망), 서해훼리호 침몰(292명 사망), 대한항공 747 피격(269명 사망), 대한항공 괌추락(225명 사망), 대구지하철 방화(192명 사망), 경주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10명 사망),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23명 사망) 등 우리는 수 많은 대형사고를 겪으면서 살아왔는데, 내 기억에는 그 동안 어떤 경우에도 이렇게 유가족들이 사태해결의 중심에 부각된 적은 없었다. 아니, 이전에는 그들의 존재 자체가 목격된 적이 없었다.


물론 세월호 사태의 해결은 지지부진하고, 현재 진행중인 국정조사도 야당의 전략부재와 여당의 말도 안되는 생떼로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유가족을 대놓고 무시하는 새누리 조원진 일당의 태도를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여전히 유가족들이 그 중심에서 제외되지 않고 있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언론과 SNS는 그 파급효과를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연일 유가족들의 주장과 현장의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유가족 대표 유경근씨의 주장은 국정조사장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은채 원인규명의 타당성과 논리적 근거를 보여주고 있고(희생자들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 주장과 분노의 근거들도 국회의원들의 구차한 변명을 압도한다. 그들이 발표하는 성명서나 집회장에서의 파토스의 발산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흡입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2. '계몽적 희생자들'의 등장?

이는 내가 보기엔 우리나라 최초의 '계몽적 희생자들'의 등장이다. 그러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아마도 이들은 고통을 언어화하고 내재화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참사를 해석하는 죽음의 문화정치학으로 보면, 희생자들의 대응은 주로 한풀이와 최대한의 보상을 위한 각개전투식 감정발산에 모아져 있었다. 그래서 대오는 늘 흩어졌다. (전 경찰청장인 조현오는 이를 비하해서 ‘동물처럼 울부짖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는 식으로 말했다) 따라서 그 죽음들은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언어로 정리되어 축적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 죽음에 대한 해석의 권한은 오직 권력자들에게 주어졌고 그들은 자기들 편한대로 모든 인과관계를 마무리함으로써 희생을 통한 대중의 의식 진보를 저지해왔다. 

그런데 이번의 유가족은 분명히 다르다. 그들은 뭉쳐있고 여론을 선도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것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는 언론들은 그저 흥미를 위해서라도 이를 연일 보도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유가족들은 쉽게 해산되지 않을 것이다. 그분들은 보상에 연연하지 않은채 진상규명을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으로 보인다. 아마 아이들을 기념할 수 있는 기구나 정기적 행사를 만들 것이고, 아이들의 꿈과 재능을 기념하는 상징 형상물(회고집, 회화집, 사진집, 웹사이트 등)을 구체화할 것이다. 아이들의 인생을 현실의 삶과 연계하는 방식이 그러한 시공을 초월한 회상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마치 80년 광주의 하나됨(시민들 간의 한 건의 도난이나 강도, 폭행 사고도 벌어지지 않았다)을 연상시킬 정도로 현실적이자 초월적이다.


이번 국정감사를 봐서도 알겠지만, 우리나라 정치는 여전히 후안무치한 후진성과 패륜적 패거리 문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듯 하다. 현재 보고 있는 상황은, 진상규명 보다는 여전히 대통령에게 불똥이 튀지않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 보인다. 유가족과 국민들은 이를 보며 분노한다.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쉽게 민족비하적 사고('역시 우리 나라는 안돼'라는 식의)에 빠지거나 자포자기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3. 죽음들이 사회를 뒤흔들 것 : 정치인들만 모르는...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분명히 변하고 있다. 이전과는 달리 이러한 죽음들은 이제 우리 사회의 깊은 곳을 흔들고 있고, 의미를 내면화시키고 있다. 정치가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3.1운동은 고종의 승하로 불이 붙고, 그 인산일 이틀 전에 발발했다. 1926년 6.10만세 운동 역시 순종의 죽음으로 불이 붙었고, 그 인산일에 일어났다. 4.19혁명은 최루탄이 눈에 박힌 김주열 열사의 시신 사진이 보도된 며칠 후에 일어 났으며, 6.10항쟁 역시 이한열 열사의 죽음 하루 뒤에 일어 났다. 그러나 그 사건들은 즉흥적 분노로 촉발된 것이 아니다. 이미 내면의 응축된 힘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우리 속에는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공감하는 독특한 문화인류학적 장치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사고와 죽음은 우리에게 일종의 정치학이 되었고 발화점이 되었다. 그것은 대부분 개별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대형사고는 그러한 사회적 의미를 구조화할 힘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부터는 사고를 둘러싼 모든 분야의 움직임이 즉시 '정치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그 중심에 '계몽된 희생자들'이 존재하며 그들이 여론을 선도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제 언어화, 내재화가 시작되었고, 그것은 잊혀지지 않은 채 꽤 오랫동안 우리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우리의 바램대로 '잊지 않기' 위해서는 형상화된 전승 수단인 언어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희생자 가족들의 입을 통해 나와야 한다. 그것이 반드시 혁명적인 모습으로 드러나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제까지 어떤 혁명이나 운동도, 그 이전부터 축적되어 온 '저변'이 없이 이루어진 경우는 없었다. 그래도 아직 우리나라 정치는 대세로 보면 진보하고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눈 앞에 보이는 현상 만으로 비관할 일이 아니다. 아이들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글_최규창 <고통의 시대, 광기를 만나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