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쓰 노부쿠니,『동아, 대동아, 동아시아』서평
동아시아의 표정(응?)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연례행사처럼 독도를 둘러싼 우리나라와 일본 간의 신경전이 터져나온다. 이러한 다툼을 한국과 일본, 양국가간의 민족주의 다툼으로 치부해야 하는가, 아니면 일본이 제국주의적 야욕을 다시 드러내려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느 한 편으로 딱히 손을 들어줄 수 없을 것 같은 이 문제에 대하여, 고야쓰 노부쿠니는 ‘동아시아’의 문제라고 대답한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역사 교과서 논쟁, 독도 논쟁를 ‘동아시아’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공백의 질서”의 문제로 포착하는 것이다.
노부쿠니의 사유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히로마쓰 와타루의 『근대초극론』을 먼저 읽어야 한다. 『근대초극론』은 쇼와 10년대(1935년-45년)에 부흥했던 ‘근대의 초극’ 좌담회를 배경으로 한다. 태평양전쟁 이후 일본 학계에 새로이 등장한 이 ‘근대의 초극’ 담론은, 지금까지의 근대를 ‘서구의 것’으로 규정하고, 이를 초극하는, 즉 반(反)서양으로서 “대동아”를 수립한다. 여기서 탄생한 것이 대동아공영권이며, 이 대동아공영권은 전체주의와 개인주의의 동시적인 지양을 표방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기체(基體)와 주체의 합일로서의 협동주의다. 히로마쓰 와타루는 이와 같은 근대의 초극 담론에 대해 역사적, 비판적 독해를 수행한 대표적인 학자다.
와타루는 대동아공영권 사상에 대하여, ‘근대의 초극’ 담론이 지나치게 저널화되었음을 비판하며, 한편으로 이러한 근대의 초극을 우파의 담론이 아닌 좌파의 담론으로서 재 부흥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와타루의 이러한 논점은 근대의 초극에 매우 적절하게 가할 수 있는 비판으로 보이지만, 노부쿠니의 관점에서 이는 오히려 일본 제국주의의 부흥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정밀하게 볼 때, 와타루는 ‘근대의 초극’ 자체가 아니라, 근대의 초극 논의가 “저널화”되었다는 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와타루의 논의가 제국주의적 언설로 읽혀질 수 있는 이러한 독해 지점에 대하여 노부쿠니는, ‘동아’, ‘대동아’, ‘동아시아’의 개념에 대한 이해의 부재로 그 원인을 짚는다. 와타루가 근대의 초극 논의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대동아가 내포하고 있는 일본 제국주의 자체이며, 따라서 우리가 근대의 초극 담론으로부터 복원시켜야 할 것은 대동아로부터 윤색된 동아의 다원성, 즉 “동아시아”인 것이다.
노부쿠니는 역사적인 맥락을 따라 ‘동아’, ‘대동아’, ‘동아시아’의 개념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너무나도 다른 의미를 갖는 이 세 단어는 근대 시기 동아시아의 정국을 그대로 반영한다. 노부쿠니의 관점에서 현재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이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이 세 단어 사이의 팽팽한 긴장과도 맞닿는다. 이것들은 모두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계속해서 뚜렷한 주도권 없이 모든 질서가 공백 상태로 놓여 있는 “동아시아” 안에서 이루어지는 싸움인 것이다.
일본의 저명한 학자인 사카이 나오키는 「염치없는 내셔널리즘」에서 ‘아시아’라는 단어가 그 자체로 탈식민주의적이라고 했다. 서양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자신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 즉 그 자체로 이미 식민주의의 외부로서 탄생했다는 의미다. 노부쿠니가 지적하는 것도 이 지점이다. 아시아라는 외부적 정체성은 이미 “호명”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나오키는 ‘아시아’라는 호칭의 실존성에 대해서는 부정했지만, 노부쿠니는 이 책 『동아, 대동아, 동아시아』에서 아시아를 다르게 호칭하는 이 세 가지 명명의 이데올로기적 결합력에 대하여 논설한다. 노부쿠니의 관점에서 ‘아시아’는 단지 반(反)서양이 아니라, 그 내부의 질서를 구축하기 위하여 역동하는 존재인 것이다.
노부쿠니는 근대 시기의 치열했던 전쟁사부터 현재에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역사 논쟁까지, 100년 남짓한 ‘아시아’의 역사를 몇 가지 주요한 개념들로부터 풀어나가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고야쓰 노부쿠니의 저서 『동아, 대동아, 동아시아』는 근대 시기부터 현재까지의 동아시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적절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노부쿠니의 본 서적은 근대 시기 동아시아의 문제뿐만 아니라 현대까지 이어지는 중국-일본-한국 간의 정국을 심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지침서라고도 할 수 있겠다._갱(CAIROS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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