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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문화의 자율성

‘문화’라는 단어를 쉽게 사용하지만 이 개념을 정확히 정의하기는 힘들다. 오늘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문화를 인간 생활 전반에 걸친 것으로 받아들인 때는 그리 길지 않은 것 같다. 문화를 매슈 아널드가 이야기한 고상한 그 무엇이 아니라, 우리 삶을 지배하는 전체라고 놓고 본다면 필시 사회학적 분석이 따를 수밖에 없다. 결국 인간은 집단을 이루고 살며 집단을 이루고 사는 이상 거기서 파생되는 문화는 사회적 속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그의 영향을 받은 사상가들은 문화라는 상부구조가 경제라는 하부구조에서 환원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인간의 문화는 경제적인 상황에 지배받는다. 따라서 문화는 자유스러워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먹고 사는 문제, 계급적 특징 등에 귀결된다. 이 말을 조금 더 확대시키면 행위자는 자유스럽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적인 환경에 따른 것이므로 그 행동은 예측가능하다. 대량화된 문화산업은 그야말로 민중의 아편처럼 대중을 현혹하고, 대량으로 생산되는 음악은 비슷비슷하고 고만고만한 수준으로 대중을 그 속에 안주하게 한다. 그러나 사회 속의 한 개인(행위자)의 행동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대중의 취향을 정확하게 분석하여 탄생된 아이돌이 망하는 경우도 많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영화가 의외의 히트를 치기도 하며, 대중화된 음악이 저항을 노래하며 운동을 끌어내기도 한다. 따라서 문화는 그 자체로 자율성도 가진 것 같아 보인다.
 

문화에 관한 논의를 구조주의적인 분석으로만 끌고 가면 그 속에서 행위하는 자의 자율성이 사라지고, 반대로 자율적인 주체만을 중심으로 놓고 보기에는 무리수가 따른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끌어 모으며 ‘장(field)’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장은 교회, 학교, 정당 등 우리 사회의 인간들의 집단의 모음이다. “장은 개인들이나 제도들에 의해 점유된 위치들(positions) 사이의, 객관적인 관계들 간의 지배와 종속, 협력 혹은 대립의 연결망”을 뜻한다고 한다. 인간은 장 속에서 행동하고 장에서 탄생한 규율을 내면화하는데 이것은 강제적인 어떤 무엇이 아니라 자발적인 순응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를 두고 아비투스라 부른다. 한국인은 김치를 좋아하고, 윗사람에게 존대를 한다 같은 어떤 문화적인 현상은 바로 한국이라는 특별한 장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 안에서 개혁 세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 특수한 장에서 돌출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의 장(field)

이것도 참 낯설었다.

공부가 부족하여 적절한 예시인지는 모르겠으나 장과 아비투스나 장 이론을 처음 들었을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은 대한민국의 대학생 선교단체였다. 한국 사회에는 학교를 비롯하여, 회사나 교회 등의 다양한 장이 형성되고 있고 각각의 장에서 행위자는 그 장이 요구하는 바를 자연스럽게 내면화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장이 어릴 적부터 ‘사회화’라는 명목 하에 개인에게 자연스럽게 습득시키는 것에 비해 선교단체에서의 아비투스는 훨씬 더 빠르게 내면을 지배하게 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신입생 전도 때문에 한국기독학생회(IVF)에 입회를 했다고 하자. IVF특유의 영어이니셜 이름(LGM, DPM, LTC 등)이나 MBTI로 자신의 성격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처음엔 너무나 낯설게 다가온다. 그러나 매주 참석하는 예배와 소그룹, 그리고 1주일간의 수련회를 통해 신입생은 자연스럽게 IVF의 문화에 젖어든다. 이것은 단순히 용어나 시스템에 익숙해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IVF의 문화에 익숙해졌다는 것은 IVF에서 요구되는 사항이나 이상이 마치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고 있는 것처럼 이해된다는 것이고 심한경우 그 속에 고립되기도 한다. 소수이긴 하나 몇몇 IVF에 대한 개혁세력(?)들 조차 궁극적으로 IVF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이를테면 ‘소명’이니 ‘선택’같은 단어의 사용)나 언설을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다행이랄 수 있다면 IVF가 마냥 권위적인 시스템에 함몰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장으로서의 기능을 가진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의 기구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선교단체라는 특수한 장은 다른 거대한 사회적 테두리에 비하면 빨리 습득되는 만큼 벗어나는 것도 순식간이므로 매우 특이한 케이스랄 수도 있다. 선교단체의 틀을 넘어 한국 교회라는 더 넓은 장도 존재한다. 이 같은 시점에서 보면 IVF라는 선교단체 자체가 한국 교회의 장안에서 대항 세력으로 존재하던 시절도 있었음을 상기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장’에 대한 구분은 각각 동일하게 존재하는 배타적인 영역이라기보다는 커다란 대집합의 부분집합으로 작용할 때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무엇이 장인가?

하지만 아직까지 어디까지를 장으로 삼아야 할지를 잘 모르겠다. 이것은 아직 장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거나 잘못되어 생기는 의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솔직하게 쓰겠다. 팬덤문화 같은 것도 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팬덤문화가 형성되고 그 특유의 모습(맹목적지지 같은 것)은 현대 대중문화를 만든 사회적 장의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박재범 팬클럽은 장이라 부를 수 있는가? 장이라고 하기엔 너무 유동적이고 사회적인 합의 체계 같은 것도 없다. 아니면 그런 팬클럽을 가능케 한 사회적 환경만을 장이라 불러야 할까?
 

코믹 마켓의 풍경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들고 싶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오타쿠에 관해 관심이 많다. 오타쿠는 팬덤보다는 훨씬 오랜 세월을 통하여 그 특유의 문화를 생성해왔고, 한국의 ‘오덕후’처럼 수출까지 되었던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문화현상이다.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타쿠야말로 사회적인 현상으로 분석해야할 대상이라는 점이다. 오타쿠가 그 자체로 아이덴티티를 갖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타쿠’가 오타쿠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존재감을 알리기까지 우선적으로 다양한 사회적 환경이 존재했었다. 먼저는 1970년의 일본은 사회전체가 ‘비정치적’으로 변했고, ‘경제 발전’에만 목숨을 걸었으며, 텔레비전을 비롯한 미디어의 급속한 발달과 풍요로운 생활,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신고용제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정적인 인생을 영유하고 있었다(혹은 그렇다고 생각했다). 이 가운데 먹고사는 실제적인 문제보다 자신의 취미에 깊게 파고든 무리들이 있었다. 지금은 ‘마니아’로 쉽게 분류 가능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철도나 SF소설을 비롯하여, 특수촬영 영화, 애니메이션 등 아이들이 좋아할 취미생활을 어른이 되어서도 즐기는 부류였다. 각각의 자기의 영역이 존재했고, 그 안에서 작용하는 법칙 속에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1983년, 그들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카모리 아키오라는 인물에 의해 하나로 뭉뚱그려져(오카다 토시오의 표현을 빌자면 ‘강제 수용되어’) ‘오타쿠’라는 이름으로 명명(命名)된다. 이것은 전혀 관련 없었던 분야의 사람들이 어떤 교집합적인 부분이 있다고 하여 하나의 새로운 민족(!)으로 형성된 재미있는 케이스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오타쿠가 타자에 의해 차별적 의미로 명명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이 지나며 스스로 ‘오타쿠의 기준’을 만들며 자신들의 영역을 형성해갔다는 데 있다. 눈에 보이는 기구로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오타쿠라는 하나의 테두리 안에 룰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기준이 항상 일정한 것은 아니었다. 세대를 지나며 미디어적인 환경의 변화에 따라 오타쿠론은 변화한다.

 
분명 오타쿠는 ‘일본’이라는 거대한 장 속에서 장인적인 집요함 같은 내면적 아비투스가 생성한 문화 현상이다. 하지만 오타쿠 자체를 장이나 최소한 장 비슷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무엇보다 ‘오타쿠’라는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그 무엇이 너무 자주 바뀌어 왔다. 오타쿠를 세대별로 구분하면 1960년대 생부터 10년 단위로 3세대 정도로 나누는데, 이 세대별 특징이 제각각이며 자의식도 상당히 다르다. 정당, 학교, 교회도 장이면서 끊임없이 변화해왔지만, 오타쿠는 그와 달리 뚜렷한 조직이나 오타쿠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줄 구분선이 불명확하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오타쿠라 여기는 자의식이 존재한다. 요즘은 그 자의식마저 불분명해져서 오타쿠들끼리도 공유점이 사라져가고 있긴 하지만, 과연 이런 현상을 어떤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시대는 근대를 넘어서 포스트모던하게 변해간다. 전체 사회를 규정할 만한 하나의 이념이나 사상, 주의(主義)가 사라져 간다. 문화의 장 이론이 이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를 나름대로 설명하여 사회 구조적 관점과 행위자의 자율성의 관계를 설명해 보려 하였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장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장도 이제 고정되지 않아 보인다. 최후에는 개인만 남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_전태호(CAIROS 세미나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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