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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콘텐츠/종횡書해

'기억'과 '예수' [베땅이]

제임스 던,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 서평


복음서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두자료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두 자료설은 마가와 Q라는 자료들에 의해서 공관복음서가 형성되었다는 것인데 공관복음서 가운데 있는 유사성에 착안해서 고안된 이론입니다. 이처럼 복음서 연구에 있어서 자료의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공관복음이 담고 있는 내용과그 문서의 형성 사이에 있는 시간의 간격 때문입니다. 복음서는 적어도 예수 사건이 있은지 40년이 넘어서야 기록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건과 기록의 사이를 연결시키기 위해서라도 자료의 문제는 신약신학의 큰 주제 가운데 하나일 수 밖에 없습니다.


과거 수많은 학자들이 이 자료들의 신뢰성을 비판적으로 고찰해 역사적인 예수의 메시지를 복원하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반면 그런 자료들로부터 복원해낸 역사적 예수의 역사성을 부정하고 그 단화들 뒤에 숨어있는 공동체의 삶의 자리를 밝혀내려 한 불트만과 같은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방법을 택하든 예수 연구에서 이 자료들을 하나의 기록된 문서전승으로 전제해 왔던 것이 하나의 관례 혹은 흐름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 던은 초대 교회에서 예수의 이야기는 문서가 아닌 구전으로 전승되었다는 이론을 제시하면서 복음서의 자료로써 제자들의 기억과 구전의 신뢰성을 반증하려 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전체적인 주장입니니다. 이 책에서 던은 최근에 붐을 일으키고 있는 역사적 예수 연구를 비판하면서 우리가 복원해낼 수 있는 것은 역사적인 예수가 아닌 제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기억된 예수'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지금껏 역사적 예수 연구가 매달려 왔던 정경 외적인 자료에 의존하는 연구 방식과 역사라는 핑계로 작위적인 예수상을 만들어 냈던 연구 결과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문제시 되어왔던 역사적 예수 연구의 문제점이나 고대 사회에서 구전의 중요성이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분명 의미있는 문제 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던이 이 책을 통해서 강조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주장은 신약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문서라는 개념에서 구전으로의 패러다임 쉬프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지금껏 너무나도 당연하게 문서적 작업으로 여겨져 왔던 연구방법에서 조금만 고개를 돌려 구전이라는 랜즈를 통해서 보자는 것입니다. 물론 문서에서 구전으로 우리의 관심이 옮겨가야 한다는 던의 주장은 그것을 통해서 어떤 눈에 띄는 결과물의 차이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의 가치에 있어서는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던의 이런 작업은 복음서의 이야기들을 저자들의 어떤 의도에 의한 단편적인 문서들의 편집작업이라는 시각으로부터 예수에 의해서 각인된 제자들의 기억 속에 있는 이야기로 그 가치를 격상시키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남습니다. 바로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구전에 대한 신뢰성의 문제입니다. 보통 우리는 구전이라고 하면 생각하는 이미지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그 본래의 내용이 왜곡되고 변형된다는 것입니다. 흔히 듣는 연예인들의 가십적인 소문들을 봐도 처음에 누구랑 누구랑 식당에서 밥먹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부풀려져서 몰래 결혼을 했다던가, 숨겨놓은 애가 있다는 이야기들로 왜곡되면서 발전하게 됩니다. 어찌보면 역사성이라는 것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구전이라는 개념을 제자들의 기억과 연결시켜서 '기억된 예수'의 역사적 신뢰성을 증명하는 것은 어찌보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구전의 이런 비역사적인(?) 문제를 피해가려는 일부 학자들은 유대교의 암송이라는 행위를 적용시키는 작업을 통해 이 문제를 피해가려고 합니다. 즉, 제자들이 자신의 기억속에 있는 예수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토씨 하나까지 정확하게 암송시키는 랍비적 암송행위를 통해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의 말도안되는 암송습관을 생각한다면 그럴싸해보이는 이 해결책은 랍비적 유대교의 시기 문제와 더불어 복음서의 다른 판본, 즉 서로 다른 암송의 결과물이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적절한 방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전승될 이야기가 형성되는 과정 가운데 존재했을 수 있는 구전의 과정이라는 문제가 여전히 남습니다. 하지만 던은 이런 문제를 조금은 다른 방법을 통해서 풀어갑니다.


던은 구전성의 비역사적 성격에 대한 해결책으로 베일리의 '비공식적 통제된 전통'이라는 이론을 활용합니다. 이 이론은 어떤 부족에서 일어난 한 사건이 구전되는 과정을 연구한 것으로 구전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세밀하고 중요하지 않은 부분들은 다양한 변형들이 일어나지만 그 사건의 중요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은 정확히 일치하는 형태로 전달된다는 이론입니다. 그리고 이런 전승은 랍비유대교 같은 공식적인 통제 상황이 아닌 사람들 사이의 암묵적 통제의 상황에 의해서 컨트롤 된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 가설입니다.


이 이론은 간단히 설명하면 어릴 적 여름에 냇가에서 물고기 잡던 기억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세밀한 디테일의 부분은 기억이 왜곡되거나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기 위해 꾸며질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여름에 물고기를 잡았다' 같은 중심적 사건에 대한 기억은 거의 그대로 전달되어지는 원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것은 복음서 가운데 등장하는 '일치 속의 불일치'를 설명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보여줍니다. 실제로 던은 베일리의 이론을 토대로 지금껏 복음서 저자들에 의한 편집의 결과로 이해되었던 복음서의 본문들을 구전과 기억의 결과로 변환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이 방법을 통해서 증명되는 예수의 역사성은 굉장히 파편적입니다.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거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것 정도의 기록들만 그 역사성을 보증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던은 그 파편적인 것이 네러티브의 중심적인 내용임을 감안할 때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신앙적인 예수의 모습을 제자들의 기억된 예수에까지 끌고 올라가는 것은 신뢰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던이 주장하는 공관복음 안에 나타나는 '비공식적인 통제된 전통'의 모델들이 곧 그 본문에서 중심적인 '기억'의 역사성을 보증해 준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서의 본문에 나타나는 이와 같은 현상이 기억과 구전의 과정이라면 그것은 역사적 예수의 사건으로부터 오는 영향으로 기억된 것이기보다는 네러티브의 영향으로 기억된 것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춘향전에서 춘향이가 그네를 탔다는 내용이 거의 문자 그대로 보존됐다고해서 그것이 춘향이가 그네를 탄 역사적인 사건의 신빙성을 보증해 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이것은 역사 혹은 기억의 힘이라기보다는 네러티브 자체의 힘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그것은 기억된 사건이 아닌 기억된 네러티브입니다. 던의 이론은 그것이 네러티브이기 이전에 역사라는 가정을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증명방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아쉬웠던 점은 저자가 과감하게 들고 나온 기억과 구전이라는 도구에 대한 조금 더 세밀한 연구가 부족해 보인다는 점입니다. 던의 논증은 거의 전적으로 베일리의 모델에 근거해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과 구전에 관한 굉장히 다른 시각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너무 연약한 모델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입니다.


또 하나는 그가 가장 역사에 근접한 것으로 전제하는 제자들의 기억이 오염되었을 가능성에 대한 논쟁점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불트만은 모든 신약성서의 기록이 부활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채색된 과거라고 평가합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십자가와 부활의 기억이 굉장히 강렬한 사건이었기 때문이고 자기가 배반했던 자신의 스승이 진정한 메시아라는 깨달음의 빛(신앙의 빛)에서 부활 이전의 기억을 다시 '기억해 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볼 때 이 기억은 이미 역사성을 이야기하기 힘든 오염된 기억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이런 논란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은 최근 역사적 예수라는 명목아래 행해지고 있는 '자기 예수 만들기'를 비판하며 예수는 역사가 아닌 신앙으로 만날 수 있음의 중요성과 더불어 신약신학의 토대를 성경 외적인 부분으로부터 다시 복음서 안으로 끌어오는 의미있는 시도를 하고 있는 책입니다. 또한 복음서를 바라보는 문서라는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틀 속에서 복음서를 읽게 해주는 가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어렵기도 하고 아직 상권밖에 번역이 되지 않은 책이지만 꼭 읽어보시기를 강추드립니다._베땅이(CAIROS 세미나회원, BibleGeekBlog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