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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bi.sagepub.com            Currents in Biblical Research 2009. Vol. 8. 1; 71-106


Orality and the Gospels: A Survey of Recent Research

구술성과 복음서: 최근 연구 개관


Kelly R. Iverson

University of St Andrews, Scotland

ki10@st-andrews.ac.uk



초록


지난 삼십년 간 복음서 연구에 구술성(구전성) 이론을 적용하는 데 있어 중요한 발전이 이루어져왔다. 이 논문의 목적은 베르너 켈버(Werner Kelber) 를 위시한, 조안나 듀이(Joanna Dewey), 폴 악테마이어(Paul Achtemeier), 피터 보싸(Peter Botha), 리차드 호슬리(Richard Horsley)와 조나단 드레이퍼(Jonathan Draper), 케네쓰 베일리(Kenneth Bailey), 제임스 던(James Dunn), 리차드 바우캠(Richard Bauckham), 데이빗 로즈(David Rhoads)와 휘트니 샤이너(Whitney Shiner) 등의 선도적인 학자들의 연구에 관한 고찰을 통해 이 현장에 대한 전반적인 개요를 제시하는 데 있다. 특별히 구전성의 재개념화와 복음서에 대한 이 연구가 갖는 함의로 논지를 전환하기 전에, 여러 기초적인 연구들에 대한 논의를 우선적으로 먼저 살펴볼 것이다. 이 연구는 복음서 연구의 중요한 단편에 녹아 들어가 있는 구전성의 실상을 면밀히 고찰하는 것과 동시에, 그것이 신약성서 해석에서 여전히 무시되고 미개척의 차원으로 남아 있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을 것이다.  


주제어: 복음서, 역사적 예수, 구전성, 구술 전승, 연행



서론


복음서의 배후에 구술 전승이 놓여 있다는 사실은 널리 받아들여졌다. 예수, 그 제자들 그리고 예수의 초기 지지자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맹이었던 환경에서 살았다(Harris 1989; Bar-Ilan 1992; Hezser 2001). 또한 비록 이전의 서구 고대의 문화에서 문자적 텍스트들이 중요했을지라도, 의사소통의 최우선의 방법은 음성 언어를 통한 것이었다. 이메일, 인터넷 블로그 그리고 일간 신문들은 사회적 네트워킹 혹은 정보 교환에 쓰이는 매체가 아니었다. 주로 구술 문화 안에서, 그리스도교가 탄생했고 그것의 전승들이 맨 처음 유통되었다. 이러한 결론이 대체적으로 사실이라 가정할지라도, 성서학 연구자들은 이러한 기초적인 관찰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거나 활용하지 못해왔다. 사실상 구전 이론의 발전은 성서학 연구의 장 안에서 다소 천천히 진행되어왔다. 월터 옹(Walter J. Ong)이 진술한대로, 비록 ‘구술 전승이 성서학에 있어 새로운 개념이 아닐지라도’ 그 ‘개념의 발전은 순조롭지 못하게 진행되어왔다’(1983:xiii). 어쩌면 이는 텍스트적 유물로부터 구술 전승에 관한 가설을 세우는 것—어떤 하나의 표준에 의한 힘겨운 직무라 할—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데 기인하는 것일지 모른다. 발전이 저해된 또 다른 이유로는 아마도 근대의 서기적(書記的) 성향과 단순히 우리는 ‘구술적 시대를 상상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Sanders and Davies 1989: 141).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이러한 ‘평탄치 않은’ 발전으로 인해, 많은 학자들이 구전성의 이해가 초기 그리스도교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던(James D. G. Dunn)이 제안하는 것처럼, ‘우리는 역사적 진위를 위해 “구전 시대를 상상하기”를, 즉 구술적으로 구조화된 사회 안에서 전승이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다시 관찰하기를 노력해야만 한다’(2003a: 149; 강조는 원문의 것).

최근의 연구는 구술 전승의 해명에 상당한 도움을 주어왔다. 그리하여 성서학자들은 이제 예수 자료가 형성된 구술적 환경을 그전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 논문의 목적은 최근의 구전성 연구 분야에서 이루어진 발전에 관한 폭넓을 개관을 제공하고, 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연구를 위한 서지목록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비록 구설 전승이 성서학 전반에 강한 충격을 주었을지라도, 이 논문은 지난 삼십년에 걸쳐 복음서 연구 내부에서 이루어진 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와 같은 노력의 여지로 인해, 후속 연구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구술 전승의 기본적인 특징과 복음서 연구에서 구술 전승에 관한 토론을 진척시킨 저작을 찾아내려고 애쓰게 되었다.



복음서 연구에서 진보의 선구자들 


20세기 초반 양식비평의 등장은 복음서 형성에서 구술 전승의 역할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동기가 되었다.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은 자신의 고전적 연구인『공관복음전승사』(The History of the Synoptic Tradition)에서 양식비평의 목표들 중 하나는 ‘어떻게 불안정한(구술적인) 상태의 그 전승이 우리가 지금 공관복음에서 만나는 그러한 고정된 양식으로 전달될 수 있었는가’에 관한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다(1963: 3). 그러나 불트만과 양식비평가들은 이러한 목표에도 불구하고, 구텐베르크-이후적 시각으로부터 자신들을 건져낼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와 같은 목표에 대한 현대적 논의의 기초를 제공해줄 수 있는 ‘구전성 이해’를 후세에 물려주지 못했다. 대신에 다른 현장, 즉 고전학 연구, 사회학과 사회인류학 등에서 구전성과 복음서에 관한 현재의 논의들을 더욱 직접적으로 구체화시켜 왔다. 이 논문은 우선적으론 이러한 연구들이 복음서 연구에 가져다 준 충격적인 효과를 진술하는 데 주력할 것이지만, 한편으론 간단하게나마 구전성과 복음서에 관한 현대적 논의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해온 선구적인 네 학자의 연구를 논평해보려 한다.



Milman Parry and Albert Lord

밀먼 패리와 알버트 로드


구술 이론—혹은 학자들이 분과학문의 성채를 가로지르는 것—들에 대한 관심은 밀먼 패리(Milman Parry)와 알버트 로드(Albert Lord)에 의해 본격적으로 추동된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다. 패리의 구체적인 연구 관심사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의 연행(performance)1), 그중에서도 특히 구술 연행이 이미 암기하고 있는 본문을 상기하는 것에서부터 유래된 것인지 아니면 전승을 전달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것인지에 관한 의문이었다. 그러한 문제의식은 그를 서사시 연행의 역동성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구술 문화, 즉 철저한 문맹적 환경 내부의 시를 연구하기 위해 구(舊) 유고슬라비아로 이끌었다. 패리는 자신의 연구에 기초하여 호머 서사시의 특질이라고 하는 것이 정형화된 언어와 운율을 비롯한 다양한 구전적 구성의 요구에 따라 구술되는 데 있을 뿐, 순수한 문학적 재능의 결과물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더욱이 패리는 이미 축적된 숙어와 단어를 호메로스라고 불리는 그 구송시인이 종합하여 짜낸 조립식의 자료로부터, 그 서사시가 임의적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했다. 불행히도 패리는 그의 연구결과를 완성하기도 전에 뜻밖에 일찍 죽어버렸다. 비록 이후에 그의 아들이 일부 미발표된 연구들까지 망라한 아버지의 모든 글을 모아서 전집으로 출간했긴 하지만 말이다(A. Parry 1971). 패리의 연구는 그의 학생들 중 한 사람이었던 알버트 로드에 의해 계승‧발전될 수 있었다. 로드는 유고슬라비아에서 패리의 작업을 조력했고, 이후에 하버드에서 박사 논문을 완성했다. 로드는 ‘패리-로드 이론’ 혹은 ‘구전(口傳) 정형어구(定型語句)이론(oral-formulaic theory)’으로 언급되어 온 그것을 매우 넓은 규모에서 논증할 수 있었다. 패리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로드는 서사시의 구술 연행이 규정된, 혹은 쓰여진 문서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형화된 공식 어구의 집합적 조립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형적으로 음악은 전통적인 공식어구들을 창조적으로 조합하기 위한 리듬과 영감을 지닌 가수를 제공하는 연행을 동반했었다(1960: 126). 비록 그 가수가 가수인 동시에 창작자이자 연행자이며 시인으로 활약했다 할지라도, 로드는 ‘언제라도 구전된 시와 문서화된 시 둘 다’를 노래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구술매체와 문자매체 사이의 관계는 갈등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서 로드는 『이야기를 노래하는 가수(The Singer of Tales)』(Lord 1960)에서 패리가 적용할 수 있었던 호메로스의 서사시뿐만 아니라, 『베오울프(Beowulf)』, 『롤랑의 노래(La Chanson de Roland)』, 『디게니스 아크리타스(Digenis Akritas)』와 같은 다른 작품들에 의해서도 그 이론(‘구전 정형어구 이론’)이 증명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분과의 학자들이 패리와 로드의 작업에 빚을 지고 있다. 그리고 단연 패리는 ‘구술 문학의 다윈’으로 불리어 왔다고 말한다(Levin 1960: xv). 패리-로드 이론이 언급되어온 동안, 많은 (대부분은 아니라고 한다면) 학자들이 더 이상 구전성과 본문성 사이에 선명한 구별을 짓는 것에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패리-로드 모델의 기초는 계속 남아서, 그 유용성을 풍부하게 입증해왔다: 연행에서의 즉흥성, 정형화된 공식어구와 주제의 사용, 첨가의 방법, 그리고 아주 오래된 혹은 의미가 불명료한 언어의 사용’(de Vet 2008: 161). 궁극적으로, 패리와 로드의 연구는 공관복음의 기원과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양식-비평적 가정에 도전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로드는 그의 구술 전승에 관한 이해를 복음서에 적용했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공관복음이 구전 문학의 중요한 특질들을 제시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갖고 있다’ (1978: 90).



Eric Havelock

에릭 하블록


에릭 하블록은 『플라톤 서설』(1963)에서 구전-공식어구 이론의 보다 넓은 함의를 탐구한다. 패리와 로드는 고도로 발전된 문자 문화들에선 별 가치가 없는 실행이었으나, 하블록이 제시한 것처럼, 지식 획득과 보유를 암송과 기억적 사고 유형에 자주 의지하는 구술 문화에서는 절대 필요한 것 중 하나였던 공식어구를 호머의 시들이 광범위하게 사용했음을 보여주었다. 이런 관점에서는 합리적으로 판에 박은 언어가 필요하다. 하블록은 『국가』(The Republic) 제10권에서 시인의(혹은 시적인) 경험을 반대하는 플라톤의 독설을 해명하고자 노력한다. 플라톤은 시인들이 지식의 수집자로서 활동하고, 사회의 이익을 위한 ‘일종의 사회적 백과사전’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역시 그들의 작업은 ‘기껏해야 천박하고 최악의 경우에 과학과 도덕 양쪽에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Havelock 1963: 29-31, 3-4).2)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법은 더 넓은 역사적 현상의 문맥 안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고 하블록은 제안한다. 하블록은 플라톤 당대의 문화는 —그리스 알파벳의 도입 이후에 여러 세기를 이어오며 (기원전 720-700)—글쓰기에 의해 언어의 내면화가 발달하는 효과를 이제 막 경험하기 시작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보다 넓은 문화적 경향 내부에서 파악하자면, 플라톤은 시인들이 구전 문화의 경향을 정형화되고 진부한 표현이 많이 들어간 문구로 구체화시켜 버렸기 때문에, 그들에 반대하여 논쟁하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에 따르자면, 그와 같은 자료 수집과 사고 양식은 쓰여진 문자에 의해 대체되고 있었던 과거의 방식—‘일종의 영혼의 독과 같은’—이다(1963: 5). 하블록이 관찰한대로,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진행중이었다:


우리는 비록 반(半)-구술 전승 안에 구성되어 있는 천재의 작업이 고대 그리스어의 현대 독자를 즐겁게 해주는 격조 높은 자료일지라도 그것이 구성하거나 재현하는 심리의 전체적인 상태가 우리의 심리이거나 플라톤의 심리가 아니었음을 인식해야만 한다. 그리고 시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구술 전승이 번성하는 동안, 효과적인 산문을 달성하는 데 있어 그것이 최고의 장애물로 선정되었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가 ‘시인의’ 혹은 ‘호머의’ 혹은 ‘구술의’ 심리 상태라고 편리하게 부르게 된 심리의 상태가 과학적 합리주의, 분석의 사용, 경험의 등급화, 원인과 효과를 차례차례로 재정리하는 데 주요한 장애물로 선정되었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이것이 시적인 심리 상태가 플라톤에게 대적(對敵)이 된 이유이다. 그리고 왜 그가 이 적을 그렇게 만만찮아 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1963: 46-47).


시인과 그들의 구술적 사고방식에 대한 플라톤의 거부는 새로운 시대의 서광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하블록은 주장한다. 지식의 대상으로부터 그들 자신을 거리 두는, 즉 추상적인 측면에서 생각하는 것에 무력했던 구전 시인들은 플라톤에게 있어 구전 시대를 특징짓는 극단적으로 단순하고 독창적인 상상력이 없이 생각하는 것을 대표하는 이들로 재현되기에 이르렀다.

하블록의 작품은 그가 구술적 사고방식의 뚜렷한 특질과 마찬가지로 글쓰기가 가져온 효과를 잘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구전성 연구에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 비록 일부에서는 하블록이 플라톤의 시인 묘사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을 뿐, 사실상 플라톤은 문서화된 매체에 회의적이었다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Anderson 1989), 하블록의 연구는 구전성 연구에 중요한 이정표를 의미함을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하블록의 작품은 복음서 안에서 구술 전승의 요소들을 확인하려는 학자들의 탐구에 있어 기본적인 참고자료가 되었다(Bryan 1993: 67-81).


Walter Ong

월터 옹


패리와 로드 그리고 하블록은 고대의 구전성을 이해하는 동시에 구전성과 글쓰기 사이의 관계에 대한 많은 질문들을 증가시키고 학문적인 가설들에 도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진전을 이루어냈다. 월터 옹은 글쓰기가 인간의 정신세계에 가져온 심원한 충격을 고찰함으로써 구전성 연구 발전의 다음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성서학 현장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책인 『구술문화와 문자문화』(Orality and Literacy, 1982)에서, 옹은  ‘일차적인 구전성’(즉, 글쓰기에 완전히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는 문화들)과 ‘이차적인 구전성’(즉, 다수의 사람들이 글을 읽고 쓸 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구술적 의사소통에 참여하고 있는)에 의해 지배되는 문화 사이에는 정보를 관리하는 데 있어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1982: 6, 136).

옹의 가장 중요한 기여는 그가 ‘구전성의 정신역학’이라고 간주한, 즉 구술문화에 입각한 사고와 표현의 특징들이라고 밝힌 것을 확실히 증명해낸 데 있다. 패리 및 로드의 작업이 특정한 문화들의 비교에 기반하고 있었던 것과 달리, 옹은 지리적 혹은 시간적 배경에 상관없이 문자 사용 이전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구전성의 일반적인 함의를 기술함으로써 보다 확대된 방식으로 그물을 던지는 데 도전한 것이다. 구술문화에서 소리와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 외에도, 옹은 구술문화에 입각한 사고와 표현의 고유한 특징들을 많이 제시한다: (1) 종속적이라기보다는 첨가적인 양식(an additive rather than subordinating style), (2) 분석적이라기보다는 집합적인 표현의 정형구(an aggregative rather than an analytic form of expression), (3) 장황스러운 경향(a tendency for the redundant), (4) 보수적인 견해(a conservative outlook), (5) 인간의 삶의 세계에 밀착된 표현(expression corresponding to the human life world), (6) 논쟁적인 어조(an agonistic tone),  (7)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참여적인 관점(a participatory rather than an objective perspective), (8) 항상 지향성 혹은 항상성(恒常性)(a homeostatic orientation or homeostasis), (9) 추상적이라기보다는 구체적인 사고방식(a concrete rather than an abstract mode of thinking) (1982: 31-). 옹이 논하는 이러한 특징들은 ‘글쓰기가 어떠한 발명보다도 더욱 강하게 인간의 의식을 변화시켜’ 오는 동안에 인간정신이 극적으로 재구조화됨으로써 영원히 바뀌어 버렸다. (1982: 78).

『구술문화와 문자문화』가 구전성 연구의 현장에서 이루어진 옹의 첫 번째 작품은 아니었다(1967, 1977). 그렇지만 역시나 그 책이 그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이며, 글쓰기의 기술이 인간 사고의 형태에 가져온 충격에 관한 가장 적절한 해설이었다. 그의 전임자들처럼, 그리고 대부분의 장기간 지속된 패러다임의 진실성에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가능했던 학문의 진보들처럼, 옹은 이해의 경계를 넓혀가면서, 자신이 줄곧 재조사해온 개념들을 유기적으로 서로 연관시켜 나간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옹이 묘사하듯, 마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 가능한 보편적 원칙에 의해 지배받는 것처럼, ‘구술적 사고방식’ 혹은 ‘구술 전승’에 관해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컨대, 해링은 ‘상식적인 인류학이라면 구술적이건 문자적이건 간에 보편적이거나 불변하는 테마, 기술들, 혹은 문예적 장치들이란 없다는 것에 동의해야만 할 것이다. 각각의 문화는 구전 예술(verbal art)의 범위 안에서 다르게 작용한다’ 라고 주장한다. (1998: 37) 그러나 해링이 옹의 선구적 제안의 근본적인 토대를 허무는 것 같은 관점을 표명하고 있다 할지라도, 옹의 독창적인 기여는 과소평가될 수 없으며, 또한 일차적이고 이차적인 구전성에 의해 지배받는 문화들에 속한 최소한의 일부 사람들의 차이를 나타내는 그 특징들에 관한 옹의 서술을 근본적으로 부정하진 못한다.

패리와 로드와 하블록 그리고 옹은 그들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을 통해서 구전성 연구 영역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연구는 민속학과 역사학과 인류학을 포함한 다양한 학문분과들에 깊은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구전성 연구가 넓은 대화의 지평에서 펼쳐져 온 만큼, 그밖의 다른 많은 학자들이 이 그룹에 속한 것으로 언급될 수 있다. (Vansina 1965, 1985; Goody and Watt 1968; Finnegan 1970, 1974, 19, 1988, 1990, 1992; Peabody 1975; Goody 1977; Foley 1988, 1990, 1991, 1995, 1999, 2002)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술 전승에 관련된 비교적 최근의 연구들이 결코 적지 않은 부분에서 패리, 로드, 하블록과 옹의 작품에 도움을 받았다. 패리, 로드, 하블록 그리고 옹, 그들은 집합적으로 구전성과 문자성 사이의 관계에 관해 다시 생각하는 학문적 세계를 추진했었다. 궁극적으로는 지금도 신약성서학에서 구술 전승을 재평가하도록 자극하고 있다.



구전성과 복음서를 다시 생각하기


신약학자들이 패리, 로드, 하블록, 옹이 주도했던 연구단체를 이용하기 시작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러한 방법론적 진전들은 곧바로 신약학에서 구전성을 재개념화하도록 자극을 주었고, 그 결과 오늘날도 여전히 펼쳐지고 있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가능했다. 신약학자들이 이 연구와 상호 작용하기 시작하면서, 신약학 현장 내부에 존재해오던 다양한 구전성 이론의 모델들이 무비판적으로 잘못 추정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다. 구전성과 복음서 사이의 상호 영향에 관한 최근의 연구들, 즉 아래에서 언급하고 있는 여러 학자들은 앞서 소개한 선구자들의 기초적인 작품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Werner Kelber

베르너 켈버

 

일반적으로 베르너 켈버는 ‘복음서가 구전적 의사소통이 주도하던 세계에서 만들어지고 수용되었음을 최초로 인식한’ 신약학자라 인정받고 있다(Horsley 2006: viii). 더욱이, 어떤 이들은 켈버가 성서학 현장에서 ‘거의 단독의 노력으로 (구전성 이론의) 개척자가 되었다’고 단언하기도 한다(Horsley and Draper 1999). 물론 켈버가 구전(=구술 전승)이 ‘그 텍스트’(=성서)의 배후에 있다는 것을 최초로 간취한 것은 아니라할지라도, 그가 구전 해석학(oral hermeneutic)이라는 것의 발전을 옹호한 최초의 인물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켈버는 ‘마가복음과 구술 전승’(Mark and Oral Tradition, 1979)이라는 이름의 논문에서 그 주제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필기된 것에 대한 성서학자들의 편애에 가장 노골적으로 도전하면서, 동시에 구술 문화적 배경에 관한 논의를 되살린 것은 단연 1983년에 출간된 그의 획기적인 저작, 『구전되고 기록된 복음서:  공관복음 전승, 마가복음, 바울서신, Q의 담화와 서사에 관한 해석학』(The Oral and the Written Gospel: The Hermeneutics of Speaking and Writing in the Synoptic Tradition, Mark, Paul, and Q)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학자들과 민속학자들―예컨대, 패리, 로드, 하블록, 옹, 피네간(Ruth Finnegan), 구디(Jack Goody) 등의―연구성과에 점점 더 많이 의존하면서, 켈버는 신약성서연구에서 구술 전승에 관한 토론을 양분해온 루돌프 불트만(1963)과 버거 게할드슨(Birger Gerhardsson, 1961), 바로 이 두 학자의 대립된 관점을 신봉해온 전승 모델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을 제기한다.

먼저 양식비평적 접근에 관한 켈버의 비판적인 평가는 구전성의 역동성과 그것이 의사소통의 문서화된 양식과 맺고 있는 관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불트만이 범한 오류를 밝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귀트게만스(E. Güttgemanns, 1970)와 같이, 켈버는 양식비평의 근원적인 가정들에 도전하면서 이루어져온 구전성 연구들의 성과들을 탁월하게 정리한다.

켈버에 따르자면, 가장 문제적인 지점은 불트만이 구술 전승에서 문서화된 복음서로 나아가는 이행의 과정을 단순히 순조롭고 평탄한 것으로 가정했다는 사실이다(Bultmann 1963: 48). 불트만은 마태와 누가의 마가복음 및 Q의 편집에서 나타난 그 원칙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구술 전승의 역사에서 복음서 이전의 전승 역시 형성되었음을 밝혀낼 수 있다고 이론적으로 상정했던 것이다. 불트만은 ‘만일 우리가 [(마태와 누가에 나타나는 마가 및 Q) 본문 전승의 발달 과정에서] 어떠한 법칙성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법칙성이 마가와 Q에서 확정되기 이전의 전승 자료에서부터 이미 작용하고 있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자료의 형태로 확정되기 이전의 전승 단계에까지 소급해 들어갈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1963: 6-7). 요컨대 불트만은 문서화된 전승에 대한 연구로부터 구술적 전승에 대한 연구를 소급해 들어감으로써 문서화 이전의 순수한 구전 양식을 규명하기 위한 그의 탐구를 시작한 것이다.3)

켈버가 진술한 바에 따르자면, 이러한 해석학적 역투사(解釋學的 逆投射; hermeneutical retrojection)는 ‘문서적이냐 혹은 구전적이냐’ 라고 하는 의사소통의 양식을 고려하는 것이 문서 이전의 발단 단계에 있는 구술 전승을 탐구하는 데에는 전혀 의미가 없다고 하는 단순한 가정에 기초한 것인데, 이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확실한 점 하나는 바로 문서화된 텍스트와 대비적으로 살아있는 말하기의 실제성을 이해하는 데 불트만이 실패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점 안에 근본적으로 놓여 있는 것은 ... 구전적 활동으로부터 텍스트상의 고정된 문자에 이르는 변천과정의 효과를 축소하고 있는 (불트만의) 경향이다’(1983: 8).

게다가, 샌더스(E. P. Sanders, 1969)에 이어 켈버는 불트만의 모델의 기초가 ‘민담적 설화문학’(folk literature)에 대한 실제적인 고찰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었음을 주목했다(1983: 7). 전승의 발전과 확장의 경향에 관한 설명, 즉 개별적 어록으로부터 복음서의 복합화에 이르는 발달과정을 설명하는 양식비평의 중심적 테제는 민속학에서 발견한 경향성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다소 역설적이게도 불트만은 전승의 일반적 법칙을 탐구하는 데 목적을 둔 비교문학적 분석의 가치를 분명 인식하고 있었다(1963: 7).

그렇지만 불트만의 해석적 원칙은 비(非)그리스도교적 전승의 현상들과 전혀 비교되지 않은 채 거의 배타적으로 자신의 공관복음 전승에 관한 고찰로부터만 유래한 것이었다. 켈버가 정확히 논증한대로, 불트만은 비(非)그리스도교적 문헌에서의 발견되는 구술 전승의 역동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대신에 복음서 저자들의 텍스트적 성향은 복음서 이전의 전승 작용, 즉 구전적 발달 단계에서의 그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전제했다.

불트만의 전승 이론 모델과 양식비평 일반에 답하여, 게할드슨은 전승 과정에 관한 불트만의 묘사에 도전하면서, 그리고 전달된 전승의 역사적 신뢰성을 단언하면서 그 둘 다에 필적할만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4) 게할드슨은 타나임 시대와 아모라임 시대의 랍비적 유대교에 관한 그의 분석에 기초하여 (복음서 전승의) 구전성의 모델을 기술한 것이다(1961: 30).

비록 공관복음이 예수가 가르쳤던 특별한 방식에 관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자료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유대적 배경은 예수를 문화적으로 적응시킨 컨텍스트에 관해서는 중요한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게할드슨은 ‘그 자료들은 예수가 사용했던 어떤 방법이 그의 주변에서 사용된 보통의 일상적인 것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아님’을 주장한다(1961: 326).

이와 같이 랍비적 유대교에서 나타난 전승의 모델은 예수와 초기 그리스도교 가운데도 유사하게 작용하여 그 과정에 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전승이 왜곡되지 않고 예수로부터 그의 제자들에게로 곧바로 전수되었다. 권위를 존중하는 인물들로서 제자들의 전승에 대한 강한 수용력은 그 전승의 전달을 신뢰할 만한 것으로 보증해준다. 예수는 랍비들처럼 ‘그의 제자들이 자신이 가르쳐준 것을 기억할 것을 요구했’고, 더욱이 ‘유대인 제자들의 스승에 대한 자세’를 고려한다면, ‘건망증과 신앙적 상상 활동이 너무 지나쳐서 불과 몇 십 년의 기간 중에 모든 것을 인지하게 됨을 넘어 진짜 기억까지 변형시키는 것에도 능숙했다고 가정하는 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1961: 328-29).  

게할드슨의 모델이 비록 많은 측면에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전성에 관한 토론을 진전시켰다는 점에서 켈버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게할드슨은 ‘말은 소리로 전해지기 위한 것이었고’, 더 나아가서 고대의 문헌들은 침묵 가운데 내밀하게 읽기를 위해 의도된 것이 아니라, ‘눈으로 읽는 것 이상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눈만큼 귀로 듣기 위해 의도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했던 것이다(1961: 163). 더욱이 게할드슨은 구술 문화권에서 주로 기억을 돕는 기술들, 예컨대 운율 ․ 선전 문구 ․ 심리적 연상에 기초를 둔 자료의 각색 같은 것들이 전승의 전달과 보존을 위해 필요했다는 것도 주목했다(1961: 148-49).

그러나 이러한 이론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통찰들이 구전성에 관한 동시대 연구들과 조응하여 구술 전승의 양식에 더욱 풍부한 영감을 줄 수도 있었는데, 그렇지 못한 채 전승의 수동적이고 권위적인 전달이라고 하는 그의 중심적 테제에 부차적인 것으로 남겨지고 말았다’고 켈버는 논평하고 있다(1983: 13). 켈버가 가장 곤란해 했던 것은 게할드슨의 모델의 기저를 이루는 애매모호한 가설들이었는데, 특히 랍비 문헌들을 예수 시대로 소급하여 적용하는 것(모톤 스미스[Morton Smith, 1963]가 처음 제기했던 그릇된 논쟁의 핵심이었으나, 이후에 게할드슨[1991, 2001]이 명쾌하게 설명해냈고, 다른 이들[뉴스너(Jacob Neusner) 1998]도 인정한 바 있는)과 구술 전승의 엄격한 암기를 강요했던 랍비와 같은 교사로서 예수를 묘사할 때 막상 그 증거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켈버가 시사하기로, 확실히 그 모델은 텍스트적 편견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게할드슨은 처음부터 문서화된 텍스트를 상정하고 논의를 전개했을 뿐 아니라, 또한 기억에 의해 전수된 그 전승이 문서화된 텍스트에 대해 계속적으로 의존했다고 가정한다. 비록 게할드슨이 공관복음에서 구전성의 위치를 확고하게 주장했을지라도, 결국 그는 (구술 전승과 문서 전승) 둘 다 축어적인(말 그대로 문자적인) 기억의 메커니즘에 의해 전달되었다고 가정함으로써 둘 사이에 존재하는 의사소통 방식상의 경계선을 결국 무너뜨려 버린 셈이다. 

게할드슨의 수동적인 전승 수용 모델은 불트만의 집합적 성장 모델과 사실 그 의미가 상당히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켈버에 따르면 어느 쪽 이론도 구전문화적 배경을 둘러싼 의문에 대해 설득력 있는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켈버는 최종적인 분석에서, 두 이론이 공히 두 가지 측면에서 공유하고 있던 가설들을 흔들어 놓고 있다: (1) ‘구술 전승과 문서 전승 사이에는 확정할 수 있는 경계선’이 없다는 제안 (Bultmann 1963: 321), 그리고 (2) 전승의 과정이 마치 아무런 주변의 방해도 없었던 것처럼 단선적으로 순탄하게 흘러간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 이렇게 당연시되고 있는 가정들에 대한 근본적인 비평—이를테면 ‘너무 과도한 문서 위주의 해석학... 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에 쏠려있는 관심’(Kelber 1983: xv)—은 복음서(와 바울서신)에서 작동 중인 구전성의 정신역학을 새롭게 이해하기 위하 켈버의 시도의 출발점이었고, 동시에 그의 연구가 지지받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켈버의 논의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구술 전승과 문서 전승 사이에 존재하는 의사소통 방식—성서학 현장에서는 대부분 간과해왔지만 구전성 연구자들은 반복해서 강조했던 개념인―상의 기본적인 차이였다. 물론 켈버가 입으로 전해진 것(말)과 글로 쓰여진 것(문자) 간의 명확한 관계가 무엇인지를 설명함에 있어, 여전히 논란이 분분할 수밖에 없게 남겨 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한편으로 그는 둘 사이에 기본적인 차이점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1983: 14).

켈버에 따르면, 이러한 구술적 의사소통과 문서적 의사소통 방식 간의 차별성은 의사전달의 행위에서부터 이미 뿌리내려져 있는 것이다. 구술 연행자들은 입으로 전해진 말의 일시적—‘입 밖으로 냄과 동시에 사라져 버리는’—속성에 부담을 느낀다(1983: 1). 독자(讀者)들과 달리, 청중(聽衆)은 자료를 다시 보기 위해 인쇄된 페이지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 대신에 기억을 용이케 하기 위해 강연(혹은 연설) 내부에 있는 언어적 장치들에 의존해야만 한다. 입으로 전해진 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청중들의 기억을 돕는 장치와 구술적 맥락에서 차용할 수 있는 다량의 정보에 어울리는 정형화된 어구를 잘 사용할 줄 아는 화자(話者)의 능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므로 화자에게 있어, ‘구술적으로 전달된 것이라고 그 모두가 다 이용가능 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직 구술적 관점에서 유연성이 있고 회수가 가능한 일정양의 자료만이 구술 전달에서 이용가능 할 뿐인 것이다(Kelber 1983: 15).

보존을 용이케 하고자 보조적인 기억장치를 사용하는 것은 전승의 수명을 늘리는 데 매우 요긴한 것이다. 그러나 켈버에게는 그 이상은 아닐지라도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주어진 전승의 사회적 적실성(social relevancy)이라 할 수 있다(1983: 24). 비록 기묘하고 특이한 전승이 그것들의 그러한 순수한 이질성 때문에 잘 기억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보통 일반적으로는 입으로 전해진 말의 생존은 사회적 동일시의 법칙에 더 많이 의존한다고 볼 수 있다. ‘공동의 (전승) 수신을 위해서 넘어서야 할 사회적 경계를 끝내 넘어서지 못하는 전승은 소멸의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청중과 연관된 연행의 (사회적) 적실성과 화자의 능력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1983: 29). 이야기와 말하기는 그것들이 청중과 공명이 풍부하게 일어나고, 또한 그들의 심금을 강하게 울릴 수 있을 때 보존이 더 잘 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기억된 전승은 다른 이들에게 전수됨으로써, 그렇게 구술 전달의 순환 작용 가운데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구술 전승의 행로는 비(非)선형적이며, 켈버가 정의한 ‘규제적 검열(preventive censorship)’이라는 것으로 인해 가능한 한 다양한 변화를 겪게 된다(1983: 29). 가능한 변화의 예로 굳이 몇 가지만 대자면, 전승의 사회적 중요성과 현실적 실행가능성을 위해, 이야기는 확장되고, 결론은 수정되며, 사소한 내용은 버려지기도 하고, 주제는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종종 그러한 현상이 생략과 단순화 쪽으로 흘러간다 할지라도, 그 과정을 기계적이고 선형적인 것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구술 연행 당시 그 주변의 상황에 강력하게 연루되면서, 일부 전승들은 비교적 변경이 거의 없는 상태로 역사를 거쳐 내려온다. 켈버는 비선형적 발전의 견해와는 별 관련이 없지만, 그 역시 (패리와 로드를 쫓아서) ‘오리지널(original)’이라는 개념이 진화론적 발전을 염두에 둔 문학적 모델에서 연원하여 시대착오적으로 잘못 구성-적용되었다고 주장한다. 

각각의 구술 연행은 그 자체의 독자적인 기준에 따라 이미 유일하고 오리지널한 창작인 것이다: ‘예컨대, 만일 예수가 한 번 이상 담화를 연설했다면, 오직 그 첫 번째 발설에서만 “오리지널한 것”이 산출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음이 자명하다. 그렇다고 또한 연설의 매순간이 놀랄 만큼 신선하고 새로웠기 때문에, 두 번째 발설은 처음의 것으로부터 “전혀 다른” 그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Kelber 1983: 30). 비록 전승이 전달되었을지라도, 그것들이 사회적 필요에 조응할 수 없는 말씀과 이야기의 형태로 계속 전수되진 않았을 것이다. 각각의 강론은 받은 전승의 단순한 암송 내지는 구두 반복이 아니라, 특정한 청중을 위해 기획된 그 나름대로 언제나 진정성 있는 연설 행위였고, 또 그래서 다른 연행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었다. ‘오리지널’이라고 하는 개념은 구술 문화의 세계에서는 절대 존재하지 않았던 현대적 개념이며, 예수 전승의 본질에 관한 근본적인 오해를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

복음서와 관련해서, 켈버는 마가(마가복음의 저자인) 이전의 구술 전승과 문서화된 마가복음 전승 사이에 확고한 단절이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 그간에 축적된 통찰들을 풍부하게 활용한다. 켈버는 해석자가 ‘새롭게 전달된 이야기 안에 그 매체 자체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근본적 원리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가 계속 강력히 주장해 나가는 그 매체 자체의 역사란 새롭게 글로 쓰여진 텍스트(와 그것의 대리인)가 설립된 목적이 ‘구술적 전달의 우세한 권위에 대항해서’라는 것이다(1983: 130).

다시 말해, 켈버에 따르면, 마가복음 저자의 문서화된 매체 사용은 구술 전승의 수호자였던 제자들과 예수의 가족들 그리고 그리스도교 예언자들에 대한 그의 적대적인 반론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5) 쓰여진 텍스트로서 마가복음에서 일어난 이러한 (즉, 구술 전승에서 문서 전승으로 이행하는) 기술적 혁신은, 저자라고 하는 존재가 갖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위치에 대한 경의의 표현, 다시 말하자면 복음서의 구술적 대리인으로부터의 거리두기이자 동시에 과감한 거부라 할 수 있다.

마가복음에 대한 켈버의 분석 및 마가복음 저자가 ‘자신의 선구자들이 전수해준 구술 전승의 목소리와 단절’하고자 했다(1983: 104)는 그의 주장은 수년에 걸쳐 격렬한 논쟁을 일으켜왔다. 구전성과 텍스트성(=본문성) 사이에 존재하는, 소위 ‘위대한 분리’(패리와 로드에게 빚지고 있는 관점)로도 일컬어지는 이러한 분기점은 구술 문화가 문자 문화가 경쟁적으로 공존했던 이 과도기적 시대의 복잡한 현실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래서 학자들의 대다수는 지금도 이러한 요소들(구전성과 텍스트성)을 하나의 연속체로서 작동 중이던 것으로 이해하기를 선호하는 것이다(Swearingen 1986; Aune 1991: 240; de Vet 2008: 160-61).

덧붙여, 마가복음의 쓰여진 텍스트가 십중팔구 장차 연행됨으로써 다시 구술화되었다는 점에서, 켈버의 테제는 그 자체로 모순적으로 보인다. 요컨대 켈버가 주장하기로, 문서화된 텍스트를 창조해낸 복음서 저자들이 결코 신뢰하지 않았을 (구술 연행적) 전승화의 바로 그 방법이 (복음서 텍스트를 전승하기 위해) 재건된 것이다(Mournet 2005: 84-85). 켈버가 이후의 작품들에서 이러한 (구술 전승과 문서 전승 사이의) 엄격한 대조를 스스로 완화시켰다고는 해도, 당시 그 책에서 그가 그토록 [지나친] 강세법을 사용하며 주장했던 데는 다분히 기존의 지배적인 문서 위주의 해석학을 돌파하기 위한 수사학적 의도가 깔려 있었다. 더욱이 최근 들어 그는 이러한 입장을 거듭 천명하면서, ‘말해진 것과 쓰여진 것 사이의 투쟁적인(conflictual) 관계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진술하고 있다(Kelber 2008: 30; 강조는 원문의 것).

이러한 비평에도 불구하고, 켈버의 공헌의 중요성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 켈버와 같이 그런 신선한 접근을 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최근 켈버와 가진 인터뷰의 명칭이 확인해주듯이—할 것이다(2008). 복음서 학계에서 구전성 연구의 역사에 관해 말할 때, ‘분수령’ 그리고 ‘전환점’ 같은 용어가 정당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켈버의『구전되고 기록된 복음서』(The Oral and the Written Gospel) 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켈버가 기여한 작품은 구술 전승에 관한 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여전히 가장 중요하고 가장 영향력이 있다’라고 주장할 것이다(Mournet 2005: 86).

 

Joanna Dewey

조안나 듀이6)

 

켈버의 독창적인 작업에 이어, 듀이는 전체적으로 관찰했을 때 마가복음이 구전 설화(oral narratives) 중에서 발견되는 기법 같은 것들을 명시하고 있다는 논증을 제시한다[‘Oral Methods of Structuring Narrative in Mark’, Int 43(1989)]. 켈버와 달리, 듀이는 매체 간의 구별, 더 정확히 말하면 텍스트성으로의 이행을 너무 크게 강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복음서 연구자들이 텍스트적 유물 안에서 구술 전승 과정이 남긴 흔적을 찾아내기를 기대해야 한다고 제안하듯이, 구전에서 문서전승으로의 전환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듀이의 마가복음 분석의 기초를 이루는 해석학적 원칙은 우선 ‘시에 대한 플라톤의 비난의 핵심에는 구술적 사고방식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던 하블록의 영향력 있는 저작(Preface to Plato, 1963)으로부터 기인하고 있다. 마가복음이 구전 매체에서 사용되던 많은 특질들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듀이는 마가의 내러티브를 (플라톤이 거부했던) 구두 작문(oral composition)의 특징들과 비교한다. 특별히, 그녀는 자신의 논의를 시의 세 가지 특질에 관한 토론에 집중한다. (플라톤에 따르자면) 그것은 ‘미덕의 허상’이자 ‘현실의 환영’과 같은 것으로서, 필연적으로 퇴출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1989: 34).

첫째, 구술 전승은 사건 혹은 짧은 에피소드의 형태로 전형화되어 보존되었다(1989: 35). 대다수의 학자들이 인정했듯이, 마가복음이 이러한 첫 번째 기준을 충족시킨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마가복음 4장과 13장, 두 곳에 걸쳐 나타나는 긴 강화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러나 듀이가 관찰한 대로, 이러한 가르침의 묶음들조차도 구조적인 측면에서 구술적인 방식으로 일체화되어 있다. 마가복음 4장의 경우 짧은 이야기의 형태를 띠면서 독특하게 기능하는 별개의 다른 비유들을 내적으로 많이 포함하고 있다. 한편, 마가복음 13장은 비유를 포함하지 않고 있는 묵시적 담화이긴 하지만, 4장과 마찬가지로 교차대구법(chiasm), 원환적 구성(ring composition), 구두적 반향효과(verbal echoes)와 같은 구전적 맥락에서 전승의 보유에 기여하곤 했던 그 모든 기억술 장치들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두 번째 특징은 (플라톤이) ‘(시인의) 모방적 묘사’(mimesis)에 관해 서술한 것인데, 바로 시각적인 것과 긴밀히 연관되어있다. 이는 청중의 ‘볼’ 수 있는 능력을 이용하여 전승의 보존을 촉진한 에피소드들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마가복음 내러티브의 다양한 종류의 치유설화들, 대화 이야기들과 소란스러운 바다 여행담들은 단순한 차원의 에피소드적 성격을 넘어, 복음서의 구술 연행 당시 그것을 듣고 있던 사람이 한창 전개되고 있는 장면들을 자유롭게 상상하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마가복음은 그야말로 시각적인 심상으로 풍부한 텍스트이다. 그리고 그것은, 듀이가 관찰한 바, 청중들의 구전적 기억활동에 분명하게 영향을 끼쳤다.

플라톤에 의하면, 시의 세 번째 특성은 그것이 많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인데, 이를테면 옹이 주목한 바, 첨가적이고 집합적인 구술 내러티브의 본질적인 경향이라 할 수 있다(Ong 1982: 37-39). 이는 그 에피소드들이 종속 관계나 인과 관계의 논증과는 별 관련 없는 병렬적인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듀이는 마가복음 1-2장에서 소개되고 있는 열 세 개의 장면들을 지적한다. 그 중 11개가 접속사 καί(kai, 그리고)로 시작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세례 요한의 체포에 이은 그의 죽음을 묘사하고 있는 에피소드는 마가복음 6장에 이르기까지 보류되고 있다. 그것은 청중에게 (예수에 관한 소식을 듣고서) 자신이 죽였던 세례 요한이 살아서 돌아온 것이라고 믿는 헤롯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함께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단순히 연대기적 순서를 따라 마가복음 1장 14절의 세례 요한의 체포에 관한 최초의 언급에 바로 이어서 그 장면을 진술하기 보다는, 이러한 의도적인 서사 전략을 사용한 것이 발견됨으로써, 결국 복음서 역시 일반적인 구전 내러티브에 내재하는 비선형적인 발전의 과정을 보여준다는 것이 입증된다. 그 후에 듀이는 이러한 내러티브가 청자들로 하여금 이미 만난 적 있는 자료에서 메아리적인 음향효과를 다시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한편으로 그 내러티브 안에서 앞으로 더욱 발전을 기대하게 만드는 다양한 청각 기술을 통해 거시적이면서도 미시적인 차원에서 함께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논증한다(1989: 38-42). 마가복음 도처에서 명백히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동일성 속에서 다양성’은 구전 내러티브의 본질적인 특징이다 (1989: 38).

듀이의 작업은 복음서 연구에 있어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녀는 단순히 몇 개의 개별적인 에피소드들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마가복음을 전체적으로 읽음으로써, 주의 깊은 청중들을 돕기 위해 의도된 기술들이 그 텍스트 안에 스며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논증해냈다. 더 나아가 켈버와 달리 그녀는 구술 매체와 기록 매체 간의 관계에 대해 보다 균형 있는 접근을 지지한다. 비록 마가복음이 글로 쓰여진 텍스트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구전성과 텍스트성 사이의 상당한 오버랩’을 드러낸다(1989: 33). 듀이가 켈버에 동의하는 대목이자, 그러면서 그녀의 작품이 명확히 겨냥하는 지점은, 복음서 해석 및 초기 그리스도교사의 재구성 작업에서 구전성의 역동성을 진지하게 취급하는 학자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지기를 강력하게 요청하는 것이었다(1989: 42). 듀이 자신의 후속 작업이 바로 이러한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이기도 했다(1991, 1992, 1994a, 1994b). 



Paul Achtemeier

폴 악테마이어


의사소통의 구술적 방식과 문서적 방식 사이의 분기점을 강조했던 켈버의 주장은 악테마이어의 “Omne verbum sonat(모두에게 울려 퍼진 말씀): 신약성서와 서양 고대 후기의 구술적 환경”(1990)7)에서 더욱 강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악테마이어의 주장의 본질은 신약성서문헌이 작성된 그 시대 동안에, 문서적 의사소통은 ‘문서화된 매체에 의하여 지속되던 의사소통 방식’에 자극을 받고 있었던 ‘잔존하는 구전성’에 역시 강한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1990: 3). 켈버에 대한 교정 이상의 것을 제공하는 동시에, 악테마이어는 신약성서가 단지 구전 기술들을 통합한 것에 불과한 것, 즉 마치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방식의 문서적 의사소통과 결합된 것 같은 그런 것이 아니라, 신약성서의 저자들이 의도적으로 구술적 장치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임을 주장했다.

악테마이어는 그의 연구를 기록된 문서가 제작된 방식과 그 결과 이 문서들이 읽혀진 방식을 탐구한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비록 글을 쓰거나 읽을 수 있는 인구의 비율이 소수에 불과했지만, 기록된 문서는 부족하지 않았고, 일반적으로 두루마리 혹은 코덱스의 제작을 위해 필요한 자료들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된 문서들은 현대의 통례와 같이 조용히 제작되었던 것이 아니라, 필사자에게 불러 주어 받아쓰게 하거나 개인들이 글쓰기의 행위에 종사하고 있을 때 거의 동시적으로 언어화되었다.


구전문화적 환경이 너무 널리 보급되어서 목소리를 발성하지 않는 글쓰기는 발생하기 어려웠다. 그것은 구술적 받아쓰기의 사례에서 명백해진다. 자기의 힘으로 글을 쓰는 경우에도 역시 사실이다. 어떤 이가 스스로의 말들을 글로 쓰거나 다른 사람의 글 중에서 그것을 베끼든지 간에 그들이 글쓰기에 전념하려고 노력할 때조차도, 단어들은 거의 동시적으로 말로 표현되어졌다. 누가가 즈가리야(Zechariah)가 그의 아들의 이름(‘요한’)을 서판에 쓰던 것을 묘사할 때 그가 사용한 그리스어(눅 1:63, ἔγραψεν λέγων; 에그라프센 레곤—’그가 말한 것을 썼으니’)는 즈가리야가 말한 것이 복원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이 바로 글쓰기의 행위라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최근의 분석에서, 구술적 받아쓰기는 단순히 글쓰기의 수단이었다는 것; 단지 어떤 이가 다른 사람에게 글로 받아쓰게 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한 것인지의 문제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1990: 15; 강조는 원문의 것).


구전성은 기록된 문서의 제작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독서의 과정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악테마이어는 고대 세계에서 독서는 거의 항상 글자를 목소리로 크게 내서 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공중들이 모여서 함께 독서를 하는 동안, 그것은 아주 분명히 구술적 공연이라 할 수 있었다. 또한 개인들의 사적인 독서 역시 기록된 말의 구술적 낭송 행위를 수반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일반적으로 기록된 문서들은 마가렛 밀스(Margaret Mills)의 용어로 하자면, ‘재구술화’(‘re-oralization’)의 과정, 즉 구술 연행을 위한 플랫폼으로 기능했다(1990). 따라서 사도행전 8장 30절에서 빌립이 에티오피아 내시가 이사야서를 읽고 있던 것을 우연히 들을 수 있었던 이유에 관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장면은 고대의 독서 관행이 구술적 낭독에 기초하고 있다는 상식을 기록한 것이다(1990: 16).

이러한 관찰의 의의는 신약성서 문헌들이 ‘언어와 양식에 관해서 지니고 있을지 모르는 어떤 고유한 특질들은 예외로 하더라도, 그것들의 창작과 연행에 있어서만큼은 철두철미하게 구전적’이라는 사실이다 (1990: 19). 악테마이어는 이러한 신약성서문헌들이 신약학자들 사이에서 흔히 그러하듯이 엄격하게 필기적인 용례에서보다는 근본적으로는 구술적/청각적 의사소통의 범위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악테마이어는 다양한 구절들에 대한 관찰을 통해, 그 모든 신약성서의 문헌들 안에 다수의 구술적/청각적 문화의 단서들—경청하고 있는 청중들 사이에서 이해를 용이케 하기 위해 반복(수구(首句)반복, 대구법, 수미상관)과 두운(頭韻)법을 포함한—이 새겨져 있음이 예증된다는 것으로 논의의 결말을 짓고 있다(1990: 19-25).

악테마이어의 분석은 켈버에 의해 제시된 구전성과 텍스트성 사이의 과장된 이분법을 반대하면서, 신약성서의 저자들이 의사소통의 방식을 전달하기, 즉 구전성을 억제하는 텍스트성의 측면들을 부주의하게 성문화한 것이 아니라, 청중들을 돕기 위해 그들의 문헌들 안에 이러한 구전성의 요소들을 신중하게 통합시켰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논증해냈다. 악테마이어는 신약성서와 복음서의 자료들의 사용과 본질에 관한 영속적인 의문들에 대해 앞으로 구전성 이론—향후 몇 년 간 많은 열기가 집중될 이슈라 할 수 있는—의 잠재적 적용 가능성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논문을 마친다.



Peter Botha

피터 보싸


피터 보싸의 1991년 논문인 “구술 전승적 문헌으로서 마가의 이야기”8)는 구전 문화적 배경에 관한 탐구를 촉진시켰고, 혁신적인 방식으로 그 대화를 발전시켰다. 그 논문의 부제—‘예수에 관한 일부 전승의 전달을 재고하기’—가 제시하는 것처럼, 보싸는 구술 전승과 문자 매체 사이의 상대적 연속성에 관하여 입장의 차이를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다 공통적으로 복음서가 구술적으로 작성된 하나의 텍스트로 보이진 않는다고 주장했던—분명히 마가복음이 구술적 작성의 기술들을 명시하고 있는데도—켈버(1983: 77-80)와 듀이(1989: 43-44)의 작업을 넘어서는 지점까지 나아갔다.

보싸의 주된 기여는 패리-로드 이론을 ‘구술적 구조의 텍스트적 징후를 간직한 마가복음의 현저한 특징들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한 논의’에 적용했다는 데 있다(1991: 314). 비록 헤르더(Herder, 1880)와 보먼(Boman, 1967)을 포함한 다른 학자들이 유사한 결론에 도달했을지라도, 보싸의 경우는 마가복음의 배후에 놓인 구성상의 기술을 더 잘 이해하고 확인하기 위해 구전-공식어구 이론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그 이론이 비록 유용하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복음서에 적용될 수는 없다는 의견을 표명했던 켈버(1983: 78)와 달리, 보싸는 구전 정형어구 이론을 간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접점이 충분히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연구를 위한 방법론적 기초를 수립한 후에, 보싸는 마가의 이야기 안에 있는 중요한 특징들이 패리-로드 이론이 가정하고 있는 전승화 과정과 일맥상통하는 전형적인 특질들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혀끝으로의 도약’이라고 하는 정형화된 표현, 즉 즉 대체로 부지불식간의 반복을 암시하는 리드미컬한 어법과 확실한 관용구의 사용을 명확하게 지적한다(1991: 318-19). 덧붙여 그는 마가복음의 주제와 동기의 사용이 구술 정형구 이론과 조화한다고 제안한다. 구성적인 주제와 유형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장면이야말로 그렇게 ‘서로에게 영향을 끼쳤던 그리고—구전 정형어구 이론의 용어로 하자면—서로를 “창조할” 수 있었던 그 이야기 내부의 서사들’이 지시하는 에피소드들 사이에 ‘유사한 정체성’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1991: 320).

보싸는 마가복음이 ‘본래 구술적으로 연행되어지던 것을 필사한 텍스트’라는 것과 전통적인 이야기꾼이 그 복음서를 필사자에게 구술하여 글로 받아쓰게 한 후에 성문화되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1991: 322). 보싸가 그의 관점을 피력하는 데 신중한 뉘앙스를 주고 있고, 한 문서의 구전성을 판단하기 위해 구전 정형어구 이론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다소 약간은 주저하고 있긴 하지만(1991: 313), 마가복음의 기원에 관한 그의 평가는 이 방법론, 즉 구전 정형어구 이론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마가는 단지 구술 전승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다양한 전통들의 제약 조건 하에 있는 비공식적 맥락 안에서의 즉흥적인 창작 및 재-창작을 반영하고 있는’ 구전 창작물이다(1991: 324, 322). 물론 보싸의 테제는 증명할 수 없으며, 어쩌면 로빈스(Robbins)가 ‘수사학적 문화’라고 부른 것, 즉 구전과 기록 매체 간의 유동적이고 공생적인 관계로 특징 지워지는 한 사회 세계를 상상하는 데 더욱 적절할 것이다(1993: 116). 그러나 최소한 보싸의 연구는 복음서에 고유한 구전 기술들과 예수에 관한 전승들의 연구를 위해 구전 이론을 적용하는 것의 합법성을 한층 더 확증해냈다고 말할 수 있다.



Richard Horsley and Jonathan Draper

리차드 홀슬리와 조나단 드레이퍼


구전성 연구가 복음서의 중대한 재평가로 귀결된 것과 마찬가지로, 마태와 누가의 전승들이 배후에서 공유하고 있는 ‘말씀(어록) 복음서’로 가정되고 있는 Q에 관한 논의에도 역시 충격을 가져왔다. 너의 말을 듣는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는다(Whoever Hears You Hears Me)에서 리차드 홀슬리와 조나단 드레이퍼는 ‘구술 전승에 대립되는 것으로서, Q는 마치 기록된 문서인 것처럼 다루어져야 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는’ 널리 수용되고 있는 가설에 도전한다(1999: 3). 그 책의 적지 않은 부분이 현재 Q 연구를 뒷받침하고 있는 다양한 신학적 · 역사적 가정들에 관한 비판적 평가를 제기하고 있지만, 저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연행 사건의 맥락 안에서 구술적으로 유래된 담론들의 연속물로서 Q를 본다는 것이다.

어쩌면 현재의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근의 구술 이론에서 발전된 것들에 대한 홀슬리와 드레이퍼의 통찰력 있는 차용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구술 정형어구 이론, 민족지학, 민족 심리학에 기초한 모델을 제시했던 폴리(J. M. Foley)의 작업들9)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폴리는 전통이라고 하는 넓은 장소에 위치한 특별한 말씀에 의한 환유적 지시의 과정으로서 정형적 표현들의 사용이 ‘풍부하고 복합적인 의미들’을 창조한다고 주장한다(1991: 5).

그러므로 구전 맥락에서, 의미는 청중과 연행자가 공유하는 전통들로 인해 환유적으로 본문 외적 함의(connotations)를 환기시키는 정형적인 연설에 의해 발생한다. 의미의 구성은 텍스트와 독자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역동적으로 발생한다는 것과 독자는 ‘불확정성의 공백’을 매개로 한 과정에 들어온다는 것을 주장했던 이저(W. Iser; 1974, 1978)와 야우스(H. R. Jauss; 1982)의 (독일) 수용주의 문학 이론들을 결합함으로써, 폴리는 구전 문화적 상황에서 청중들은 단순히 수동적 구경꾼이 아니라, 연행 사건의 능동적인 참여자라고 주장한다.    

‘구술적 전통의 문헌에 관한 최근의 연구와 Q’라는 표제를 붙인 장(章)에서 홀슬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구술 연행의 청중들 혹은 구술 전승 ‘텍스트’의 ‘독자들’은 그 작품이 현실화되는 데 있어 현대 문학의 독자들과 비교했을 때 더욱 활발히 작품에 참여해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단지 하나의 결과물을 분석하는 데 관심이 있을 뿐인 학자들보다도 훨씬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하는 것이다 … 환유적 지시, 즉 만들어지거나 존속되고 있는 전통을 환유적으로 나타내는 것과 텍스트 사이에 연관 관계가 있는 경우에만, 그 연관성이 현실화되기를 기대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전통에 낯선 ‘독자’는 ‘텍스트에 함축된 가능성의 범위 안에서 작품을 분석할 순 없을 것이다’(Horsley and Draper 1999: 162).


그 다음 장에서 드레이퍼는 구어(口語)적인 그리고 문어(文語)적인 의사소통의 모델의 파생에 의거하여 일반적인 의사소통의 모델을 설명한 할리데이(M. A. K. Haliday; 1978)의 사회적 언어 이론과 대화하면서 이 모델(환유적 지시)을 확대해석한다. 의사소통 행위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측면들 중에서, 기록된 문서 안에서 구술적 의사소통의 흔적을 식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언어사용역’(register)—‘맥락과 상황의 특별한 유형에 적합한 언어의 상대적 배치’(Horsley and Draper 1999: 181)10)—이라고 하는 개념에 주목한다. 드레이퍼가 ‘구전과 기록 매체 사이에 관계가 복잡하고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긴 하지만, 그는 ‘학자들로 하여금 노래부르기, 각색과 청중의 응답을 포함하여, 문서적 의사소통에 의해 전형적으로 발생하는 특징의 흔적들뿐만 아니라, 두운(頭韻), 유음(類音), 각운(脚韻), 음조의 반복, 대구법과 운율과 같은 표지들에 기초하여 텍스트적 결과물로부터 구술 연행을 재구성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는 문서적 언어사용역과 구술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Horsley and Draper 1999: 183-84).

홀슬리와 드레이퍼는 Q와 그것의 사회적 맥락에 관한 연구에서 이룩한 무시할 수 없는 기여를 넘어, Q의 연행과 연행자, 텍스트, 청중 사이의 상호작용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그들의 연구는 성서학에 훨씬 광범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홀슬리와 드레이퍼의 구술과 문학 이론의 결합은 통찰력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렇기에 복음서와 신약성서의 나머지 문헌들 모두에 대한 모험적 탐구의 미래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특별히 두 사람의 연구는 학자들이 연행자와 그들의 청중들이 공유하는 관계적 경험들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서 탐구해야만 한다는 것을 제시해주었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전승화 과정에 반영된 문화적 기억의 충격에 관한 물음들을 발생시키는 이해인 것이다.

 

Implications for the Gosp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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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번역: 정용택(CAIROS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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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자주] 이 글에서 거듭해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Performance는 한국 구비문학계의 관행을 따라 연행(連行)으로 번역한다. 이와 같은 번역에 대해서는 윤교임, 「미국의 구술예술 연구: 연행중심적 접근과 구술시학의 민족지」, 『구비문학연구』 제15집, 251-284, 특히 254, 각주4를 참조하라. 


2) [역자주] 플라톤이 그의 ‘국가’에서 시인을 배제했다는 것은, 호메로스의 시에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소박하고 집합적이고 병렬적인 구전성에 따르는 방식의 사고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대신에 그는 세계와 사고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 또는 해부를 지지했는데, 그것은 그리스인의 마음에 알파벳이 내면화됨으로써 가능해졌다.


3) [역자주] 불트만에게 있어서 전승이 구전적이냐 문서적이냐는 문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 전승 자료의 문학적/비문학적 차이에 따라 양자를 탐구하는 원리적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켈버가 불트만의 결정적인 오류로 지목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인데, 켈버에 따르자면 불트만은 구술 전승과 문서 전승 사이에 놓여 있는 단절과 간극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세한 것은 『공관복음서전승사』(허혁 역, 1970) 6~7쪽을 참조하라.


4) [역자주] 게할드슨의 복음서 전승에 관한 입장에 관해서는 국내에 유일하게 번역된 그의 저작 『복음서 전승의 기원』, 배용덕 옮김 (서울: 솔로몬, 1993)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5) [역자주] 켈버에 따르면, 마가복음 저자는 구전 전승에 나타난 수많은 기독론적인 사고들에 이의를 제기하며 이 모든 것들을 자신의 기독론적인 사고로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켈버에게 있어 마가복음은 구술 전승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 획기적인 창조적인 단계의 전조가 된 독창적 신학자 마가의 작품인 것이다. 


6) [역자주] 조안나 듀이는 현재 메사추세츠 주 캠브리지에 있는 Episcopal Divinity Scholl의 Harvey H. Guthrie, Jr. 석좌교수이며, 마가복음의 구전성을 탐구한 탁월한 저작으로 손꼽히는 Markan Public Debate: literary technique, concentric structure, and theology in Mark 2:1-3:6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 1980)을 비롯한 복음서 연구 분야의 다양한 책들을 썼다. 국내에는 데이빗 로즈(David Rhoads), 도널드 미키(Donald. Michie)와 공저한 이야기 마가(Mark As Story: An Introduction to the Narrative of a Gospel), 양승훈 옮김 (서울: 이레서원, 2003)이 소개된 바 있다.

 

7) [역자주] Paul J. Achtemeier, “Omne verbum sonat: The New Testament and the Oral Environment of Late Western Antiquity,” JBL 109/1 (1990), 3-27.

 

8) [역자주] “Mark's Story as Oral Traditional Literature: Rethinking the Transmission of Some Traditions about Jesus,” Hervormde Teologiese Studies 47(1991), 304-333.


9) [역자주] J. M. Foley, Immanent Art: From Structure to Meaning in Traditional Oral Epic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91); The Singer of Tales in Performance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95).


10) [역자주] ‘register’, 즉 ‘언어사용역’(言語使用域)은 문체론과 사회언어학, 언어학습/교수법 등의 분야에서 ‘문체’와 같은 의미로 쓰는 개념으로 사회적 환경에 따른 모든 유형의 변이형을 가리킨다. 사회언어학에서는 어떤 주제와 관한 논의에서 배경지식이나 가정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상황적 변이를 말한다. 예를 들어, 영국영어를 쓰는 의사들은 She's got cancer 대신 She's got C. A.라고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언어사용역’은 흔히 어휘에서 구별된다. 즉,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는 단어를 쓰거나, 특별한 의미로 쓰는 경우가 많다. 특정한 언어사용역과 관련된 많은 어휘들은 전문적, 혹은 준전문적 용어이다. 따라서 saprophyte, dicotyledon, Rosaceae와 같은 용어는 식물학 언어사용역에 속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음악에서 ostinato라고 부르는 것을 rock and roll에서는 riff라 부른다. 축구에서 corner, penalty, sweeper, cross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의미와는 달리 쓰인다. 보다 자세한 것은 다음의 웹페이지를 참조할 것:

http://stewardess.inhatc.ac.kr/philoint/teaching-data/varieties-of-english-6-register-definitio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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