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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토요일, 이화여대에서 한국여성학회가 주최한 <낙태 불법화와 여성> 포럼이 열렸다. 사회자로는 김은실(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이, 그리고 양현아(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와 이윤상(한국성폭력상담소)이 발제자로, 하정옥(카톨릭대학교 교양교육원), 배은영(서울대학교 여성학협동과정), 이나영(중앙대학교 사회학과)이 논평자로 섰다. 여기에서는 많은 쟁점들을 포괄하고 있던 <낙태 불법화와 여성> 포럼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보고자 한다.


<낙태 불법화와 여성> 포럼에서 발제자와 논평자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장 첫 번째로는 낙태가 생명에 반대되지 않으며, 따라서 어머니와 태아는 대척점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때 등장하는 생명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빚어지는데, 낙태 담론에서의 생명은 교묘하게 추상화되고, 이전의 문법들을 완전히 무시한 채로 ‘태아=생명’이라는 도식이 마치 절대적인 것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해당 포럼의 발제자인 양현아는, 가능태로서의 생명인 태아보다도, becoming으로서의 생명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becoming으로서의 생명은, 출생보다도 양육과 존속에 방점을 찍는다. 이러한 생명관에 입각했을 때 생명을 존중한다는 것은, 단순히 아기를 낳는가 아닌가와 크게 관련짓지 않는 문제다. 그것은 어머니의 사고(maternal thinking) 개념에서 더욱 구체화된다. 어머니의 사고란 사라 루딕(Sara Riddick)이 제안한 개념으로서, 자신의 신체, 일, 가족, 파트너와의 관계, 태어날 아이가 놓일 환경과 조건 등 복합적인 요소들을 결정의 범주 내부로 귀결하는 사유 방식을 지칭한다. 이에 따라 보았을 때 임신 여성 역시 어머니로 간주되어 임신 여성의 결정 역시 이러한 ‘어머니의 사고’에 위치하게 된다. 어머니의 사고 아래 결정된 임신 종결은 어머니와 태아를 반대급부로 위치 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연속선상으로 놓는다. 낙태 행위는 해당 여성의 신체적 안위라기보다도 임신의 그 자체로 태아와의 운명 공동체적 성격을 갖는 것이다. 따라서 낙태는 생명에 반대된다기보다도, 오히려 존속으로서의 생명관에 입각하여 결정된, 생명의 연속이다.


두 번째로는, 낙태 범죄화와 낙태율 간의 상관관계는 명료하지 않다는 것이다. 낙태를 합법화한 여러 국가들이 존재하지만, 해당 국가들에서 낙태율은 매우 낮은 추위로 나타난다. 이것은 낙태가 범죄 행위인가 아닌가와 상관없이, 낙태에 영향을 끼치는 주요 요인들이 있다는 점을 명시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요인들은 무엇인가? 이 내용은 바로 위에서 지적된 내용들과 일치한다. 그것은 임신부가 다루어지는 사회적 상황들, 그리고 아이가 자라날 수 있는 요건들 등과 같은 사회 일반의 정책과 인식들이다. 누구나 알고 있다 시피, 여전히 여성의 출산 후 복직은 장려되고 있지 못하고, 이에 따라 대다수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직장의 이유 때문에 낙태를 선택하도록 강요된다. 낙태가 ‘합법’이기 때문에 낙태를 하는 것이라기보다, 육아 환경이 조성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낙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낙태 범죄화는 오히려 작금의 상황을 직면하지 못한 채로 허상의 적을 공격하는 것이다. 특히 낙태 금지 법안에는 몇 가지 예외 조항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 예외 조항이라는 것들은 임신부의 병이나, 혹은 강간의 여부 등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강력한 반발이 존재하는데, 강간을 입증하는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할뿐더러(혹자는 이에 대해서 ‘강간 입증 절차 끝나면 애가 뛰어다니겠네.’라고 말했다.), 임신의 ‘동기’를 과연 누가 추출해낼 수 있냐는 것이다. 따라서 발제자는 이에 대하여, 낙태 금지 법안에 기재된 정당화 조건들을 기한 규제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임의 여부, 강간의 여부를 떠나 원치 않은 임신의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고, 그것들의 동기에 대해서 밝혀낸다는 것은 허공에 뜬 이야기다. 따라서 현재의 낙태 금지 법안은 낙태의 정당화 규정을 모두 삭제하고, 임신기에 따른 이유 불문의 낙태 시행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지금까지 이루어졌던 낙태 담론들은 모든 주체들을 생략하고 여성과 아이만을 남겨놓았지만, 그 담론은 실제로 여성을 화자, 청자의 자리에서 모두 배제시킨 채 오직 여성을 담론의 장으로서만 취급할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61년 이승만 정권 시기에 낙태를 암묵리에 승인했던 바 있다. 이 당시 우리나라는 저출산 장려 정책을 채택하고 있었고, 이러한 정책 하에 낙태가 행해졌던 것이다. 현재에는 지나치게 낮은 출산율로 인하여 정부는 가족에 대한 우대 정책, 출산 장려 정책 등을 시행하고 있다. 이것은 Drucilla Cornell이 말한 바, 낙태가 여성에게 선택지로 열려 있고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고 해도, 그것이 여성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고양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으면 도리어 여성성의 가치절하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그것은 저출산이든 다출산이든, 여성의몸 자체를 ‘아이를 낳는 여성의 몸’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러한 여성의 몸만을 정상성의 범주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낙태 담론은 수많은 주체들이 개입되어 있다. 그곳에는 정부가 있고, 정부를 보조하는 종교들이 있으며, 한편으로는 남성들의 관점만을 주 축으로 삼는다. 그러나 현재의 낙태 담론은 낙태라는 문제 안에서 등장하는 주체를 오직 ‘여성’과 ‘태아’로 한정시킴으로써 다른 여러 주체들을 과감히 삭제해버린다. 이것 자체가 바로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담론의 장으로서밖에 존재하지 않는 여성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해버리는 행위인 것이다.


이에 대한 논평에 대하여 상당히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여성의 낙태가 ‘권리’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공통적으로 제기되었다. ‘권리’라는 것은 여성의 문제를 추상적 개인의 문제로 한정 지어, 한편 사적 영역으로 문제를 귀속시키는 감이 없지 않다. ‘권리’라는 문제는 집합적 개인으로서의 여성을 간과하고 무시하며, 따라서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끝내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로 끊임없이 자유주의의 틀 내부에서 돌고 도는 싸움이 된다.


또한 이와 연장선상으로, 낙태는 권리를 탈(脫)한 사유 뿐 아니라, 국가마저도 초월하여 사유해야 한다. 낙태는 비단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 섹슈얼리티, 계급, 인종 문제까지 포괄한다. 저출산/다출산을 넘어 이 담론은 ‘(아이를 낳는) 여성의 몸’, 즉 재생산 담론 내부에서의 여성을 그 자체로 여성의 정상성으로 고착시킨다. 재생산이 여성의 정상성으로 개입될 때 동성애의 문제는 말할 나위 없고, 한편 제 3세계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나, 인종차별주의 폭력들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이를테면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흑인 여성들에게 강제 불임 수술이 자행되었던 역사적 사실이나,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피임 기술의 실험 대상으로 제 3세계 여성들을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 그렇다. 그러므로 낙태를 넘은 이러한 재생산 담론은 비단 대한민국 내부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초국가적인 맥락에서 해석해야 할 필요성을 가진다.


<낙태 불법화와 여성> 포럼은 현재까지 낙태 이슈에서 진행되었던 프로라이프 대 프로초이스라는 구도를 전복한다. 생명권 대 선택권이라는 기존의 위치를 삭제하고, 섹슈얼리티와 권력 등, “다초점”의 관점에서 낙태를 다시 사유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_갱(CAIROS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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