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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의 사람들 나는 독재는 잘 모른다. 내가 태어났던 날은 독재자라 불리던 한 남자가 총탄에 쓰러져 간 추운 겨울이었다.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때 난 어머니 품에 있었다. 내 기억 속에서 우리나라는 투표로 대통령을 뽑는 굉장히 민주적인 나라였으며, 그 사람이 정말 보통 사람인 줄 알고 자랐다. 그렇기에 내가 알고 있는 독재는 책을 보고 배운 것이 전부이며, 신학이라는 틀에 갇혀 있다 보니 그마저도 굉장히 피상적이다. 그렇기에 이 글은 엄격한 의미에서 독재에 대한 글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나는 이 글에서 권력이 집중된 개인보다는 그 이름 뒤에서 능동적/수동적으로 독재를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로마의 후원자/수혜자 체제 고대 로마사회는 사회학에서 ‘후원자-수혜자 관계’라고 .. 더보기
텅 빈 기표로서의 '국가'-'정치'와 세월호 이후의 감정 경험 박근혜라는 인물이 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녀를 직접 본 적 없고 만난 적도 없지만, (1)박근혜라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하며, (2) 그녀가 우리나라의 대통령임이 객관적 사실이라고 믿는다.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도 그렇게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대부분은 그녀를 직접 보거나 만난 적이 없다. 즉,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나도, 물리적으로 한 번 만나거나 보지도 못한 박근혜라는 인물이 이 세계 내에 존재함을 믿으며, 그 인물이 우리가 속한 정치적 공동체(국가)의 최상위 지도자임을 믿는다. 어떻게 단 한 번 직접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는 인물을 우리가 속한 정치적 공동체의 지도자로 자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인가? 동시에,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 더보기
광화문 광장과 세월호 유가족들의 공간:그들이 그곳을 떠날 수 없는 이유 사진: SP 그림: 표지혜 2014년 4월 16일, 거대한 배 한 척이 침몰했다. 선박 분야에서 세계적 기술을 자랑하던 대한민국 정부는 그 배의 침몰 앞에서만큼은 어떠한 기술도 자랑하지 못했다. 몇 척의 보트와 몇 대의 헬리콥터만이 그저 침몰중인 세월호의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을 뿐이다. 참으로 놀라운 점은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고 난 뒤 구조된 사람의 숫자가 0이라는 사실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실질적으로 구조된 사람은 없었다. 정확히 말해 이 사건의 생존자들은 구조된 사람들이 아니라 모두 선박에서 스스로 탈출한 사람들이었다.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고 있으라는 선내방송을 따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가까스로 배 내부를 벗어났던 사람들까지도 세월호와 함께 차가운 검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어떤 손길도 까만 바다.. 더보기
[서평] 좌절된 소통과 사랑에 대한 역사서, 오민석의 『그리운 명륜 여인숙』을 읽고 여인숙을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여인숙에는 호텔이나 모텔급의 숙박업소와는 달리 방 안에 따로 화장실이나 세면실이 없다. 여인숙에 들어온 목적이 무엇이든 이곳에 머물게 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공동화장실과 공동세면실에서 모두 만나게 된다.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화장실에 몰릴 수도 있고 세수를 할 때도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이 튈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 곳이 바로 여인숙이다. 하지만 공동공간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는 여인숙에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투숙객들은 여인숙의 이 같은 공동공간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옆에 사람들이 있더라도 아는 척하지 않고 그저 자기 용무를 끝낸 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에 바쁠 뿐이다. 사람들이 만나는 “공동의” 공간을 가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