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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콘텐츠/2회 카이로스포럼:선교라는 스캔들

“선교동원운동의 이데올로기와 정체성 정치”에 대한 질문과 논평

[제 2회 카이로스 포럼]

박설희의 “선교동원운동의 이데올로기와 정체성 정치-종교의 ‘민족화’ 현상에 주목하여”에 대한 질문과 논평

저자는 한국 개신교의 해외선교운동을 ‘민족화’라는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접근하여 분석한다. 이는 선교의 ‘민족화’ 현상을 이데올로기라는 하나의 구성물로 접근함으로써 ‘문제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통하여 ‘선택적 전통’ 이었던 특정 담론이 당연시되게 되는 과정과 그 조건들을 드러내고, 나아가 그 작동방식과 효과를 조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선교의 민족화를 통하여 ‘정당성이 확보’되고, ‘지속가능한 응집력’이 생산되며, 그 담론의 속성상 ‘공격성과 배타성’이 가중된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90년대 중반이후 ‘사회현상’으로서 개신교를 바라볼 때, 주목할 만한 지점은 역시 해외선교의 급속한 성장, 그리고 근본주의 및 배타성의 강화를 들 수 있다. 저자는 이 양자를 연결시키고 서로 강화시키는 매개로서 ‘민족화’라는 담론을 제시하면서 한국 개신교의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선교의 이유를 설득력 있게 분석하고 있다. 민족주의라는 담론이 피/아를 명확히 가르고, ‘우리’에 대한 ‘상징화된 계보’를 구성하며, 타자에 대해서는 악마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피/아의 명확한 구분은 우리 아닌 이들을 ‘적’으로 간주하기 쉽게 만들며 이는 구성된 ‘적’에 대한 정복적 언어들이 힘을 얻을 수 있는 인식론적 근거가 된다. 또한 민족/종족이라는 단위, 민족의 소명, 선택된 민족 등의 프레임은 성서의 세계관에서도 공유하고 있는 것이기에 두 세계관이 매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자연스럽게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개신교의 여러 위기 담론 속에서도 대안적 언어의 모색을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1. 저자는 한국 개신교의 민족화를 70년대 이후 세계적 종교부흥 운동의 연속선에서 평가한다. 7~80년대 근본주의의 세계적 부흥 현상은, 세계화에 따른 ‘사회의 총제적 위기와 이데올로기적 공백 상황’에 대응하면서 정체성과 연대의식을 제공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의 개신교와 종교부흥운동들을 같은 맥락에서 비교 분석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90년대, 한국 개신교의 선교동원이데올로기로서 민족화가 그러한 것이었지는 더욱 세밀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저자는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변곡점인 IMF가 사회의 총제적 위기와 이데올로기적 공백을 초래했다고 설명한다. IMF가 사회의 여러 차원에서 기틀을 흔든 사건이었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그것이 ‘종교의 민족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IMF 이후 생겨난 한국사회에 ‘정체성’ 문제에 대한 ‘응답’이 종교의 민족화였는가? 즉, 필연적으로 그 시점에서 ‘선택’될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저자의 인용문(2p)에서도 이야기하듯, ‘세속화’와 ‘종교의 부흥’이라는 모순되어 보이는 현상은 동시적으로 전개된다. 한국에서도 개인주의가 가속화되게 된 시점을 90년대 중후반 이후로 잡는다면, 왜 이러한 ‘정체성 운동’이 한국에서 개신교에 선택적으로 통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논평자의 생각으로는 구성원들(여기서는 개신교인들)이 위기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정체성을 모색하였다기 보다, 역으로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 어쩌면 아직도 작동하는 유일한 - 담론적 자원으로 민족주의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판단이다.)


2. 개신교 선교에 대한 분석은 결국 현장의 선교행위와 연결 관계가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집단적 행위’일 수 있는 대규모 단기 선교나 선교관련 국내외 행사들, 모금의 독려 등에 있어서 저자가 분석한 담론은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내부인을 향해있는 국내에서의 민족화된 메시지도 선교의 직간접적 주체로서 교인들을 결집시키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교지에 개인으로서 바로 그 ‘타자들’과 접촉하고 있는 장기 선교사들에게는 이 담론이 어떤 방식으로 수용, 성찰, 극복되고 있을까? 담론에 의해 주체가 ‘동원’되었음을 강조하였을 때, 하나의 독립된 주체의 선교라는 Action을 논하기가 매우 난감해진다. 특히, 선교라는 행위가 개인적 차원의 내밀한 실존적, 성찰적 숙고를 필요로 하는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담론은 선교사라는 개인의 숙고 과정에서 어떻게 굴절되는가?

김주영/서강대 사회학과 석사과정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