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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으른 조선인’ 담론

어떠한 지점에서 문창극의 강연 내용이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문창극은 조선말-개화기-식민지-해방-전쟁으로 이어지는 근현대사를 자기만의 방식대로 풀어나갔다. 그런데, 강연 전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문창극은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하여 발생하는 사건들을 일종의 ‘숙명론적 사관’으로 해석하고 있다. 일례로, 문창극은 귀츨라프 선교사와 달레 신부, 그리고 비숍 여사의 기록을 바탕으로 조선말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은 게으르고 더러운 족속이었다. 문창극은 이들의 기록을 근거로 시종일관 ‘게으른 조선인’ 담론을 펼쳐 나갔다. 이 지점에서 문창극은 조선인의 게으름이 망국의 원인이 되었다는 식민 사관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창극이 인용한 이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다른 서구인들은 오히려 이들과 정반대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소문을 통해 조선인이 게으를 것이라 예상했던 많은 유럽인들은 조선을 방문한 이후 조선인의 성실함을 묘사하였다. 가령, 헝가리에서 온 한 방문자는 조선에 금광을 운영하고 있는 외국 회사들의 보고서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이 매우 부지런하고 능숙하게 일을 한다는 것을 읽게 되면서 ‘조선인은 게을러서 쓸모가 없다’는 소문을 가장 잘 부정하는 예하고 설명하였다(주1). 언더우드 부인은 조선인이 게으르다는 지적에 대해 “조선 사람을 잘 모르는 여행자들, 조선 민족에 적대적인 사람들, 겉모습만 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고 비판했다(주2). 맥킨지 역시 조선인의 게으름이 일부 타당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항구에 떠돌아다니는 짐꾼들이나 식객 노릇하면서 서울거리를 돌아다니는 건달들을 본 것에 불과하고 이런 계층은 서구에서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주3). 조선에 오랫동안 체류한 외국인들의 증언은 대체로 조선인의 근면함과 성실함을 강조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주4).

문창극의 역사 인식에서 주목할 점은 망국의 원인으로 양반들의 무능과 게으름을 지목한 것이다. 문창극은 일본에 유학을 간 많은 양반들이 사회학, 철학, 정치학 등을 공부하면서 그들의 ‘게으른 혀’를 굴리는 데에만 시간과 돈을 허비했다고 비판하였다. 문창극은 이들이 공학이나 의학 등 좀 더 실용적인 학문을 택하지 않고 "혓바닥 놀려서 게으르게 먹고 살려고” 한다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비판은 청일전쟁 이후 조선에 진출하여 일본의 식민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조선의 타율성과 식민성 등을 역사적으로 밝히는데 주력한 기쿠치(菊池謙讓)의 《조선왕국》류의 설명과 유사하다(주5).


2. 훈육으로서의 고난

여기서 문창극의 고난 사관은 ‘게으른 조선인’ 담론과 긴밀히 연결되었다. 문창극이 볼 때 조선의 멸망은 조선인의 게으름에서 기인했다. 따라서 조선의 멸망, 즉 일본의 식민지배는 조선인의 게으름을 벌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고난이라는 것이 문창극의 설명이다. “우리한테 너희들은 이조 500년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너희들은 고난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라는 문창극의 발언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문창극의 고난 사관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식민 사관을 배경으로 게으른 조선인들을 ‘훈육’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주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문창극은 조선에 기독교가 전래된 것 역시 게으른 조선인들을 개종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게 하려는 이유가 작용하고 있다고 보았다.


3. 적화 통일을 방지하기 위한 분단: 반공의 신

섭리 사관은 역사적 사건에 신의 특별한 계시가 내재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역사를 해석하는 사관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모든 종교는 자신이 겪는 사건을 자신의 교리로 재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문창극의 섭리 사관은 반공 이데올로기라는 이념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데서 문제가 있다. 문창극은 남북 분단이라는 상황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뜻이 관철되었다고 보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해방 이후 한국의 적화 통일을 방지하기 위해 하나님은 분단을 주셨다는 논리이다. 문창극은 “그 당시 우리 체질로 봤을 때 한국한테 온전한 독립을 주셨으면 우리는 공산화 될 수 밖에 없었어요.”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문창극은 분단이 있었기 때문에 남한이 이만큼 잘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공산화가 되었으면 지금의 북한과 같은 어려움을 똑같이 당했을 거라는 논리이다. 만약, 문창극의 역사 해석이 맞다면 하나님은 반공의 神이라 할 수 있다.

(주1) 버라토시 벌로그 베네데크, 『코리아 조용한 아침의 나라』, 2005, 집문당, 123쪽.
(주2) 릴리어스 호튼 언더우드,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생활』, 1984, 뿌리깊은나무, 204쪽.
(주3) 맥킨지, 『대한제국의 비극』
(주4) 정연태, 「서양인의 한국관」, 『역사와 현실』34, 1999, 169쪽.
(주5) 최혜주, 「근대 일본의 한국사관과 왜곡」, 『한국독립운동사 연구』35, 2010, 300~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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