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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어츠의 <문화의 해석>에서 '정신'(mind)과 '문화'의 관계

“이 사진은 싸이용”, “헉, 이럴수가. 땀삐질 -_-;;”
“날씨가 따뜻하니 눈이 녹는 게 테트리스 클리어되는 것 같았다”


클리포드 기어츠

사람에 따라 전혀 낯설지 않은, 혹은 적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위의 표현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스마트폰, 터치 패드...연일 인간이 이룩한 첨단 문명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는 미디어 덕분에 정말 인간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무엇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날로 발전하는 인간의 고등사고력인가? 기어츠는 이 장 전반에 걸쳐 최첨단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정신은 문화자원에 선행하며 문화자원은 정신의 반영’이라는 명제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젓는다.

‘정신’이라는 개념의 유용성

정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기반으로 자신이 이룩해놓은 문명에 도취되어 있을 인간에게 기어츠는 일격을 가할 준비를 시작한다. 조심스러운 한 방을 날리기에 앞서 그는 행동과학에서 ‘정신’이라는 용어의 용례를 살핀다. 행동과학에서 ‘정신’은 매우 추상적인 용어로 감정, 통찰, 이해 등의 주관성을 의미하거나 욕망, 진리, 사랑 등 이론이 미처 설명하지 못한 것에 대한 것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다.(76-77) 이에 기어츠는 정신을 ‘광대의 재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종류의 행위를 행하고 사물을 생산할 수 있는 유기체의 능력과 경향”(81)으로 설명한다. 즉 정신은 인간의 행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행위의 완전한 설명을 불가능하게 하는 불편한 어떤 것이 아닌 충분한 유용성을 가진 개념인 것이다.

정신의 진화에 관한 논의

문화자원과 정신과의 결코 껄끄럽지만은 않은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기어츠는 인간 정신의 진화에 관한 두 가지 견해에 주목한다. 그 첫째는 프로이트 식으로 설명하자면 치환, 역전, 압축 등의 “일차적”사고가 뱡향성과 논리성을 갖춘 “이차적”사고에 선행한다는 입장이다.(83) 이는 인류학적으로 바꿔 말해 문화의 패턴을 사고양식과 일치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가정에 근거한다.(83) 이 입장에 따르면 어떤 문화자원이 없다는 것은 그 것을 만들어낼 정신, 즉 사고 능력이 없음을 의미한다. 즉 서양에는 있는 최첨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없는 사회는 극단적으로 말해 그런 문화자원을 만들 수 있는 정신의 부재로 인한 것이라는 자민족중심주의적인 해석을 가능케하는 주장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인간 정신의 존재는 문화의 획득을 위한 선결요건 일뿐 문화의 성장 자체가 정신의 진화에 어떤 의미도 지니지 않는다는 견해이다.(84) 기어츠는 이 견해를 지지하고 있는 두 전제 중 특별히 문화는 우발적인 변화에 의해서 출현한다는 임계점 이론을 반박한다. 문화의 출현에 관한 임계점 이론은 일단 출현한 문화는 인간의 유기체적 진화와는 별개로 독립적으로 고유의 논리에 따라 성장한다는 것으로 정신과 문화 모두를 상호관련 없이 고정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로 보는 관점에 근거한다. 이는 ‘대한민국’은 ‘조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화를 몰역사적으로 이해하게끔 하는 위험을 지닌다. 이에 그는 사람과(科)의 계통 발생론의 분석으로 정신적, 진화적 성장에 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89)는 믿음을 바탕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계를 중심으로 역사속에서 문화와 정신간의 관계를 탐구한다. 그는 초기 인류의 자갈돌 석기에서 돌도끼로의 이동은 단순히 재료상의 차이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뇌크기, 손놀림, 시야 등의 인간 신체의 변화를 유도했고 이는 결국 사회조직과 의사소통 변화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90) 이는 우리 신체 구조는 물론 정신까지도 문화의 결과일 수 있다는 그의 결론을 암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임계점 이론의 오류를 밝혀낸 그는 경험적으로 지지된 인간의 심적 통일성의 원리를 다시금 옹호한다. 그는 사람과(科) 계열 안에서의 종의 분화는 호모 사피엔스 이후, 다른 사람과 계열의 종이 멸종된 이후에 종료(92)되었다고 밝히면서 (즉, 현재 인간 종으로 일컬어지는 호모 사피엔스 간에는 심적 통일성을 해칠 수 있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으므로-필자주) 심적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문화적 변용이 나타난다는 결론을 부정한다. 다시 말해, 각 나라와 문화권마다 문화적 ‘실천’이 다를지라도 (우열의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정신능력(심적구조)에 차이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기어츠는 인류의 진화 속에서 정신과 문화자원에 주목함으로써 문화자원을 만들어 내는 선결조건으로서의 정신과 문화의 성장과 정신의 진화를 분리시키려는 오래된 시도를 분쇄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인간이 심적 통일성을 지녔다면 대체 문화적 변용은 왜 일어나는가?

행동/문화자원의 다양성은 어디에서?

대답에 앞서 기어츠는 행동과학 내의 고무적인 변화에 주목한다. 즉 행동과학이 이전까지 지배적이었던 행동은 자극에 대한 기계적인 반응이라는 전제를 버리고 자극은 이미 존재하는 고유한 구조를 지닌 정신활동을 수정하는 것(94)이라는 입장을 수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을 수용작용 없이 나오는 반응은 (없거나) 극히 일부라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시발점이다. 이 새로운 변화는 인간의 행동의 다양성, 예측 불가능성에 다음의 세 가지 해석을 낳았다.

 
첫째는 헵이 지적한 바대로(94-95) 고등동물일수록 자극에 매이는 정도가 약하다는 것으로 자극에 대한 행동의 예측불가능성을 정신을 상, 하위 수준으로 구분해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두 번째는 행동의 다양성에 대한 양적인 접근으로 제라드는 두뇌 크기와 신경 수의 양적 증가는 신경 축적의 한계점을 증가시며 더욱 다양한 행동을 낳는다고 주장했다.(96-97) (하지만 이 같은 해석은 두뇌 크기가 더욱 작은 흑인이 백인보다 열등하다는 우생학의 주장과 너무도 닮았다.) 세 번째는 불독의 주장으로 신경들 사이의 생리학적 관계 간에 발생하는 여러 수준들의 차이로 행동의 차이가 발생한다(97)는 입장이다. 이들 주장은 행동의 다양성의 원인을 자극과 정신과의 긴밀한 연계 속에서 찾으려 했지만 그 원인을 신경에서만 찾으려 했다는 한계를 지닌다.(98-99) 이에 대해 기어츠는 인간의 행동은 유전보다는 문화에 의해서 지배받는다(99)는 입장에서 “문화자원은 정신활동의 부가물이 아니라 구성요소”(100)라고 말한다. 그는 택시 기사가 목적지를 알면 목적지를 찾기 위해 탐구활동을 중지하는 것과 같이 정신활동은 자극이 선행해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지능은 정보를 탐구하고 생존을 위해 하등동물 이상으로 학습할 필요성과의 연계 속에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02-104)
 

위의 논의 대부분이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 즉 자극에 대한 즉각적 반응을 늦추거나 혹은 문화적으로 용인되는 수준에서 처리하는 인간의 차원에서 전개된 데에 대해 기어츠는 감정의 차원 또한 소홀히 취급하지 않는다. “인간은 가장 이성적이며 또한 감정적 동물”(104)이라는 말로써 그는 문화, 행동과의 연계 속에 정신이 기술될 때 이성과 동일하게 감정을 다룰 것을 요구한다. ‘정신이 문화자원의 부가물’일 수 있다면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감정’의 활동 역시 문화자원에 의해 구성되며 규제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정서적인 활동 없이는 이성적이라 여겨지는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한다고 알려진, 자극에 대한 직접적 반응이 아닌) 행동이 불가능 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완화시키는 것이 제도화된 개인들간의 상냥함인 것과 같이 인류역사는 다양한 감각적인 체험을 확보하기 위한 문화적 장치를 마련해왔다(105)로 주장한다. 정신활동은 신체의 충동적인 흐름에 명확한 결정적인 형태를 부여하는 것으로, 외부세계로 정보를 수집하며 정서적 의미를 결정하는 과정이다.(105) 이러한 논의는 결국 이성과 마찬가지로 “감정 역시 문화적 산물”(106)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이는 우리에게 여타 동물과 구별되는 이성적인 행동을 정신의 작용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감정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정신 활동이 문화의 산물과의 긴밀한 연관 속에 서로를 구성하고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사람은 책을, 책은 사람을 만든다

“생물학적 인간 진화의 최종 단계는 문화 성장의 초기 단계 이후에 있었다”(107)는 분명한 사실을 지적함으로 기어츠는 정신이 문화에 선행한다는 논리와 고정된 정신은 자극(혹은 문화자원)에 그저 수동적으로 반응한다는 논의를 모두 반박한다. 아울러 그는 정신과 문화의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지 않은 정신은 없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즉, 그는 ‘문화의 성장과 정신의 진화’는 분리되어서 설명될 수 없다고 역설한다. (마치 마르크스가 역사발전을 상부구조로만 설명된 것을 토대와의 긴밀한 연계 속에서 설명하듯이) 인류의 역사와 일상생활에 대한 세심한 통찰로 인해 도출된 그의 주장은 정신과 문화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허나 아쉬운 것은 그가 지적했듯이 ‘정신’이 동기의 문제를 포함하는지의 여부가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못했다는 것이다.(107) 기어츠의 논의에 있어 정신은 많은 경우 우리의 동기, 의도를 반영하는 의식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이성적인 활동으로 설명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감정역시 중요하게 고려하긴 했지만) 정신작용에 있어 동기의 문제가 더 구체화된다면 의식과 무의식을 문화와의 긴밀한 연계 속에서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_정원희(CAIROS 세미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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