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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서평] 보드리야르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





1.  

 보드리야르는 '기호''상징'을 구별한다. 기호는 체계 속에서의 차이와 대립에 의해 의미가 산출되는 반면에, '상징' 혹은 '상징적인 것'은 객체화될 수 없고 따라서 체계화될 수 없다보드리야르에 의하면 이렇게 상징적인 것을 기호로 환원시키는 것이야말로 현 체제의 이데올로기의 작동방식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상징적인 것의 이러한 기호학적 환원이 바로 이데올로기 과정을 구성"(p.102)하기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가 시간의 '태양'  더 이상 종교적인 상징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농부의 노동에서 찾아 볼 수 있던 저 자연력의 양면성"(p.102)을 가지고 있지 않다. '태양'은 오히려 '-태양'과의 대립에 의해 긍정적인 의미가 부여된다이데올로기와 물신숭배는 이와 같이 '차이''대립'에 의해 작동된다.  

 "물건에 대한 현행의 물신숭배는 실체와 역사가 없어지고 차이의 표지 목록으로 환원되며 차이들의 체계 그 자체로 요약되는 물건 사운데 결부된다."(p.95)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드리야르가 사물이 차이의 <체계>에 포섭되는 것을 물신숭배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물신숭배는 사물 그 자체에 대한 신성화가 아니라, 개개의 사물들간의 차이’/ ‘관계<체계>에 대한 신성화이다. 소비영역은 이러한 기호학적인 '차이의 체계'로서 '의미작용의 체계'의 지배를 받는다. 또한 소비는 상품간의 차이를 통해서, 사회적 신분/계급의 구별과 차별을 만들어낸다.

 

 "이 모든 것은 ...계열적 대립들이 물건들의 세계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의 도구일 뿐만 아니라 사회 판별식, 형식상 별개이며 또한 사회적으로 구별을 짓는 특징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인바...."(p.36) 


우리는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싸구려 커피와 스타벅스 커피와의 '차이'를 소비하는 것이고, BMW를 타는 것이 아니라, BMW와 다른 평범한 자동차와의 '차이'를 소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고급스러운 나' '저급한 그들'과의 '차이''구별' 만들어내는 것이다.

 2.

 보드리야르는 욕구를 인간 내부의 자연으로 보는 견해를 넘어서 그것을 체제의 내적 논리에 의해 개인들 속으로 유도된 기능”(p.82)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욕구나 욕망을 본질적으로 혁명적이라고 보는 들뢰즈의 주장과 대립된다. 그러나 이것은 둘 사이의 욕구 개념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 의한 것으로, 보드리야르는 '자연스러운' 욕구 개념이 주체와 대상을 연결짓기 위해 만들어진 이론적 허구라고 본다.

 

“...욕구의 덕택으로만 주체와 대상을 접합시킬 수 있다. 그 개념은 대상에 대한 주체의 관계를 합당성, 곧 대상에 대한 주체의 기능적 반응과 거꾸로 주체에 대한 대상의 그것에 입각해서 나타낼 따름이다.”(p.67)

 

반면에 들뢰즈는 욕망을 어떤 대상을 향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창조해내고 생산해내는 현실적인 힘으로 본다. 보드리야르가 비판하는 종래의 욕구 개념은 주체와 대상을 가정하며, “대상에 의해 주체를, 그리고 거꾸로 주체에 의해 대상을 규정”(p.67)하게 만듦으로써 동어반복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욕구 개념에 대한 비판은 사용가치가 교환가치에 선행한다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과 통한다. 보드리야르는 이렇게 자명해 보이는 것을 경험론의 가설이라고 부른다.

 

“... 욕구에 입각하여 물건들을 보는 자연발생적인 시각, 물건들의 사용가치에 우선권이 있다는 가설을 넘어서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p.11)

 

그러나 이러한 자연발생적 시각’=‘경험론의 가설은 벗어나기 어려운데, 이러한 시각과 가설은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 이론에서도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사용가치는 물건의 선천적 기능(, 물건 자체의 고유한 목적)으로서 자본주의=교환가치의 체계의 외부에 존재하여 따라서 사물의 사용가치를 회복하는 것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식의 이론 말이다. 보드리야르는 마르크스주의의 이러한 주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사용가치는...정말로 상품 경제 속에 편입되지는 않는다. 사용가치는 비록 제한된 것이긴 하지만 자체의 고유한 궁극목적이 있다. 그리하여 사용가치에는 상품 경제/화폐/교환가치를 넘어, ...명예로운 자율성 속으로 다시 솟아오를 가망성이 있다.”(pp.142~143)

 

또한 마르크스의 이론에서는 교환가치의 체계에서만 물신숭배가 작동하며, “사용가치는 사회 관계로도, 따라서 물신화의 현장으로도 보이지 않는다."(p.143) 그러나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사용가치는 이미 자본주의에 의해 오염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고, 더 정확히 말하면 사용가치의 체계는 교환가치의 체계에 의해 산출되는 것이다. 또한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교환가치에 대한 물신숭배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가치에 대한 물신숭배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사용가치에 대한 물신숭배는 어떻게 작동되는가? 그것은 교환가치에 대한 물신숭배와 마찬가지로, “추상/환원/합리화/체계화”(p.149)를 통해서이다. 이것은 교환가치가 추상적이고 사용가치는 구체적이라는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을 넘어서는 것이다. 교환가치에 대한 물신숭배가 사물을 추상적인 체계 속으로 환원시켜 합리화되고 체계화됨을 통해서 작동한다면, 사용가치에 대한 물신숭배 역시 이렇게 작동한다.

 

이 점에서, 물신숭배는 이런저런 물건에 대한, 이런저런 가치에 대한 신성화가 아니라...그러한 것으로서의 체계에 대한 신성화이며, 체계로서의 상품에 대한 신성화이다.,,,돈에서 경배되는것은 추상, 기호의 전적인 인공성이며, ‘물신화되는것은 황금 송아지또는 보물이 아니라 체계의 닫힌 완전성이다.(p.96)

3.

그렇다면 보드리야르는 이러한 체계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가? 보드리야르는 기호체계를 파괴하고 '상징''상징적 교환'을 회복시킬 것을 주장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상징은  객체화될 수 없고 체계화될 수 없는 것으로서 객관적 의미작용의 질서 바깥에 있다. 의미 작용과 기호체계를 장악한 권력에 대항하여 "기호와 가치를 희생시켜 상징적인 것을 복원"하는 것이 곧 혁명이라고 보드리야르는 말한다.


글_김상범님은 고등학교 때 주로 이과계열이 집중된 과학고를 졸업한 후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이공계전공자이지만, 지금은 인문학 공부를 위해 긴 휴학을 택하여 인문학 공부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