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15-19
15 그 무렵에 신도들이 모였는데, 그 수가 백이십 명쯤이었다. 베드로가 그 신도들 가운데 일어서서 말하였다.
16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를 잡아간 사람들의 앞잡이가 된 유다에 관하여, 성령이 다윗의 입을 빌어 미리 말씀하신 그 성경 말씀이 마땅히 이루어져야만 하였습니다.
17 그는 우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이 직무의 한 몫을 맡았습니다.
18 그런데, 이 사람은 불의한 삯으로 밭을 샀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꾸러져서, 배가 터지고, 창자가 쏟아졌습니다.
19 이 일은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주민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땅을 자기들의 말로 아겔다마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피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들어가며
성서를 읽거나 공부하거나 혹은 연구를 함에 있어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합니다. 이는 아마도 성서학이란 학문의 역사만큼이나 다양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성서가 어떤 방식으로 모아지고 취합되었는지에 대한 관심을, 어떤 이는 성서가 써졌다고 여겨지는 그 당시의 역사적 배경이나 사회적 구조에 대한 지극한 관심을,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성서가 갖고 있는 문학적 특징들에 관심을 기울이며 성서를 다룹니다. 물론 어떤 이는 그 문자 하나하나에 담겨진 신비로운 뜻을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의 신앙을 강화하기 위해 성서를 대하기도 할 것입니다.
성서를 읽는 우리 신앙인들은 자신이 의식하던 의식하지 않던 간에 앞서 말한 몇 가지의 방법들을 통해 성서를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반드시 성서학에서 말하는 ‘비평적 방법'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필연적으로 자신만의 어떤 방법, 혹은 어떤 관점에 따라 성서를 대합니다. 그 방법이 옳고 그르다는 것을 판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또 반드시 어떤 한 가지 방법만이 옳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성서는 그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말을 걸어오기 때문입니다. 성서가 말을 걸 때 우리는 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결코 한 가지 일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의 한숨결교회 여러분들은 모두 제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그 응답은 모두 다를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은혜롭고 감미로운 말만 전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서를 보다 정직하게 대하고자 노력한다면 더 그럴 것입니다. 때론 불편하게 때론 당혹스러운 말을 걸어올 지도 모릅니다. 성서가 그렇게 말을 걸 때 자신의 대답을 신중하게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대답하려고 노력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작년 카이로스 성서학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용택 형이 말한 “신학책 100권을 읽는 것 보다 스스로의 힘으로 성서를 한 번 읽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 것의 진위이기고 할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꺼림칙하고 낯선 한 사람이 여러분들에게 말을 걸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어떤 보편적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결론을 내리진 않을 것입니다. 그 대답은 여러분들에게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그 사람은 오늘 본문에서 나온바 바로 예수의 12사도들 가운데 한 명이었던 가룟 유다입니다.
정당성의 폭력
시대를 막론하고 지배체계나 정권이 바뀌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아마 자기 정체성에 대한 정당성의 확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근대 이전 국가들에게서도 통치에 대한 대의명분은 상당히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과거 정권의 핵심세력들을 포섭하거나 거부하면 죽여 버렸고 혹은 수도를 변경하거나 권력 체계를 재편했습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그런 것 같습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 올 때, 조선시대 중에서도 왕권을 둘러싸고 있는 권력의 구도가 바뀔 때 어김없이 피바람이 불었고 권력에서 밀려난 자들은 모두 제거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원대한 시작 혹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대의명분이라는 정당성이었습니다. 현실 세계도 마찬가지지요. 현 정권은 들어서자마자 잃어버린 10년의 청산과 경제 회복이라는 원대한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원대한 시작을 위해 형체 없는 피의 대 복수극을 자행했습니다. 수구언론들과 정부, 입법부, 사법부 할 것 없이 과거의 청산과 흔적 지우기는 극을 달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봉화산에서 목숨을 내버린 그가 있었음을 우린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생전 과오를 떠나 그 죽음의 배후에는 불의한 폭력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 폭력은 결국 대중들의 원대한 희망 혹은 욕망이 빚어냈던 것이었음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지점이 아마 근대 이전과 다른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과거에는 대중의 만족 보단 양반층의 권력독점이 더 중요했으니 말입니다.) 여하튼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청와대의 그를 뽑은 건 우리들이란 사실이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위한 대의명분은 이렇듯 그것을 강화하는 대중들의 욕망 혹은 희망과 그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또 시대의 요청이기도 한 정당한 것임을 역설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대의명분, 그것이 옳은 것인지 정의로운 것인지 논하기 이전에 필연적으로 약자들의 배제와 폭력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인가 싶은 생각조차 듭니다.
(미리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의 이런 분석, 다시 말해 조직이나 권력이 자신들의 확대 재생산을 위해 새롭게 어떤 것을 시작하고자 다짐하고 그 대의명분을 얻고자 할 때 필연적으로 약자에 대한 폭력이 발생한다는 것이 사회학적으로 지지받을 수 있는 논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강하게 느끼는 인상임을 밝혀둡니다.)
교회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교회가 새롭게 시작하고자 대의명분을 찾기 시작했을 때 국가의 폭력 못지않은 일들이 많이 벌어졌음을 알고 있습니다. 현대의 한국 교회들은 새로운 선교 신세기를 연다는 명분아래 수십억 건축을 선택하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성도들이 지게 되며 반대하는 소리들은 묵살시키고 쫓아 내 버립니다. 교회라고 다를 것이 없습니다. 중세로 소급해 가면 더 살벌한 일들로 일어납니다. 기독교의 정통 교리를 정리하고자 했던 공의회는 결국 반대 의견들을 제거하는 피의 역사였음을 조금만 노력해도 알 수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이른바 ‘이단’들이라 정죄 받고 처형당한 수많은 개인들이나 조직들은 소위 정통의 자기규정 속에서 버림 받은 자들입니다. 자, 그렇다면 초기 기독교는 어떨 까요? 많은 한국교회들이 그 토록 돌아가자고 외치는 초대 교회의 시작은 어땠을까요? 초기 기독교의 모습이 우리가 상상하는 바와 같이 그렇게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곳이었을까요? 저는 바로 그 곳에서도 이와 같은 폭력과 약자의 고통이 있었음 말하고 싶습니다. 바로 초기 기독교의 원대한 시작을 알리는 사도행전 1장의 논의 속에서 말입니다.
교회의 원대한 시작, 사도행전
사도행전은 상당히 독특합니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저자와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저자 누가’에 의해 작성된 일종의 서신 양식의 글입니다. 다시 말해 사도행전은 복음서의 전통에 서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나 마가, 누가 요한과 같이 복음서와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른 복음서들의 연구는 서로를 비교해가며 공통점이나 혹은 특이성을 찾아 낼 수 있으나 사도행전은 그럴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자체로 단 권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복음서 전통에서 유일하게 바울의 일대기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사복음서 어디에도 바울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바울의 진정, 혹은 후대의 서실들을 제외하곤 오직 유일하게 사도행전에만 바울의 언급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매우 문학적이며 동시에 신학적이기도 합니다. 바울의 일대기를 보십시오. 거의 영웅서사시를 보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편에는 이방인들의 세례나 믿음 문제가 대두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기독교 신앙이 어떤 신학을 이루고 있었는지 또 교회의 확장이 어떤 식으로 이루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매우 복합적이고 흥미로운 책입니다. 때문에 이 모든 것을 토대로 초기 기독교의 확장과정과 그것의 독특한 특징들을 잘 드러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행전 1장 8절은 이 책의 전체 주제를 가장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이른바 교회의 원대한 시작이 열리는 것입니다.
바로 교회의 원대한 시작을 알리는 사도행전, 그 중에서도 1장은 저자 누가가 가장 신경을 써서 설명해야할 책임이 있었을 것입니다. 1장의 처음 장면은 그야말로 초월적인 장면들로 가득합니다. 바로 부활한 예수와 제자들이 40일간 동고동락하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죽었던 자가 부활해서 우리와 40일간이나 지낸 다면 얼마나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분명히 눈앞에서 죽었던 자가 돌아와 함께 먹고 마시며 잠드는 일은 그 자체로 초월적이며 신비로운 그야말로 초현실의 세상입니다.
누가는 초현실적인 묘사를 멈추지 않고 더욱 강화합니다. 바로 40일간의 동고동락을 마치고 예수를 승천시키는 것입니다. 죽은 자가 돌아와 우리와 살았고 그가 하늘로 붕 떠서 올라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대단한 사건입니다. 누가는 이 부분을 아주 세세하게 그리고 아주 감각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9, 10절과 11절을 보면 그들이 보는 앞에서 들려 올라가며, 구름이 예수를 감싸서 보이지 않게 되자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등장하여 또 말을 겁니다. 이 얼마나 감각적인 묘사입니까? 다른 복음서의 승천 단락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묘사입니다.
예수의 승천 후 시선은 급격하게 현실 세계로 돌아옵니다. 12절에서부터는 상당히 정밀한 장소 묘사가 등장합니다. 초월적이기 보단 현실적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약속, 성령이 오심을 기다리며 사람들이 함께 기도합니다. 바로 여기서 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베드로입니다. 그는 신도들 가운데 서서 말했다고 15절은 전합니다. 누가는 베드로를 신도들의 대표로 세우고 있습니다. 신도들 가운데 혹은 다른 사도들 가운데 베드로를 말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베드로는 예수가 떠나고 본격적인 교회의 처음 시작의 막중한 책임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의 첫 설교의 주제는 가룟 유다인 것입니다.
악마가 되어가는 가룟 유다
대략 2000년의 기독교 역사가운데 가장 악한 인물을 꼽으라면 가룟 유다를 그 주인공으로 선정하는 데에 있어 어떤 이의도 없을 것입니다. 유다는 복음서 저자들에 의해 자신의 스승을 배반하고 팔아넘긴 배신자로, 그 대가로 돈을 받은 파렴치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의 죽음은 배반자의 최후답게 비참하고 잔혹하게 표현되고 있는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배반자-돈에 매수된 자-참혹한 죽음을 당한 자’로 이어지는 악명의 연결고리는 현대에 이르기까지도 흔히 가룟 유다의 전형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을 지은 것으로 추정되고 대체로 인정받는 저자 누가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시작을 알리는 사도행전 1장에서 비극의 주인공이며 예수의 배신자인 가룟 유다를 불러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보다 희망적이고 역동적인 내용들로 가득 채워야 할 사도행전의 초입에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인물 가룟 유다를 구태여 끌어내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정말 흥미로운 것은 배신이란 측면에서 비슷한 부담을 안고 있는 베드로의 입을 통해 가룟 유다를 호출하는 누가의 의도입니다. 배반자의 입에서 다른 배반자의 과거가 들추어지는 상황 속에서 본문은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걸고 있을까요? 정말 가룟 유다는 기독교 역사가 말하는 것처럼, 또 우리의 신앙무의식에 자리 잡어 견고히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악인일까요?
가룟 유다는 세간의 평가에 기대어 오로지 철저한 악인 그 자체로만 받아들어야 하는가? 가룟 유다의 전승을 추적하면 이 질문에 의문점이 생깁니다. 먼저 시대적으로 앞선 바울 서신에는 가룟 유다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물론 바울이 자신의 복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반드시 가룟 유다를 사용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해 특정 사도의 과오를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은 바울에게 있어 가룟 유다나 다른 열한 사도들이나 특별히 구별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가복음(14.10-11)에 이르러서야 가룟 유다의 전승이 나타납니다. 표현과 묘사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기로 마음먹은 후, 이 사실을 대제사장들에게 전했고 그들이 먼저 유다에게 돈을 주기로 결정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마태와 누가에 이르러서 이 전승은 확대 편집됩니다. 마태는 마가에서 볼 수 없었던 가룟 유다의 음성을 직접 삽입하여 유다의 행위를 더욱 부각 시키고 있으며(26.14), 그 대가를 직접 요구하기에 이릅니다(26.15). 이 후 유다는 예수를 잡는 무리들과 동행하여 예수를 배반하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보낸 무리들을 이끌고 예수를 넘깁니다(26.47-56). 누가는 예수를 팔 마음을 갖게 된 계기가 사탄이 들어간 것으로 보도하기도 합니다(22.3). 유다는 대제사장들을 찾아가 예수를 넘겨주는 문제에 대해 상의하고 이에 기뻐한 대제사장들이 그 대가로 돈을 주겠다고 약조합니다(22.5). 예수가 잡히는 부분에서도 누가는 마태와 흡사합니다. 유다는 예수를 잡을 무리들을 이끌고 나오며 예수를 팔아넘깁니다. 요한복음에 이르러서는 마귀와 유다의 관계가 더욱 부각되는데 유다는 일찍부터 예수에 의해 악마로 규정됩니다(6.70-71). 유월절 마지막 만찬장에서도 요한은 악마가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이미’ 예수를 팔아넘길 생각을 집어넣었다고 보도합니다(13.2). 예수를 팔아넘기는 장면에서는 마태와 누가는 그래도 예수에게 접근하는 유다를 그리지만 요한은 아예 접근조차 하지 않는 유다를 그립니다(18.1-14).
신약성서학자들이 대체로 인정하는 복음서의 연대순으로 봤을 때 가장 먼저 쓰인 마가복음, 그리고 마가복음을 근거로 혹은 알고 있었다는 전제하에 써진 마태와 누가, 그리고 가장 나중에 써진 요한복음의 유다 궤적을 따라가 보면 그의 행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악의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시대가 더욱 지나 대략 2세기 무렵에 발견된 성서 외 다른 문헌에 기록된 가룟 유다는 처참하기 그지없습니다.
유다는 이 세상에서 그의 평생을 불경의 거대한 본보기로 살았다. 그는 육신이 부어올라 마차가 쉽게 다닐 수 있는 곳을 지날 수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지나치게 큰 그의 머리 하나조차 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의 눈까풀이 어찌나 퉁퉁 부었는지 빛을 전혀 볼 수 없었다고. 또한 그의 눈이 피부 밑으로 푹 꺼져 버려 눈 전문가의 연장으로도 탐색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고. 거의 성기는 수치스럽게 짝이 없어 쳐다보기에 꺼림칙하고 혐오스러웠다. 치욕스럽게도 몸의 곳곳에서 운반된 것이 성기를 통해 배설될 때 고름과 벌레들까지 쏟아 냈다. 이와 같은 숱한 고통과 징벌을 받은 뒤 그의 삶은 그의 밭떼기에서 마감되었다고 사람들은 전한다. 이 밭은 그 악취로 인해 지금까지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으로 남아 있다. 정말로 지금까지 아무도 손으로 코를 쥐지 않고는 그곳을 지나칠 수 없을 지경이다. 그만큼 그 육체로부터 흘러나온 것들이 엄청났고 그래서 그 악취가 이 땅에 두루 퍼진 것이다.
유다 죽이기를 통한 사도 베드로의 정당성 획득
베드로는 유다의 죽음을 적나라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를 배신했고 불의한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린 알고 있습니다. 그 역시 예수를 배반했던 자였음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린 다시 저자 누가에게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왜 베드로의 입을 빌어 유다의 이야길 꺼냈느냐고 말입니다. 누가는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바로 이곳이 공교회 역사의 첫 시작이었다고 말입니다. 교회의 첫 시작, 다시 말해 예루살렘 교회의 상징적 존재인 베드로는 과거의 치욕에서 벗어나야 했고 흠이 없는 완벽한 인물이 되었어야 했음을 말입니다. 베드로가 갖고 있었던 배신의 기억은 유다의 폄훼적인 과정을 통해 희석되고 초기 교회의 순수성은 더욱 강해 질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
저는 논의를 통해 유다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초기 기독교의 토대가 유다에게 보다 강력한 폭력을 휘둘렀을 수 있음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초기 교회를 위해, 그 상징적 존재인 베드로의 위상을 위해 유다는 더욱더 악마적인 인물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저자 누가는 느끼지 않았을까요?
결국 역사는 베드로를 교회의 머릿돌이자 위대한 사도의 전형으로, 교회의 아버지이자 위대한 초대 교황의 이미지를 담는 전형으로, 그리고 가룟 유다는 죄인, 극악한 배반자, 악마적 배신자의 전형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 같습니까? 결국 우리도 역사의 승자가 만들어 놓은 정당성에 우리의 사고를 박아 놓는 것은 아닐까요? 초대 교회 역사도 결국 승자의 정당성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원대한 시작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하심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내부의 원리들은 상당히 폭력적인 모습들이, 정당성과 명분을 확보하기 위한 전투가, 그리고 이런 작업들을 성공시키기 위해 약자들을 이용하고 공격한 모습들이 잔재해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한 배신자의 입을 통해 듣는 또 다른 배신자의 참혹한 죽음을 통해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의 치열한 과거를 기억하며 현재를 사는 우리는 더욱 겸허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는 무엇인지, 우리 역시 정당성과 명분을 통해 우리안의 논리를 폭력과 승리의 역사로 점철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_김형욱(CAIROS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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