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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저 분명히 해둘 게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한 원인규명과 책임소재를 파악하는 문제에 있어서 흔히 구원파로 알려져있는 기독교복음침례회[1]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단언컨데 사건의 본질을 흐리려는 물타기에 다름 아니라고 본다. 구체적인 사고의 원인과 경위에 대해서는 보다 자세한 조사결과를 기다려보아야 하겠으나 이제껏 공식적으로 발표된 사실만을 토대로 미루어 보건데[2] 세월호 사건에 얽힌 각종 의문을 풀어줄 열쇠는 일차적으로 청해진-해운관련협회-해경-해수부-정치권으로 이어지는 권력과 검은 돈의 유착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구조적 적폐에 대한 조사는 소홀히 하면서 구원파 들쑤시기에만 집착한다면, 수사당국은 정작 중요한 몸통은 가만히 내버려 둔 채 곁가지만을 쳐내려 한다는 의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새삼 구원파에 주목하고자 하는 까닭은 세월호 침몰사고와는 별도로 그로 인해 촉발된 구원파에 대한 각종 비판들이 도를 지나치다 못해 종종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비방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나 하는 판단 때문이다. 물론 종교, 그중에서도 특히 사회적으로 이단혹은 사이비취급을 받는 신흥종교단체가 황색언론과 호사가들에게 더할나위 없이 만만하고 물어뜯기 좋은 떡밥이라는 사실이 비단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닐 게다. 하지만 탤런트 A씨 혹은 가수 B씨하는 식으로 구원파 교회에 출석하는 연예인의 이름을 들먹인다던가, 개신교계 이단사냥꾼들이나 구원파에서 이탈한 신도들같이 기본적으로 이 종교단체에 적대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이들에 의존해 그들의 시각에서만 구원파를 소개한다던가, 몇몇 편파적인 정보를 기반으로 모든 구원파 신도들을 지극히 비이성적인 광신도로만 묘사하려고 한다던가, 또는 구원파의 역사와 교리에 대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설명은 생략한 채 ‘~카더라라는 식의 악의적 추측만 연신 늘어놓는다던가 하는 것은 오로지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목적으로 종교를 소재로 한 일종의 포르노그래피를 찍어내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처럼 구원파를 악마화하는데만 급급하다 보니 세월호 침몰사고의 경위를 설명함에 있어서도 뜬금없는 문화적-종교적 환원론(reductionism)이 유령처럼 떠돌아 다니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예컨데 여러 주요 언론들을 통해 세월호의 선원들 대부분이 사실은 구원파 신도들이며 이들은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구원파 교리를 믿기 때문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승객들을 내버리고 도망칠 수 있었다는 둥 또는 청해진이라는 회사 자체가 광신적 종교집단처럼 무조건적인 상명하복의 논리에 따라 운영되어 왔다는 둥 하는 식의 근거없는 소문들이 막무가내식으로 유포되어 온 게 사실이다. 정작 기독교복음침례회측에서는 이런 비난들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악성 루머일 뿐이라고 거듭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지만,[3] 이들의 반박에 제대로 귀를 기울여주는 이는 극소수에 머물러 있는 게 현 실정이다. 

 

3. 기독교복음침례회에 대한 자극적인 비방이 어떤 면에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소재를 냉철하게 따져보는 데 있어 도리어 방해가 되고 있지 않나 하는 판단에 이 글에서는 세월호 사건 이후로 구원파와 관련해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세간의 각종 오해 및 편파적 이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무차별적인 돌팔매질로 인해 애꿎은 사람들까지 다치게 하는 것은 될 수 있으면 피해야 할 일이기도 하거니와, 피차간에 합리적인 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비판을 할 때 하더라도 되도록 구원파의 정확히 어떤 점이 또 어떤 입장에서 비판받을 만한 건지 분명히 해둘 필요도 있을 것이다.  

 

4. 일단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기독교복음침례회가 애초에는 일종의 평신도 교회개혁운동으로 시작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구원파 운동은 1960년대 권신찬과 그의 사위 유병언을 중심으로 한 일군의 개신교 신도들이 기성교회에 만연한 교권주의와 형식주의를 비판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가정성경공부와 여름철 특별 수양회 같은 탈-교회적 모임을 통해 일종의 파라처치 (para-church) 운동으로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 사실은 이단연구가 탁명환이 (다분히 비판적인 입장에서) 모아놓은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이에 따르면 평신도복음선교회’(기독교복음침례회의 전신)는 기본적으로 제도로서의 교회보다는 성도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자체를, 성직자와 평신도간의 수직적인 교권체계보다는 구원받은 성도들간의 수평적 나눔과 교제를, 주일성수와 십일조, 그리고 기도나 찬송으로 대표되는 율법적-의례적 행위보다는 개인의 신앙에 기반한 구원의 확신과 깨달음을 중요시했다고 정리되어 있다.[4] 이를 종교조직 유형론에 비추어 달리 표현해 보자면, 구원파 운동은 초신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신앙적 확신과 도덕적 순수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나 일단 성도로 받아들여진 이들에게는 비교적 격의없이 어느정도 평등한 종교적 지위를 인정해주는 전형적인 섹트 (sect)’ 유형의 종교단체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어찌보면 구원파운동은 종교엘리트들이 종교자본의 생산양식 (mode of production)이라 할 수 있는 의례와 율법을 독점적으로 소유하면서 자신들의 영향력 하에 있는 순종적인 평신도에 한해서는 무차별적으로 구원재(salvation goods)를 배분해주는 (그 대표적인 예가 유아세례다) 기성 교회 (church)’ 모델과는 갈등관계에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5.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이제껏 구원파에 가해져온 몇몇 주요 신학적-교리적 비판들이 기실 종교사에서 교회유형의 제도화된 종교가 섹트유형의 신흥종파를 견제하기 위해 심심찮게 사용해오던 레퍼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중 논란의 중심에 있는 몇가지만 살펴보자면, 일단 구원파에서는 기도나 예배를 비롯한 종교적 의례를 아예 무시하기에 이단일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있다.[5] 하나 기독교 전통에는 가톨릭이나 정교회, 그리고 성공회처럼 상대적으로 엄격한 권위체계와 의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회(church)” 유형이 있는가 하면 또 퀘이커 운동이나 그리스도의 교회, 그리고 침례교나 오순절 운동처럼 상대적으로 형식적 틀에서 벗어난 예배 방식을 선호하고 가능한한 성직자의 중개없이 신과 평신도간의 직접적인 교감을 장려하는 섹트유형의 종파도 존재해 왔다. 이처럼 종교적 권위의 독점과 의례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흐름이 기독교 역사에서 하루 아침에 생겨난 게 아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여러 교단 (denomination)들이 대부분 처음에는 섹트형태로 시작했다가 (퀘이커나 아미쉬 공동체처럼 어느정도 그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교회형 단체로 제도화의 과정을 거쳐왔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구원파의 반-형식주의와 반-교권주의적인 측면에만 주목해 이단이니 사이비니 몰아붙이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야박하고 부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가나안 성도, 소속없는 믿음 (believing without belonging), 그리고 이머칭 처치 (emerging church) 같이 제도로서의 교회를 개혁하거나 거기서 이탈하려는 흐름이 그다지 낯설지 않은 오늘날의 상황에서 성직주의(clericalism)나 의례주의 (ritualism)적 입장에서 구원파를 비판하는 것은 다소 구시대적인 발상이 아닐까 싶다.

 

6. 이와 마찬가지로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있는 구원파에서는 죄를 지어도 괜찮다더라라는 비판도 다시 한번 고려해 볼 수 있겠다. 언뜻 이 교리는 마치 구원파에서 신도들에게 무턱대고 면죄부를 부여하여 결과적으로 신도 개개인의 양심을 완전히 마비시키는 효과를 초래하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엄밀히 얘기해서 기독교복음침례회는 신자들이 일단 (영적으로) 구원의 확신에 도달한 이후에는 설령 (육적으로) 다시 죄를 짓게 되더라도 그들의 영이 구원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무효로 만들지 않는다는 구원관을 갖고 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다시 말해 죄를 죄어도 상관없다라는 말은 (어떤 면에서는 칼빈주의자들이 얘기하는 예정론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이미 구원의 길에 들어서게 된 성도들은 그들이 일상에서 저지른 죄들로 인해 구원의 약속이 취소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걸 갖고 구원파 신도들은 아예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상당한 논리의 비약이다. 실제로 권신찬은 탁명환에게 직접 자신의 구원관을 설명하면서 영은 일단 구원 받으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육신이 지은 죄는 이 세상 사는 동안 그 보상을 받고 심판 받는다라고 답변했다고 한다.[6] 즉 이는 구원파에서도 구원에 대한 확신이 선 이후 지은 죄에 대해서도 일정한 징벌과 보상체계를 인정하고 있다는 애기며, 이러한 사고방식은 개신교 전통 일반에서 얘기하는 신의 칭의(justification)와 그에 뒤따른 성도의 부단한  성화(sanctification)과정에 대한 교리와도 어느 정도 그 맥이 통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7. 구원파의 반-의례주의와 죄론/구원론에 대한 시비는 이런 식으로 해명할 수 있다 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는 문제는 기독교복음침례회의 과도한 분파주의와 그 지도부의 배타적-독선주의적 성향이다. 기본적으로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신자들은 자신들의 복음관과 구원관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보니 때로는 이게 지나쳐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문제제기— ‘당신이 비록 교회를 다니고 있다 하지만 과연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 를 중심으로 종종 기성교회와 지속적으로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켜 왔다. 물론 보수적인 한국 교회의 토양에서 이런 공격적인 선교-전도 방식이 비단 구원파에 국한된 얘기는 아닐 테지만, 어쨌건 구원파의 타종교/타종파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는 교회간/종교간의 대화와 화합을 중시하는 에큐메니칼 운동 입장에서나 신념의 문제에 있어 개인의 자율성과 자발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세속적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분명 껄끄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8. 더군다나 구원파의 이같은 편협하고 독선적 태도는 때로 그 내부의 소수 의견을 향해서도 배타적으로 적용된 역사가 있다. 구원파에서는 자신들이 성직자와 평신도의 엄격한 구분을 없애고 성도들간의 수평적 교제를 이상으로  삼아 왔다고 하지만,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교주도 없고 성직자도 없다고 하지만 (유병언은 구원파 신도들 사이에서 단지 회장으로 불리울 뿐이다), 그 안에 암묵적으로 일종의 지도부 (inner-circle) 역할을 하는 집단 혹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집단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들이 때때로 내부 반대 세력이나 이탈자들을 엄격히 통제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해 왔다는 점이다. 이는 1983년 기독교복음침례회로부터 이요한 중심의 대한예수교침례회가 갈라져 나온 정황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당시 구원파의 중앙위원 중 한명으로 활동하던 이복칠 (후에 이요한으로 개명)과 그의 동료들은 유병언을 중심으로 해서 교회가 기업활동에 직접 관여하는 것에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던 모앙인데, 그러다가 유병언이 사장으로 있던 삼우트레이딩의 직원 30명에게 집단적으로 감금당해 협박과 폭행까지 당했었고 그로 인해 결국 구원파에서 갈라져 나와 대한예수교침례회를 설립했다고 한다.[7] 이건 외부적으로 우리그들을 철저히 분리해서 사고하려는 구원파의 종파주의적 성향이 때로는 이렇게 내부적으로도 지극히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발현된 예라 할 수 있을텐데, 이러한 소수 의견에 대한 통제는 구원파가 애초에 추구하던 평신도 중심의 복음 공동체라는 이상과 정면으로 배치될 뿐만 아니라 도리어 기성교회의 권위주의적인 면을 답습해가는 퇴행적인 행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9. 물론 더 자세하고 풍부한 논의가 필요할 테지만 교리적 차원에서 세간의 구원파 이단시비에 대한 검토는 이 정도 선에서 접기로 하고, 이제는 기독교복음침례회의 경제적인 측면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기로 하자. 말했다시피 구원파는 애초에 평신도 중심의 파라처치 운동으로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이미 유병언은 그 내부에서 평신도 전도자로 활동하는 한편으로 외부적으로는 몇몇 소규모 사업을 벌이는 기업가의 면모도 지니고 있었다 한다 . 그러다가 1970년대 중반부터, 그러니까 권신찬과 유병언이 거세진 기성교회의 반발과 견제로 인해 강제적으로 극동방송에서 퇴출되고 난 뒤부터, 유병언은 구원파 활동을 통해 모인 자금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사업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래서 유병언은 76년 삼우상사를 인수하는 것을 시작으로 79년에는 건강식품 제조업체인 세모를 설립하고 80년대 들어서는 한강유람선 사업에까지 진출하는 등 2천년대 초반 경영일선에서 은퇴해 그 자식들과 측근들에게 대부분의 지분을 넘겨주기 전까지 약 수십개의 관계 기업체를 거느린 세모그룹의 회장으로 활동해 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 이 지점에서 이번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기독교복음침례회가 세모그룹과 정확히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분명 하나는 구원을 추구하는 종교단체요 다른 하나는 이윤을 좇는 종합기업체이다. 그런데 이 둘은 종교인이자 기업인인 유병언이라는 인물을 매개로 해서 둘인 듯 하면서도 하나요 하나인 듯 하면서도 서로 또 분리되어 있는 애매모호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 같다. 물론 구원파 신도이면서 세모그룹과 상관없이 별도의 경제생활을 해온 사람도 있고, 역으로 세모그룹과 관계된 직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신도가 아닌 사람도 있다고 하니, 모든 구원파 신도들에게 있어 종교와 경제 활동이 완전히 겹치고 있다고 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복음침례회의 명의로 지난 5 15일에 발표된 성명서를 보면 세월호 사고 이후 구원파 신도들 가운데 직장을 잃은 사람들과 더 이상 영업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수십명씩 늘어나고 있다는 표현이 있다.[8] 달리 말해 구원파 신도이면서 동시에 세모그룹의 직원인 사람들 혹은 그와 연계된 개인사업자들 (예컨데 세모그룹 소속 체인점의 가맹점주)의 수 역시 적잖게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한 구원파 신도는 최근에 한겨레 신문 기자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기독교복음침례회와 유병언 일가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유병언 일가의 명의로 재산을 소유한 것처럼 되어 있어도 그것은 우리 모두의 재산이다. 금수원   땅의 경우 침례회가 100% 지분을 갖고 있다. 1997 (세모가) 부도난 뒤 많은 신자들이    신용불량자가 됐다. 신용불량자 명의로는 아무것도 못한다. 유 전회장이 그래서 (신용불량자가 아닌) 자녀들에게 (교회 재산 등을 맡아달라고) 부탁한 것이다.[9]

 

여기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일단 상당수의 구원파 신도들이 세모그룹의 지분을 갖고 있는 투자자이거나 채무상환보증을 선 연대보증인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모그룹이 부도가 났다고 해서 일반 신도들까지 신용불량자의 처지로 전락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알 수 있는 것은 구원파 신도들이 대체적으로 유병언 일가를 구원파 공동의 재산을 맡아 관리해주는 위탁인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의 공동 재산이 비록 유씨 일가의 명의로 되어있을지라도 그것이 유병언 혹은 그 아들들의 사유물로 전용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심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다시말해 구원파 소속 신도들은 자신들과 종교적인 신앙 체계 (creed)를 공유하고 있는 유병언을 경제적으로도 신용(credit)하면서 그를 매개로 해서 세모그룹과 일종의 종교적-경제적 운명공동체 관계로 묶여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11. 이같은 기독교복음침례회와 세모그룹간의 관계를 감안해본다면, 세월호 사고의 여파로 인해 유병언 일가 뿐만 아니라 많은 구원파 신도들 역시 앞으로 아주 험난하고 혹독한 시련의 길을 걷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검찰은 유병언 전 회장을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이자 배후의 최고결정권자일 것이라 단정짓고 그 일가와 측근들 명의로 되어있는 모든 재산을 속속들이 찾아내 국고로 환수, 궁극적으로 이들에게 세월호 사고에 대한 배상 책임을 물리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상태다. 그러다보니 시중은행들은 부도가능성이 짙어 보이는 세모그룹 관련 전 계열사들을 상대로 발빠르게 자금줄을 동결하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세월호 사고 이후 분노에 휩싸인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는 세모그룹 관련 제품 전반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일어나고 있는 추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앞서 말했다시피 구원파 신도들 중 세모그룹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역시 여러 면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장 상당수의 신도들이 직장을 잃고 실직상태에 빠지게 된 건 물론이거니와, 유병언 관련 명의로 되어있는 모든 재산이 압수 대상으로 지목되어있는만큼 구원파 신도들 입장에서는 이제껏 자신들이 물심양면으로 협력하여 만[들어온] [생존의] 터전까지도 전부 빼앗기게 될 위험에 처해있는 것이다.[10] 유병언 일가의 경우야 만약 그들이 직간접적인 형태로 청해진해운의 지분을 갖고 있고 그 경영에 일정부분 관여한 게 사실로 밝혀진다면 마땅히 그들에게 세월호 사고에 대한 일말의 책임이라도 물게하는 게 도리에 맞다 하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구원파 신도들은 종교적 기업 혹은 기업적 종교에 소속되어 있다는 이유로, 또 종교인이자 사업가인 그들의 지도자를 신뢰했다는 이유로, 다시 말해 신자이면서 동시에 세모의 피고용인, 투자자, 또는 연대보증인이라는 이유로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검경의 대대적인 압수수색 전후에 구원파 신도들이 금수원에 모여들어 순교운운하며 스스로를 회생할 가능성이 없을 만큼 무참히 짓밟[]” 상태에서 앞으로 그저 얼마간 숨 쉴 시간만 남[]”있는 시한부적인 삶을 살고 있노라고 한탄하는 것이 한갓 허언이나 단순한 엄살로만 들리지 않는다.[11]

 

12. 앞으로 세월호 사고에 대한 정부의 수습방침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기독교복음침례회는 어쩔 수 없이 산산이 공중분해되어 완전히 소멸되거나 아니면 그 세가 상당히 축소된 상태에서 간신히 그 명맥만 유지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지도자들은 감옥에 갈 것이고 그 모든 재산은 몰수될 것이며 신도들은 각자 제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것이니 말이다. 종교사에서 수많은 종파운동이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금새 사그라들었던 걸 되새겨보면, 제 삼자의 입장에서야 구원파의 흥망성쇠 역시 그저 담담한 눈길로 바라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안타까움으로 남는 건 제도종교의 꽉 짜여진 틀에서 탈피해 보다 수평적이고 탈형식적인 대안교회를 추구했던 구원파 운동이 외부와의 갈등 속에서 점차 자기들만의 폐쇄적인 경제-종교 공동체로 변질되어 끝내는 유병언을 정점으로 하는 족벌 자본주의적 구조에 다시금 포박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달리 포현하면 이는 종교적 자유와 주체성에 대한 실험이 경제적 예속성이라는 또다른 덫에 걸려 결국엔 한갓 덧없는 백일몽으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특히나 구원파의 평신도들, 분명 이들은 한때 기성교회의 성직주의, 교권주의, 의례주의, 그리고 율법주의에 반발해 거기서 과감히 뛰쳐나올 용기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구원파라는 종교-경제적 대안 공동체에 들어간 뒤부터는 자신들도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세모의 각종 사업체들이 유병언 일가와 그 측근들에 의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가 이번 세월호 사고 이후 졸지에 자신들의 직장과 삶의 터전까지 잃어버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 구원파의 신도들 역시 어쩌면 이번 세월호 사건의 가해자라기 보다는 또다른 피해자일지도 모르겠다. 배든 기업인든 종교단체든 국가든 어딜가나 이기적인 탐심과 알량한 권력욕에 가득찬 선주선장은 넘쳐나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들은 마이크를 움켜쥐고 승객들과 직원들과 신도들과 시민들에게 자꾸 가만히 있으라방송을 해댄다. 구원파 신도들 역시 그렇게 가만히있다가 침몰하는 기독교복음침례회-세모그룹과 함께 가라앉게 될 모양이다. 심히 안타까울 뿐이다.


글_서명삼(카이로스 회원, 시카고대 종교학 박사과정수료)  

 

 



[1] 편의상 이 글에서는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를 혼용해서 사용한다. 구원파라는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 이 종교단체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폄하하려는 뜻이 없음을 처음부터 분명히 해둔다.

[2] 이 글은 일단 세월호 사건의 근본 원인을 무리한 선박개조와 선박운행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전자하에 씌여졌다. 그렇다고 해서 좌초설을 비롯한 다른 여러 가설들을 완전히 터무늬없는 음모이론으로 배격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역시 여기서 밝혀두고 싶다.

[3] 예컨데 기독교복음침례교 명의로 크라운호텔에서 발표된 4 15일자 기자회견문을 보라. <http://www.ebcworld.org/>

[4] 탁명환과 원세호, 세칭 구원파의 정체: 권신찬계의 주장과 그 성서적 비판, 국제종교문제연구소, 1980. 

[5] 이 주장은 전 구원파 신도였다가 탈퇴한 정동섭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정동섭, 엄무환과의 인터뷰, 청해진해운 유병언 교주는 종교 빙자 상습 사기범, 교회와 신앙, 2014 423,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128>.

[6] 탁명환과 원세호, 상게서, 30.

[7] 경향신문, 1983 2 14, 11쪽을 참고하라. Cf. “’구원파와 관련한 대한예수교침례회’ (생명의말씀선교회)의 입장문,” 20145 9, <http://www.jbch.org/kor/pop/>.

[8] 기독교복음침례회, 우리는 검찰에 저항하는가! ,  2014 5 15.

[9] 조계웅, 허재현과의 인터뷰, 우리는 유병언 교주의 광신도 아니다」『한겨레』, 2014 6 13.
 <http://www.hani.co.kr/arti/ISSUE/124/642281.html>.

[10] 기독교복음침례회, “우리는.”

[11] 기독교복음침례회,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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