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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학을 가르친다. 한국산업사회학회에서 지은 <사회학>이라는 책을 교재로 쓰고 있는데, 그 책의 2강은 사회학의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것이다. 거기 보면 근대사회의 등장과 함께 사회학이 등장했는데, 근대사회의 등장은 전통과 종교로부터 이성과 과학으로의 전환, 개인들이 자신들의 자유를 가지고 유기적으로 연대하는 사회를 그리는 사회계약론의 등장 등등의 주장들을 그 이상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배우는 수많은 사회과 과목들이라는 것은 결국, 근대사회라는 것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인간들은 자유롭게 자신들의 이성을 활용하여 각기 사회를 위해 공헌해야 하며, 이를 통해 인간의 역사는 발전해왔고 앞으로도 발전해야 한다는 뭐 그런 내용 쯔음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고 서양인들에 의해 만들어져 전파된 뒤 현재는 아마 전세계를 뒤덮은, 사회과학도라면 누구나 들어본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일반적인 이야기와 달리, 우리는 서구 근대가 기둥으로 삼고 있는 '이성', '민주주의', '개인', '자유' 등의 단어들이 '극단의 시대'라 불리는 20세기에 들어 용도폐기된 상황들을 꽤나 충격적으로 지구의 이곳저곳에서 목격해야 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근대가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이성이 찬란히 빛나고, 개인의 자유가 신장하고,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사회가 통합되기는 커녕 대량학살과 독재, 전세계적 전쟁과 불안이라는 현실을 목도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충격적인 것은 대량학살과 독재, 전세계적 전쟁과 불안에 대하여, "어릴적부터 그럴 기미가 보였던" 히틀러나 뭇솔리니 같은 독재자들에게만 그 책임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19세기부터 찬란하게 꽃피우기 시작한 근대대학에서 학문을 담당하고 발전시켜온 자들이 거기 가담했다는 것이다. 원래부터 권력에 아부했던 폴리페서들 말고, 인간세상을 넘어 우주적 형이상학을 논하는 자들, 인간의 참된 자유와 이성을 논하던 자들까지 거기 참여했다는 점이다. 


# 2

마루야마 마사오

요새는 세미나에서 마루야마 마사오를 읽는다. 마루야마를 읽는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꽤나 호의적이다. 어떤이들은 단순한 호기심을 보이고, 어떤이들은 세미나에 들어와 마루야마를 읽고 싶다고 말한다. 마루야마 학문의 전성기로부터 벌써 50년이나 지났고, 일본에서는 그를 넘어서기 위한 다양한 비판들이 시도된지도 한참이나 지났는데, 이런 마루야마가 한국에서는 왜 인기가 있을까? 


뭐 최근 일본에서 논의되는 것을 알기 위한 사전학습으로 알고자 하는 이들도 꽤 있겠지. 하지만 내가 본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우리가 포스트모더니즘이 처음 유행할 무렵의 헤겔에 대한 태도와는 다르다. 마루야마의 사상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굉장히 크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왜 그 전형적인 '근대주의적' 사상가가 50년이 지나 한국에서 이렇게 호의를 받고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일본의 사상계가 가지는 어떤 힘에 대한 경외인 것은 아닌가 싶다. 20세기 동아시아라는 공간을 때로는 식민지의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때로는 냉전을 공유하는 적대적 동반자로 살아오면서 우리에게는 '만만한' 존재가 되어버렸지만, 우리에게는 없는 '사상사'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그 '사상사'의 한가운데 있는 마루야마 라는 인물. 어쩌면 그것은 대한민국 사회가 아직은 가지지 못한, 후하게 점수를 주자면 이제 겨우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말할 만한 '자유로운 이성'이 대학이라는 제도권 안에 일찌기 자리잡았고, 그것이 계보를 이루어 내려왔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 아닐까 싶다. 이는 추상적으로 말한다면 '자유로운 이성'이라고 하는 근대 사회가 가지는 이상을 현실화한 것에 대한 부러움의 시선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우리가 알다시피 일본은 '대학자치'의 전통이 있어, 정권이 함부로 대학을 건드리지도 못한다. 왠만한 사립대학들도 전부 직선제로 총장을 뽑는다. (서울대 민교협 운동을 하시는 교수님이 얼마전 일본 제국대학의 교수자치 전통에 대해 '선진적'이라며 칭찬하시는 걸 들은 바 있다. 그 정도로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대학이라는 것이 미군중위나 도지사들이 총장을 겸직한채 출발하여 그들에게 '초대총장'의 영예를 내어주고, 학교 내에 경찰이 상주하는 것으로도 모잘라 교수연구실까지 형사들이 드나들었던 경험에서 벗어난지 겨우 20년에 지나지 않는 한국사회가, 이제 겨우 사상의 자유를 찾는가 했더니 기업이 대학을 사고 학과와 교육과정을 마음데로 좌지우지 하는 한국사회가 볼 땐, 너무나도 '자유로운 이성'의 공간이 이미 100년전에 형성된 것이고 이 공간 안에서 사상의 역사를 발전시켜 온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이 만들어낸 자유로운 이성적 사유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마루야마 마사오일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론은, 긴밀하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한국과 일본이 세련되게 말하면 '동아시아'가 겪은 20세기 역사를, 그로인해 만들어진 현실을 이론적으로 정리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주는 것이 아닐까? <유사한 정치사회적 현실 - 차별적인 사유의 조건>이라는 '낙차'가 만들어낸 기대감 말이다.


# 3

그러나 이렇게 국가와 폭력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이성을 자유롭게 활용하여 학문을 발전시켜나갔다고 하는 이 일본도 내막을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다. 교수의 사상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고, 자유로운 사상을 발전시킬 자유, 대학이 정부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주장한 것은 사실, 러일전쟁 승전 후에도 전쟁을 지속하여 바이칼 호수까지 진격할 것을 주장한 도쿄대의 도미즈 히론도라는 우익교수를 국가에서 징계한 문제와 관련된다. 

반대로 천황을 모독했다고 하는 좌익교수들이 문제가 되었을 때, 대학자치론은 예상외로 허약하여 교토대 법대 다키가와 교수를 비롯한 39명이 대량으로 교수직을 사임하여야만 했다. 이를 넘어 1940년대 태평양전쟁기에 보여준 지식인들의 적극적 협력은 그들이 그토록 추종해오고 자랑해왔던 자유로운 이성을 활용한 학문과 대학이라는 전통이 - 법과 정치를 논하는 이들을 차치하고서라도 하이데거와 불교를 통해 우주와 형이상학을 논했던 교토학파의 사람들까지 - 어떻게 전쟁이라는 집단광기 속으로 빨려들어가 그 한가운데에 서게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히틀러시절 망명을 택한 지식인들을 제외하고 독일에 남은 교수들이 택해야 했던 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랬기에 독일에서는 독일이 정치와 사회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국가와 달리 제대로 된 근대화의 길을 걷지 못했다는 "독일 역사의 특수한 길"이라는 설명을 통해 2차대전이라는 광기를 설명해야 했고, 마루야마 마사오는 '전근대'라는 말로 2차대전에서의 일본의 행동을 설명해야 했다. 


그럼으로써 둘다 '근대'를 보호하긴 했지만, 전쟁 이전 그들이 보여주었던 수많은 '근대적' 성취들과 전후 그들의 빠른 경제적 회복, 그리고 전지구적 자본주의에서의 이들 국가의 위치를 고려해본다면 그들을 '근대'에서 빼고나면 '근대'라는 범주에 과연 몇 국가나 들어갈까 모호해진다. 그러기에 1980년대 독일에서, 1990년대 일본에서, 많은 젊은 학자들은 2차대전에서의 집단광기를 독일과 일본이 아직 근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근대화되었기에 만들어낸 사태로, 또는 "20세기 근대"를 만들어낸 사태로 새롭게 인식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뭐 이에 대한 논쟁은 어찌보면 지금도 진행중이니까, 이렇게 대충 정리를 해보자. 근대라고 하는것은  이성을 활용한 자유로운 사상의 발전과 이성적 주체들의 공론을 통한 사회의 이성적 성숙 등을 골자로 하지만, 때로는 그 이성의 활용 멈추고 엄청난 집단적 광기와 국가폭력앞에 숨죽이거나  얼굴마담이 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20세기의 역사는 지식인들이 자유로운 이성의 활용되 집단광기의 얼굴마담이라는 두 극단을 오갈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해주고 있다.


# 4

얼마전 화제 속에서 개봉한 <경계도시2>는 바로 이러한 지점의 '한국적 사례'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국가가, 보수가, 조중동이 특유의 냉전의 논리와 이분법적 사상의 잣대를 가지고 송두율이라는 사상가가 수십년간 주장해 온 '경계인'이라는 사유를 송두리째 날려먹은 것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러한 국가와 보수와 조중동의 '완장질' 앞에서 한국의 진보를 자처하는 자들이, 수십년간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한국사회에서의 '자유로운 이성'을 위하여 싸워왔던 자들이, 어느 순간 조중동+국정원 발 집단광기와 국가폭력 앞에 어떻게 자신들의 이성을 정지시키고 그러한 광풍 앞에 무력하게 후퇴하였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는 이를 두고 "진보의 실패"라 불렀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싸웠던 그들이, 그 어느누구하나 "이북 방문=간첩"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국가보안법의 등식을 문제삼지 않고 이를 받아들인 뒤, 수차례 송두율교수에게 함께 자신들과 함께 뒷걸음질 칠 것을, 그들의 프레임을 받아들일 것을, 그리고 사과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누구보다도 날카로운 이성으로 한국사회의 냉전체제와 독재를 비판했던 자들이 왜 그 국면에서 갑자기 자신들이 그렇게 날카롭게 벼려왔던 '자유로운 이성'을 정지시켰을까? 영화는 이를 질문하고 있다. 


이러한 '이성의 정지'의 순간을 우리는 그로부터 약 6년이 지난 현재 다시 한번 겪고 있다. 수십명의 군인이 배와 함께 침몰했다. 그 전까지 한국사회를 휘감았던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도 천안함과 함께 침몰했다. 우리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산적한 문제들에 대하여 고민하기를 그칠 것을 강요당했고, 우리 모두가 천안함을 응시할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성적으로 사태를 파악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들, 예를 들어 제대로 된 정보전달에 대한 요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여 문제의 원인을 밝힐 것에 대한 요구, 사건을 어떻게 해결해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공론을 만들어 갈 것에 대한 요구 등을 말하는 목소리는 감히 입밖으로 내지도 못하고 있다. 정부의 관계자들은 우왕좌왕하고 조삼모사를 일삼았지만, 그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이내 잦아들고 그저 그들의 말을 받아쓰기만 할 뿐이었다. 두달이나 걸린다던 인양은 불과 몇일만에 이뤄졌다. 그래도 아무도 그 기만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살아남은 장병들은 가족과도 격리된 채 십수일이 지나서야 대중앞에서 그들이 만든 장소에서 기계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다가 소속부대로 복귀했다. 그래도 이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말도 별로 없다. 게다가 사고 단면에는 '기밀'을 유지하고 '혼란'을 방지한다며 녹색 그물망을 덮어씌우기까지 했다. 아무도 사회가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권리를 말하며 그물망을 벗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군사적 문제이기에 함부로 정보를 줄 수 없다는 그들의 '안보논리' 앞에 대한민국의 이성은 정지했다. 이 사건의 원인과 결과는 모두 군사전문가 내지는 선박전문가의 몫이 되어버렸다. 이제 화살은 점점 그렇게도 문제가 많은 정부관계자가 가리키는 손가락의 끝을 따라 이북을 향하는 모양새다. 사고 대처부터 사고의 사후 수습에 이르는 동안 미디어와 그를 통해 만들어지는 '국민'들은 동물원의 사육사가 던져주는 '정보'라는 식량을 받아먹은 후 사육사의 손가락을 따라 재롱을 부리는 물개가 되어버렸다. 경계도시 천안을 둘러싸고 이성은 정지했다.


# 5

송두율은 돌아갔다. 그래도 그가 한국에 오기 전엔, '진보'를 자처하는 많은 이들이 그의 책을 읽고 또 공감했다. 하지만 그가 한국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독일로 돌아간 지금, 그의 사상을 적은 책들도 우리의 마음 속에서 멀어져 버렸다. 얼마 전 은퇴한 한 노교수의 연구실을 마지막으로 나는 우리사회의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사람'의 책장에서 그의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 섣부른 판단인지는 몰라도, 북한 핵문제가 불거지고,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갈라지면서부터 우리는 '냉전' 등의 단어를 사상의 화두로 삼는 사람을 보면 뭔가 촌스럽다고 여기는 듯하다.


더 나아가 많은 젊은학도들은 서구의 이론을 학습하고, '근대성'에 관한 이론들을 학습하면서, 또 한국이 가진 수많은 사회문제들의 전세계적 동시성을 체감하고 서양의 최신이론과 교감하면서, '탈근대'사회를 맞이하고 있다. 이런 그들에게 '냉전'이라고 하는 20세기의 산물은 이제는 한물 간 낡은 주제인 것처럼 여겨지는지도 모른다. 


1937년 독일과 일본에서 발생하고 1945년도에 어느정도 마무리 된 것 같은, 한국에서도 1980년까지는 계속 있었지만 이제는 대충 정리가 된 것 같은, 거기다가 이에 대한 회고도 어느 정도 이뤄져 이제는 그 문제를 살짝은 덜어내고 이후의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 낸 새로운 문제들에 집착해도 충분할 것 같은, 그러한 문제들은 여전히 지속적으로 회귀하여 우리의 옆에 다시 달라붙어, 21세기라는 '현재'와 이에대한 '세계적 시선'과 어울리지 않는 순간을 살게 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2010년의 한가운데서 이성이 정지된 순간을 살고 있다.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최신의 이론들은 이성이 정지했던 순간을 뼈아프게 곱씹으며 "무엇이 문제였던가?" "왜 그때 우리는 이성적이지 못하였는가?", "우리는 근대적인가?" 를 질문한 이론들은 아니다. 반대로 그러했던 질문과 이론들이 가지는 한계를 비판하고, 이를 넘어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를 사고하기 위한 이론을 새롭게 만들어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이성의 정지했던 순간이'역사'로 기억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이성의 정지'는 '현재'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쩌면 "왜 우리는 그때 이성을 정지시켜야만 했는가?"를 끊임없이 되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반복해서 다음의 질문을 던져야 할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정말 근대적인가?"_마르셀(CAIROS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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