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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콘텐츠/종횡書해

정전(canon) 부재의 시대에 읽는 사회학 고전 [박치현]


자본주의와현대사회이론
카테고리 인문 > 인문교양문고 > 한길그레이트북스
지은이 앤소니 기든스 (한길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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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보통 고리타분함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전은 그 고전이 나온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읽으면 결코 고리타분하지 않다. 

 

이 책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 기든스 이전에 사회학을 집대성한 사람은 미국의 탈콧 파슨스였다.  

 

파슨스는 1937년에 출간된 <사회적 행위의 구조>에서 유럽 사회이론을 집대성 하면서 사회학적 행위이론을 구성하였다.(한국엔 아직도 번역이 안되어 있다! 그 많던 보수성향의 사회학자들은 그간 무엇을 했단 말인가!)  

 

파슨스는 당시 서구 자유주의의 위기 상황에 직면하여, 경제적 인간, 즉 공리주의적 인간관을 격파하는 무기로, 뒤르켐과 베버의 이론을 활용하였으며, '규범적 인간'이라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회적일 뿐 아니라, 인간은 그 합리적 행위조차 사회적으로 구조지어진 '규범적 환경'에 의해 행위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그의 성과는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로 위대한 것이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지금처럼 당시에도 자신의 이익에 따라 합리적 계산적으로 행위하는 경제학적 인간관이 지배하고 있었다  아마도 미국의 케인즈주의의 지배 시기에, 파슨스식의 패러다임은 큰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실제로 파슨스는 책 초반에 '알프레드 마샬'이나 파레토 같은 경제학자들을 다루고 있다.)

 

(아마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지배하고, '자기계발 주체'들이 지배하는, 그래서 사회가 사리지고 원자적 개인만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지금이 다시금 파슨스와 같은 근본적인 이론적 성찰이 현시대에 맞게 다시 이루어져야할 시점이 아닐까.) 

 

문제는 파슨스는 이 책에서 마르크스를 가볍게 기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고전사회학에 마르크스를 포함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1971년에 출간된 기든스의 이 책은, 마르크스와 베버, 뒤르켐을 정밀하게 상호비교하면서, 마르크스가 사회학의 창설자로 정당하게 간주될 수 있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작업은 파슨스에 반발한 당시 여러 사회학자들의 목소리가 있었기에 또한 가능했으리라. 

 

당시 사회학은 파슨스를 찬동하느냐, 반대하느냐의 이분법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건 다시 말해 마르크스를 찬동하느냐, 반대하느냐란 이분법과 동일한 것이다.  

 

기든스는 이러한 논의구도를 엎어버렸다. 기든스는 보수로 간주되던 뒤르켐과 베버를 '좌'로 이동시킨다. 그리고 마르크스도 다소 이동시킨다. 세 사람의 공통점을 더욱 부각시킨다. 세 사람은 근대사회에 대한 철저한 사회학적 사유를 하고, 사고의 틀을 정립한 선조들이 되어버린다.  

 

예를 들면 이렇다. "베버의 마르크스주의 비판이 어떤 점에서는 일부 마르크스 추종자를 자임하는 이들의 결정론보다도 더 원래 마르크스의 변증법에 가까운 결론에 도달한다."(440) 

 

"뒤르켐과 베버의 정치적 견해들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전통적인 구별에 따라서 범주화하기 어렵다." 

 

기든스는 세 사람 모두 보수주의와 고전경제학의 공리주의와 싸웠다는 면에서는 전선이 동일했다고 평가한다.  

 

그렇게 해서, 이후의 사회학 교과서에는 마르크스가 '당연히' 포함되게 되었다. 모든 공을 기든스에게 돌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책이 여태까지 60만부가 넘게 팔렸고, 세계 여러 대학의 교재로 사용되었다고 하니, 영향력은 컸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한국의 사회학과에서도 이 교재는 고전사회학의 제1의 입문서다.   

 

하지만 입문서라고 해서 그렇게 쉬운 책은 아니다. 그만큼 문제의식이 살아있기 때문에, 여전히 건질게 많은 책이다.  

 

사회학의 위기 중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정전(canon)'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파슨스도 그렇고 기든스도 그렇고, 사회학의 정전을 만드는게 큰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80년대가 되면 아마 파슨스도 정전이 되는 흐름이 보인다. 실제로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을 보면 파슨스에 100페이지 이상을 할애하고 있어, 필수적 이론가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제프리 알렉산더는 '신기능주의'를 주창하여 파슨스의 이론도 진보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독일에서는 니클라스 루만의 체계이론은 파슨스의 이론을 계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