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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콘텐츠/민중신학, 스피노자를 만나다

III-2. <신학정치론>: 다중은 왜 예속을 욕망하는가?

(1) 미신의 발생


만일 사람들이 자신들의 모든 환경들을 완전하게 통치할 수 있다면, 혹은 계속적인 행운이 항상 그들의 운명이라면, 그들은 결코 미신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신학정치론> 서문)

<신학정치론>의 전반적인 내용은 미신에 대한 논박이라 할 수 있다. 스피노자는 종교가 미신으로 전락하고, 그러한 미신이 정치와 결탁하여 억압적 정치질서를 낳는 당대 네덜란드의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미신은 다중의 정신과 신체의 무능력에서 출발하여, 계속해서 다중1)을 무능력하게 만들며, 마침내 다중을 항상적으로 예속을 욕망하는 노예의 상태로 전락시킨다.

미신이 출발하는 다중의 무능력의 지점, 그것은 무엇보다 ‘공포’이다.2) 우리는 항상 외부 환경 속에서 살아가며, 보통은 그것들의 참다운 원인을 알지 못한채 수동적인 변용을 겪으며 살아간다. 공포는 그러한 무지에서 싹트는 정서이다.3) 우리는 미래에 어떤 외부의 환경이 나를 급습하여 파괴할지 알지 못한다. 그러한 공포 속에서 이전에 좋았거나 나빴던 어떤 것을 생각나게 하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면 우리는 거기에서 어떤 징조(omen)을 발견한다. 또한 어떤 범상치 않은 일4)을 만나면 우리는 쉽게 그것을 신들이나 하느님의 분노를 나타내는 조짐이라고 믿으며 거기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여기에는 우리가 앞서 살펴본 부적합한 관념으로서의 목적론이 개입하게 된다. 신은 세상 모든 것의 목적인이며, 우리는 그 신의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고자 안절부절하게 되는 것이다.

미신은 공포만 아니라 희망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단지 공포를 타계하려는 희망이며 따라서 여전히 수동적인 변용의 정서이다.5) 다중은 각종 종교 행위에 참여하며, 성직자들의 말에 복종하며 공포가 사라지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미신은 사람들의 자발적 예속을 강화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제 신에게 사랑 받기 위해, 자연 현상에서 신의 권능과 흔적을 발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을 기울인다. 그들은 자연 만물의 원인을 인식하고 그것과 힘을 합쳐 자신의 능력을 신장시키기보다는 자연의 목적인인 신을 상상하고, 그 신이 자신을 위해 자연을 움직여 줄 것을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중을 영속적으로 통제하고 희망을 부여하기 위한 종교 의례와 성직 제도가 구성된다.6)


(2) 미신적 종교와 정치의 결탁

이러한 미신은 폭정의 메커니즘과 다르지 않다. 폭정의 버팀목, 그것이 유지되는 최고의 비밀은 사람들을 제어하는 공포와 희망의 메커니즘을 그럴듯한 이름으로 가려서 그들이 마치 구원을 위한 것인 양 자신의 예속을 위해 싸우고, 권력자의 욕심을 위해 피와 목숨을 바치는 것을 수치가 아니라 최고의 영예로 간주하도록 만드는 것에 있다.7) 그러나 다중은 단지 복종만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각자 다양한 기질을 가지고 있고, 또 다양한 방식으로 다른 예속을 열망하기 때문에, 그들의 복종은 “하나의 동일한 종류의 의견”을 항상적으로 따르는 안정적인 복종이 아니라 변덕스러운 공포와 희망에 입각한 정념적인 복종이다. 따라서 다중(우중)은 결코 오래 만족하는 법이 없으며, 마치 신처럼 경배했던 정치가를, 어느 순간엔 헌신짝처럼 버리며 멸시하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8) 여기에서 항상적인 다중의 복종을 위한 규율들이 만들어진다. 양심과 신념의 자유를 가로막고, 수많은 교조로 개인의 판단을 철저히 지배하는 수많은 법과 제도들이 그것이다. 스피노자는 이런 식으로 편견을 부여하거나 시민의 자유로운 판단을 강제하는 정책은 다중의 자유와 전적으로 양립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9)

따라서 <신학정치론>에서 스피노자는 매우 급박한 과제로서 국가와 종교의 이러한 결탁을 끊어 놓을 것을 제시한다. <신학정치론>이 제시하는 이상적인 정치체는 “각 시민에게 판단의 자유가 완전히 부여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신을 숭배할 수 있으며, 자유보다 더욱 소중하고 귀하게 평가되는 것이 없는 국가”이다.10) 물론 이것은 초월적 당위로서 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국가만이 다중들로 하여금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는 집합적 공동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3) 다중의 무능력의 역사적 전개

<신학정치론>의 몇 장면에서 우리는 다중이 어떻게 역사 안에서 무능력한 우중의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만나게 된다. 첫 번째는 우리가 앞의 소절에서 살펴보았던 예속을 열망하는 다중의 모습이다. 미신에 의해 통치 받으며, 자신의 능력을 확장하기는커녕 한 사람의 지배자를 위해 스스로 죽음을 향해, 자신의 파괴를 향해 달려가는 비극적인 상황!

그러나 다중의 무능력은 그렇게 일면적으로 펼쳐지지만은 않는다. 스피노자는 일견 다중의 능력이 폭발적으로 펼쳐지는 것처럼 보이는 폭동과 혁명의 장면 속에서도 다중의 무능력을 발견한다.

어떤 군주가 폭군임이 분명하더라도, 이 군주를 제거하는 것 역시 위험한 일이다. […] 왜냐하면 살해된 왕의 피로 두 손이 얼룩져 있는 시민들이 국왕 시해를 훌륭한 행동이었다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새로 즉위한 왕은 이를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한 사례로 생각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 그는 자신이 계승한 선왕의 대의를 옹호하고 그의 행위에 찬성하지 않고서는, 따라서 그의 행적을 답습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시민들의 죽음을 도모함으로써 선왕의 시해에 쉽게 보복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인민들populus은 폭군들을 교체시킬 수는 있었지만, 참주제 자체를 폐지시키거나 군주의 통치를 다른 형태의 통치로 바꾸지는 못했다. 영국 인민들은 이러한 불가능성의 숙명적 사례를 제공해 준다. […] 그토록 많은 피를 흘린 다음에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상이한 칭호 아래 등장한 새로운 군주를 환영하는 일뿐이었다.(마치 주권자에게 부여된 칭호가 문제 전체인 것처럼) […] 아주 뒤늦게야 인민들은 자신들이 조국의 안녕을 위해 한 일은 고작 정당한 왕의 권리를 침탈하고 모든 사태를 훨씬 더 나쁘게 만든 것뿐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신학정치론> 18장)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년 4월 25일 - 1658년 9월 3일)

스피노자가 여기서 고찰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은 영국의 청교도 혁명이다. 영국인들은 독재자(왕)을 몰아냈지만 결국 크롬웰이라는 또 다른 독재자를 맞이했을 뿐이었다. 스피노자는 단지 수동적인 정념에 의해 움직이는 대중의 운동은 결코 대중 자신의 능력을 상승시키는 자유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내지 못하며, 또 다른 지배자를 욕망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혁명은 자신의 자식들을 잡아먹고 복고를 낳고 만다.”11)

따라서 국가 권력의 입장에서는 결국 이러한 대중의 정념의 분출을 막기 위해 법에 의한 통제나, 대중의 정념을 효과적으로 조절하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통치를 할 수밖에 없게 되며, 자유에 입각한 다중의 직접적 통치는 요원하게 된다. <신학정치론> 17장과 18장에 나오는 역사적 이스라엘의 부족국가체제 분석은 이러한 법과 이데올로기에 의한 통치의 가능성과 그 한계를 보여준다. 모세는 ‘하느님과의 계약’이라는 종교적 상상력과 선민의식을 통해 강력하게 이스라엘 다중의 정념을 결집하고, 또한 단지 정념만이 아니라 제기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각종의 제도적 장치들 - 지도자 선별 양식, 토지의 분배, 권력의 분립 - 을 통해 안정적인 국가를 건설할 가능성을 열었다.12) 그러나 그것은 결코 다중으로 하여금 자유로운 인간들의 연합체를 구성하는 방향으로 향할 수는 없었다. 과연 이러한 공동체에서 종교적 ․ 정치적 의견의 교환은 가능할까? 또한 타인들과의 자유로운 교역의 순환이 가능할까? 마트롱이 잘 지적했듯이, 신정정치는 다만 협소한 조화와, 안전, 그리고 기초적인 생물학적 기능을 행사하는 것만을 보장해줄 뿐이다. 그리고 “만일 홉스의 인간학13)이 옳았다면, 이런 체제가 이상적인 체제일 것이다. 정치 지도자로서는 그에게 하등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철학자에게 이는 궁지다.”14) 실제로 이스라엘 신정은 이상적인 정치체는커녕 자신의 실존과 본성을 유지하는 데조차 성공하지 못했다. 아주 작은 정책적 실수나 모순도 종종 다중의 정념적 폭발이나 방종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 역사는 항상적인 사치와 향락, 내란, 폭정의 악순환 사이클로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는 이방 제국들의 지배였다.15) 


1) <신학정치론>은 multitudo를 다른 여러 용어들, 우중 volgus, 평민 plebs, 인민 populus 등의 다른 용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다중의 무능력과 능력의 전개를 살펴보려는 본 논문의 목적에 따라 특정한 맥락에서 volgus나 plebs, populus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나 직접인용이 아니라면 ‘다중’으로 용어를 통일해서 서술하려 한다.  


2) TTP 서문


3) E III정리18주석


4)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그 원인을 알지 못하는 사건을 말하는 것이지, 자연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기적)이 아니다.


5) 공포와 희망에 대한 에티카의 언급 찾아서 기록해놓을 것.


6) TTP 서문


7) TTP 서문


8) TTP 서문


9) TTP 서문


10) TTP 서문


11) 에티엔 발리바르, <스피노자와 정치>, 165쪽


12) 스피노자의 신정 분석에 대한 상세한 주석은 마트롱,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 김문수, 김은주 옮김(서울: 그린비, 2008) 참조


13) 홉스의 사회계약론, 즉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한 명의 주권자에게 자연권을 양도하고 그에게 복종하는 정치체제의 상을 말한다.


14) 알렉상드르 마트롱, 같은 책, 647쪽


15) TTP 17장; 스피노자가 보기에 이스라엘의 가장 큰 정책적 실수는 성직의 권리를 레위 지파가 독점한 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