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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포스팅/사이-Be-評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 우리나라에서는 가능한가?

정 K (카이로스 회원)


저와 가까운 사이의 친구가 모 회사의 이름만 되면 아 거기 하는 회사의 운전직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업무의 회사차를 운전을 했는데 얼마 안가서 그 회사 중역차를 운전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그 중역의 차를 운전하고부터 너무 바빠요. 큰 회사고 이름 있는 회사라 주 5일 근무고 공휴일은 쉬는데 이 친구는 중역의 차를 운전하고부터 쉬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큰 회사의 중역이다 보니 쉬는 날에도 여러 사람들을 만나야하기 때문이랍니다. 쉬는 날, 혹은 근무 외 시간에 일을 하면 수당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사람이 돈이 다가 아니지요. 개인적인 일도 마음 놓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늘 피곤한 얼굴은 저를 안타깝게 합니다.  


어머니께서 드라마를 즐겨 보셔서 저도 가끔 드라마를 보곤 하는데 주말 드라마에서 회사의 회장 비서가 무슨 일로 그만 두었나 봅니다. 새로 회장의 비서를 뽑아야 하는데 가족들과 상의를 해요. 그 비서가 집의 일까지 다 했던 모양입니다. 그 비서가 집안일까지 아주 잘 해주었는데 그만두었다고 안타까워하며 좋은 사람으로 뽑으라고 회장의 어머니께서 당부를 하더군요. 최근에 새로 비서를 뽑았는데 누구 생일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회장 집의 누군가가 생일이라고 케익 심부름까지 시키더군요.  


비서가 회장 비서일진데 왜 집안의 잡일까지 시키는지 이해가 안 갔습니다. 그런 일은 자기들이 해도 될 텐데 말입니다. 정 하기 싫으면 집안의 비서를 따로 고용하던가? 있는 집에서 그렇게 해주면 고용도 늘어나고 좋을 것 아니겠습니까. 단 근로기준법을 지켜서 말입니다.  


저는 제 가까운 친구의 모습과 드라마의 장면을 보면서 나쁜 사마리아인, 사다리 걷어차기등의 저자로 유명한 장하준 교수가 생각이 났습니다. 장하준 교수가 주장하는 것이 복지국가를 이루려면 사회적 대타협을 해야 하며 그 사회적 대타협의 기본적 줄기는 재벌들의 경영권을 안정시켜 주고, 그 대신에 그 대가로 그들에게 복지국가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벌의 경영권을 인정해주는 대신 복지국가를 이룩하는데 책임 있는 역할을 해줄 것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 장하준 교수의 사회적 대타협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저는 보고 있는데요. 


저는 제 가까운 친구의 모습, 드라마를 보면서 과연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탈법적인 경영권 승계, 불법 상속, 폭행, 정치권과의 밀착범죄 등 온갖 비리의 온상이 신문이나 뉴스에서 보는 우리나라의 재벌들인데 과연 장하준 교수의 주장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라면 가능한 것 같습니다. 복지국가를 주장하는 많은분들이 스웨덴 모델을 많이 이야기 하고, 장하준 교수도 그중에 한분이신데 스웨덴도 재벌경영이지만 우리나라와는 다른 모습이라고 합니다.  


스웨덴에서도 재벌기업이 있고, 총수가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황제경영은 하지 않는다고 하고요. 스웨덴에는 4대 재벌그룹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발렌베리라는 그룹이 으뜸이랍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삼성과 비견할 정도라고 합니다.  


현재까지 발렌베리는 5대째 내려오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재벌들과 생활양식이 다르답니다. 아주 서민적으로 생활한다는데 이웃집과 가깝게 지내고, 주말이 되면 운전기사를 쉬게 하고 회장이 손수 운전을 해서 장도 보고 한답니다. 탈세 없이 세금도 잘 내고, 이러니 사회적으로도 존경을 받고, 이런 스웨덴이니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했을 것 같고, 그래서 복지국가를 이룩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웨덴에서 사회민주당이 선거에서 지고, 보수당이 승리하자 국내 거대 신문들은 스웨덴 복지 모델이 붕괴되었다고 난리를 쳤는데 실상 당시의 선거쟁점이 실업수당이 월급의 80%인데 그 선을 70%로 할까 65%로, 75%로 할 것이냐였다고 합니다. 선거에서 승리한 보수당의 라인펠트도 스웨덴의 복지나무를 건드리지는 않겠다고 했었지요.  


10월22일 연합뉴스에 저의 눈을 의심하게 하는 기사가 실렸더군요. 저는 그 기사를 보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독일의 갑부 44명이 최근 경제위기 극복에 나서고 있는 독일 정부가 충분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자신들에 대한 세금을 올려줄 것을 촉구하는 인터넷 청원 운동에 서명했다는 것입니다. 켈름쿨이라는 어떤이의 인터뷰를 보니 독일 정부가 은행 구제와 경기 부양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는 모습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하는데 저로써는 우리나라에서 저것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기사에는 미국 시민단체인 '공정경제연합(UFE)에 대해서도 잠깐 나오더군요. 그 산하에 책임지는 부자(RW.Responsible Wealth)라는 모임이 있는데 거기에는 빌 게이츠,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테드 터너, 폴 뉴먼 등의 미국의 거부들이 참여해 상속세 폐지 반대, 공평 과세, 최저임금 인상,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확대 등을 촉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주장, 운동을 하면 빨갱이가 되는데 미국에서는 거부들이 그런 주장과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하면 우리나라에서는 투자의 귀재로 알려져 있고, 빌 게이츠하면 컴퓨터 재벌로 알려져 있지만 그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유감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를 떠올리면서 우리나라에는 이런 것이 왜 없나하고 부러워하고는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그와 같은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죠. 12대나 경주에서 최고의 부를 누렸다는 경주최씨의 이야기는 많이들 알고 있을 것입니다. 경주최씨 집안에는 6가지 가훈이 있었습니다. 첫째, 진사 이상은 하지마라. 둘째, 재산은 만석 이상은 하지마라. 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넷째, 흉년기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라. 다섯째,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간은 무명옷을 입어라. 여섯째,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것이지요. 분에 넘치는 재산을 갖지 않고, 이웃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엿볼 수가 있는 가훈이지 않나 싶은데요. 저는 그 중에서도 여섯째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것이 가장 마음에 와 닿습니다. 13대째 모든 재산을 교육재단에 희사했다고 하지요.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도 존경받는 부가 있었는데 요즘에는 찾아보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탈세니 불법증여니하는 이야기만 나오고, 경제헌법이라 할수 있는 119조의 조항-특히 제 2항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을 없애려는 시도를 틈나는 데로 해서 이 나라의 경제를 마음대로 하려고나 하니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할지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않나 싶습니다. 언제 우리나라는 누구나 잘 사는 복지국가가 되려나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세주- 백세주의 세주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