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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콘텐츠/편집실 잡담

야훼는 게이였다?

지난 월요일(25일), 카이로스의 정용택 회원이 연구원으로 일하는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의 월례포럼에 다녀왔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작업을 내놓고 계서서 관심을 갖고 있던 구약학자 유연희 선생님의 발표가 있었거든요. 주제는 무려! "성서의 성(性): 에스겔과 아가의 포르노그래피"였습니다.^^


유연희 선생님은 미국 유니언 신학교에서 수사비평을 공부하셨고, 미국 연합감리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여성신학자십니다. 이 발표 전에도 성서를 하나의 '이야기'로 읽어나가며 거기에 나타난 다양한 문학적, 수사적 장치들을 여성신학과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분석하는 흥미로운 글들을 많이 쓰신 바 있지요. 이를테면 "글로벌시민 룻의 달콤살벌한 성공기"같은 글들이 있습니다. 이 글은 이렇게 시작하지요. "이 글은 룻을 국가의 경계를 넘어 편견을 극복한 이주노동자요, 시쳇말로 성공한 글로벌 시민으로 본다. 이 글에서 룻은 감정이 좋지 않은 이웃나라 모압 출신의 가난한 미망인으로서 이스라엘에 와서 지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 속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한 이주노동자이다." 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국에서는 이런 논문이나 글들이 상당히 많이 나오는 듯한데, 한국은 거의 불모지나 다를 바 없는 듯합니다. 


이분이 유연희 선생님

아무튼, 그 유연희 선생님께서 이번에는 '아가'와 '에스겔' 16장, 23장을 노골적인 성애문학으로 보고, 그 속에 담긴 젠더/섹슈얼리티/퀴어의 문제를 다룬 글을 발표하셨습니다. 그날 미국에서 귀국하셔서 매우 피곤하셨을 텐데도 불구하고 아주 따뜻하면서도 즐거운 발표를 해 주셨습니다. A4 14페이지에 달하는 양이고, 한 시간 가량 발표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렸지요.


선생님의 이번 발표문은 본문 자체에 대한 엄밀한 분석 보다는 에스겔과 아가서를 포르노그래피로 다루는 다양한 입장을 소개하고, 그 안에서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하는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간 중간 아주 충격적인(!) 내용도 있었는데요, 이를테면 "야훼 게이설"이 있겠습니다. 농담이구요.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에스겔 23장에 등장하는 '야훼'의 시선 속에서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폭력남편(?)의 모습을 발견하는 내용입니다. 놀라지 마시어요. '수사비평'이란 본래 성서를 하나의 문학으로 보는 입장이기에, 거기에 등장하는 '야훼'는 '등장인물 야훼'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신앙적 의미를 가지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지요.(저는 '게이 하느님'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발표문 전체를 첨부파일로 올려놓을 테니 텍스트는 거기서 참고하시구요, '야훼 게이설'^^;; 부분만 사진으로 올려놓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좀 더 큰 화면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글에는 이것말고도 통상적인 신앙인들을 매우 불편하게 할만한, 하지만 그 '불편함'을 통해 더 깊고 넓은 신앙의 세계를 접하게 해줄만한 많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발표를 들으면서 아이폰으로 '카톨릭 성서'를 함께 읽었는데, 뭐랄까, 번역이 너무 점잖달까요. 글 안에서 소개된 '보어Boer'라는 학자는 아가서 안에서 그룹섹스(1:2-4), 남자, 여자, 목자, 동물이 함게 섞인 환상(1:5-2:7), 모조 남근(dildo)을 가진 남자(3:1-5); 남근(phallus) 송시 및 게이 장면(3:6-11); 두 여자가 물 스포츠 특히 소변보고 사정(射精)하기(4:1-15); 여자와 남자의 가학/피학 sequence(4:16-5:9); 기괴한 남자의 몸을 퀴어하게 음미하기(5:10-16); swinging in 6:1-3; 레즈비언 sequence(6:4-12); 여자들의  절시증(scopophilia-남의 나체나 성행위를 느끼고 성적 쾌감을 느끼는 증상, 7:1/6:13-7:6/5); 유방 페티시즘과 여성 사출(7:7/6-10/9); 섹스 파티(8:1-14) 등이 등장한다고 분석했다고 하네요. 얼마전 유진 피터슨이 <메시지 성경>이라는 '현대어'로 된 성서 번역을 내놓았다고 하는데, 이런 질펀한 성적 언어가 반영된 번역본도 속히 보고 싶습니다.^^


제가 어째 이 글에서 곁가지로 다뤄진 내용만 기록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글의 주요한 내용은 페미니즘 비평과 퀴어적 비평 사이의 긴장에 있습니다. 60년대 이후로 페미니즘 비평이 성서가 '여성억압적이지 않다'는 내용을 발견하는 규범적인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해 왔다면, 선생님이 소개해 주신 최근의 흐름은 성서 안에서 갈등과 긴장을 그대로 발견하고, 또 성서 이야기 안에 내장된 퀴어적 흔적을 발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발표문을 한 번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많은 분들이 이 주제에 관심을 갖고 찾아주셨습니다.


발표 이후에는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토론보다는 전반적인 한국 교회의 풍토와 동성애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워낙 한국 교회가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 자체를 안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글 내용에 대한 꼼꼼한 검토보다도, 이런 글이 제출되는 것 자체를 반가워해야하는 한국 교회의 이 상황이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성서에 대해 교리와 교회의 주장을 벗어나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공론장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성서학자들이 교단과 교회의 입장에 지나치게 묶여 있다보니 그런 날이 언제올 지는 요원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제 3시대 그리스도교연구소> 같은 제도권 밖의 연구단체들이 더 소중한 것이겠지요.  


발표문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