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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bi.sagepub.com Currents in Biblical Research 2009. Vol. 8. 1; 71-106

 

 

지난 포스팅에 저자 사진이 올라갔으니, 이번엔 역자를. 정용택 연구원입니다^^



Orality and the Gospels: A Survey of Recent Research

구술성과 복음서: 최근 연구 개관

 

 

Kelly R. Iverson

University of St Andrews, Scotland

ki10@st-andrews.ac.uk

 

 

서론

...

 

복음서 연구에서 진보의 선구자들

 

Milman Parry and Albert Lord

밀먼 패리와 알버트 로드

 

Eric Havelock

에릭 하블록

 

Walter Ong

 월터 옹 

...


구술성과 복음서를 다시 생각하기


신약학자들이 패리, 로드, 하블록, 옹이 주도했던 연구단체를 이용하기 시작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러한 방법론적 진전들은 곧바로 신약학에서 구술성을 재개념화하도록 자극을 주었고, 그 결과 오늘날도 여전히 펼쳐지고 있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가능했다. 신약학자들이 이 연구와 상호 작용하기 시작하면서, 신약학 현장 내부에 존재해오던 다양한 구술성 이론의 모델들이 무비판적으로 잘못 추정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다. 구술성과 복음서 사이의 상호 영향에 관한 최근의 연구들, 즉 아래에서 언급하고 있는 여러 학자들은 앞서 소개한 선구자들의 기초적인 작품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Werner Kelber

베르너 켈버


일반적으로 베르너 켈버는 ‘복음서가 구술적 의사소통이 주도하던 세계에서 만들어지고 수용되었음을 최초로 인식한’ 신약학자로 인정받고 있다(Horsley 2006: viii). 더욱이, 어떤 이들은 켈버가 성서학 현장에서 ‘거의 단독의 노력으로 (구술성 이론의) 개척자가 되었다’고 단언하기도 한다(Horsley and Draper 1999). 물론 켈버가 구전(=구술 전승)이 ‘그 텍스트’(=성서)의 배후에 있다는 것을 최초로 간취한 것은 아니라할지라도, 그가 구전 해석학(oral hermeneutic)이라는 것의 발전을 옹호한 최초의 인물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켈버는 ‘마가복음과 구술 전승’(Mark and Oral Tradition, 1979)이라는 이름의 논문에서 그 주제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필기된 것에 대한 성서학자들의 편애에 가장 노골적으로 도전하면서, 동시에 구술 문화적 배경에 관한 논의를 되살린 것은 단연 1983년에 출간된 그의 획기적인 저작, 『구전되고 기록된 복음서:  공관복음서, 마가복음, 바울서신, Q의 담화와 서사에 관한 해석학』(The Oral and the Written Gospel: The Hermeneutics of Speaking and Writing in the Synoptic Tradition, Mark, Paul, and Q)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학자들과 민속학자들―예컨대, 패리, 로드, 하블록, 옹, 피네간(Ruth Finnegan), 구디(Jack Goody) 등의―연구성과에 점점 더 많이 의존하면서, 켈버는 신약성서연구에서 구술전승에 관한 토론을 양분해온 루돌프 불트만(1963)과 버거 게할드슨(Birger Gerhardsson, 1961), 바로 이 두 학자의 대립된 관점을 신봉해온 전승 모델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을 제기한다.

 

먼저 양식비평적 접근에 관한 켈버의 비판적인 평가는 구술성의 역동성과 그것이 의사소통의 문서화된 양식과 맺고 있는 관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불트만이 범한 오류를 밝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귀트게만스(E. Güttgemanns, 1970)와 같이, 켈버는 양식비평의 근원적인 가정들에 도전하면서 이루어져온 구술성 연구들의 성과들을 탁월하게 정리한다.

 

켈버에 따르자면, 가장 문제적인 지점은 불트만이 구술전승에서 문서화된 복음서로 나아가는 이행의 과정을 단순히 순조롭고 평탄한 것으로 가정했다는 사실이다(Bultmann 1963: 48). 불트만은 마태와 누가의 마가복음 및 Q의 편집에서 나타난 그 원칙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구술전승의 역사에서 복음서 이전의 전승 역시 형성되었음을 밝혀낼 수 있다고 이론적으로 상정했던 것이다. 불트만은 ‘만일 우리가 [(마태와 누가에 나타나는 마가 및 Q) 본문 전승의 발달 과정에서] 어떠한 법칙성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법칙성이 마가와 Q에서 확정되기 이전의 전승 자료에서부터 이미 작용하고 있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자료의 형태로 확정되기 이전의 전승 단계에까지 소급해 들어갈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1963: 6-7). 요컨대 불트만은 문서화된 전승에 대한 연구로부터 구술적 전승에 대한 연구를 소급해 들어감으로써 문서화 이전의 순수한 구전 양식을 규명하기 위한 그의 탐구를 시작한 것이다.1)

 

켈버가 진술한 바에 따르자면, 이러한 해석학적 역투사(解釋學的 逆投射; hermeneutical retrojection)는 ‘문서적이냐 혹은 구전적이냐’ 라고 하는 의사소통의 양식을 고려하는 것이 문서 이전의 발단 단계에 있는 구술전승을 탐구하는 데에는 전혀 의미가 없다고 하는 단순한 가정에 기초한 것인데, 이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확실한 점 하나는 바로 문서화된 텍스트와 대비적으로 살아있는 말하기의 실제성을 이해하는 데 불트만이 실패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점 안에 근본적으로 놓여 있는 것은 ... 구전적 활동으로부터 텍스트상의 고정된 문자에 이르는 변천과정의 효과를 축소하고 있는 (불트만의) 경향이다’(1983: 8).

 

게다가, 샌더스(E. P. Sanders, 1969)에 이어 켈버는 불트만의 모델의 기초가 ‘민담적 설화문학’(folk literature)에 대한 실제적인 고찰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었음을 주목했다(1983: 7). 전승의 발전과 확장의 경향에 관한 설명, 즉 개별적 어록으로부터 복음서의 복합화에 이르는 발달과정을 설명하는 양식비평의 중심적 테제는 민속학에서 발견한 경향성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다소 역설적이게도 불트만은 전승의 일반적 법칙을 탐구하는 데 목적을 둔 비교문학적 분석의 가치를 분명 인식하고 있었다(1963: 7).

 

그렇지만 불트만의 해석적 원칙은 비(非)그리스도교적 전승의 현상들과 전혀 비교되지 않은 채 거의 배타적으로 자신의 공관복음 전승에 관한 고찰로부터만 유래한 것이었다. 켈버가 정확히 논증한대로, 불트만은 비(非)그리스도교적 문헌에서의 발견되는 구술전승의 역동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대신에 복음서 저자들의 텍스트적 성향은 복음서 이전의 전승 작용, 즉 구전적 발달 단계에서의 그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전제했다.

 

불트만의 전승 이론 모델과 양식비평 일반에 답하여, 게할드슨은 전승 과정에 관한 불트만의 묘사에 도전하면서, 그리고 전달된 전승의 역사적 신뢰성을 단언하면서 그 둘 다에 필적할만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2) 게할드슨은 타나임 시대와 아모라임 시대의 랍비적 유대교에 관한 그의 분석에 기초하여 (복음서 전승의) 구술성 모델을 기술한 것이다(1961: 30).

 

비록 공관복음서가 예수가 가르쳤던 특별한 방식에 관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자료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유대적 배경은 예수를 문화적으로 적응시킨 컨텍스트에 관해서는 중요한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게할드슨은 ‘그 자료들은 예수가 사용했던 어떤 방법이 그의 주변에서 사용된 보통의 일상적인 것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아님’을 주장한다(1961: 326).

 

게할드슨에 따르면, 이와 같이 랍비적 유대교에서 나타난 전승의 모델은 예수와 초기 그리스도교 가운데도 유사하게 작용하여 그 과정에 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그 전승이 왜곡되지 않고 예수로부터 그의 제자들에게로 곧바로 전수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권위를 존중하는 인물들로서 제자들의 전승에 대한 강한 수용력은 그 전승의 전달을 신뢰할 만한 것으로 보증해준다는 것이다. 예수는 랍비들처럼 ‘그의 제자들이 자신이 가르쳐준 것을 기억할 것을 요구했’고, 더욱이 ‘유대인 제자들의 스승에 대한 자세’를 고려한다면, ‘건망증과 신앙적 상상 활동이 너무 지나쳐서 불과 몇 십 년의 기간 중에 모든 것을 인지하게 됨을 넘어 진짜 기억까지 변형시키는 것에도 능숙했다고 가정하는 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1961: 328-29).  

 

게할드슨의 모델이 비록 많은 측면에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술성에 관한 토론을 진전시켰다는 점에서 켈버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게할드슨은 ‘말은 소리로 전해지기 위한 것이었고’, 더 나아가서 고대의 문헌들은 침묵 가운데 내밀하게 읽기를 위해 의도된 것이 아니라, ‘눈으로 읽는 것 이상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눈만큼 귀로 듣기 위해 의도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했던 것이다(1961: 163). 더욱이 게할드슨은 구술 문화권에서 주로 기억을 돕는 기술들, 예컨대 운율 ․ 선전 문구 ․ 심리적 연상에 기초를 둔 자료의 각색 같은 것들이 전승의 전달과 보존을 위해 필요했다는 것도 주목했다(1961: 148-49).

 

한편으로 이러한 이론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통찰들이 구술성에 관한 동시대 연구들과 조응하여 구술 전승의 양식에 더욱 풍부한 영감을 줄 수도 있었는데, 그렇지 못한 채 전승의 수동적이고 권위적인 전달이라고 하는 그의 중심적 테제에 부차적인 것으로 남겨지고 말았다’고 켈버는 논평하고 있다(1983: 13). 무엇보다도 켈버가 가장 곤란해 했던 것은 게할드슨의 모델의 기저를 이루는 애매모호한 가설들이었는데, 특히 랍비 문헌들을 예수 시대로 소급하여 적용하는 것(모톤 스미스[Morton Smith, 1963]가 처음 제기했던 그릇된 논쟁의 핵심이었으나, 이후에 게할드슨[1991, 2001]이 명쾌하게 설명해냈고, 다른 이들[뉴스너(Jacob Neusner) 1998]도 인정한 바 있는)과 구술 전승의 엄격한 암기를 강요했던 랍비와 같은 교사로서 예수를 묘사할 때 막상 그 증거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켈버가 시사하기로, 확실히 그 모델은 텍스트적 편견(textual bias)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게할드슨은 처음부터 문서화된 텍스트를 상정하고 논의를 전개했을 뿐 아니라, 또한 기억에 의해 전수된 그 전승이 문서화된 텍스트에 대해 계속적으로 의존했다고 가정한다. 비록 게할드슨이 공관복음서에서 구술성의 위치를 확고하게 주장했을지라도, 결국 그는 (구술 전승과 문서 전승) 둘 다 축어적인(말 그대로 문자적인) 기억의 메커니즘에 의해 전달되었다고 가정함으로써 둘 사이에 존재하는 의사소통 방식상의 경계선을 쉽게 무너뜨려 버린 셈이다. 

 

게할드슨의 수동적인 전승 수용 모델은 불트만의 집합적 성장 모델과 사실 그 의미가 상당히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켈버에 따르면 어느 쪽 이론도 구전문화적 배경을 둘러싼 의문에 대해 설득력 있는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켈버는 최종적인 분석에서, 두 이론이 공히 두 가지 측면에서 공유하고 있던 가설들을 흔들어 놓고 있다: (1) ‘구술전승과 문서전승 사이에는 확정할 수 있는 경계선’이 없다는 제안 (Bultmann 1963: 321), 그리고 (2) 전승의 과정이 마치 아무런 주변의 방해도 없었던 것처럼 단선적으로 순탄하게 흘러간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 이렇게 당연시되고 있는 가정들에 대한 근본적인 비평—이를테면 ‘너무 과도한 문서 위주의 해석학... 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에 쏠려있는 관심’(Kelber 1983: xv)—은 복음서(와 바울서신)에서 작동 중인 구술성의 정신역학을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켈버의 시도의 출발점이었고, 동시에 그의 연구가 지지받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켈버의 논의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구술전승과 문서전승 사이에 존재하는 의사소통 방식—성서학 현장에서는 대부분 간과해왔지만 구술성 연구자들은 반복해서 강조했던 개념인―상의 기본적인 차이였다. 물론 켈버가 입으로 전해진 것(말)과 글로 쓰여진 것(문자) 간의 명확한 관계가 무엇인지를 설명함에 있어, 여전히 논란이 분분할 수밖에 없게 남겨 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한편으로 그는 둘 사이에 기본적인 차이점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1983: 14).

 

켈버에 따르면, 이러한 구술적 의사소통과 문서적 의사소통 방식 간의 차별성은 의사전달의 행위에서부터 이미 뿌리내려져 있는 것이다. 구술 연행자들은 입으로 전해진 말의 일시적—‘입 밖으로 냄과 동시에 사라져 버리는’—속성에 부담을 느낀다(1983: 1). 독자(讀者)들과 달리, 청중(聽衆)은 자료를 다시 보기 위해 인쇄된 페이지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 대신에 기억을 용이케 하기 위해 강연(혹은 연설) 내부에 있는 언어적 장치들에 의존해야만 한다. 입으로 전해진 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청중들의 기억을 돕는 장치와 구술적 맥락에서 차용할 수 있는 다량의 정보에 어울리는 정형화된 어구를 잘 사용할 줄 아는 화자(話者)의 능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므로 화자에게 있어, ‘구술적으로 전달된 것이라고 그 모두가 다 이용가능 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직 구술적 관점에서 유연성이 있고 회수가 가능한 일정양의 자료만이 구술전달에서 이용가능 할 뿐인 것이다(Kelber 1983: 15).

 

보존을 용이케 하고자 보조적인 기억장치를 사용하는 것은 전승의 수명을 늘리는 데 매우 요긴한 것이다. 그러나 켈버에게는 그 이상은 아닐지라도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주어진 전승의 사회적 적실성(social relevancy)이라 할 수 있다(1983: 24). 비록 기묘하고 특이한 전승이 그것들의 그러한 순수한 이질성 때문에 잘 기억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보통 일반적으로는 입으로 전해진 말의 생존은 사회적 동일시의 법칙에 더 많이 의존한다고 볼 수 있다. ‘공동의 (전승) 수신을 위해서 넘어서야 할 사회적 경계를 끝내 넘어서지 못하는 전승은 소멸의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청중과 연관된 연행의 (사회적) 적실성과 화자의 능력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1983: 29). 이야기와 말하기는 그것들이 청중과의 공명을 풍부하게 일으키고, 또한 그들의 심금을 강하게 울릴 수 있을 때 보존이 더 잘 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기억된 전승은 다른 이들에게 전수됨으로써, 그렇게 구술 전달의 순환 작용 가운데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구술 전승의 행로는 비(非)선형적이며, 켈버가 정의한 ‘규제적 검열(preventive censorship)’이라는 것으로 인해, 가능한 한 다양한 변화를 겪게 된다(1983: 29). 가능한 변화의 예로 굳이 몇 가지만 들자면, 전승의 사회적 중요성과 현실적 실행가능성을 위해, 이야기는 확장되고, 결론은 수정되며, 사소한 내용은 버려지기도 하고, 주제는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종종 그러한 현상이 생략과 단순화 쪽으로 흘러간다 할지라도, 그 과정을 기계적이고 선형적인 것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구술 연행 당시 그 주변의 상황에 강력하게 연루되면서, 일부 전승들은 비교적 변경이 거의 없는 상태로 역사를 거쳐 내려온다. 켈버는 비선형적 발전의 견해와는 별 관련이 없지만, 그 역시 (패리와 로드를 쫓아서) ‘오리지널(original)’이라는 개념이 진화론적 발전을 염두에 둔 문학적 모델에서 연원하여 시대착오적으로 잘못 구성-적용되었다고 주장한다. 

 

각각의 구술 연행은 그 자체의 독자적인 기준에 따라 이미 유일하고 오리지널한 창작인 것이다: ‘예컨대, 만일 예수가 한 번 이상 담화를 연설했다면, 오직 그 첫 번째 발설에서만 “오리지널한 것”이 산출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음이 자명하다. 그렇다고 또한 연설의 매순간이 놀랄 만큼 신선하고 새로웠기 때문에, 두 번째 발설은 처음의 것으로부터 “전혀 다른” 그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Kelber 1983: 30). 비록 전승이 전달되었을지라도, 그것들이 사회적 필요에 조응할 수 없는 말씀과 이야기의 형태로 계속 전수되진 않았을 것이다. 각각의 강론은 받은 전승의 단순한 암송 내지는 구두 반복이 아니라, 특정한 청중을 위해 기획된 그 나름대로 언제나 진정성 있는 연설 행위였고, 또 그래서 다른 연행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었다. ‘오리지널’이라고 하는 개념은 구술문화의 세계에서는 절대 존재하지 않았던 현대적 개념이며, 예수 전승의 본질에 관한 근본적인 오해를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

 

복음서와 관련해서, 켈버는 마가(마가복음의 저자인) 이전의 구술전승과 문서화된 마가복음 전승 사이에 확고한 단절이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 그간에 축적된 통찰들을 풍부하게 활용한다. 켈버는 해석자라면 ‘새롭게 전달된 이야기 안에 그 매체 자체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근본적 원리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가 계속해서 강력히 주장해 나가는 그 매체 자체의 역사의 핵심은 새롭게 글로 쓰여진 텍스트(와 그것의 대리인)가 설립된 목적이 ‘구술적 전달의 우세한 권위에 대항해서’라는 것이다(1983: 130).

 

다시 말해, 켈버에 따르면, 마가복음 저자의 문서화된 매체 사용은 구술 전승의 수호자였던 제자들과 예수의 가족들 그리고 그리스도교 예언자들에 대한 그의 적대적인 반론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3) 쓰여진 텍스트로서 마가복음에서 일어난 이러한 (즉, 구술전승에서 문서전승으로 이행하는) 기술적 혁신은, 저자라고 하는 존재가 갖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위치에 대한 경의의 표현, 다시 말하자면 복음서의 구술적 대리인으로부터의 거리두기이자 동시에 과감한 거부라 할 수 있다.

 

마가복음에 대한 켈버의 분석 및 마가복음 저자가 ‘자신의 선구자들이 전수해준 구술전승의 목소리와 단절’하고자 했다(1983: 104)는 그의 주장은 수년에 걸쳐 격렬한 논쟁을 일으켜왔다. 구술성과 텍스트성(=본문성) 사이에 존재하는, 소위 ‘위대한 분리’(패리와 로드에게 빚지고 있는 관점)로도 일컬어지는 이러한 분기점은 구술 문화와 문자 문화가 경쟁적으로 공존했던 이 과도기적 시대의 복잡한 현실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래서 학자들의 대다수는 지금도 이러한 요소들(구술성과 텍스트성)을 하나의 연속체로서 작동 중이던 것으로 이해하기를 선호하는 것이다(Swearingen 1986; Aune 1991: 240; de Vet 2008: 160-61).

 

덧붙여, 마가복음의 쓰여진 텍스트가 십중팔구 장차 연행됨으로써 다시 구술화되었다는 점에서, 켈버의 테제는 그 자체로 모순적으로 보인다. 요컨대 켈버가 주장하기로, 문서화된 텍스트를 창조해낸 복음서 저자들이 결코 신뢰하지 않았을 (구술 연행적) 전승화의 바로 그 방법이 아이러니하게도 (복음서 텍스트를 전승하기 위해) 재건되었다는 점이다(Mournet 2005: 84-85). 켈버가 이후의 작품들에서 이러한 (구술전승과 문서전승 사이의) 엄격한 대조를 스스로 완화시켰다고는 해도, 당시 그 책에서 그가 그토록 [지나친] 강세법을 사용하며 주장했던 데는 다분히 기존의 지배적인 문서 위주의 해석학을 돌파하기 위한 수사학적 의도가 깔려 있었다. 더욱이 최근 들어 그는 이러한 입장을 거듭 천명하면서, ‘말해진 것과 쓰여진 것 사이의 투쟁적인(conflictual) 관계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진술하고 있다(Kelber 2008: 30; 강조는 원문의 것).

 

이러한 몇 가지의 비평적인 코멘트에도 불구하고, 켈버가 공헌한 중요성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켈버와 같이 그런 신선한 접근을 취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최근 켈버와 가진 인터뷰의 명칭이 확인해주듯이—할 것이다(2008). 복음서 학계에서 구술성 연구의 역사에 관해 말할 때, ‘분수령’ 또는 ‘전환점’ 같은 용어가 정당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켈버의 『구전되고 기록된 복음서』(The Oral and the Written Gospel) 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켈버가 기여한 작품은 구술 전승에 관한 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여전히 가장 중요하고 가장 영향력이 있다’라고 주장할 것이다(Mournet 2005: 86). (다음 포스트에 계속) 번역: 정용택(CAIROS 연구원)

 

 

 

 


 

1) [역자주] 불트만에게 있어서 전승이 구전적이냐 문서적이냐는 문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 전승 자료의 문학적/비문학적 차이에 따라 양자를 탐구하는 원리적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켈버가 불트만의 결정적인 오류로 지목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인데, 켈버에 따르자면 불트만은 구술 전승과 문서 전승 사이에 놓여 있는 단절과 간극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세한 것은 『공관복음서전승사』(허혁 역, 1970) 6~7쪽을 참조하라.



2) [역자주] 게할드슨의 복음서 전승에 관한 입장에 관해서는 국내에 유일하게 번역된 그의 저작 『복음서 전승의 기원』(배용덕 옮김, 솔로몬, 1993)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3) [역자주] 켈버에 따르면, 마가복음 저자는 구전 전승에 나타난 수많은 (非케리그마적) 메시아론적인 사고들에 이의를 제기하며 이 모든 것들을 자신의 케리그마적 그리스도론적인 사고로 대치하고 있다. 켈버에게 있어 마가복음은 구술 전승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 획기적인 창조적인 단계의 전조가 된 독창적 신학자 마가의 작품인 것이다.  마가복음이 간직하고 있는 이중성(duality)에 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며, 구술전승이 이 텍스트 안에서 갖는 의미와 역할에 관해서도 켈버와는 다른 견해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뒤에서 다루어질 호슬리(R. A. Hosley)의 견해가 그러한데, 호슬리는 켈버로부터 구술전승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통찰을 배웠지만, 그것을 마가복음에 적용할 때는 전혀 다른 설명을 취한다. 이는 호슬리를 다루는 부분에서 상세하게 해명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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