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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9월 비평루트 재발간호에 실었던 “신자유주의 시대, 어느 개신교 청년의 회심과 정체성에 대한 단상”의 후속 연재 글입니다. 현재 연재되고 있는 논문의 핵심적인 이론 틀인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의 세 꼭지 중 첫 꼭지인 “통치성(governmentality)이란 무엇인가?”를 이 지면에 맞게 요약/정리하였습니다. 이 글을 통해 통치성 개념이 의미하는 바와 이 개념이 푸코의 권력 이해에 있어 차지하는 위상, 마지막으로 이 개념이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분석에 가지는 의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갑질의 기원: 푸코의 ‘통치성’ 이론에 기대서서

 신자유주의는 어떤 특정한 시대와 분절되어 등장한 새로운 이데올로기나 체제가 아니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는 이름이 암시하듯, 이는 자유주의(liberalism)와의 어떤 관계성을 가지며 그것이 발휘되는 해당 국가의 역사적 상황과 구체적 조건에 따라, 어떤 속성들은 계승하고 어떤 속성들을 변화시켜 왔다. 자유주의부터 신자유주의에 걸쳐 근대 국가의 권력 형식을 분석했던 푸코와 통치성 학파의 ‘통치성(governmentality)’ 개념은, 신자유주의가 어떠한 목적에서 자유주의의 어떤 특징들을 계승하고 또한 변화시켜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푸코의 통치성 개념이 갖는 분석의 장점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과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렘케(Lemke, 2002)에 따르면, 기든스(Giddens)나 부르디외(Bourdieu)와 같은 사회학자로부터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지지자들에 이르기까지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석은 크게 세 가지 주요 흐름을 갖는다. 첫째, 신자유주의는 사회와 경제를 조작하는 잘못된 지식으로 “내적 모순”과 “이론의 오류”가 지적되며, 공정하고 과학적인 지식에 의해 대체되어져야할 것, 해방되어져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때, 신자유주의는 “이데올로기”로서 다루어진다. 둘째, 신자유주의를 정치적 영역에 대한 경제의 확장으로, 국가를 넘은 자본주의의 승리로, 민족국가의 정치적 규제를 벗어나는 “전지구화(globalization)”로 본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통제를 넘어선 “야만적인” 자본주의를 “교화할(civilize)” 것이 요구된다. 이때 신자유주의는 “경제-정치적 실재”로 여겨진다. 셋째, 신자유주의가 전통적인 경험과 가치들을 파괴하고, 유연성(flexibility), 위험 감수(risk-taking)의 이름으로 가족과 유대관계를 깨뜨리는 것에 주목하며 개인들을 더욱 파편화시키는 것에 주목한다. 이때, 신자유주의는 “실천적 반인본주의(practical antihumanism)”로 여겨진다. 그러나 렘케는 이와 같은 분석들이 신자유주의의 영향력과 그 결과들에 대해 중요한 함의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비판하고자 하는 그 개념들(이미 존재한다고 가정된 신자유주의적 실재에 상응하는 개념들)에 의존해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한계를 갖는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신자유주의를 거역할 수 없는 실재로 받아들이거나, 정반대로 신자유주의적 실재를 허위나 이념과 같은 단순한 이데올로기로 다룸으로써 신자유주의적 통치의 실제적인 전략들과 기술들을 바르게 분석하지 못하는 것으로 비판받는다.[각주:1] 이러한 면에서, 푸코의 통치성 개념은 신자유주의를 신자유주의 스스로가 이미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회적 실재를 창조하려 노력하는 “정치적 프로젝트(political project)”로 이해하게 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실재를 만들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통치의 전략들과 기술들, 그 주체화의 과정에 주목하게 하는 장점을 갖는다. 통치 전략과 기술들, 주체화의 과정에 대한 논의들은 통치로부터의 저항 혹은 자유를 위한 더욱 구체적인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지배의 확장 속에서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분석하며 대처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상당한 유용성을 제공할 것이다. 


푸코의 ‘통치성’ 개념 

 통치가 오늘날 정치적 의미만을 소유하게 된 반면, 푸코는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통치의 문제가 더 일반적인 상황 가운데 위치해 있었음을 보여주려 했다. 통치는 정치적 영역에서뿐 아니라 철학적, 종교적, 의학적, 그리고 교육학의 텍스트들 안에서도 논의되는 용어였다. 국가 또는 정부에 의해 경영·통제 되는 것에 더하여, 통치는 자기 통제, 아이들과 가족에 대한 보호, 그리고 집안일의 경영, 영혼을 통솔하는 것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들을 포함했다. 이러한 이유로, 푸코는 통치를 통솔로서, 또는 더 엄밀하게 “행동방식에 대한 통솔(the conduct of the conduct)”로, “자기를 통치하기”로부터 “다른 이들을 통치하기”에 이르는 영역들에 대한 용어로서 정의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통치는 어떤 사람이나 사람들의 행동을 조성하고 이끌어내며, 행동방식에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일종의 “활동(activity)”으로, “무언가를 하는 방법(way of doing things)” 또는 “기술(art)”로 묘사된다.

 이러한 활동, 방법, 기술로서의 통치는 미시권력으로부터 거시권력에 이르기까지 관계 맺는다. 푸코는 근대사회에서 권력이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자신의 분석에는 세 가지 층위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미시권력이라 부를 수 있는 전략적 게임이 한 층위, 정치권력이라 부를 수 있는 지배(domination)가 한 층위, 그리고 이 두 층위 사이를 통치(혹은 통치 테크놀로지)가 차지한다. 푸코가 전략적 게임이라 부르는 것은 기존에 미시권력이라 불렸던 일상적이고 미시적 차원에서 행해지는 권력의 작용들이다. 이는 개인이 관계 맺는 자기 자신이든 타인(들)이든 아니면 기관, 제도, 기업 같은 것이든 인간관계 안에서 폭넓게 분포되어 있는 힘의 관계이다. 반면 이것이 상대적으로 경직되고 고정되면서 비가역적인 관계들이 수립될 때, 푸코는 이를 ‘지배'라고 부르며 이것이 우리가 흔히 권력이라 일컫는 것이라 설명한다.[각주:2]

 통치 개념이 단순히 미시-신체적인 것으로부터 거시-정치적인 것에 이르는 권력 분석의 확장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통치 개념은 푸코가 말하는 권력·지배의 기술들과 개인들을 주체화하는 자기의 기술들(technologies of the self)을 서로 관계 맺어 생각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각주:3] 통치성(governmentality)은 푸코가 만들어낸 말로, 흔히 통치(govern/gouverner)와 사고 양식(mentality/mentalité)의 의미론적 연결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통치성 개념은 정치적 이성(political reason), 정치적 합리성(political rationality), 혹은 통치적 합리성(governmental rationality)과 같은 개념들과 맞바꾸어 쓸 수 있으며, 실제 푸코 스스로와 최근의 통치성 연구에서도 이러한 개념들은 혼용하여 쓰이고 있다. 통치성은 개인들의 행동의 목적과 이를 이룰 수 있는 수단을 규정하는 정치적인 이성·합리성에 따라 주체들의 행동방식을 통솔하고자 하는 권력의 작용 혹은 형식쯤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통치성 개념 스스로가 하나의 완결적이고 정합적인 이론으로 규정된다기보다는, 서구 근대국가 “권력의 거대한 형식과 권력의 경제를 재구성”하기 위해 도입한 “잠정적 방법” 혹은 “이론적 도구”로 보아야 옳을 것이다.[각주:4] 

 푸코의 통치성 개념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것이 신자유주의적 지배의 핵심적 기제로 여겨지는 권력과 지식의 관계, 그리고 권력과 주체화 과정을 이해하는데 많은 유용성과 함의를 주기 때문이다. 먼저, 푸코는 통치성 개념을 통해 권력 형식과 지식 형식의 상호 구성을 논증한다. 통치와 사고 양식의 의미론적 연결은 통치 권력과 기술들이 그 기저에 어떤 사고 양식, 정치적 이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통치는 실천되는 통치가 ‘합리화되는’ 담론적 장을 구성하는데, 이러한 담론적 장을 통해 지식은 통치해야 하는 실재에 대응하는(혹은 대응한다고 가정되는) 개념들의 윤곽을 그리며, 통치 대상과 경계를 구체화하고 통치를 위한 주장의 단서를 제시하며 정당화한다. 즉 지식은 권력이 실천되는 대상과 범위, 권력이 실천되는 방식과 권력의 형식,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합리화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정치적 이성에 의해 문제화되는 ‘왜 통치하는가?’, ‘어디까지 통치할 것인가?’,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좋은 통치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과 그에 대한 답은 통치의 속성과 한계를 규정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정치적 이성은 통치권력 자신의 재현과 담론화, 통치의 대상과 그 범위, 통치 기술의 구성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반면, 권력은 어떤 지식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생산되어야 할지를 결정한다. 정치적 합리성이란 단순히 통치하는 실재를 다시 재현하는 순수하고 중립적인 지식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권력과 통치의 기술들이 개입할 수 있는 실재를 구성한다. 그러므로 권력에 의해 생산된 지식과 그러한 지식들로 구성된 실재는 통치적 열망을 위해 사용되고, 통치적 실재에 조응할 경향이 높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식은 아직 지배되지 않은 영역을 통치하기 쉽게 하는 “노하우(know-how)”로 자리매김한다.[각주:5] 

 둘째, 통치성은 특정한 정치적 합리성에 조응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주체 형성의 과정을 드러낸다. 권력과 주체형성에 주목할 때, 통치성은 지배 권력이 자신의 통치에 적합한 주체를 형성하기 위해 개인들이 따를 수 있는 윤리를 형성하고 이를 실천할 ‘자기의 기술들(technologies of the self)’과 ‘법칙들’, ‘담론들’을 고안하는 힘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지배 권력은 직접 권력을 행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통치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자율적으로 실천할 주체를 형성하고자 한다. 푸코는 통치성의 역사를 분석하며, 각 지배 권력이 어떤 정치적 이성으로 그 통치에 적합한 지식과 주체를 형성하는지를 보여주는 데 진력한다. 이러한 권력의 개인들을 향한 주체화의 노력 가운데, 주체들이 스스로를 통치에 적합한 주체로 형성하도록 만드는 자기의 기술들의 개발이 중요해진다. 통치의 기술들은 필연적으로 자기의 기술들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통치성은 통치를 위한 지배의 기술들과 자기의 기술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관계 맺는지 드러낸다. 자기의 기술들을 형성하는 지식과 통치 대상들에 대한 지식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이러한 지식을 생산하고 기술로 사용할 전문가들과 지배 권력의 관계가 중요하게 부상한다. 푸코의 자유주의 분석이란 결국 특정한 정치적 합리성이 어떠한 통치 기술들과 법적 형식들, 그리고 담론을 통해, 자유라는 윤리를 가진 “자율적 개인”들을 주체화하며 지배적 통치를 실현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통치성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근대의 군주 국가와 근대의 자율적 개인들이 서로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즉, 통치성(governmentality) 개념은 신자유주의적 지배의 핵심적 기제로 여겨지는 권력과 지식의 관계, 그리고 권력과 주체화 과정에 대한 이해를 제공할 뿐 아니라, 푸코가 말하는 권력·지배의 기술들과 개인들을 주체화하는 자기의 기술들을 서로 관계 맺어 생각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허락된다면, 비평루트의 다음 호에서는 이러한 통치성 개념을 기반으로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을 비교/설명하는 나머지 두 꼭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문헌

서동진(2009). 신자유주의 분석가로서의 푸코. 「문화과학」, 통권 제3호, 315-335쪽.

Burchell, G.(1996) Liberal government and techniques of the self. In Barry, A., Osborne, T.&  Rose, N.(Eds.), Foucault and Political Reason. pp.19-36. London, UK : UCL Press.

Foucault, M.(1994). 주체와 권력. 정일준(편역), 「미셸 푸코의 권력이론」. 85-98쪽. 서울: 새물결.  (원저 출판연도 1982)

Foucault. M.(1994). 자유의 실천으로서 자아에의 배려. 정일준(편역), 「미셸 푸코의 권력이론」.  99-126쪽. 서울: 새물결.(원저 출판연도 1988b)

Foucault, M. (1994). 통치성. 정일준(편역), 「미셸 푸코의 권력이론」. 25-48 쪽. 서울: 새물결.  (원저 출판연도 1991)

Gordon, C.(1991). Governmental Rationality: An Introduction. In Burchell, G., Gordon, C.&   Miller, P.(Eds.), The Foucault Effect. pp.1-52.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Lemke, T.(2001) 'The birth of bio-politics': Michel Foucault's lecture at the College de France on neo-liberal governmentality. Economy and Society , 30(2), pp.190-207. 

Lemke, T.(2002). Foucault, Governmentality, and Critique. Rethinking  Marxism, 14(3), p.49-64.

Rose, N.(1994). Governing "advanced" liberal democracies. In Barry, A., Osborne, T.&  Rose, N. (Eds.), Foucault and Political Reason. pp.37-80.London, UK : UCL Press.

Rose, N. & Miller, P.(1992). Political power beyond the State: problematics of government. Economy and Society, 43(2), pp.173-205.

  1. 신자유주의를 단순한 허위의식이나 이념으로 단정할 때, 우리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왜곡된 현실의 표상을 넘어 진보적이고 이상적인 지식을 제시하는 데 그치게 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지배는 분명히 물리적이며 실제적인 전략들(stratigies)과 기술들(technologies), 기관들(institutions)을 통해 작동하기 때문에 이러한 진보적이고 이상적인 지식들은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대안들이 되지 못한다. 한편, 신자유주의를 어떤 역사적 시점에서 조성된 불가역적인 현실이자 경제적-정치적 실재로 생각할 때, 즉 신자유주의를 단순히 맹목적인 자본주의의 현실로 인정할 때, 우리는 자본주의를 바로잡기 위한 사회적 연대와 개인 가치의 회복, 더 많은 공공성과 국가 개입과 같은 대안만을 내놓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안들은, 예를 들어 공공성을 주장하는 시민운동이나 개인가치의 회복을 주장하는 자기-존중 운동과 같은 것들은 신자유주의적 국가가 시민사회와 개인 주체를 자율화시킴으로써 스스로 자기 문제를 관리하게 만드는 통치의 전략과 기술들에 조응하는 것이 되고 만다(Rose, 1994; 서동진, 2009). [본문으로]
  2. 푸코는 권력(power)과 지배(domination)를 구분한다. 그에게 권력은 실체(substance)가 아닌 개인 사이의 특정 유형의 관계일 뿐이다, 모든 인간관계 안에 폭넓게 스며들어, 일상적·미시적 실천까지 구성하는 것이며 그것은 항상 ‘권력관계’의 줄임말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부, 지배적 사회계급, 정치구조로서의 권력은 ‘지배’라는 개념으로 표현되며, 이는 권력관계의 특정한 한 형식으로, 안정적이고 위계적이어서 역전시키기 어렵다.(Foucault, 1988b/1994, 82쪽; 113쪽; Lemke, 2002, p.53). “나는 이제 (권력에 대한) 훨씬 명확한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자유인들의 전략적 놀이로서의 권력관계-이 전략적 놀이는 일부 사람들이 타인의 행동을 결정하려는 시도로 귀결됩니다-와, 우리가 일상적으로 권력이라 부르는 지배의 상태를 구분해야 합니다(Foucault, 1988b/1994, 124쪽)." [본문으로]
  3. 통치의 기술들과 자기의 기술들을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즉 권력의 주체화 과정을 문제의식으로 삼게 된 것은 푸코에게 있어 중요한 이론적 전환점이다. 렘케(Lemke, 2001) 같은 이가 지적하듯이 푸코는 사법-정치적 담론 혹은 그에 바탕한 권력 모델을 단순히 뒤집은 것, 혹은 그 반사적인 역발상 속에서 권력을 사고하려는 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통치라는 관점에 서면서 푸코는 이러한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론적 전환을 맞이한다. 또한 버첼(Burchell, 1996, p.20)도 비슷한 견지에서, 푸코가『감시와 처벌』에서 권력·지배의 기술들에 정복됨을 통한 개인들의 주체화를 강조하는 반면, 통치의 관점은 권력·지배의 기술들과 개인들을 주체화하는 자아에 대한 다른 기술들과의 본질적인 관계를 성립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본문으로]
  4. 푸코(Foucault, 1991/1994)는 스스로 거칠고 부정확한 방식이라 인정하면서, 근대국가의 권력 형식을 계보학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먼저, 봉건적 유형의 영토 체제에서 탄생한 정의 국가(the state of justice)로, 의무와 소송의 상호작용을 포함하는, 법(관습법 또는 성문법)에 근거하는 사회에 상응한다. 두 번째는 15, 16세기에 민족을 경계로 하는 영토 위에서 등장한 행정 국가(the administrative state)로, 규제와 기율의 사회가 상응한다. 마지막으로, 인구의 규모, 밀도, 그 인구가 분산되어 있는 영토 등에 의해 규정되는 통치 국가(a governmental state)로, 인구와 연관된 지식·경제적 지식을 기반으로 안전 기구(apparatuses of society)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 유형에 상응한다. [본문으로]
  5. 그러므로 여기서 지식은 단순히 ‘개념·관념’들이 아니다. 여기서 지식은 통치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는 기술들, 시도들, 프로젝트들, 이론들, 사람들의 거대한 집합이다(Rose and Miller, 1992, p. 17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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