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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콘텐츠/종횡書해

MB, “학원 안보내면 안 될까요?” 발언을 이해하려면? [먹보에 술꾼]

: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 읽기


학원비가 비싸요/ 학원 안보내면 안 될까요?

대학 등록금이 너무 비싸요/ 장학금 받으삼[각주:1]

광우병이 걱정돼요/ 먹지 마세요, 그럼.


일전에 학원비가 비싸다는 학부모의 하소연을 가볍게 날려버린 MB의 ‘처방’은 한국사회와 MB가 공유하고 있는 시대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징후일 뿐이다. 이러한 MB시대에 서동진의 박사논문(2005)이 출간된 것이 내게는 일종의 ‘계시’로 느껴졌을 정도이다.(카이로스의 도래?!) 서동진은 이 책에서 한국사회의 경제 및 산업의 발전상에서 신자유주의와 자기계발담론의 ‘공명’ 내지 ‘선택적 친화성’을 발견함으로써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시민주체의 주체성을 개혁하는 과정을 읽어낸다. 그는 이를 “주체성의 구조조정 과정”이라고 하고, 자신의 기획을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계보학적 분석”이라고 부른다(33, 372쪽). 이 주체는 ‘자유’를 추구해 온 주체로서 증가하는 불안의 조건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해서든 관리하고자 노력해 온 인간상이다. 하지만 국가와 자본, 사회전체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이 주체는 새로이 개편된 산업질서 속에서 적극적인 노동과 소비의 주체에 다름 아니다. 자본주의에 봉사하는 노동력으로서만, 소비자로서만 주체의 자리를 인정받는 주체. “자본주의는 주체에 ‘대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를 ‘통해’ 지배한다.”(368쪽) 서동진은 이러한 사회적 조건과 주체의 모습에게서 진정한 자율적 주체와 자유의 의미를 묻는다. 


“결국 권력은 지배받는 주체에게 직접 작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체성을 형성하고 그 주체가 자신의 삶에 작용하는 방식을 규정함으로써 주체를 ‘멀리에서’ 지배한다. 신자유주의는 바로 그런 지배대상으로서의 주체를 빚어낸다. 그렇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기 삶을 대하는 주체에게 새로운 행위 가능성, 즉 개인적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면서 작용한다. 따라서 자기계발하는 주체가 품고 있는 자유는 허위적인 기만도 아니고 한낱 허깨비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언제나 권력은 자유를 통해 작동하기 때문이다.”(367쪽)


자기계발하는 주체가 “위험(risk)을 관리하는 주체”라면 ‘MB명령’은 자기계발하는 주체로서 우리들에게 당면한 위험들을 그야말로 잘 관리하라는 윤리적 명령에 다름 아니다. MB, 대한민국 시대정신에 비추어본다면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요구이다. “내 인생은 내 것이고, 네 인생은 네 것”이라는 자유의 이데올로기는 “대신에 책임은 네가 저야 할 것!”이라는 엄숙한 선언을 동반해야만 비로소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성공하고 유능한(?)-대통령까지 했으니 이만한 성공도 없다-기업가인 MB의 눈에는 학원비가 비싸다고 투덜대는 학부모나 광우병이 무서워 미국산 쇠고기를 못먹겠다는 국민들은 자신들의 삶과 그들에게 닥친 위험들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지 못하는 무능하고 찌질한 인간들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


우리를 허무하게 하는 MB의 시선, 개인과 사회의 역량을 포섭하는 자본과 국가의 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서동진은 진정한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자기계발의 가능성 내지는 자기계발에 포섭되지 않고 이탈하는 주체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분명 이것은 자신의 연구 범주를 스스로 제한한  이것만으로 꼬투리잡을 수는 없겠다). 그가 생각하기에 ‘성찰성’은 “심리적인” “관념”이나 “의식의 변화”를 줄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이론적 입장은 마치 행위자들은 그저 ‘얼간이’(cultural dope)일 뿐이라는 오해를 살 여지가 있다. 사회구성론과 "일부 사회이론가"들이 새로운 주체성의 특징으로 주장하는 '성찰성' 내지 '성찰적 자아'를 자기계발 시대의 대안적 주체성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그는, 성찰성의 개념이 억압적 조건과 해방의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취해지는 행위자의 능동적 전략이라는 점을 간과하는 것처럼 보인다. 행위자들의 의미란 단순히 담론적 층위에서 표현되는 '의식'의 표현이 아니라, 한국사회라는 구체적인 사회적 조건 속에서 맥락화된 '실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기계발 담론에 매몰된 실천이 아닌, '해방'의 실천은 어떻게 가능할까? 아니 그러한 방법은 어떻게 제시할 수 있을까?


학원비가 비쌀 때 학원을 보내지 않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MB식 처방은 자기계발의 현실 가운데에는 제한된 선택지만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확인시켜준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단지 국가와 사회를 통제하지 못하는 대통령(정치인이자 CEO)의 '무능'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학원 이외의 대안의 가능성, 즉 상상력이 억압되는 사회적 현실 자체에 대한 인지가 있는 것은 아닐까? 바로 이 지점이 성찰성이 작동하는 지점일 수 있다. 이러한 MB식 자기계발(을 두고 벌어지는 해석적 실천들의) 담론 속에서 우리는 유토피아를 믿는 인간의 (사회적)"본능"을 읽어낼 수 있다. 결국 MB의 자기계발은 사람들에게 자유의 침해로 읽혀질 수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책에서 자유의 의지(해방의 이념)와 자기계발의 의지(맥락화된 실천)를 단순한 모순관계나 제로섬 게임으로 볼 수는 없다. 또한 자기계발의 의지가 해방을 거부하는 주체로서 이해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서동진의 문제의식은 사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제 자기계발의 의지 속에서 자유의 의지를 보여주는 삶의 결을 읽어내는 작업이 절실하지 필요한 것은 아닐까?_먹보에 술꾼(CAIROS 연구원)

 

  1. 최근에는 비싼 등록금이라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거나 등록금이 너무 싸면 안된다는 발언이 문제가 되고 있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