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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콘텐츠/trans-post-christianities

어느 그리스도인 오타쿠의 고백 [전태호]

고백 - 오타쿠 자아와 기독교 자아 사이의 전쟁  

내 속에는 세 인격이 존재한다(삼위일체?). 하나는 락・메탈 팬으로서의 나. 그리고 오타쿠로서의 나.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이다. 이 중 락・메탈 팬으로서의 나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는 크게 싸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타쿠로서의 나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는 날마다 고지를 점령하려 티격태격 다투고 있다. 이제 쫌 화해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나는 참으로 오타쿠가 되기 쉬운 환경에서 태어나 오타쿠스럽게 자랄 수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위성을 통해 일본의 NHK-BS 방송을 보았다. 매일 오후 6시에서 7시까지는 ‘위성 아니메 극장’이라는 애니메이션 프로를 했었다. 일본어를 하나도 몰랐지만 그저 만화라는 이유만으로 매일 시청했다. 뿐만 아니라 5시 30분경에는 본래 NHK 방송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초대 <가면라이더(仮面ライダー)>(1971)[각주:1]도 방송했는데, <외계에서 온 우뢰매>(1986)와 <지구방위대 후뢰시맨(超新星フラッシュマン)>(1986)을 보며 자란 세대인 내게는 최고의 프로그램이었고, 그 때 따라부르던 주제가(물론 일본어!)를 지금도 부를 수 있다. ‘헨신!’이라는 단어를 본능적으로 ‘변신!’이라는 뜻으로 캐치해 낼 수 있었던 놀라운 시기였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신세기 에반게리온(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1995)을 자막달린 (불법)비디오로 접했는데, 이것이 내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버린 결정적 계기가 된다. 그 때가 1997년. 97년은 한국 애니메이션 팬 들에게는 아주 의미 깊은 해다. <에반게리온>의 극장판과 <모노노케 히메(もののけ姫)>(1997)가 일본에서 개봉했었고, 정부가 만화와 애니메이션 산업을 부흥시켜준다고 설레발치던 해이자, 청소년 보호법으로 만화가 탄압받던 시기이기도 했다. 또 KBS에서는 <달의 요정 세일러문(美少女戦士セーラームーン)>(1992)이 빅히트를 쳤었고, SBS는 PC통신 애니메이션 팬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 <마법소녀 리나(スレイヤーズ)>(1995), <신세기 사이버 포뮬러(新世紀GPXサイバーフォーミュラ)>(1992)등을 연속으로 방영하여 큰 반향을 일으킨 해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그 때 나는 중학교 2학년! 질풍노도의 중2, 중3 시절을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둘러싸인채 장렬하게 산화시켰다. 장래 만화・애니메이션 평론가 혹은 감독이 되고싶다며 당시 애니메이션팬의 교과서와도 같았던『송락현의 애니스쿨』(1997)을 사서 애니메이션 제작과정과 역사를 외우고, PC통신 동호회에도 가입하여 거의 모든 게시판의 글을 읽곤 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발전을 위해 이 한 몸 바치리라고 다짐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2로 넘어가기 전인 2000년 1월. 변함없이 잘 나가는 것 같았던 내 인생에 불청객 한 분이 찾아든다. 예수 그리스도셨다. 힝~ 괜히 수련회를 가서. 모태신앙이라 언제나 가는 수련회였는데, 그 전에도 CCM같은 거 좋아하며 예배 같은데 빠지지 않는 모범신앙인이었는데, 이상하게 그 날은 달랐다. 그렇다! 회심을 한 것이다. 종교인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할렐루야~! 처음으로 눈물을 펑펑 흘리며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와 같이 되어,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수련회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자꾸만 눈물이 났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처음 알았다. 길거리에 피어있는 작은 풀포기도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감격에 겨워하며 집에 도착하여 내가 제일 처음 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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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 때문에 못 본 <카드캡터 사쿠라(カードキャプターさくら, 한국에서는 <카드캡터 체리>이지만 이 경우 일본판이었으므로)>(1998)의 예약녹화본을 트는 일이었다.


아아~~ 사쿠라짱~~ 모에돋네....


그렇다. 어쩌면 이때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엔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리스도인인 자아와 오타쿠로서의 자아는 이미 싸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뿐 아니라 락 음악 등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던 나는 사실 그 이전부터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한창 서태지를 좋아하던 중학교 1학년 때 갔던 전국 수련회에서 어떤 목사님이 서태지가 무슨 마약이라도 하는 사람인 양 말씀을 전하실 때, 선생님께 엄청 투덜대던 내가 기억난다. 전형적인 착한 기독교인이었지만, 서태지가 악마라는 설은 정말 말도 안 돼는 해프닝에 불과한 것을 쓸데없이 부풀린 것이라며 진절머리나 하던 때도 있었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낮은울타리>같은 잡지에서는 대중문화를 사탄의 무리라도 되는 것처럼 매도했었다.

 

'회심'한지 2개월여가 지난 후, 모 기독교 잡지인지 어딘가에서 당신 SBS에서 방영중인 <카드캡터 체리>를 악마의 만화라고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 글이 PC 통신 나우누리의 애니메이션 동호회인 ‘ANC’에 옮겨지면서 엄청난 비난을 먹었는데, 순진한 그리스도인이었던 나는 나름대로 기독교를 변호해보려 노력했었다. 물론 <카드캡터 체리>가 악마의 만화라는 것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나는 대학교 1학년 때는 신앙에 회의를 품었었지만 대신에 애니메이션은 열심히 봤다. 반면 신앙이 회복되었다고 느꼈을 때에는 오타쿠스러운 나의 모습은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2004년에 한창 블로그를 만들어 전대물[각주:2]시리즈로 통한다." valign="top">에 빠져있을 때 예배시간 마저도 블로그에 글을 올릴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가 자아분열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어느 한쪽으로 통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블로그도 오타쿠용 블로그와 신앙용 블로그를 따로 만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건 내가 나 스스로를 분열시키는 일이라 생각하여 그만두었다.

 

2005년이 되자 이 두 세력의 싸움은 기독교 쪽의 자아가 압승을 거두기 시작한다. 교회 대학부에서 회장이 되었고, 그 일에 매달리는 동안 자연스럽게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던 오타쿠 자아는 붕괴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딱히 힘들다는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좋았다. 옛날에는 내게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떼놓으면 죽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가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어색한 집착을 가라앉게 만들었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2005년 말, 전역과 함께 한국기독학생회(IVF)라는 선교단체에 들어간 이후 2008년까지 나는 오타쿠계에 한발짝 물러났다. 블로그 제목도 본래는 ‘젠카의 주저리주저리’였는데 ‘나눔이 있는 오름직한 동산’이라는 지극히 신앙적인 것으로 바꾸었다. 5년여간 한권 빼고는 전부 모았던 애니메이션 잡지도 안사보기 시작했다. 대신 <복음과 상황>을 사 읽었다.

 

그러나 오타쿠계에서 완전히 발을 뺀 건 아니다. 일단 블로그에 링크된 사람들이 대부분 오타쿠들이다 보니 이런 저런 정보를 전해 듣는 일이 많았고, 학교 OT 등에 참석하면 내 주변에 들러붙는 이들은 모두 오타쿠들이었다. 아무리 오타쿠계를 떠나도 본래의 오타쿠스러운 오오라는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급기야 과내에 오타쿠들을 집합한 친목 동아리 활동까지 했지만, 사실 오래전의 오타쿠질을 바탕으로 버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기간동안 제대로 본 애니라면 기독전사 건담<기동전사 건담 OO(機動戦士ガンダムOO)>(2007)지만 이것도 1화에서 ‘이 세상에 신따윈 없어!’를 외치던 주인공 때문에 보기 시작한 것이니 기독교랑 전혀 관련이 없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만화를 보든 안보든 자신이 오타쿠라는 자의식이 상당부분 사라졌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기독교 동아리에서, 참 감사함을 많이 누렸지만, 어떤 사건 때문에 크게 상심한 사건이 있었다. 이전까지 있었던 내 신앙 모두가 부정당한 듯한 내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때문에 병원에서 항우울제까지 받아 먹으며 생활했다. 2008년 내도록(어쩌면 2009년까지!) 이것 때문에 고민했다.

 

그리고 대망의 2009년. 나는 오타쿠로 재회심(?)을 했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涼宮ハルヒの憂鬱)>(2006)[각주:3]을 뒤늦게 본 게 계기였다. 오오오오~ 하루히 댄스에 그만 빠져버려서 며칠을 푹 빠져서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 그리고 이제는 전형적인 오타쿠용 소설매체로 자리잡은 듯한 라이트 노벨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오타쿠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자 또 기독교적 자아는 한동안 사그라 들었다.

 

2010년 2월. 신앙이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지만) 회복되었다. 적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과거의 분노와 절망이 거의 완전히 가라앉았다. 동시에 내가 처해있는 환경은 오타쿠를 연구하는 대학원생이 되어있다. 뭐랄까? 이제야 양자가 겨우 화해할 상황에 처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오타쿠 자아와 기독교 자아의 화해를 향하여

그럼 이제 한숨을 돌리며 생각해보자. 나의 이 두 자아는 왜 화해하질 못했을까?

 

나의 또 다른 자아였던(그래도 세력이 많이 약한 영역이었지만) 락・메탈 계열은 오히려 쉽게 기독교랑 화해했었다. 비록 락・메탈 음악이 뉴에이지 음악과 함께 악마의 음악 취급을 받았지만, 음악과 기독교의 상관관계를 생각해보면 회생의 여지가 있었다. 이미 80년대에 미국에서는 ‘스트라이퍼(stryper)’라는 걸출한 CCM 메탈 밴드가 등장했었고, 한국도 많이 조심스러웠지만 1996년에 ‘예레미’가 본격적인 메탈 음악을 선보이기 시작해 지금까지 음반을 내며 활동하고 있다. 단순히 메탈 음악을 하는 CCM가수가 나왔다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활동을 통해서 끊임없이 담론을 형성하였다는 점이 포인트다. 예레미가 아직 기독교안에서만 소비되던 2000년 이전에 그들의 홈페이지를 보면 엄청난 토론과 공격이 오갔었다. 지금은 게시판이 완전히 소실되어 확인할 길이 없지만, 락・메탈은 기독교 문화 논쟁의 뜨거운 감자였다. 예레미를 비롯한 국내의 락・메탈 CCM가수들은 그 실력을 바탕으로 일반 음악계에까지 인정받았지만, 일반 메탈계에서는 기독교 음악을 한다고 씹히고, 기독교 계에서는 악마의 음악인 메탈을 한다고 씹히기도 했다. 심지어 수련회에서 ‘사탄아 물러가라!’라며 쫓겨난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과 수많은 논쟁과 다툼 속에 1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이제 기독교계에서 노골적으로 락・메탈이 사탄의 음악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 그런 논의 자체가 고리타분하고 우습게 느껴지는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지금 한국 교회의 주류 예배 음악은 모던락풍이 지배하고 있다. 락이 악마의 음악이라면 지금 한국 교회 90%는 악마의 하수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물론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근데 오타쿠계는 그러한 논의 자체가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대중음악분야는 원래 기독교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서양쪽에서도 존재하는 것이니 그러한 논의는 아주 자연스럽게 생성되어 한국까지 전파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과 기독교는 일단 표면적으로는 별 연관이 없어보이고, 따라서 일본의 서브컬쳐를 즐기는 것과 기독교와의 접점을 찾기는 힘들었다.

 

실제로 내 개인 블로그에 찾아오시는 분들 중에서도, 그리고 선교단체 등에서 만나는 친구들 중에서 이 양쪽 자아를 다 가진 분들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어느 한 쪽에 지배당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오타쿠화 된 정도가 심하신 분들은 그저 교회만 다니는 수준인 경우가 많아서 진지하게 고민했던 흔적이 없었고, 기독교 선교단체에 깊이 빠진 분은 히라가나 한글자도 모르면서 <에반게리온>의 주제가를 다 외우던 전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한 자신은 흘러간 옛 자아로서만 기능하고 있었다(예전의 나도 그랬다.).

 

그러나 내가 오타쿠로서의 자아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아가 화해할 수 없었던 이유는 실제론 더 깊은 곳에 있었다. 사실 ‘오타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가 않지만, 내가 말하는 오타쿠가 단순히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는 사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오타쿠가 오타쿠되게 하는 요소는 (이견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작품 혹은 캐릭터에 관한 강렬한 애정을 품는 것에 있다. 심심풀이로 보는 거랑은 다른 것이다. 이 애정은 필히 어떤 일정한 방식으로 표출되기 마련인데, 관련 굿즈를 모으는 거야 가장 기초적인 것이고, 대사를 외운다거나 자료를 정리한다거나, 성우에 열광한다거나, 그리고 주로 패러디라는 형식을 빌려 2차 창작으로 손을 뻗거나 한다. 이 2차 창작 과정에서 본 캐릭터에 자신의 욕망을 투여하여 18금 성인 창작물이나 BL・야오이물[각주:4]이 창작된다.

 

아마 많은 분들에게 이 부분이 기독교와 양립 불가능한 지점처럼 느껴졌으리라 생각한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만난 어떤 야오이 관련 동인지를 소비하시던 분은 교회에서는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감추기도 한다고 했다. 오타쿠로서 자신을 밝히면 어딘가 모르게 정죄함을 받을지 모르는 불안감이 항상 따라다니는 것이다. 사실 그렇다. 현 한국 개신교 상황에서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뜻을 품은 자가 2차원 미소녀 캐릭터나 남정네들끼리의 사랑을 보며 하악거리는 건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락・메탈과는 다르게 이 쪽은 아예 논쟁조차 일어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이중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포르노와 오타쿠를 같은 계열에 넣는 건 찬성할 수는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정죄하는 사람들이 과연 나와 같은 경험(기억)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두 자아를 화해시키기 위한 개인적인 접근방법

대중문화에 대한 기독교의 접근 방식에는 몇 가지가 있어왔는데, 하나는 위 <카드캡터 체리>의 예와 같이 이원록적인 접근이다. 락・메탈은 사탄의 음악이다라는 접근과 근본적으로 같다. 이건 뭐 더 이상 언급할 가치가 없다.

 

이보다 조금 나은 버전이 기독교 세계관적인 접근 방식이었다. 락・메탈・만화・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가치중립적이라서 기독교인이 향유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진다. 락・메탈・만화・애니메이션 역시 하나님의 주권안에 속한 것이므로, 타락한(!) 그들의 문화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속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앞에서 언급했던 예레미는 이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활동하는 전형적인 예다.

 

그러나 두 번째 접근 방식도 문제가 있다. 기독교 세계관 자체가 ‘옳은 나’가 ‘옳지 않는 타인’을 계도하여 바른 길로 인도해 간다는 어딘가 모르게 권위적인 냄새가 폴폴 풍기는 논리다. ‘타락한’ 오타쿠계를 ‘건전하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할지도 모른다. 글쎄, 예수님이 과연 그런 분이었나? 야오이 만화나 포르노 만화를 정죄할 수는 있겠지만, 이를 즐기는 사람에게 나는 과연 당당하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나는 이 같은 접근방식에서 모두 불편함을 느낀다. 내가 죄인이라서 그런가? 그러나 나를 감격하게 했던 그리스도의 사랑은 이런 것과는 달랐다.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들이었고, 간음 현장범에게도 돌을 던지시지 않으셨던 그 분의 행동과는 이질적이었다.

 

오타쿠는 오타쿠로만 보자. 아니 어쩌면 당연한 말이지만, 이것은 오타쿠 문화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사실 오타쿠와 기독교를 양립할 수 있다느니 어쩌니 하는 것 자체가 결론없는 논쟁이다. 그냥 그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양심을 믿자.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여기서 도덕성 윤리성 따지는 건 논의를 산으로 이끌 뿐이다.

 

나는 한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오타쿠 문화의 도덕성을 따지지 않을 것이다. 문화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 먼저 그들(우리들?) 문화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를 하고 싶다. 적어도 일본에서는 오타쿠가 사회적 희생자이며 피해자이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지금은 좀 양상이 달라져서, 오타쿠 문화는 특히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된 <전차남(電車男)>(2005)의 히트 이후 이미지가 많이 긍정적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스테레오 타입을 벗어나질 못하고 있으며, 또한 그 이미지 속에 오타쿠 스스로가 갇혀 폐쇄적이 되어가는 모습도 보인다. 오타쿠 안에서도 세대간 투쟁이 일어나고 있고, 사실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한 사람의 오타쿠가 주변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자기 세계에 깊이 빠져 주변을 보지 못한다면, 그건 그 사람 개인의 문제이다. 오타쿠 문화의 부정적인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그러한 개인과 사회간의 복합적인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창조된 자가 본래의 선한 모습을 잃고,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광적인 집착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오타쿠 문화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을 속이고 있는 어떤 다른 ‘죄’의 문제다. 따라서 오타쿠 문화에 대한 접근은 (아울러 모든 문화에 대한 접근은) 성급하게 이러저러한 판단을 하기에 앞서 정확히 이해하고, 그러한 문화가 생성된 배경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이 우선이다.

 

내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회복’과 ‘해방’의 이미지다. 해방된다는 것은 자유함을 의미한다. 자유함이란 매이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하는 연구나 공부가 어떤 한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오해를 씻고, 그들을 자유하게 한다면,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타쿠 문화에 대한 연구를 ‘일본에 대한 선교’라 생각한다. 정말이다. 농담아니다. 단, 나는 오타쿠계를 ‘변화’시킬 생각은 없다. 내가 오타쿠 문화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단지 그 곳에 ‘임하는 것’일 뿐이다. 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과 접하고, 나 역시 그들과 어울려 살 것이다. 그리고 양쪽 모두에서 당당히 커밍아웃하지 못하는 오타쿠분들도 이젠 자유해졌으면 좋겠다._전태호(CAIROS 연구원)



 

  1. 원작자 이시노모리 쇼타로(石森章太郎)가 설정・디자인・만화판을 담당한 도에이(東映)제작의 TV용 측수촬영 히어로 드라마를 뜻한다. [본문으로]
  2. "일반적으로 [본문으로]
  3. 타니가와 나가루(谷川流)원작의 라이트 노벨을 TV용 애니메이션화 시킨 것. 특히 엔딩에 등장하는 ‘하루히 댄스’를 춘 동영상이 UCC사이트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본문으로]
  4. 남성들의 동성애를 다룬 작품들을 말하며 주로 여성들에 의해 창작・소비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