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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콘텐츠/편집실 잡담

비평루트 3호, "욥을 생산하는 경계도시"가 발간되었습니다!



천안함 사태가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욥'이었습니다. 그는 무죄하지만 고통을 받아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알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온 것에 대해 욥의 친구들은 재빨리 이유를 만들어냅니다. 그것은 어쩌면 그렇게 해야 빨리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욥의 친구들이 만들어 낸 이유가 '욥의 죄'였다면, 천암함 침몰의 원인으로 저들이 내세우는 건 오래된 적인 '북'입니다. 저들의 논리 속에서 천안함의 희생자들은 북과 싸우다 산화한 영웅이 됩니다. 이를통해 저들은 정작 천암함의 수병들에게서 눈을 돌려 다른 곳을 향하게 합니다.

한 경계인이 있었습니다. 그도 욥이었습니다. 박성훈의 <경계도시2> 평은 욥이 된 송두율 교수를 이야기합니다. 그는 욥을 생산하는 경계도시의 논리에 함몰되어버린 '시민운동'을 욥의 친구들과  비교합니다. 그들 역시 '다음 단계의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경계인의 자리를 유지하려는 송두율을 그대로 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마치 욥을 컨베이어 벨트에서 찍어내는 것처럼 양산하고 있습니다. 용산참사, 쌍용차, 천암함 수병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고통의 현장이 우리 주변에서 끊이지 않고 출몰합니다. '민주화'와 '선진화'라는 쌍둥이의 모습을 한 '진보'의 역사철학은 욥의 친구들의 모습을 하고 그들을 밟고 지나갑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서야 할 자리는 민주화라는 발전 도상이 아니라 신을 향해 항의하는, 그래서 역사를 멈추어 세우고 있는 욥의 자리가 아닐까요. 


편집장 김강기명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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