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에서 우리는 초월적이고 인격적인 신을 허용하지 않는 스피노자의 내재적 신학과 존재론을 살펴볼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들뢰즈와 진태원의 논의를 참조하여 중세 스콜라 신학의 ‘긍정의 신학’과 ‘부정의 신학’의 신 표상을 스피노자가 어떻게 비판하고 넘어서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스피노자는 “표현하는 실체(신)”와 “표현된 양태” 간의 위계 없는 일의성univocity의 존재론을 구성한다. 그리고 이러한 신을 설명하기 위해 ‘자기 원인’ 개념을 사용한다. 자기 원인 개념은 본래 스콜라 신학과 데카르트의 철학의 신 존재 증명에서 초월적 신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된 개념이지만, 스피노자는 이 개념의 용법을 완전히 바꾸어, 그 바깥의 다른 것 없이 존재하는 세계=신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존재의 일의성만 설명한다면, 스피노자는 쉽게 ‘범신론자’로 오해받게 된다. 즉 스피노자의 신을 ‘모든 개체들을 포함하는 전체’라는 식으로 이해하거나, 만물을 신으로부터 유출되어 존재하는 비실재적인 것이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스피노자에 대한 이런 해석은 결국 신과 세계가 위계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따라서 우리는 발리바르가 제시한 ‘관개체성trans-individuality’ 개념을 참고하여, 범신론을 넘어서는 관계적인 존재론을 구성하려 한다. 스피노자에게서 모든 존재(개체들)는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며, 이 관계 안에서 다종다양한 모습으로 인과관계를 이루며 끊임없이 변용한다/된다. 스피노자의 ‘신’은 이런 점에서 모든 개체들을 포괄하는 전체가 아니라 ‘특이적’인 개체들이 맺고 있는 ‘공통적’인 관계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신이 정태적이고 고정된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양태들의 투쟁과 변용 속에서 신 역시 끊임없이 변해간다고 할 수 있다.
진태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박사논문 덕분에 이 논문을 쓸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러한 스피노자의 일의성과 관개체성의 사유는 ‘능력’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개별 양태, 즉 개체들은 관계 속에서 고유한 실존과 활동의 능력을 갖는다. 그러나 또한 양태들은 관계 속에서 변용하며/되며 능력의 증가 또는 감소를 겪는다. 이것은 스피노자의 정치사상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하다. 스피노자는 양태들에 고유한 역량이라는 개념을 정치사상으로 확장하여, ‘다중’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능력, 그리고 다중이 공통의 관계를 구성함으로써 확장되는 능력을 사유함으로써, 초월적 신에 입각한 권위주의적인 신학-정치나, 계약과 양도라는 틀에 입각한 자유주의 정치철학 모두에 반대하며, 다중의 능력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구성되는 꼬뮨주의적인 정치철학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안병무가 주창한 민중신학의 “민중의 자기 초월” 개념을 해석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참고점을 마련하여 준다.(이에 대해서는 V장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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