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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둘러싼 현대정치철학의 고민들-아감벤, 랑시에르, 발리바르의 인권론을 중심으로 -3

UN산하 기구나 각종 국제인권단체들이 주장하는 인도주의로서 인권에 대한 아감벤의 비판은 매우 통렬하며, 배제의 문제를 정치로부터 초월적인 인권의 개념으로 풀 수 없음을 지적하는 점에서 그의 비판은 정당하다. 그러나 인권에 대한 그러한 비판을 가능하게 하는 아감벤의 정치이해는 주권권력의 지배를 전복하는 적극적인 정치주체의 가능성을 봉쇄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에게 배제당하는 자들은 근본적으로 무기력한 자들이며, 또한 개별화된 자들이다. 『호모 사케르』에는 집단적 정치주체가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주권 권력의 명령에 의해 추방된 자들은 모두 개인이며 이들 사이의 동맹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는 정치의 근본적 아포리아를 잘 보여주지만 그것을 돌파할 수 있는 실마리는 찾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인권에 대한 랑시에르의 논의는 주목해볼만 하다. 랑시에르는 합의에 의한 배제에 저항하는 투쟁에서 인권의 의미를 아감벤 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평가한다.1) 그 역시 오늘날 인권은 합의로부터 배제된 자들의 권리가 되어버렸다고 파악한다. 그것은 마치 부유한 자들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옷을 처리하는 방식과 같이 취급된다. 즉 가난한 자들에게 줘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인권의 근본적 의미는 아니라고 그는 생각한다. 인권이 합의의 틀 속에 포획된 상태에서 그러 할 뿐, 인권이 정치적이 될 때 그것은 전혀 다른 것이 된다. 그래서 랑시에르는 아감벤을 비판한다.


그는 아감벤이 말하는 예외상태와 그 안에 위치한 헐벗은 삶이 인간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숙명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어떤 종류의 권리주장도, 또는 권리를 행사하려는 어떤 투쟁도 애초부터 벌거벗은 삶과 예외상태라는 양극 속에 갇혀 있을 뿐이다. 그런 양극은 일종의 존재론적 숙명인 것처럼 보인다"2)는 것이다. 랑시에르가 보기에 아감벤의 입론은 결국 아렌트의 그것과 일치하는 것이다. 아렌트는 사적 영역과 구별되는 공적 영역으로서 순수한 정치의 영역을 보존하기 위해서 정치에 걸맞지 않은 자들을 정치의 무대로부터 추방한다. 그리하여 결국 정치는 권력과 동일한 것이 되어버린다. 다시 말해, "점점 더 저항할 수 없는 역사-존재론적 숙명(신만이 우리를 거기서 구원할 수 있으리라)으로 여겨지는 권력3)"과 정치는 다를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아렌트에게나 그의 계승자 아감벤에게 정치는 저항할 수 없는 권리박탈의 권력과 동일한 것이 된다. 아렌트와 아감벤이 보기에 인권이란 '권리 없는 자들의 권리'(다시 말해 공허한 것)이거나 '권리를 가진 자들의 권리'(다시 말해 동어반복적인 것)이다. 그리고 인권이 그들에게 공허한 것이거나 동어반복적인 것이 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숙명론적 정치관에 있다.


이러한 존재론적 숙명, 혹은 덫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인권과 정치에 대해서 다르게 질문해야한다고 랑시에르는 말한다. 즉, 인권의 주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을 통해 그는 정치란 무엇인가를 질문을 전혀 다른 기반에서 작동시키고자 한다. 랑시에르는 아렌트와 아감벤과는 다른 인권 개념을 제안한다. "인권은 자신들이 가진 권리를 가지지 않고, 자신들이 갖지 않은 권리를 가진 자들의 권리"4)이다. 그에 따르면 권리는 두 가지 존재양식을 갖는다고 한다. 그 하나는 성문화된 권리이다. 가령 1789년 프랑스 혁명 가운데 탄생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5)과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러한 성문화된 권리이다. 이 선언에 명기된 권리들이 비록 실제적으로는 많은 이들에게 유보되어 있을지라도 그 권리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구성하는 주어진 것들로 뚜렷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 선언이 성문화된 권리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러한 권리들이 평등하게 획득될 수 있는 것임을 가시화시키고 있다. 다른 하나는 주어진 것으로 존재하는 권리를 실제로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지 못하는 자들의 행동을 통해서 존재하는 권리이다. 인권은 성문화된 권리들의 가시성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무엇을 만들어내는 자들의 행동을 통해 존재한다. 이는 누가 권리를 실제로 소유할 수 있는 정당한 자격이 있는 자인지를 결정하는 기존의 합의에 대해 불화를 유발하는 과정, 즉 '정치'를 실행하는 자들의 권리이라는 것이다. 성문화된 권리로부터 배제된 자들이 그 권리가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누가 정치의 주체인지, 다시 말해 누가 권리의 주체인가를 논쟁에 회부할 때, 그들이 실천하는 불화의 행동 속에서 인권은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랑시에르에게 인권의 문제는, 아감벤과 달리 즉각적으로 정치의 문제가 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랑시에르에게 정치란 몫이 없는 자들이 자신의 몫을 주장하는 불화의 과정이다. 이는 누가 정당한 권리의 주체인가를 결정한 자격 있는 자들의 합의에 불화를 일으키는 논쟁적 과정이다. 누가 적합한 권리의 주체인지, 그리고 누가 부적합한 권리의 주체인지를 규정하고 구획하는 경계에 대해 불일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정치인 것이다. 이는 성문화된 권리와 그것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만드는 자들의 권리 사이의 간격을 매우는 실천이며, 이 간격매우기를 통해 정치적 주체화가 이루어진다. 그러한 정치적 주체화의 과정을 통해서 인권은 자신이 가진 권리를 갖지 않고, 자신들이 가지지 않은 권리를 가진 자들의 권리가 된다. 다시 말해, 성문화된 권리로 인해 명목상으로는 그 권리를 부여받은 자들이지만 실제적으로 그 권리로부터 배제된 자들(자신이 가진 권리를 갖지 않은 자들)이 권리의 분배에 대해 불화를 일으키는 행동을 통해 권리의 주체(자신이 갖지 않은 권리를 가진 자)가 되는 것이다. 랑시에르는 이러한 인권의 정치의 사례로서 프랑스 혁명 당시 활동한 전투적 여성혁명가 올랭프 드 구즈의 "여성들이 단두대로 갈 자격이 있다면 의회로 갈 자격도 있다"는 말을 든다. "여성들은 권리선언(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덕택에 자신들이 가진 권리를 박탈당했음을 증명해 보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공적인 행위를 통해서 헌법이 거부했던 권리를 자신들이 가지고 있음을,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일 수 있었다."6)


이런 의미에서 인권이란 자격 있는 자들, 공동체에서 정당한 자기 몫이 있는 자들이 합의한 권리 분배에 저항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몫이 없는 자들, 자격 없는 자들의 권리이다. 정당한 자격이 있는 자들 사이에 몫을 나누는 행동인 경찰에 대항하는 정치의 출발점이 바로 몫이 없고 자격 없는 자들, 바로 데모스(Demos)7)의 권리인 인권이다._정정훈(CAIROS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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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acque Ranciére, "Who is Subject of the Right of Man?", in South Atlantic Quarterly 103, 2/3 (2004), 김경희 옮김, 「인권의 주체는 누구인가?」, 민간행 번역, 연구공간 <수유+너머>,2007


2) 같은 글, p.4.


3) 같은 글, p.5


4) 같은 글, p.5


5) 그러나 아감벤은 이 선언이야말로 모든 권리가 국가에 의해 등록된 자들의 권리임을 증명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출생과 더불어 주어지는 권리는 오로지 출생과 더불어 국가의 시민으로 등록된 자들만을 위한 권리라는 것이다.


6)  같은 글, p.6


7) "데모스-인민-는 하층 계급들을 의미하지 않는다. 벌것은 삶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민주주의는 가난한 자들의 권력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을 실행할 자격을 갖지 못한 자들의 권력이다." 같은 글,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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